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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農을 말한다 (중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1. 20. 20:29

    대미 자립’이라는 기개의 상실

     

     

    우치다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이라는 사술적인 국가 전략이 60년대 까지의 자민당 정치에는 있었다고 봅니다. 미국으로부터의 국가 주권의 회복, 북방영토와 남방영토(오키나와) 탈환이 우리나라의 최우선 목표라는 점에, 60년대까지는 좌우 불문하고 국민적 합의가 있었어요.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아무도 ‘대미 자립’ 얘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후지이 그런 얘기를 하면 얼간이 취급 받게 될 정도니까요. 특히 정부 여당 관계자들 사이에서 그랬다가는 ‘후지이 씨가 뭘 몰라서 그래. 중국이나 북한의 위협에 대항하려면 미국과 잘 지내야 하지 않겠어?’라는 면박을 듣습니다. 그러니까 중국이나 북한에 군사적으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노예’가 되라는 거고, 그런 말이 싫으면 ‘동맹’이라고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전에 이르던 ‘일미안보’를 이제는 ‘일미 동맹’으로 바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특정 연령대 매춘을 ‘원조교제’나 ‘파파 대행’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다름 없지 않습니까? 일미동맹도 뭣도 아닌 걸 갖다가 일미동맹이라고 부르는 작태와, 국내 농업을 사수하려는 기개가 사라진 현상은 완전히 동일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우치다 문맥적으로 보면 거의 똑같습니다. 농업은 나라의 기간산업인지라, 농업에 함부로 간섭하면 격렬한 반미 여론이 휘몰아칠 가능성이 있었어요. 그래서 손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기어이 일본 국내 정치가들에게 대미 자립이라는 기개가 사라진 것을 목도하고 나서는 급거 대일 전략이 조잡하고 노골적인 형태로 추진되었어요.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후지이 어떤 사령관의 지휘로 일사불란하게 일본의 예속화를 추진한 게 아니라, 서서히 분위기적으로* 그렇게 변해갔다는 말씀이시군요. (* 원문 空気 공기. ‘동조 압력’의 일본적인 개념 – 옮긴이)

     

     

    우치다 현재 일본 총리는 그저 ‘속국의 대관’에 불과합니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는 미국에 조공을 바치고 백악관으로부터 관위를 ‘책봉’받는 게 가장 확실하다는 신념이 있습니다.

     

     

    후지이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라는 소설이 있는데 완전히 똑같은 상황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미국의 청년장교가 필리핀의 포로수용소를 관리하게 됩니다. 그 수용소의 포로들 가운데 일본인을 한 명 리더로 고릅니다. 물론 딱히 명확한 기준도 없이 적당히 뽑습니다. 자리에 앉았더니만 아무 권한도 없고 실제로는 젊은 미국인이 전부 처리하는 와중에, 수용소 내부에 서서히 도덕의 퇴폐가 자라난다는 그런 줄거리입니다. 오오카는 책 말미에 이것이야말로 일본의 모습이라고 적었습니다. 즉 소설 속 수용소의 지도자가 일본의 총리대신이라는 점을, 미국과 전쟁을 치렀던 오오카는 우리 전후세대 일본인에게 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개를 오늘에 와서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게 된 거예요.

     

     

    우치다 전후에 태어난 세대는 사실상 주권국가의 국민이었던 경험이 없습니다. 부모 세대까지는 대일본제국의 신민이었거든요. 패전으로 제국은 망했건만, 그럼에도 그러한 국운을 결정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타국에 지시받은 게 아니었던 겁니다. 하지만 패전으로 말미암아 국가 주권을 잃었습니다. 그 상실감의 깊이란 우리 전후 세대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돌아가야 할 원래 상태’에 관한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국가주권의 탈환과 국토의 회복’이라는 말 자체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 문자열의 실제적 감각을 점차로 믿기 힘들게 되어 가는 실정입니다.

     

     

    후지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주권을 되찾아오기는 했습니다만, ‘누가 봐도 뻔하지만 되는대로 얼버무린’ 그런 주권에 불과했지요. 오키나와 관할권도 사실상 방치했구요.

     

     

    우치다 저는 어렸을 때 ‘일본국 헌법은 우리 일본 국민이 손수 지었다’고 배웠습니다. 어린이였던 만큼, 가르쳐주는 대로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부턴가 이건 말이 안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말 사악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어요. 자국민으로서 인식의 출발점은 응당 ‘우리는 주권국가의 국민이 아니다’라는 결여감에서 비롯되어야만 했는데, 이건 마치 전쟁에는 졌지만 국가주권은 곧바로 회복했답니다 하고 꾸며낸 얘기와 다름 없는 겁니다.

