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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성에 대하여 (가제)』 저자 후기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3. 14. 17:31

    여러분, 마지막까지 읽어주신 점 감사 말씀 드립니다.

     

    어떠셨나요? 시종일관 거의 모든 꼭지가 '지성의 작용'을 둘러싼 질의응답이나 진배없었습니다.

     

    본문 속에서 거푸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지성의 작용이란 집단적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유 재산과도 같은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스스로 파헤쳐 내고, 또한 다듬어낸 소재를 한데 모아 일종의 '지성 공유지'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지성이라는 게 애초에, 경쟁이나 심사라는 개념과는 좀 생경하다는 것이지요. 타인과 '누가 더 지성적인가'에 대해 상대적인 우열을 다투는 일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개인적으로 믿습니다. 지성은 그 기능의 질을 타인과 겨루라고 있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십시일반 하여, 모두가 활용해야 하는 법입니다.

     

     

    내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열한 살 초등학생 시절 히라카와 가쓰미와 친구 사이를 맺은 사건이었을 겁니다. 우리는 몹시나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가면 갈수록 상대가 말한 것하고 내가 말한 것이 구별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흔한 일이지요? 친구를 때려놓고서 '왜 때려' 하고 울어 재낀다든가, 친구를 넘어뜨려 놓고서는 자기 무릎을 싸쥐며 '아이 아파' 울기도 합니다. 정신분석 용어로는 '전가 현상(transference - 역주)'이라고도 부르는데, 자타의 경계선이 애매해지는 그런 현상을 이릅니다.

     

    보통 그런 현상은 유소년기에 끝맺게 됩니다. 하지만 히라카와랑 나 같은 경우에는 이게 충분히 성장한 뒤에도 지속되었던 겁니다. 그 결과, 내가 안 읽은 책일지라도 히라카와가 읽었더라면 '음, 읽어본 책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안 본 영화인데도 히라카와가 봤으면 '음, 본 영화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기에 이르렀습니다. 음악이든, 정치 활동이든, 회사 경영이든 간에, 분야를 막론하고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이렇게 서로 갖고 있는 경험이나 지식이 '공유재'가 되어놓아서, 내남없이 마음껏 써도 되겠거니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쓴 『미국의 반지성주의』를 히라카와에게 권하느라고, '이거 재밌어. 한번 읽어봐' 했더니, 히라카와는 '그 책 내가 예전에 우치다 너한테 "읽게나" 하고 언급했던 책이야'라고 내게 일렀습니다.

     

    이런 일이 사실 많은 겁니다. '누가 먼저 알았냐'라든가 '누가 더 많이 아냐'가 우리에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러한 친구와 60년 넘도록 의좋게 지내온 결과, '지는 곧 공유재이다' 하는 법칙(룰)이 혈육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 걸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한테 '이렇게 하시오' 해도 어지간해서는 납득을 안 해줄 겁니다. 모두가 운 좋게 이런 친구를 사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지적인 행위란 것은 본질적으로는 '경쟁'이 아니고, '협동'이란 사실에 대해서, 끝끝내 말씀을 좀 드려야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사는 게 편해지고, 지적 생산력은 높아지기 마련이니까요.

     

    21세기 들어서 일본이 지적 생산성이라는 면에서 아주 열화되어 버린 가장 큰 이유는, 다들 '자기가 얼마나 유식한가',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가'를 과시하며, 다른 이를 밀쳐내고서 권력이나 재화를 '자기 몫'으로 돌아가게끔 경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짓, 하면 할수록 집단적인 지성은 스러져갑니다. 이제는 다들 알 때가 됐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박식한가, 자기가 얼마나 영리한가 골몰하는 건, 정말 아무 소용도 없지 않나요? 자기가 소유하는 지적인 재(財)가 있다면 공유지에 공탁하여 모두가 쓰게 내버려둡니다. 자기도 모두가 공탁해 놓은 것을 써먹으면 됩니다. 그것이 지적으로 차고 넘치는 사회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동의해 주는 사람이 정말 적지만, 앞으로도 나는 거듭거듭 주장할 작정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주시기를 바라마지않겠습니다.

     

     

    2025년 1월

    우치다 다쓰루

     

    (2025-01-20 11:1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