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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을 다시금 기간산업으로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2. 25. 17:57
농업에 관해 강연이나 기고를 의뢰받는 일이 꽤 있다. 필자 자신은 도시생활자라서, 농업과는 인연이 거의 없는 생활을 보내는 인간이다. 따라서, 필자에게 농업에 관해 물으러 오는 의도는 십중팔구 '현장을 잘 모르지만 일본 농업의 앞날에 강한 불안을 품고 있는 인간'의 의견도 (참고삼아) 들어두자는 것일 테다. 따라서, 아래에 내가 쓰는 글은, 평범한 농업 관계자가 거의 꺼내지 않는 주제를, 거의 쓰지 않는 어휘를 가지고서 얘기하는 셈이 된다. 그러한 관점으로도 농업의 중요성과 그 위기를 논할 수도 있음을 양지 바란다.
필자는 1950년, 이차 대전 끝난 지 오 년 되는 해에 동경의 다마가와 강변 마을에서 태어났다. 시모마루코 역서부터 다마가와 고수부지에 이르는 지대는 이전날 군수공장 및 여타 관련 작업장이 즐비해 있었던 까닭에, 비-29의 폭격으로 거의 쑥대밭이 되었다. 훗날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정착하게 된다.
집앞에는 '갈대밭'이 있었다. 봄에는 유채꽃이 피고, 가을에는 억새가 너울대는, 언뜻 보아 낭만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발을 들여놓기에 그곳은 너무나 위험했다. 전쟁 통에 나뒹구는 날카로운 철골이나 부서진 콘크리트 파편, 유리 조각이 수풀 사이에 널려있는지라 까딱 잘못해 넘어진다든가 모르고 밟게 되면 크게 다칠 염려(리스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수공장의 흉악한 잔해를 무성한 수풀과 야생화가 덮고 있었던 게, 필자의 고향이랄 수 있는 곳의 '원풍경(primal scene - 역주)'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관람했을 적에, 과학의 정화(精華)로서 설계되어 창공을 나는 거대 함선 라퓨타가, 타는 이를 잃고 사람 없이 수 세기나 비행하는 동안에, 마치 풀과 꽃 그리고 나무들로 뒤덮인 ‘비행 정원’으로 화했다는 묘사에 기시감을 느낀 바 있었다. 혹여 미야자키 하야오에게도, ‘무기를 뒤덮은 초목’이라는 도상(圖像)은 역시 전후의 원풍경이었는지도 모른다. ‘무기를 뒤덮은 초목’이라 함은, 패전 뒤 초토화된 일본에서 자라난 아이들 옆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리고 남모를 안식처와 같은 풍경이기도 했다. 그 풍경은 ‘전시 상황이 더 이상 없다’는 현실뿐만 아닌, ‘인간이 범했던 우행이나 무도를 모조리 고요와 평안 가운데 회복시키는’ 식물적인 어떤 것에 대한 신뢰와 포근함을 양성했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그랬다.
1950년 일본의 농업 인구는 1,613만 명이었다. 일본 인구가 8,400만 명이었던 시대에는 총인구의 20%가 농업 종사자였던 셈이다. 2024년 농업 인구는 88만 명. 1억 2,500만 명의 0.7%에 불과하다. 패전 뒤의 일본에서는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이 수치는 사리에 맞는다. 또한 농업이 기간산업인 사회에서는, 온갖 장면을 통틀어 농업적인 비유가 구사되고는 했다. 필자가 도시 태생 소년임에도 농업에 친근감을 느끼는 이유는, 농업 용어가 통용되는 환경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당시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농사를 빗댄 용어만 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학생을 ‘씨앗’으로 보자. 교사는 ‘농부’다. 물을 대고, 거름을 주고, 병충해나 풍수해로부터 지켜주며, 이윽고 걷이때가 되면 ‘열매’를 얻게 된다. 거지반 자연환경만 보고 가는 것이므로, 인간이 프로젝트를 100% 관리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어떠한 결실을 본대도 그것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식물적인 비유 가운데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교사가 등사판으로 찍어 나눠준 가정통신문 제목을 살펴보면 거개가 ‘움돋움’, ‘어린잎’, ‘잎사귀’ 같은 식물적 어휘에서 따왔다. 아무도 이것을 낯설게 여기지 않았다.
