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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 드라마로 보는 선망 직업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1. 24. 00:03
며칠 전 방송국 사람과 ‘올드 미디어가 힘을 잃고 있다’는 주제로 대화하는 와중에 생각해 보니, 신문기자나 방송국 PD를 주인공으로 한 티비 드라마가 없다는 이야기로 흘렀다.
요즘 티비 드라마의 주인공은 어떤 직업인인가 조사해 보았더니 1위 경찰관, 2위 회사원, 3위 의료인, 4위 교사, 5위 탐정, 6위 변호사, 7위 편집자, 8위 작가, 9위 요리인, 10위 은행원이라고 한다. 과연. 미디어 관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7위에 편집자가 들어가 있지만, 신문기자라든지 티비 관계자가 순위에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필자가 어렸을 무렵, NHK가 『사건 기자』라는 드라마를 58년부터 66년까지 방영했었다. 필자도 매주 화면을 잡아먹을 듯이 시청했다. 따라서, 당시 아이들의 ‘되고 싶은 직업’ 제1위는 압도적으로 신문 기자였다. 60년부터 61년도에 걸친 기간에는 단바 데쓰로가 주연한 『톱맨』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프리랜서 잡지기자가 정・재계의 암부를 폭로해 가는 드라마로, 당시 주간지의 반골성을 엿볼 수 있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마지막 신문기자 드라마는 미즈타니 유타카가 주연한 시리즈로 1983년부터 2005년까지 배역명을 바꿔가면서 22년에 걸쳐 비교를 거부하는 신문기자로 분했다.
티비 드라마의 주인공은 ‘경직된 제도를 인지상정의 도리로 타파하는 파격적인 인물’이어야만 한다. 이는 『춤추는 대수사선』의 오다 유지나 『HERO』의 기무라 타쿠야, 『이치케이의 까마귀』의 다케노우치 유타카에게서 보듯 죄다 설정은 동일했다.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그야말로 사람의 실물에 육박하는 도리로 말미암아, 경직된 그리고 타성적인 시스템에 엄연히 맞서는’ 것이 주인공의 조건인 셈이다. 따라서, 저널리스트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가 급감했다는 사실은 상당히 심각한 사태라는 말이다.
도쿄신문 소속 모치즈키 이소코 씨 원작 『신문기자』는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된 바 있으며, 방송국 PD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엘피스』도 걸작이었다. 잘 보면 모든 작품이 예리하게 업계의 문제를 척결하고는 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본 어린이들은 ‘저 업계에 꼭 가고 싶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미디어 업계는 이제 ‘돌출적인 개인’ 한 명 갖고 고쳐 쓸 수 있는 한도를 넘어 열화했다. 많은 사람들은 드라마를 보고서 그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AERA, 12월 4일)
(2024-12-19 08:3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보충 설명】
… 사법과 의료와 교육은 사회를 떠받드는 주된 기둥 역할을 하므로 ‘건전성이 꼭 담보되어야 한다’는 시민의 통념이 아마 이 설문결과에는 반영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면 여기서, 어떤 직업을 주제로 드라마가 제작될 법한데도 아직 안 나오는 데가 몇 있습니다. 사회를 건사하고 있음이 틀림없으나 ‘건전성’을 기대할 수 없는 업계는 과연 어디란 말인가.
저널리스트와 일본 자위대 대원입니다. 여기에 신문기자나 방송국 피디도 티비 드라마 주인공 역을 차지하지 못한 지 오래입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심각한 건 자위대원입니다. 25만 명 규모에 7.7조 엔 예산이 투입되는 현장이 한 번도 티비 드라마화된 적이 없습니다.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태입니다.
내 가설은 ‘업계 내에 들지 못하고 겉도는 인물이 드라마 주인공으로 발탁되지 못하는 업계’는, ‘내부 고발이 없는 업계’와 그 범위가 겹친다는 겁니다. 내부 고발이 많은 직종은 경찰, 의료, 교육입니다. 이는 그 업계의 성원들 대다수가 ‘우리 업계는 도의적일 필요가 있다’는 신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메이저 언론과 자위대를 다룬 일본 티비 드라마는 없으며, 내부 고발도 적습니다. 이것은 극화의 주인공이 갖춰야 할 조건인 ‘상식이 통하는 인간’은 발붙이지 못한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이와 동시에, ‘우리 업계는 도의적이어야만 한다’는 의식을 지닌 성원이 적다는 것 또한 의미합니다. 이게 내 가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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