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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農을 말한다 (전편)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1. 16. 12:57
식료의 자급자족은 국가의 근간이다
후지이 사토시 이번 시간에는,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이자 무도가이시기도 하신 우치다 다쓰루 선생께서 왕림해 주셨습니다. 우치다 선생은 문학이나 사상, 사회과학 등 다양한 측면에 비추어 시세적(時勢的)인 문제를 논하고 계시는 바, 이전에도 ‘농업을 말한다’ 논단에 등단해 주시어 쓰쓰미 미카 씨와 식(食) 그리고 농의 문제에 대해 대담하신 적도 있지요. 그런 전례도 있고 해서, 이번에 모시게 된 참입니다. 부디 잘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서두르는 감이 있습니다만, 우치다 선생님은 ‘농農’의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우치다 제가 받는 강연 의뢰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교육 관련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의료와 농업입니다. 농협 관계자 분들을 필두로 다양한 단체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시는지라, 강연을 꽤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강연 주제는 대부분 인구 감소를 다룹니다. 현재 농촌은 급격한 인구감소로 인해, 지금은 과소지 단계도 뛰어넘어 거의 무주지화 되고 있습니다. 농촌 현장의 세세한 면은 연구자가 아니므로 잘 모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제가 거창한 말 하나는 잘하거든요. 인구 감소의 문명사적인 의미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점을 우선 얘기해 놓고서, 농업 종사자 여러분은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드리는 제언이란, 절대로 산골마을이나 농업을 내팽개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후지이 우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절대로 내팽개쳐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시는 그 이유는 어디에 근거하고 계시는지요.
우치다 농업은 나라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에너지와 식료의 자급자족은 국가의 근간입니다. 이 두 가지는 부족하다고 해서 언제든 필요한 양만큼 필요한 때에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실은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잘 알게 되셨을 겁니다. 공급망이 단절되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바라는 것을 살 수 없게 됩니다. 그때까지 미국은 마스크나 방호복과 같은 물자를 개발도상국이 만들게 해서 이를 수입하는 게 비용이 절감된다는 이유로 대부분을 아웃소싱한 탓에, 수입이 중단되자 곧장 의료 붕괴가 일어나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마스크나 방호복, 진단키트와 같이 단순하고 값싼 의료 자원은, 임금이 비싼 미국 국내에서 만들 필요가 없으며, 재고를 둘 필요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필요로 하는 때에 돈을 지출하면 된다’ 하는 식의 ‘요령 좋은’ 경영 판단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런 물건은 언제든 구매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살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만일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두려운 사태입니다. 지금 일본의 경우, 언제 난카이 해곡에서 거대 지진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미-중 전쟁만 하더라도 그게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국민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므로, 에너지와 식료 그리고 의료의 자급자족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최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최중요 과제입니다.
후지이 미국 등지의 선진국이라든지 G7 국가들은 식료 자급률 100~200%를 목표로 수출 산업적 측면에서도 육성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며, 이를 위해 상당한 국비를 투입해 자급률을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섭취열량 대비 자급률은 불과 38%밖에 안 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우치다 도쿄대 스즈키 노부히로 선생에 따르면, 실제로는 자급률이 10%대를 밑돈다고도 합니다.
일본의 식료 자급률이 낮아질수록 미국의 국익에 보탬 된다
후지이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조금을 듬뿍 주어 농가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입니다. 소위 ‘공공 사업’으로서, 농민들을 공무원에 상응하는 지위로 고용하겠다는 가치관입니다. 다른 하나는 ‘관세’를 높여 농업을 보호하는 전통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방법이 기본입니다만, 전자의 보조금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물론, 후자의 관세 역시 대표적으로 TPP협정 등을 내세워 자유화 기조를 따라 인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식의 풍조가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우려할 만한 사태입니다.
우치다 일본의 국익을 고려해보면, 갖가지 수단을 다 써서라도 농업을 수호하고,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지요. 이 말은 즉, 일본의 농업을 정부의 보조금으로 유지시키거나 일본의 식량 자급률이 높아지는 게 기껍지 않은 ‘외압’ 세력이 존재한다는 뜻이 됩니다. 누가 생각해 보든 그건 미국 말고는 없습니다. 미국은 정치가, 공무원, 기업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현재 일본의 농업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후지이 세간에서 말하는 ‘재팬 핸들러’ 인사들이 미국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CSIS(전략 국제 문제 연구소) 같은 곳은 ‘재팬 핸들러’들의 소굴인데, 고이즈미 신지로 씨도 거기서 연구한 이력이 있을 정도니까요. 그는 자민당 산하 농업위원회 회장을 맡았던 시절이 있었으며, 농협의 주식회사화와 금융부문의 개방 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이와 같은 사안들이 ‘개혁’으로 불리며, 무언가 좋은 것인 마냥 회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치다 자민당 총재가 되었든, 입헌민주당 대표가 되었든, 한자리 꿰차려는 정치가들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이건 숫제 일본 국민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백악관을 향해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일미군의 기득권에는 결코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라는 공약은 국내적 지지율 향상으로 이어질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빠짐 없이 공약하는 건, 그게 미국한테 잘보이려는 제스처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본의 총리가 된다 하더라도 미국의 국익에 저촉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승인하여 주십시오’ 하고 어필하는 겁니다.
