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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마뉘엘 레비나스 철학 탐구: 영화 《모노노케 히메》 비평의 견지에서 (수전 네이피어)
    인용 2024. 6. 21. 20:21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전통적인 일본 정원은 선(禪)불교가 꽃핀 무로마치시대에 탄생했다. 하지만 <모노노케 히메>에서 무로마치시대의 자연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아름답지만 거칠고 위험하며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비인간의 공간이다. 그리고 강력한 힘을 지닌다. 때로는 영적이고 초월적이지만, 때로는 폭력적이고 위협적이다. 영화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소외된 인류뿐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도 목소리와 얼굴을 준 것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나름의 사고와 존재 방식'을 지닌 비인간 유기체의 개념을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생생하게 그리며 절실하게 탐구한다. 영화 속 세상은 자연이 중심이던 생명 개념이 철을 만드는 여자들이 상징하는 기술 중심으로 갑작스럽게 이행하면서 위기를 맞는다. 이 과도기에 숲의 신들은 멸종을 위협받는다. 그러나 신들은 '가면을 쓴 인간'이 아니다. 아시타카와 함께 여행을 떠난 아름답고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영양 야쿠르부터 단순한 가면처럼 생긴 숲의 작은 정령 코다마에 이르기까지 <모노노케 히메>는 섬세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비인간들의 고유한 얼굴을 탄생시켰다.

     

    그중 가장 강렬한 존재는 온화하면서도 초현실의 얼굴을 지닌 사슴신이다. 자연을 고귀하지만 연약한 대상으로 취급하거나, 포근하지만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대부분의 진부한 환경주의 작품과 <모노노케 히메>가 다른 이유는 경외감을 일으키는 낯선 초현실 존재인 사슴신 때문이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관객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초현실 존재를 바라볼 뿐 아니라 초현실 존재 역시 관객을 바라본다. 익살맞은 코다마의 얼굴부터 상처 입은 멧돼지신의 눈에서 나오는 증오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여러 초현실 존재의 눈길과 마주친다.

     

    <모노노케 히메>는 자연을 의인화하는 기존의 관습을 경계하며 자연과의 교감을 그린다. 그러면서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가 말한 ‘타인의 낯섦’을 애니메이션이라는 효과적인 매체를 통해 구현한다. 레비나스가 말한 타인은 인간에 국한하지만, 미야자키의 타인은 인간이 아닌 모든 존재를 통튼다. 영화를 통해 ‘낯섦’에 눈뜬 관객들은 인간인 자신이 자연과 얼마나 가깝고 친밀하며 자연에 의존하는지 깨닫는다.

    (…) 비인간이 인간에게 말을 걸고 인간의 정신적, 신체적 정체성을 꿰뚫는 첫 에피소드부터 관객은 인간 사회가 자연/초자연 세계와 동떨어진 게 아니라 다차원적인 더 큰 세상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시타카가 속한 에미시족은 호전적인 야마토 정권의 부족들과 달리 평화를 추구하며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아시타카는 평화롭고 관용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저주를 입은 그는 말아 올린 머리를 자른 다음 영양 야쿠르를 타고 고향을 떠나 ‘타인’이 된다. 그러다가 모종의 계략을 숨기고 있는 듯한 승려 지코보를 만나고 그에게 강력한 자연의 정령 사슴신에 대해 듣는다. 사슴신이 지배하는 숲은 처음에 인간, 짐승, 초자연 존재가 인식과 소유의 경계를 서로 넘나드는 신비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미야자키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야쿠시마에서 2,000살이 넘는 삼나무들의 숲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투명한 연못, 반짝이는 나비, 강렬한 에메랄드빛 거목이 있는 사슴신의 숲을 만들었다.

    숲에서 아시타카가 마주친 세 가지 자연/초자연 존재는 각각 위협적이고 장난스럽고 신비하다. 첫 번째 존재는 에보시가 버리고 간 부상병들을 우연히 만났을 때 강 건너에서 발견한다. 쓰러진 나뭇가지 사이로 아시타카는 털옷을 입고 빨간 가면을 목 뒤로 넘긴 소녀가 거대한 은빛 들개 세 마리와 서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 소녀가 영화 제목 ‘모노노케 히메’인 산이다. ‘모노노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혼을 빼앗겼다는 뜻이지만, 영화에서는 인간과 단절된 산의 타자성과 그를 딸로 받아준 들개신과의 친밀성을 함축한다.

    (…) 그는 “삶은 고통이지. 세상은 저주받았어.”라고 말한 뒤 “그래도 살아야 할 이유들이 있다.”라고 덧붙인다.

    이 중요한 부분에서 한센병 환자가 한 당부는 몇 가지 이유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의 첫마디는 세상이 고통받고 있다는 지코보의 말을 떠올리지만, 마지막의 ‘살아야 한다’는 말은 영화의 기본 테마이면서 삶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는 세상과 단절한 존재인 동시에 모든 생명체를 연결하는 연결 고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붕대를 감아 얼굴을 알 수 없는 그는 처음에 에보시나 아시타카와 다른 존재로 보이지만, 결국 세 사람 모두 어떤 역경에도 살아야 한다고 믿는 소외된 자들이다.
    산이 에보시를 죽이려고 타타라를 급습한 다음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경계는 초월된다. 산은 에보시를 처치하는 데 실패하고 아시타카에게만 심한 상처를 남긴다.
    이때부터 산은 아시타카를 자신과 처지가 같은 추방자로 받아들이며 희미한 인류애를 내비친다. 그는 아시타카를 죽이는 대신 숲의 한가운데로 데려가 못 중앙에 떠 있는 작은 둔덕에 뉘인 다음 야쿠르가 곁을 지키게 한다. 여기서부터 미야자키가 연출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가 펼쳐진다.

    이후 또 다른 초자연적 비전이 이어진다. 숲 아래로 들어간 다이다라봇치는 낮의 형상인 사슴신으로 변한다. 사슴신은 아시타카를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그에게 다가간다. 아시타카가 옅은 잠에 빠진 상태에서 본 사슴신의 얼굴은 놀랍게도 인간 형태지만, 빨간 눈을 깜빡이지 않는다. 다른 존재임을 나타내는 그 얼굴은 어쩌면 자연 자체의 얼굴이다.

     

    아시타카가 서로 다른 세계의 중재자라면 동물, 신, 인간의 세계를 모두 대표하는 산은 미야자키가 추구하는 포용의 상징이다. 영화 포스터에서 들개 가족과 서 있는 그는 적의에 찬 눈빛으로 인간 세계를 노려본다. 피가 묻어 있고 문신이 새겨져 있지만 영락없이 연약한 소녀의 얼굴이다. 산이 나우시카와 같은 비범한 도덕성을 지니진 않았지만, 그의 문신과 때때로 쓰는 가면은 인간과 비인간의 얼굴을 모두 지닌 사슴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그의 얼굴은 다른 존재와 대면한 인간이 어떤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지 묻는다.

     


    수전 네이피어, 『미야자키 월드 :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둠과 빛』, 하인해 옮김, 로크미디어, 324~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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