     

     

    후지이 아, 정말 그렇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했거든요. 알고 보니 국회 공식 문서 속에도 제정 헌법이 GHQ에 의해 거의 강요당하다시피 했다는 경위가 실려 있기도 하니,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어렸을 때는 그런 사실을 몰랐어요. 하지만 여전히 요즘 어린이들도 그런 수동성을 간과하고 있겠지요.

     

     

    우치다 어떠한 역사적 경위로 일본국헌법이 기초되었는가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없는 겁니다. 누가 어느 조항을 어떤 의도로 써넣었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는바, 그중 결정적인 것은 없습니다. 헌법의 어느 조항이 어떠한 의논 끝에 결정되어 왜 이런 문언이 채용되었는가 하는 담론은, 조항 그 자체의 옳고 그름과는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로서 확정되어야만 합니다. 조항의 적합성 여부에 대한 논의는 그러한 합의가 있은 연후에 다루어야 하지요. 어째서 이런 조항이 쓰여졌는가에 대한 결정적인 얘기를 아무도 모르고 있으니만큼, 헌법을 제대로 논의하기가 불가능한 겁니다.

     

     

    일본의 정치가들은 미국 때문에 겁을 집어먹었는가?

     

     

    후지이 말씀대로입니다. 과거의 자민당이나 사회당 등지의 정치가는 그런 사항들을 나름대로 의논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정치가들은 눈치만 살살 보고 있지요. 어디에 붙으면 득을 볼까 하는 생각들만 가득해서 그런 쪽으로 머리를 굴리는 까닭에, 기본적 교양이란 게 사라져버렸어요.

     

     

    우치다 아베 신조 같은 경우도 그래요. 원자폭탄 공격을 받고서 포츠담 선언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는 식의 역사 인식 수준인 겁니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모르는 인간이 헌법에 대해 중요한 결정을 내리겠다고 나선다는 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후지이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이즈미 신지로가 보여준 인식이 그 전형이었지요. 그런 데 관심이 있는 인간 자체가 드물어요. 입헌민주당에서도 얼마 전 대표직 선출이 있었는데, 이러한 의논을 과연 어디까지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우치다 그다지 인식하고 있지 않을 겁니다. 입헌민주당도 참신한 개혁을 앞세워 정권 교체를 실현하려는 생각은 있습니다. 근데 이게 일본에서는 집권 여당이 되려면 백악관으로부터 ‘속국의 대관’으로서 적격하다는 허락장을 교부받아야만 한다는 게 문제예요. 일본 총리로서 갖는 적격성의 근거가 ‘미국 백악관의 승인 여부’라는 사실은 상당히 비참하다 할 수 있습니다.

     

     

    후지이 지금 나오는 얘기들은 어디까지나 도시전설적인 면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겠고요. 제가 보기에는 겁들을 너무 집어먹고 있다는 거예요. 미국인은 보통 상대방의 제안이 합리적이면 “That makes sense” (말이 된다)고 납득해주니까요. 설령 핵무장 문제라 하더라도 조리에 맞게 철저히 설득하면 어느 정도는 들어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씨 같은 화법을 구사하면 씨알도 안 먹힐 겁니다만.

     

     

    우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후지이 경우에 따라서는 암살이 벌어질지도 모르지요. 실제로 CIA는 여태껏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여러 차례 그런 짓을 저질러 왔으니까요. 아무리 그런 미국이라도 G7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일본을 간단히 처치하지는 못할 겁니다. 따라서 미국에 대항할 때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우파고 좌파고 할 것 없이 담박하게 논리를 전개해서 공명정대히 “make sense” 소리가 나오게끔 의논을 해야 한다는 거죠.

     

     

    우치다 맞습니다. 제아무리 미국조차 일치단결하지는 못해요. 일미동맹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병존하고 있습니다. 거기서는 일미안보조약을 폐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주일미군기지를 철수시켜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굳건한 일미동맹’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사람들은 ‘재팬 핸들러’의 대리인에 불과한지라, 그들과 노선을 달리하는 미국 현지 여론을 결코 소개하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일미안보조약 폐기라는 블러핑을 걸 가능성은 있습니다.

     

     

    후지이 천하의 트럼프조차 백악관에 들어가면 주변 참모들에게 설득당해 결국 폐기 안 할 거라고들은 하지만, 일단 말만큼은 그렇게 할 가능성이 상당히 있지요.

