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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스러운 얼굴을 한 민주주의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2. 28. 17:12
일본 총선거가 마무리되었다. 여당의 의석이 대폭 줄어든바, 장기간 이어진 ‘여당 일강’이 막을 내리고, ‘헝 팔리아먼트’(절대 다수당이 없는 의회)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정국은 유동화되었으며, 향후 예측이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상황이 민주정의 성숙이란 차원에서 단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정국은 다소간 불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설령 다수파 형성 과정에 따르는 이합집산이나 정책 결정상의 마찰이 빚어진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통치 기구 자체가 파탄 나는 경우는 없다. 필자는 이번 총선 결과가 일본 민주정의 성숙을 이끌 호기라고 생각하는 바다.
민주정에도 ‘미숙한 모습’과 ‘성숙한 모습’이 있다. 미숙한 민주정이란 ‘공감과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민주정’이다. 정치적 정체성(아이덴티티)을 공유하는 집단끼리 저마다 대립하는데, 이는 다수파 형성을 위해 다투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가 끝난 뒤, 이긴 진영은 만세를 외치거나 감읍에 휩싸이는 반면, 패배한 진영은 분한 마음에 발을 구른다. 하지만 이는 ‘민주정 후진국’의 풍경에 불과하다.
성숙한 민주정이라면 선거가 끝난 뒤, 어느 쪽 진영이든 ‘똑같은 정도로 불만스러운 얼굴’이라야만 옳다.
민주정이란, 집단 구성원 전 인원이 같은 수준으로 불만인 ‘합의점’을 찾아내는 계량적인 지성의 작동을 요구하는 제도이므로, 그렇게 되는 게 당연한 귀결이다.
성숙한 민주정을 하는 나라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는 ‘나라’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마땅한지를 따진다. 그리고 원래 국익이란 게, 몇몇 국내 집단과의 이해와는 상반하며 도출되는 이익의 총계일 수밖에 없으니만큼, 최종적으로 국익이 증대된 결과 ‘대박이 난 집단’과 ‘쪽박이 난 집단’으로 분열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따라서 ‘전 국민이 똑같은 정도로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민주정의 이상태인 것이다. 민주정은 으레 그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기묘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세상이 원래 그런 법이다.
물론, 그런 성숙한 수준에 이른 민주정 국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예컨대 현재 미국은 심각한 국민적 분단의 와중에 있다. 그 이유는 유권자들이 ‘미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환상 속 공동체의 이익보다도, 현재 자신이 귀속해 있는 국내의 실체적 집단을 위한 이익만을 우선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대선 관련 기사들을 읽어보면, 어느 진영이고 할 것 없이 전부 유권자들은 ‘자기 이익을 최대화해 줄 후보자’에게 투표하겠다고 명언(明言)하고 있다. 후보자들조차 ‘미국의 국익’에 관해서는 수사적 혹은 예언적 차원에서만 ‘제가 이기면 결과적으로 미국은 잘될 것입니다’ 정도밖에는 언급하지 않는다. 미국 시민들이 이런 현상을 부끄러워할 계기를 갖지 않는다면, 미국의 민주정에 밝은 미래는 아마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근대 시민 사회는 사적 권리의 일부, 사적 재산의 일부를 성숙한 자세로 이양하고, 그것을 공공의 장에 일임하는 것이(*원문 負託する - 역주) 낫다고 합의한 데서 출발하였다. 자기 이익의 최대화를 요구하며 서로 격렬하게 자비 없는 투쟁을 일삼다가는 자기 이익을 오랜 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겠다는 합리적 판단을 바탕으로 성립했던 셈이다. 이는 당대 사상가 로크라든가 홉스 등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바 있는 학설이다.
공공의 이익과 시민의 자기이익은, 단기적으로는 상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치한다. 따라서 선거 결과를 두고 어느 정파든지, 어느 개인이든지 매한가지로 불만스런 얼굴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된다는 말이다. ‘헝 팔리아먼트’는 일본의 민주정을 성숙시키는 데 첫걸음이 될 가능성이 있다. 될 수 있으면 평온한 어조로 각 정당 간에 협상과 대화가 이어지기를 필자는 바라는 바다. (주니치 신문 10월 31일)
(2024-11-11 18:48)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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