후지이 대다수 일본 정치가들이 내놓고는 말 안 해도, 미국을 화나게 하면 정치가로서 연명하지 못한다는 공포심이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우치다 아주 예전부터 다나카 가쿠에이, 하토야마 유키오, 오자와 이치로 등의 전례를 보면 자명하니까요.
후지이 대미 자립을 도모하는 즉시 총리대신으로서의 정치생명이 끝장난다는, 좀 완곡하게 표현해서 그런 ‘도시 전설’이 있는 겁니다. 설령 사실이면 당연히 꼼짝 못하는 거고, 도시전설로만 떠도는 얘기더라도 일정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거예요.
우치다 실지로 미국이 자기 손에 피를 묻혀가며 정치 생명을 빼앗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가와 고위공무원, 그리고 언론은 미국의 뜻을 잘 헤아려 ‘납작 엎드리는’ 바, 미국의 국익에 상응하게끔 움직이고 있습니다.
후지이 2024년 9월 현재, 고이즈미 신지로가 자민당의 유력한 차기 총재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CIA나 백악관이 직접 고이즈미 씨한테 전화를 걸어 지시하는 일은 물론 없을 겁니다. 그것도 아니면, 알고보니 일일이 다 코치를 해주는지도 혹시 모를 일이겠는데 말이죠?
우치다 CIA가 되었든, 미국의 싱크탱크가 되었든 파견 나온 인원이 정책통이랍시고 명함을 돌리며 일본 정치가들 주위에 얼쩡거리는 수는 있습니다. 자문을 요청받았을 때, ‘아마 이런 식으로 하면 미국 측에서 좋아하겠지요?’ 하고 못된 꾀를 교사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딱 그런 간접적인 정도까지만 콘트롤을 하는 것이지, ‘핫라인’까지 동원해 미국이 지시를 내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
첩보기관 연구에 소홀한 일본
후지이 외국에선 CIA나 KGB 등지 자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 ‘첩보 연구’라는 분야가 있습니다. 일본에는 이런 게 없는 겁니다.
KGB 간부가 영국으로 망명했을 적에 반출한 간첩 관련 기밀 문서가 있습니다. ‘미트로힌 아카이브’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거기 보면 아예 ‘Japan’이라는 항목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아무도 그걸 번역한 사례가 없었기에, 제가 있던 교토 대학 연구실에서 작업해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예를 들면 어느 어느 신문의 누구는 요원이라든가, 무슨 무슨 당의 어떤 인물은 요원이라는 점이 모조리 기재되어 있습니다. 요원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은 다종다양한 유형이 있습니다. 사실상 첩자인 사람도 있고, 단순히 소비에트 연방과 친하게 지내는 바람에 알아서 척척 소련을 위해 움직여 주는 사람조차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미루어 보면, 미합중국 역시 그렇게 유도 작업을 펼치고 있을 법도 합니다.
우치다 아마 그렇겠지요.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요원은 다종다양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요원 노릇을 하는 사람도 상당수 있는 줄로 압니다. 자민당과 민사당의 창당 과정에서 미국 정보 기관의 자금이 투입되었다든가, 기시 노부스케 및 가야 오키노리 모두 CIA 소속 세작이었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져 있습니다. 일본공산당 역시 소련측 요원이 들어앉아 있었고요. 패전하고 나서부터 1960년대 내내 일본에서는 정당을 막론하고 자기들이 섬기는 ‘형님’ 국가와 어떻게든 물밑으로 소통하는 라인이 있었단 게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제깐에는 조국 일본을 위해 일한다고 여기는 와중에서도, 사실상의 외국 공작원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던 것이지요.
