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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하는 학교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1. 25. 19:17
2023년도 기준 일본에서 등교거부 상태로 판정 난 학생은 36만 6천 명에 이릅니다. 전년도에 비해 5만 명을 훌쩍 뛰어넘은 바, 과거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매년 거의 5만 명 추세로 등교거부 사례가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이상 사태’라고 할 만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도, 과거에 등교 거부를 경험한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따돌림’으로 인해 등교거부 상태가 되었으며, 전학도 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도 등교 거부였고(입시 공부가 싫어서), 그길로 고등학교를 중퇴해 버렸습니다. 대학 4학년 때 역시 정말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던 시기가 꽤 길었습니다. 그런 인간이니만큼, ‘학교에 안 가고 싶다’ 하는 기분은 잘 압니다. 뭐라고 할까 학교한테 ‘오지 마라’는 소리를 들은 느낌이 드는 겁니다. 특정한 선생님이 싫다든가, 특정한 친구가 싫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학교라는 시스템’이 못마땅한 겁니다. 그곳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과 토라져 버리는 셈이지요.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무렵까지 ‘학교한테 《오지 마》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던’ 적이 수없이 있는 인간이 어찌 된 영문으로 훗날 일부러 대학원까지 가서 대학 선생이 되었는고, 그건 바로 ‘즐거운 학교’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선 절대로 사람을 물리치지 않습니다. 오는 사람은 전부 환대하는, 그런 학교의 선생이 되고 싶었어요.
학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환대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교원 노릇을 40년 했거니와, 무도 수련 도장의 사범을 35년 하는 와중에도, 이런 신념은 한 치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무도의 경우, 뭔가를 터득하기 위해서는 좌우지간 수련을 계속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정말 그게 전부입니다. 부지런히 수련하는 겁니다. 이때, 수련을 지속하려면 가장 필요한 게 ‘내일도 이 도장에 오고 싶다’는 감정이 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도장에 갔더니만 주위 사람들이 죄다 못살게 굴고, 수련도 고통스럽기만 한 그런 조건 아래에서 오랫동안 계속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늘 수련은 여기까지입니다’ 하는 시간이 오면 ‘어, 벌써 끝난 거야?’하고 살짝 아쉬운 나머지, 다음 수련일이 속히 오기를 내심 바라는 사람이야말로 솜씨가 빨리 늡니다. 이런 이치는 누구든 알아먹을 수 있겠죠?
그래서, 나는 내 도장을 ‘환대의 장’으로 만들겠노라 다짐한 것입니다.
다들 수련하러 오기 전에 미리 도장을 정결케 하고*, 이곳에서 수련을 잘할 수 있도록 마음속 깊이 빕니다. 그런 내 정념은 모두에게 가닿을 것이 분명합니다.
(* 원문은 清め. 물리적인 조건뿐만이 아닌, 말 그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등 전반적인 분위기를 아우르는 의미이다. - 옮긴이)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대’입니다. 우선 ‘잘 오셨습니다’ 하고 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명으로서 알아주며, ‘이곳은 당신들의 장소예요’라고 보증해 주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는 당신들이 이곳에 있어 주어 몹시 기쁩니다’라고 말해줍니다.
환대, 승인 그리고 축복.
나는 이야말로 교사가 학교에서 이룩해야 할 가장 중요한 소업이라고 봅니다. 만약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교과서 내용을 가르치는 건, 내 분명히 말하는데, 하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는 재밌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기분만 들어준다면, 수업은 자동적으로 ‘어쩌다 보니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들어버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법이니까요.
내가 경애하다시피 하는 작가인 하시모토 오사무는 ‘나한테 학교란, 초등학교 후반 때부터 중고등학교에 걸쳐 시종일관, 거의 천국과 같은 곳이었다’고 썼습니다. 얼마나 즐거웠으면 저랬을까요. 청소 당번 할 때가 가장 좋았다고 했을 정도이니만큼, 당연히 수업 듣는 것도 좋아했겠지요. 그래서 하시모토 씨는 입시 공부를 하지 않고서도 동경대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사태의 순서는 ‘학교가 재밌다.’ 그러니 ‘어쩌다보니 수업도 듣게 되어버렸다’로 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그런 학교만 세상에 가득했다면 등교 거부 따위 결코 없었을 겁니다.
(형설시대 11월 호)
(2024-12-19 08:4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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