     

     

    미국 사회의 일본 관련 여론을 환기시킬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야

     

     

    우치다 미국 내부에서도 지금처럼 일본을 너무 수탈하면 일본 그 자체의 국력이 쇠미해져서 결과적으로 미국의 서태평양 질서 유지가 어렵게 되니 일본을 식민지 취급하지 말고 국가 주권을 인정해주는 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도 당연히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소통하여 미국의 대일 여론을 일본에 유리하게 조성하는 것이 외교의 정석입니다. ‘미국’을 단일체인 양 일반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후지이 맞습니다. 이건 마치 촌사람이 서울 사람들은 다 깍쟁이일 거라고 싸잡아 여기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우치다 미국은 지금 심각한 국민적 분열에 시름하고 있습니다. ‘내전 일촉즉발의 위기’라고도 일컬어집니다. 과연 그렇다면 그 가운데 일본의 국익을 최대화할 만한 사람들을 특정해 포섭한 뒤 긴밀히 소통을 유지해, 그들에게 미국의 대일 국내 여론을 형성케 하는, 즉 ‘아메리카 핸들러’들을 육성할 호기라고 생각합니다.

     

     

    후지이 물론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퍼블릭 디플로머시’에 입각해 상대 국가의 여론을 유도하는 것은 이론상 가능하고, 그것이 원래 의미에서의 정치 주권이니까요.

     

     

    우치다 하지만 그렇게 미국 정치에 책략을 구사해 일본이 참예해 들어갈 수 있다는 발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어요.

     

     

    후지이 저는 한때 미국 학회에 자주 나갔습니다. 유럽 심리학 연구회에도 갔었고요. 그때 영어를 잘 못했어도 완전히 대등한 의논은 됐었어요. 같은 일본 사람으로서 선배가 되었든 후배가 되었든, 그에 걸맞는 역량이 있으면 충분히 인정해 주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잘 없습니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외국인들이 잘 모를 ‘게닌’ 얘기만 꺼내는 거예요.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에게 약간 기가 죽어 있어서 그런가보다 합니다. 저는 30세 쯤 무렵에 스웨덴에 유학갔었습니다. 당시는 90년대였기 때문에 일본이 상대적으로 문화도 우위였고, 일본의 IT기기나 전자제품도 잘나갔기에, 유럽 사람을 대할 적에 ‘내가 한수 가르쳐 주마’ 하는 심리가 있었고, 미국에 가서도 현지 사람들을 많이 깔봤습니다. 하지만 저 말고는 그렇게 생각하는 일본인이 없는 것이겠지요.

     

    아마도 이런 민간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내세울 것도 뭣도 없는 남산골 샌님식 외교가 다양한 측면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고이즈미 신지로 씨만 해도, 유엔 기후회의 기자회견에서 일상 영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폼을 잡으려 했으나 “펀, 쿨…” 발언처럼 일국의 장관 치고는 독특하리만치 어울리지 않을 조악한 영어를 썼으니까요.

     

     

    일미동맹 말고는 다른 시나리오를 상정해두지 않는 일본 정치학자와 정치가들

     

     

    우치다 이것도 한참 된 얘기입니다. 일본의 어느 고매하신 정치학자와 대담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일본의 안보 전략상 일미동맹 이외의 어떠한 시나리오를 생각해 두고 계시는지요?’ 하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누구 난처하게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단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었을 따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게서 말을 뚝 그쳤습니다. 굳건한 일미동맹 말고 어떤 시나리오가 존재할 수 있나, 그것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괴이쩍어서요. 만약 미국인 정치학자에게 ‘서태평양 안보 전략상 일미안보조약 이외의 어떤 옵션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아마 그 시나리오 몇 개를 대답해줄 겁니다. 유럽 학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토를 제외한 유럽의 안보 프레임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하고 물어봐도, 복수의 시나리오를 제시해 줄 확률이 높습니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일본인은 굳건한 일미동맹 말고는 다른 시나리오 자체를 애초에 떠올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고실험이라도 해서 중국과 동맹한다, 한국과 동맹한다든가 하는 … 그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그 현실성과 효과를 검토할 법도 하지 않나 싶습니다.

     

     

    후지이 일본인은 정치가가 되었든 학자가 되었든 죄다 머리에 뭐가 들었는지 도통 궁금할 따름이지요. 막말로 『포로기』에 나오는 수용소같은 환경에서 80년 가까이 있으면 그렇게 되는 사람이 많아지는게 아닐까 하네요.

     

     

    우치다 ‘대미 종속을 통한 대미 자립’이라는 국가 전략은 그 당시에는 충분히 합리적이었다고는 봅니다. 그 이외의 선택지가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대미 자립’이라는 목적을 팽개치고 나서부터는, ‘대미 종속’이란 명제가 수단에서 목적으로 격상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일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겁니까?

     

     

    후지이 ‘나라가 망했다’는 말에는 여러가지 정의가 있을 겁니다만, 이미 망해 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우치다 망했다는 건 좀 그렇고, 망하는 길로 들어섰다고 봐야겠죠.

     

     

    후지이 55년 체제가 처음 정립되었을 때, 자민당 강령에는 애초에 ‘외국 주둔군의 철수에 대비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이를 위해 평화헌법을 점검한다든가 국내법을 어떻게 정비하겠다 하는 의논이 있어왔기는 했습니다. 그러다 2000년 쯤에 강령을 개정했는데, ‘일미 동맹을 골자로’ 라는 문언이 삽입되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자민당은 이제 당 차원에서조차 외국 주둔군의 철수에 대비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겁니다.