기간 산업이 변화함에 따라,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함의 역시 달라진다. 필자가 1960년대 일본에서 경험했던 건, ‘가치 있는 것’을 나타낼 때 ‘농사를 빗댄 단어’를 쓰는 습관이 사라졌단 점이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기간산업이 중공업으로 이행하면 사람들은 ‘무게’나 ‘양’, ‘빠름’으로 가치를 표현한다. 서비스업으로 이행하면 이번에는 ‘효율’, ‘생산성’ 그리고 ‘다기능(원문 汎用性 - 역주)’으로 가치를 나타내게 된다. 산업이 한층 더 발달하면 이제는 쓸만한 어휘조차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세상만사를 ‘화폐’로 치환하여 표현하는 지경이다. 이제, 자녀를 양육할 적에, (좀 심하게 말해서) 어른들은 ‘이 애가 장차 얼마나 벌어올 것인가’ 하는 기준을 잣대로 삼는다. 그렇다. 돈 얘기밖에 안 하게 된 것이다. 자녀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다시금 농업을 기간산업으로 할 것을 주장한다.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기간 산업이 되지 못할 것이지만, 이 사회의 ‘근원을 떠받치는 활동’을 의미하는 ‘기간산업’이라는 합의만큼은, 국민 스스로 그 뜻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법이다. 통치자들이 ‘농업은 나라의 기간산업이다’라는 철학을 가지면 될 일이다. 농업이 GDP의 몇 퍼센트나 하냐 하는 그런 소리가 아니다. 땅을 갈고서, 시종 천후에 노심초사해하며, 그렇게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몸부림이야말로 모든 인간 생활의 기본일 뿐만 아니라, 장장 수만 년의 이 활동을 통해 인류는 그 집단적인 기틀을 창출해 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농작물은 상품이 아니다. 마치 그게 상품인 것처럼 가상하여(假象; [독]Schein - 역주) 시장을 왔다 갔다 하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관행의 근거는 ‘마치 그것을 상품처럼’ 매매해야만 농작물은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는 경험지에서 비롯됐다. 다른 상품은(자동차가 되었든 휴대전화가 되었든) 공급이 중단된다 하더라도 사람이 죽는 일은 없다. 하지만, 농작물의 공급이 끊기면 얼마 안 가 그것을 둘러싼 쟁탈이 일어나 사람들이 서로 반목하게 되는데, 드디어는 사람이 죽어 나가기 시작한다. 따라서, 절대로 공급을 중단시켜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를 시장에 맡기겠다는 발상은, 인간의 오만이다. 코로나 사태 당시,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양만큼 시장에 조달하면 된다’고 역설했던 ‘영리한 경영자’들 탓에,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식료, 의료, 그리고 교육은 절대로 아웃소싱할 일이 아니다 하는 것이다. 이것들만큼은 국민국가의 범주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체제를 반드시 갖추어 놓아야 한다. 그것이 국가적인 위험분산(리스크 헤지)의 기본이다. 따라서, 전 세계 선진국 대부분이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일본 같은 경우, 의료는 간신히 유지하고 있으나, 식료와 교육 분야는 이제 나라 안에서 국민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만들어낼 힘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관해 정치가, 공무원, 기업인, 언론계 어느 하나 위기감이 없다. 심각한 사태다.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일본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전투기나 유도탄을 도입할 예산이 있다면, 그것을 농업과 의료와 교육에 쏟아붓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가 안보’이다. 국민이 굶주리고, 병마에 고통받으며, 원하는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도외시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을 외면하면서까지 마련한 돈으로 무기를 사들인다 한들, 정부는 대체 그걸로 어느 누구를 지키려는 셈인가.
일본은 이제 더 이상 경제 대국이 될 수 없다. 인구 측면에서는 21세기 말엽에 5,000만 명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메이지 40년 무렵과 매한가지다. 그러나 그때 역시 일본인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생업을 영위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시대, 적어도 이럭저럭 먹고 살 걱정을 안 하기 위해서는, 농업과 의료, 교육 등에 최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분하여, 설령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할지언정, 긍지를 지닌, 도의적인 나라로 사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동의해 주는 사람이 적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농업협동조합신문」 1월 30일)
(2025-01-16 08:3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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