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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물) Yours Truly, 2027인용 2024. 10. 27. 19:08
Where do you want to go today? … Is that what you really want? Ticket to the moon.
인터넷/IT 산업에서 떼돈 번 백만장자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자기를 소개하며 미디어에 노출되는 인간들을 보며 놀라는 게 있다. 바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냉혹함이다.
성공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정당화하려면, 지금 존재하는 사회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큰 소리로 떠들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러자면 패배자는 곧 각자도생하라는 주장이 나온다.
사실 ‘경쟁’에는 ‘경합의 결과에 의해 탈락할 공포’라는 안 좋은 측면이 있으며, 따라서 탈락하지 않고자 ‘강한 측에 속하려는’ 대세 영합적 심리가 발동하게 된다. 탈락의 공포가 내면의 불안과 언동의 위축을 불러일으켜, 소속된 집단에서 불상사나 불공정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자기가 속해 있을 곳이 사라질 두려움’이라는 이유로 침묵 방관하게 된다.
그리고 가치나 성과를 수치화할 수 없는, 상대적인 승부의 대상이 원래는 될 수 없는 온갖 대상에 대해서조차 ‘경쟁 원리’를 적용시키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온갖 일들이 ‘금전적 경쟁’의 싸움터가 되며, 금전적으로 우위에 선 자가 ‘승자 독식’하고 지배하는 국면이 부쩍 는 것이다.
단적으로, 사회 전반적으로 여유가 없어지면서 점차 황량해졌다는 얘기다.
흔히 제조업의 쇠퇴(그런데 제조업은 미국 고용의 측면에서는 그리 많이 쇠퇴하지 않았고, 2010년이면 남북전쟁이 발발할 무렵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정도다.)란 곧 공장이 더 가난한 국가들로 옮겨간다는 뜻에 불과하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그 공장의 일자리가 수출된 국가에서도 고용 구성 면에서 전반적으로 같은 경향이 관찰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예를 들면 인도의 경우를 보자. 제조업 직업의 숫자가 그대로거나 조금 늘었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상황은 그리 다르지 않다.
진짜 문제는 ‘서비스 경제’라는 개념 자체에 있다. 내가 처음에 이 용어에 따옴표를 단 이유가 있다. 한 나라의 경제가 서비스 부문에 지배된다고 설명하면 일차적으로 그 나라 국민들이 서로서로 아이스커피를 대접하거나 압박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분명히 이런 인상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달리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농업, 제조업, 서비스업 다음에 오는 4차 산업이나 4차 부문을 대개 금융(finance), 보험(insurance), 부동산(real estate)의 FIRE 부문으로 규정한다. 하지만 과거 1992년에 아마추어 과학자인 로버트 테일러는 정보 노동(information work)이라는 용어가 더 쓸모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는 의미심장했다.
보다시피 1990년에도 실제로 웨이터, 이발사, 영업 사원 등의 직업군에 속하는 노동력의 비율은 정말 아주 작았다. 이 비율은 한 세기가 넘는 동안에도 대략 20퍼센트가량으로 놀랄 만큼 그대로 유지되었다. ‘서비스 부문’에 포함된 다른 직종들의 절대다수는 실제로는 행정직, 컨설턴트, 사무직, 회계 직원, IT 전문직 및 그런 부류들이었다. 이것이 실제로 1950년대 이후 아주 급격히 증가한 ‘서비스 부문’의 일면이다. 또 내가 아는 한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 특정한 변화를 탐구한 사람이 없지만, 정보산업 일자리의 비율은 20세기 후반에도 이미 급속히 증가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추세가 계속되었으며, 경제에 추가된 새 ‘서비스’ 직업군이 정말로 이런 종류라고 결론짓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물론 이것은 불쉿 직업들이 급증하는 바로 그 구역이다. 분명히 말하자면, 모든 정보산업 종사자들이 스스로 불쉿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며(테일러의 범주에는 과학자, 교사, 사서가 포함된다.) 자신이 불쉿 직업에 종사한다고 믿는 이들이 모두 정보 노동자도 결코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조사가 신뢰할 만하다면, 정보 노동자로 분류된 사람들 대다수가 자신의 직업이 사라져도 세상에는 별 차이가 없다고 느낀다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통계 수치는 없지만 1990년대 이후 정보 지향적 직업의 부상과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증가하는 현상을 두고 굉장히 논의가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부 장관 로버트 라이시 같은 사람들은 테크놀로지를 선호하는 새로운 중산계층, 성장의 이익은 모두 차지하고 옛날식 노동계급은 빈곤으로 고통받게 내버려 두겠다고 위협하는 “상징 분석가”(symbolic analysts, 창조적 전문가, 또는 비반복적, 문제 해결형 업무를 맡는 사람들 - 원주) 계층의 성장에 대해 언급했다. 어떤 사람들은 “지식 노동자”와 “정보사회”를 이야기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비물질적 노동”이라 부른 (마케팅과 엔터테인먼트와 디지털 경제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밖으로 넘쳐 흘러 브랜드에 흠뻑 젖고 아이폰에 걸신 들린 일상 생활에까지 확산된) 노동의 새 형태가 가치 창출을 통해 새로운 중심이 되었다고 확신했고, 그로 인해 디지털 프롤레타리아가 결국은 반란을 일으킬 거라는 예언까지 나왔다. 거의 모두가 그런 직업이 금융자본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했다.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합의는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월가에서 얻는 이윤 가운데 상업이나 제조업 회사보다는 대부와 투기와 복잡한 금융 수단을 고안하는 쪽에서 나오는 이윤이 점점 더 커지고 있으니, 이와 비슷하게 추상적 도구를 조작함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갈수록 커진다는 것도 이치에 맞는 듯싶다.
2008년까지 금융 부문이 걸치고 있었던 신비롭기까지 한 아우라를 요즘은 떠올리기 힘들다. 금융업자들은 너무 복잡해서 천체물리학자들이나 이해할 만큼 어려운 부채담보부증권과 고속 거래 알고리즘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은 감히 이해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수단을 써서 무로부터 가치를 끌어내는 방법을 현대판 연금술사처럼 알아냈다고 대중을, 그리고 대중만이 아니라 사회 이론가들까지도(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 다음 물론 시장이 붕괴되었고, 위에 언급된 방법들 거의 모두 사기임이 드러났다. 대부분은 그리 정교한 사기도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는 금융 부문 전체가 일종의 사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스스로는 상업과 제조업에서 이윤이 날 가능성이 높은 곳에 투자한다고 소개하지만 실제로 거의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 부문의 압도적으로 많은 비중은 다양한 부채 형태를 창조하고 거래하고 조작하기 위해 정부와 공모하는 데서 나온다. 이 책에서 주장하려는 것은 금융 부문에서 하는 많은 일이 그렇듯이 성장에 동반한 정보산업 부문의 직업 역시 기본적으로는 교묘한 속임수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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