     

     

    우치다 주일미군은 애초에 정부에서 파견 나온 단순한 현지군이어야 하는데, 80년 이상 거대 고정 기지에 살다 보니 간도 배 밖까지 나와서 요코타나 오키나와를 ‘미국의 해외 영토’ 쯤으로 여기게 된 셈이예요. 백악관이 반환 명령을 내려도, 주일미군은 내심 그럴 생각이 없는 것 아니겠어요?

     

     

    후지이 원래대로라면 일본의 정치가가 이와 관련해 명확하게 의논을 진행했어야 했고, 그랬으면 시간은 좀 걸렸을지언정 반드시 돌려 줬을 겁니다.

     

     

    우치다 필리핀의 경우 헌법까지 개정해 국내에 외국군을 주둔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했습니다. 결국 수빅 기지와 클라크 기지에서 미군을 철수시켰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도 주한미군 기지를 기존 대비 3분의 1 규모로 축소했습니다. 지위협정 면에서 살펴보면 여느 동맹국 할 것 없이 개정 움직임이 있습니다. 주일 미군이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하고, 아무런 조치도 않는 건 일본 뿐입니다.

     

     

    파멸 직전의 일본 농업

     

     

    후지이 이번 시간은 ‘농업을 말한다’는 테마로 말씀을 나누고 있고, 이상의 의논은 농업을 다루기 위한 포석으로 삼아야겠지요.

     

     

    우치다 대미종속이라는 문맥 속에서 일본의 농업이 파괴되고 식량이 자급 불능에 빠지며, 미국으로부터 농작물을 수입하는 것 이외에 국민을 먹여살리기 불가능한 그런 의존 체질을 프로그래밍하고 있다, 는 식으로 이해하면 될 겁니다.

     

     

    후지이 전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농업을 사수하기 위해서는 공적 자금을 대규모로 투입하거나 관세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TPP라든가 시장개방이라는 미명 하에 관세를 내리고 있으며, 농업 분야 보조금도 보면 재무성의 긴축재정 기조에 따라 삭감되고 있는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공적 부조’가 파탄나서 농가의 소득이 하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마지막 안전망으로서의 농협이 제공해온 ‘협동 부조’ 역시, 고이즈미 신지로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주식회사화를 추진하겠다는 둥, 농림중앙금고를 완전 민영화겠다는 둥 사실상 해체하려 들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TPP 반대론을 천명하고 다니는지라, 그런 저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들도 꽤 많이 마주칩니다. ‘TPP에 가입하면 일본이 망할 거라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과연 그렇게 망하겠느냐?’ 하는 식으로요. 그러나 2040년 일본의 농가는 지금의 삼분지 일이 되고, 2050년에는 5분의 1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버젓이 존재하는 겁니다.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지금 당장 농가의 최신 평균 소득(농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과 농업을 행하는 데 필요한 지출의 차액)1만 엔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농가 분들은 평균으로만 따져 보면 저금액을 축내서 벼농사를 지어주시는 겁니다. 더욱이 ‘레이와’라는 새 연대가 막 개막한 지금, 농가의 평균 연령은 예순일고여덟 세, 칠십 세 되는 형국입니다.

     

     

    우치다 언제 다들 저승길 떠나실지 모를 연령대로군요.

     

     

    후지이 상황이 이런데도 젊은 사람이 진입하지 않는 것, 이야말로 일본 농업의 괴멸을 의미하는 겁니다. 그 신호탄이 바로 금년 수퍼에서 쌀포대가 실종된 것이었다고 봐요. 예전에는 묵은쌀이 대량으로 남아있어서 다소 비싸더라도 얼마든 살 수 있었는데, 이것조차 불가능해졌다는 얘기입니다. , 일본인이 쌀을 점점 가까이하지 않게 된 것이죠.* 그런 맥락에서, 이미 일본이라는 나라는 망국의 길에 완전히 들어선 것이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 일본인에게 전통적으로 쌀은 영적, 종교적 대상이었음. 한국의 '밥심'이나 '아침을 먹읍시다'와는 차원이 다르다. - 옮긴이)

     

     

    우치다 저도 이대로 가다가는 망하리라 봅니다. 망하는 방향으로 아주 길을 틀어버렸는데 아무도 저지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후지이 안타깝게도, 고이즈미 신지로나 그를 비호하는 스가 요시히데 등, 자민당의 중핵에 위치하는 정치인 패거리가 그렇게 떠밀고 있으니 정말 암울한 상황입니다.

     

     

    「표현자 크라이테리온」 11월호

     

    (2024-12-16 19:33)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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