후지이 ‘닛테레’ 방송국도 1950년대에 그런 식으로 개국했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얘기들을 꺼내면 음모론자로 여겨지기 십상이지요. 그럼에도 외국에서는 ‘첩보 활동’ 분야가 대학의 연구 기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래 정치학자가 다루어야 할 분야인데, 일본의 여느 정치학 학회에서 그런 짓을 벌였다가는 그날로 ‘위험 인물’ 딱지가 붙을 테니 착수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우치다 원래 꼭 해야 하는 작업이기도 하거니와, 일본에서 이왕 시작하겠다면 역사학자와 손잡고 하는 게 참 좋겠단 생각은 들어요.
공문서 은폐 관행이 ‘음모론’을 부추긴다
우치다 미국은 국가 기밀 문서를 곧잘 공개하거든요. 그런 태도는 훌륭합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벗들과 한때 번역회사를 했었습니다. 당시에 GHQ 관련 자료를 대량으로 일역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얘기인고 하니 제 먼 친척 중에 히라노 리키조라는 정치가가 있습니다. 가타야마 데쓰 내각에서 농림대신을 지낸 바 있는 우파사회당 활동가였는데, 전쟁 당시 군국주의자였다는 고발이 들어와 공직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미국에서 공문서가 공개된 것을 기회로 자신과 관련된 모든 공문서의 사본을 들고 왔습니다. 그렇게 살펴보니, 누가 히라노 리키조를 ‘군국주의자올시다’ 하고 GHQ에 밀고했는지가 기밀문서에 적혀 있었습니다. 니시오 스에히로와 소네 에키라는 민사당 소속 인사 두 명이었습니다. 그들이 정적인 히라노를 모함하고자, 히라노의 전쟁 당시 경력과 관련해 명백한 허위 정보를 GHQ에 제공해 공직추방 조치를 사주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점이 밝혀지고 난 뒤, 히라노는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을 통해 명예 회복을 거머쥐었습니다.
후지이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미국은 공문서에 관한 한 공정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전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규범(norms)이 있는 거로군요.
우치다 일본 같은 경우 공문서를 즉각 폐기해 버리니까요. 패전 당시, 도쿄에서 육군본부가 공문서를 전부 소각한 이래로 흐르는 전통이겠지요. 2020년 도쿄올림픽 재정 관련 자료도 진즉 태워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후지이 진상이 드러나면 잡아 넣을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라는 소문도 파다합디다.
우치다 2025년에 있을 오사카 엑스포만 해도 보세요. 폐막한 뒤에 오사카 주민단이 관련자료 청구를 내봤자, ‘장부는 전량 폐기했습니다’ 하고 내뺄 것이 틀림없습니다.
후지이 실명을 거론하기는 곤란합니다만, 이번 자민당 전당대회에 고이즈미 신지로를 총재 후보로 적극 추대한 인물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그립을 쥐고 있는 인사가 집권해야지만 법적 수사를 피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나머지, 실질적으로 수족처럼 부린다는 신지로 씨를 추천했다는 뜬소문이 있습니다. 그의 부친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애시당초 신지로 씨에게 50세가 되기 전까지는 총재로 나설 생각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온 참이었는데, 그럼에도 그를 직접 찾아가 총재 아들을 두자고 설득까지 했다는 설이 매우 유력합니다. 그런 식으로 법망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게 상례라는 겁니다.
우치다 일본 정가에서 그런 음모론이 퍼지는 이유는 공문서나 장부같은 서류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통 숨겨놓는 바람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의문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반미 여론’에 힘이 빠져 좌지우지하기 쉬워진 일본
후지이 TPP 체결 과정에서 대표적으로 엿볼 수 있듯이, 미국이 직접 공작을 한다기보다도 사실상, 미국의 의중을 일본이 명확히 따르고 있다는 게 진실에 가까울 겁니다.
정부 기관이 외국 국민여론을 조작하는 이른바 ‘퍼블릭 디플로머시’라고 불리는 외교 전략이 있으며, 미국은 일본의 대미 여론 조성에 갖은 노력을 경주해 왔습니다. 내정간섭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자국 국익의 최대화를 추구하는 게 당연하므로, 그들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는 구석도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이 엄존하니만큼 이에 대응할 방안을 모색해 나가는 한편, 우리나라도 정정당당히 그러한 의지를 천명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이러한 비대칭을 생각해 보면 일본의 농업은 너무나 비참한 상황이며, 미국에 줄곧 잠식당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치다 미국 대일전략의 일환으로 보면 일본의 농업을 약체화시키는 게 미국 입장에서 합리적인 결론이기도 하거니와, 그걸 실행하는 것 역시 당연하기도 하겠습니다.
