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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다쓰루 선집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2. 24. 17:15
오늘(11월 8일)부터 췌장에 생긴 악성 종양의 절제 수술과 관련해 당분간 있을 일정을 병원에서 잡게 된다. 수술이 무사히 마무리된다 하더라도(그것은 실현되었습니다. - 옮긴이) 나이가 일흔넷이니만큼, 여명에 상당한 타격이 있을 것이다. 이제 조금씩 조금씩 ‘셔터를 내리기 딱 좋은 시기’가 된 것이다.
은거하겠다, 이번에는 은거하겠노라 몇 번이나 선언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도리어 70세가 넘어가니 일이 늘어난 지경이다. 원인은 여럿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제 남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거리낌 없이 할 말 다 하게 된 탓도 있다. 이제 와서 무리하게 ‘학덕 있는’ 발언을 해서 세간의 평가를 몇 점이나마 올리려고 노력해 봤댔자 헛수고다. 딱 하나 할 수 있는 건 ‘우가 말고는 아무도 안 할 기괴무쌍 요설’인데, 세상 사람들께 ‘옳다거니, 이런 해괴한 사고 방식도 있었구나!’ 하게 만들어드리는 것이야말로, 발언 행위에 뭔가 보람이 있겠다는 논리였다.
그래도 이제는 몸이 생각만큼 안 따라주니, 셔터 내릴 준비를 해두기로 한 거다.
이제 긴 책을 쓸 일이 없을 것이므로, 가장 먼저 해야 할 단계로서 ‘우치다 다쓰루 선집’을 선정하고자 한다. 라인업은 비몽사몽간에 떠올렸다. 출판사가 각기 다르므로 실제 ‘선집’으로 나올 리 만무하겠으나, 저자 본인이 어떤 저서에 애착을 가졌는지는 엿볼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마침 딱 10권이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1. 『망설임의 윤리학』
2.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3. 『사가판 유대문화론』
4.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5. 『스승은 있다』
6. 『일본변경론』
7. 『武道的思考』 (무도적 사고)
8. 『소통하는 신체』
9.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10. 『日本型コミューン主義の擁護と顕彰-権藤成卿の人と思想』 (‘곤도 세이쿄’론)
번외 『アルベール・カミュ 反抗の哲学』 (한국어 출판 예정인 ‘알베르 카뮈’론 – 옮긴이)
곤도 세이쿄 평전, 즉 『일본형 코뮌 주의의 옹호와 송덕』은 현재 교정쇄 단계인데, 이르면 연초에 출간될 예정이다. 이건 개인적으로 19살 때부터 숙제였다. 일본의 극우 사상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 꼭 필요했다. 좀 더 평이하게 말하면 ‘어째서 나는 일본 극우 사상에 끌리는가?’ 하는 질문과의 대면이겠다. 어쨌든 이번에 곤도 세이쿄론을 냄으로써 일단 숙원을 푼 셈이다.
『카뮈 평론』은 4년 전부터 월간 「나미」지에 격월 연재하며 유유자적 썼다. 『반항인(L'Homme révolté)』 해설을 할 작정으로 쓰기 시작했으나, 아직 헤매고 있다. 1년 정도 더 쓰면 끝날 것 같다. 학술적 모노그래프로는 이것이 아마 생애 최후의 것이리라.
목록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편집자 복이 많다’는 점이다. 다들 ‘다른 편집자였으면 안 할 기획’을 발안해 주었다. 자기 내면에 ‘쓰고 싶은 게 많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은, 편집자들의 어떤 간청 덕택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위에서 열거한 도서가 모두 편집자들과의 ‘합작’이다. 지금껏 쓰고 싶은 대로 쓰게 해 준 데에 모든 편집자 여러분께 다시금 감사드리는 바이다.
모쪼록 ‘(아직 쓰지 않은 것도 포함한) 선집 리스트’를 만들어두니, 웬일인지 마음이 안정되었다. 한편으로는, 훗날 20년 30년 뒤에도 가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책이 과연 이 열 권 가운데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망설임의 윤리학』은 2001년에 간행되었는데, 훗날 가도카와에서 문고판으로도 나왔다. 1990년대 일본 사회를 다룬 사상서가 23년 동안 살아남은 셈이다. 말하자면 ‘그 책에서 논평하고 있는 대상을 잘 모르는 독자라 할지라도, 논설 그 자체만큼은 향유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
금번 『카뮈론』에 쓰여 있는 것은 1952년, 이른바 사르트르와 카뮈 간에 있었던 논쟁 이야기다. 논쟁이 있었던 72년 전 당시의 긴급성 (즉, 프랑스 전체가 스탈린주의에 경도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논쟁의 심층에는 ‘도덕성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본질적인 주제가 복류하고 있으며, 이는 시대를 불문하고 꾸준히 다툴 가치가 있다.
곤도 세이쿄의 경우 젊은이는 이름조차 모를 테다. ‘쇼와 유신’이라는 정치-사상운동의 핵심에 섰던 사상가 두 명 가운데 하나다. (다른 하나는 기타 잇키.) 필자는 기타 잇키라는 사람한테는 그다지 매력을 못 느낀다. (머리가 굉장히 좋다는 건 알겠다만.) 하지만 곤도 세이쿄에게만큼은 마음이 끌리는 것이다. 이 사람이 넓은 시야로 내다본 바 있는, ‘군민 공치’에 입각한 ‘사직’이라는 정치적 이상향이 정말 있다면 ‘나라도 거기서 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모르는 시대의 잘 모르는 사건에 대해 줄곧 이야기해 두는 것 역시, 늙은 서생의 중요한 소업이다.
만약에, 카뮈론을 다 끝내고 난 뒤에 아직 작업할 시간이 남게 된다면, 그때는 나루시마 류호쿠에 대해 써보고 싶다. 나루시마 류호쿠는 에도 막부 후기의 유생이다. 메이지 시대에는 기자로 활동했는데 『야나기바시 통신』이라는 수필집을 쓰기도 했다. (한마디로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이고, 예컨대 마광수 교수 과가 될 것이다. - 옮긴이) 개인적으로는 류호쿠가 ‘일본적 성숙의 이상향’이라고 생각한다. ‘류호쿠’라는 글자만 보고서도 ‘마음이 선득선득하는’ 반응이 나오는 건 필자 세대가 이제 마지막일 것이니까, 우리 세대 가운데 누가 좀 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딱 알맞게 ‘업무 종료’의 대강을 잡을 수 있어서, 안심했다. 후회 없을 정도로 많이 일했었고, 아직 조금은 나에게 주어진 과업이 남아있다는 점 역시 고맙게 느껴진다.
(2024-11-08 06:4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무지의 즐거움』 『되살아나는 마르크스』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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