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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성에 관하여 (가제)』 들어가며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3. 9. 17:11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이 책은 상당히 이례적인 탄생 비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다년간에 걸쳐 나는 한국에 강연 여행을 다니고 있습니다. 10년도 더 되었을 겁니다. 처음에는 내 교육론 책을 읽고서 감명받은 교육계 분들의 회합에서 종종 불러주셨습니다. 그러던 것이 출간 종수가 늘어남에 따라 강연을 해달라는 주제도 다양해져 왔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도서출판 유유라는 작은 출판사 소속 편집자가 한국에 온 저를 찾아서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한국어판 책을 내고 싶습니다’하는 제안을 밝혔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내심 의문이 든 게 사실입니다. 한국 독자가 어디에 관심을 두고서 내 책을 읽는단 말인가, 내가 알 턱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백지부터 시작하는 건 안 됩니다”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의지가 퍽 대단하시더군요. 하는 수 없이 “여러분한테 질문을 받아놓고 제가 답장을 하는 식의 책은 어떤가요?”라고 역제안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한국의 독자가 저한테 무슨 정보나 지견을 염출해내고자 하는 것인가를, 즉 내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알 수 있겠거니 해서였습니다.

     

    그렇게 전자우편을 통한 서신 교환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유유출판사 편집자 분들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내 책을 많이 번역해 왔고, 내 한국 강연 여행 때 통역을 맡아주는 박동섭 선생이 질문자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 가까이 지나서 2024년에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제목은 『무지의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도무지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나로서는 전연 알 길이 없었습니다. (저쪽이 따로 밝혀 두지는 않는군요.) 그분들이 그러시겠다니, 별도리가 없지요.

     

    그러던 것이 이 책은 뜻밖에도 내 책 가운데 예외적으로 한국에서 많이 읽히게 되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내가 한국에 낸 책은 이제 51권째가 된다고 합니다. 숫자는 그럴싸하지만, 실제 판매량은 적었어요. 희한하게도 2024년에 냈던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와 『무지의 즐거움』 두 권만큼은 (모두 한국의 유유와 만든 책) 썩 잘 나갔다고 했습니다. 한 번도 내 책을 읽어본 적 없는 새로운 독자층의 유입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며, 박 선생은 흥분한 어조로 보고해 줬습니다.

     

    나중에 이 책들을 일본어판으로 역수입해 보자는 기획안을 일본 출판인들이 들고 왔을 때, 좀 걱정이 들기는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정 독자를 한국인으로 뒀었기 때문입니다. 책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일본인이었다면 당연히 알고 있는 것들조차 한국인은 잘 모를 것들이 상당히 있을 터였습니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 일본인 독자한테는 필요 없는 ‘설명’을 꼬치꼬치 밝히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설명 단락이 과연 일본인 독자에게 어느 정도의 가독성을 담지할 수 있을까(, ‘리더블’할까), 하는 의문은 저를 번뇌에 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읽어본바, 그런 설명 같은 것들이 꼭 ‘불필요’하지는 않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지역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도서’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문화적 배경을 달리하는 독자들을 상대로 일종의 설명 책임을 게을리한 도서’를 이릅니다. 똑같은 모국어 화자거나, 아니면 특정한 취미나 정치성을 공유하는 독자하고만 통하면 된다는 식으로 쓰여 있는 글이란, 아무리 거기에 폭넓은 정보와 깊은 지견이 담겨 있다고 해도, ‘국소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벗어나 외국 독자를 획득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외국의, 모국어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내가 쓴 것을 부디 읽기를 바라기에 책을 씁니다. 이 태도는 30대 시절 학술논문을 발표할 무렵부터 그리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프랑스 문학과 철학이 전공입니다. 그래서 논문을 쓸 적에 ‘이 글을 프랑스어로 옮겼을 경우 과연 프랑스인 독자에게 의미가 잘 전달될까?’ 하는 질문이 항상 머릿속에 떠다녔습니다. 그러한 ‘구속’은 프랑스어로 반드시 옮길 필요는 없는 데에까지 계속 미쳤습니다. 지금도 여전하며 변함없습니다. 따라서, 내 글을 영어나 프랑스어로 옮기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는 적어도 출판계에서 그런 움직임은 없었습니다만) 그 작업이 나로서는 굉장히 수월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아무튼, 이 책의 상정 독자는 한국 분들인지라 주제에 따라서는 상당히 긴 설명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리고, 막상 해 보니, 모국어를 달리 하는 독자라도 알아먹을 수 있도록 ‘설명하는’ 작업이 굉장히 재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내가 원래 ‘설명을 너무 좋아하는’ 인간인 것입니다.

     

    『자면서 배우는 구조주의』(같은 제목 『푸코, 바르트 … 쉽게 읽기』 - 역주)란 책이 내 처녀작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전부 프랑스 현대 사상을 ‘설명’한 작업이었습니다. 학교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논한 『선생은 위대하다』(『스승은 있다』 - 역주)라든가,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를 최대한 친절하게 논한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역시 중고등학생 읽으라고 썼습니다.

     

    이러한 작업이 나는 무척 좋은 겁니다. 그 이유는, 전제가 되는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 독자에게, 복잡한 사상(事象; ‘현상’을 의미. 일본에서 건너온 학술 용어 - 옮긴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삼라만상에 ‘근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이타미 주조의 수필 가운데 ‘야구 규칙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야구의 재미를 알려주겠다’ 하는 기획을 갖고 온 편집자 얘기가 있습니다. ‘「투수와 포수는 서로 아군입니다」 하는 데서 시작하는 겁니다’가 편집자의 아이디어였는데, 이타미 주조 씨는 이를 매우 흥미롭게 여겼다고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수필은 빛을 못 봤기는 해도, 나오기만 하면 정말 근원적인 ‘야구론’이 될 터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어적인 공통 기반이 없는 화제와 관련해 한국 독자에게 ‘설명’을 했다는 말인즉슨, 내 생각엔 매우 ‘근원적인 이야기’가 나왔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책이 나오고 보니 그건 참말이었습니다.

     

    ‘일본인이 독자로 상정 안 된 책’을 쓴 건 나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 분들이 내게 던진 질문 역시, 대부분의 일본 미디어들은 한 번도 던지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이제까지 한 번도 쓴 적 없던 책’이 되겠습니다.

     

     

    끝으로 한국어판 출판에 힘써 주신 유유출판사 여러분과, 박동섭 선생에게 감사 말씀드립니다. 일본어판의 출간을 진행해 주신 후루타니 토시카츠 씨께도 감사 말씀 올립니다. 여러분, 항상 고맙습니다.

     

     

    20151*

    우치다 다쓰루

     

    (2025-01-20 11:1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 제가 미디어에 관계된다면 한 번쯤 꼭 남겨보고 싶었던 말 중의 하나가, “저자의 의도를 존중해 그대로 싣는다”였습니다. … 나머지 하나는 “원고가 늦어졌음에도 기다려준 편집자에게 고맙다”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