후지이 돌아보건대 그건 대항해시대나 제국주의 시절부터 통용되던 책략이었습니다. 당시의 만행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비교적 세련되었으며(sophisticated) 또한 합법적으로 보일지도 혹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빼먹을 것은 빼먹자는 주의인 겁니다. 특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입부터는, 수요 자체를 수탈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기 시작했지요. 처음에는 자원을 빼앗았지만, 그러던 와중에 수요가 있을 만한 기호품을 만들어 강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팔아재끼면서도 한술 더 떠 플랜테이션을 가동시킨 것입니다. 따라서, 노동을 착취하는 것은 물론 수요도 착취하는 이중 착취를 근대 제국주의 국가는 자행해온 것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그간의 군홧발을 거두고서 경제학자를 선교사로 삼아, 일약 세계화 의제를 확산시키며 시장을 가로채가고 있습니다. 이럴진대 한 나라의 산업을 무너뜨리는 것이 기본 중 기본입니다. 자국에서 변통할 수 있는 물건은 수입품으로 팔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규제 완화를 통해 농가를 망가뜨리고 농산물을 억지로 수입시키는 한편, 멀쩡한 택시 면허제도를 개판쳐 놓고서 기술기업 ‘우버’를 진출시키는 것도 한가지 예입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비추어 보면 지당한 일을 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대응책을 모색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고이즈미 신지로 씨를 필두로 하는 매판 세력이 물 만난 고기처럼 여전히 활개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치다 하는 짓은 식민지 주의 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게 제가 드리는 말씀입니다. 한동안은 좀 정교한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요즘들어 고삐가 풀려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워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일본 측이 전혀 저항을 하지 않아놓으니까, ‘재팬 핸들러’들이 구태여 기교라든가 은폐를 구사할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 거지요. 거북스런 일을 할 바에 좀 세련되게 할 것이지,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비열하고 노골적이란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후지이 예전에는 상황을 좀 봐가면서 했는데, 알고보니 이놈들이 생각보다 멍청하다는 걸 알아챘다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우치다 이제까지는 너무 막 나간다 싶으면 성난 반미 여론이 비등한 나머지 일본 전체가 등을 돌릴 리스크가 있었으므로, 다소간 억제적이었겠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위험성이 해소된 형국입니다.
후지이 80년대 오렌지나 쇠고기 개방 때는 난리도 아니었지요.
우치다 1960년 안보투쟁 이래, 일본 반체제운동을 구동해 왔던 구체적인 정념은 ‘반미 애국’이었으니까요. 60년대 말부터 있었던 전국학원분쟁도, 원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투쟁이었습니다. 그 무렵에는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도 성행했고, 혁신 지자체가 전국 각지에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대 일본에서 미국의 급선무는 반미 기운을 가라앉히는 것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무턱대고 노골적으로 일본의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탄압하려고 들면 오히려 일본의 반미 기운에 불이 붙는 한편, 경우에 따라서는 소련이나 중국의 간섭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러니만큼, 대일 공작을 할 때는 하더라도 매우 주의 깊게 하자는 고려가 있었을 거라 보는 거죠. 그러던 것이 21세기에 들어서는 ‘일본 내에 반미여론을 조장하려는 힘이 더 이상 없으니, 무슨 짓을 하든 괜찮다’라는 식으로 마음을 놓아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후지이 옳으신 말씀입니다. 지금 이 잡지의 전신인 『발언자』 『표현자』는 니시베 스스무가 시작했습니다. 그는 원래 도쿄대에서 좌익 학생운동을 벌였는데 그의 선배로는 전설적인 스나가와 전투 참전 이력이 있는 사내, 모리타 미노루를 꼽습니다. 그러던 니시베 스스무는 나중에 좌익 운동을 그만 두고 경제학을 배우는데, 20세기가 끝날 무렵에는 ‘보수’를 자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왜 전향했는고 하니, 좌익에는 다양한 찌꺼기가 퇴적되어 왔으므로 기동성이 약화된 바, 방편으로서 다시금 일본 국민의 ‘내셔널리즘(소위 민족 주의 - 옮긴이)’을 기반으로 ‘반미’ 운동을 전개하고자 좌에서 우로 선회했다고 합니다. 결국, 일본의 실질적 독립을 위한 ‘반미’가 목적이었다는 것이지요.
우치다 뭐니 뭐니 해도 국가주권과 국토의 회복이 기본이었다는 거로군요.
후지이 한번 태어난 이상 노예처럼 살 수는 없다는 게 사람으로서 당연한 감정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속한 국가가 예속 되어 있는 상황일 경우, 이로부터 탈피하는 일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습니다. 1945년 이후 일본이란 공간은 영화 『매트릭스』처럼 잘 짜여진 연출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표현자 크라이테리온』 10월호)
(2024-12-18 19:2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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