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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바야시 선생님에 관해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5. 1. 9. 16:46

    고바야시 마사히로 선생이 정년을 맞아 퇴직하신다 하여, 조촐하게나마 ‘송별사’를 부탁받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끝내는 존체를 상하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되오나 퇴직을 기회 삼아 차분히 휴양하시어, 기력을 회복하신 뒤 다시금 활약하시기를 바라마지않겠습니다.

     

    제가 고바야시 선생을 처음 뵌 것은 90년대 초, 일본 기호학회 심포지엄에서였습니다. 저는 신체론 심포지엄 발표자였습니다. 그런 저희 순서 앞에 고바야시 선생이 사회를 보신 기호론 심포지엄이 열렸었지요. 자리를 잡고서 들었습니다. 학계 현장에 계시는 분들의 담론은 저마다 구체적이고 매우 흥미로웠음에도 불구하고, 제각기 이야깃거리가 너무나 산만한지라, 통일된 학술적 지견으로써는 공유할 수 없어 보였더랍니다. 도무지 의견들을 어떻게 갈무리할 수 있을는지 조금 염려하며 듣고 있자니, 고바야시 선생이 발표자 전 인원 통틀어 그들이 말하려던 바를 말끔히 정리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간 심포지엄 때마다 사회자가 ‘사실 본인이 하고 싶었던 얘기’를 슬쩍 끼워 넣으며 유야무야 매듭짓는 광경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고바야시 선생은 발표자들을 향한 깊은 이해와 세세한 배려를 보여주심으로써 저를 단숨에 매료시켰던 것입니다.

     

    이 양반 정말 물건이다 싶어서, 단상을 막 내려온 고바야시 선생을 그 자리에서 멈춰 세워서는 명함 교환을 강권하는 한편, ‘고베 여학원대학에 한번 오셔서 고견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고 청했습니다. 고바야시 선생이 어느 분야 전공이신지조차 모르는데도 강연을 맡긴 셈이지요.

     

    다행히도 고바야시 선생은 쾌히 승낙하시어, 그로부터 얼마간은 고베 여학원에서 강연을 해 주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흥미로운 강연이었고, 학생들이 하도 눈빛을 반짝거리며 들어주기에,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객원으로 와 주십시오’ 하고 부탁드리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또한 흔쾌히 응해주시어, 고바야시 선생은 신체론, 의료론, 전통 예능론에 관한 깊은 지견을 종횡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토 조형 대학에서 동료 사이로 지내셨던 다가와 도모코 선생도 고바야시 선생으로부터 소개받았습니다. 다가와 선생의 프리젠테이션(‘코스프레’* 관련한 내용이었지요) 역시 학생들이 마음에 쏙 들어 한 나머지, 다가와 선생께도 그 자리에서 ‘초빙으로 와 주십시오’하고 부탁을 드린 연후, 이십 년 넘게 저희 고베여학원대학 학생들이 귀한 지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만화 캐릭터 분장 문화. 8~90년대 일본에서 등장한 이후, 2000년대 전 세계에 퍼진 행동 양식 – 옮긴이)

     

    저 또한 교토조형대학이나 정보과학예술대학원에서 불러주실 때마다 강연을 몇 번 했거니와, 고바야시 선생과 ‘2인조’를 맺고 바깥에서 여러 차례 같이 뛰었습니다. 고바야시 선생은 의학과 함께 일본전통 공연예술이라는 시점에서, 저는 무도를 수련하는 몸으로서 신체론을 논하였지요. 아닌 게 아니라, 제가 노가쿠를 오랜 기간 연습해 온 사정도 있고 해서, 이게 고바야시 선생의 가부키론과도 궁합이 잘 맞았던 겁니다. 피차 말이 워낙 빠르고, 잡학을 한번 피력하는 날에는 그칠 줄 모른다는 점에서 재담이 엇비슷한지라, 다양한 기회로 말미암아 ‘멍석’이 곧잘 깔리고는 하였습니다. 90년대가 끝날 무렵부터 2000년대 초엽까지가 이른바 ‘고바야시-우치다 듀오’의 전성기였습니다. 나중에 고바야시 선생이 기후현으로 가시고 나서부터는 뵐 기회가 줄어든 점, 참으로 안타까운 맘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제 입장으로서는 대학을 정년퇴직하고 보니 정치와 관련한 발언을 요구받는 사례가 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전통문화를 놓고 고바야시 선생과 있는 지식 없는 지식 각축을 벌이다시피 하는* ‘2인조 무대’를 피로(披露)할 기회가 홀연 사라져 버렸습니다. , 거참 좋았던 시절이었는데요.

     

    약간 더 나이를 먹고서, 이제야 ‘천하에 무용한 사람’**이 다 되었구나 싶으면, 다시금 콤비로 부활하여, 영감 둘이서 시사성이라고는 찾을 데 없는 잡담을 장구하게 읊는 자리를 가져보았으면 하네요. 꼭 한번 생각해 보셔요.

     

     

    * 원문 蘊蓄を傾ける [온축] ① 마음속에 깊이 쌓아 두는 것. ② 오랜 연구로 학문이나 지식을 많이 쌓는 것. - 이하 역주

    ** 원문 無用の人은 현대 소설가 ‘하라다 마하1962~’가 비로소 사용하여, 일본어 언중의 어휘목록에 등재된 말인 것으로 추정됨.

    의지가 있는데 일거리가 없음에 사회에서 쓸모없다 하는 사람을 이른다. 애초에 영화 제목 ‘무능인無能の人(1991)’이란 게 있었고, 이것과는 다소 어감 차이가 있음.

     

    (2024-12-07 14:0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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