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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췌독) 미야자키는 치히로 세대에게도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인용 2024. 7. 1. 11:57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 박민규

     

     

    영화가 개봉된 2001년 물질주의 문화의 수렁에 빠진 일본인들은 영적 공허함을 잊기 위해 무분별한 소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미야자키는 한때 미국 문화가 과잉 문화라고 비난했지만, 이제 자신의 주변이 과잉 문화에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토토로> 때부터 위협받던 일본의 자연은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모두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수십 년 동안 일본 정부는 오랜 경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국에 대규모 건설 사업을 벌여오고 있었다. 콘크리트 물결은 숲을 무너트리고 해변과 산을 뒤엎었으며 아직 자유롭게 흐르던 거의 모든 수로를 더렵혔다. 패스트푸드점과 자동판매기가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편의점이 거리마다 들어섰다.

     

    미야자키가 보기에 돈과 산업이 일으킨 폐해는 일본의 풍경뿐 아니라 사람들의 영적 풍경도 어둡게 했다. 좀처럼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는 그는 현대 세계에 대한 비난 수위를 점차 높이며 “온 세상이 콘크리트로 덮였다.”라고 개탄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이미지들은 더욱 강렬하다. 영화에서 중요한 두 캐릭터가 각각 오염과 도시화로 고통받는 강의 신이라는 설정은 우연이 아니다.

     

    미야자키는 치히로의 부모를 통해 자신이 보기에 특히 탐욕스럽고 소비에 눈이 멀었으며 이기적인 30~40대 일본인들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새로 뽑은 아우디를 몰고 신비의 마을에 들어선 치히로의 아빠는 주인 없는 식당에서 함부로 음식을 먹으면서 현금과 신용카드가 있으니까 괜찮다고 말한다. 수동적이고 차가운 엄마는 남편 말은 무조건 따르면서 무서워하는 딸에게는 “달라붙으면” 힘들다고 핀잔한다.

     

    미야자키는 치히로 세대, 구체적으로는 지브리 스태프의 열 살짜리 딸 세대에게도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영화에 대해 회의하다가 한 스태프가 자신의 딸 이야기를 하자 미야자키는 역시 직설적으로 딸과 친구들을 “굼벵이”라고 불렀다. 미야자키는 아이들의 생활 방식을 점점 걱정했다. 오랫동안 그는 밖에 나가 노는 아이가 적어지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아이들에게 TV에서 지브리 비디오를 보지 말고 밖에서 진짜 세계를 경험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만사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어린 ‘굼벵이’가 늘어간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이런 이유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열 살 주인공은 구원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 힘겨운 노동, 자기 규율, 타인에 대한 친절, 도전에 대한 의지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미야자키는 영화감독이자 애니메이션 거장이기 때문에 질책이 아닌 현실적이고 흥미로운 수단으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가 영화에서 훈계나 설교가 아닌 ‘메시지’를 전달한 방식은 기적에 가깝다. 모험, 마법, 약간의 로맨스를 통해 온통 뒤죽박죽인 세상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그들을 스스로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어둠을 초월할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다.

     

    이런 성취가 가능했던 까닭은 미야자키가 파격적인 변신 같은 애니메이션 기법을 훌륭하게 활용해서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에 공감해서기도 하다. 온천장 직원과 관리자부터 각양각색의 손님에 이르는 기상천외한 등장인물 중 특히 눈에 띄는 캐릭터는 긴 까만 천을 걸친 가오나시다. 영화 중반부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오나시의 변화무쌍한 기행은 판타지적인 흉물스러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미야자키가 대부분의 젊은 세대에게 발견한 소외감을 상징한다. ‘굼벵이’에서 용감한 소녀로 진화하는 치히로에게도 많은 관객이 동질감을 느꼈다. 미야자키가 “지극히 평범한 소녀”라고 묘사한 치히로가 영화 초반부에 보인 불평 많고 반항적인 모습은 이전에 그가 만든 사실주의 캐릭터인 키키나 사츠키와 사뭇 다르다. 혼란스러운 21세기 일본에서 ‘평범한’ 주인공이 갖가지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매료됐다.

     

     

    수전 네이피어 『미야자키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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