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학술계에서 주목한 우치다 선생 사상 (국체론 관련)인용 2024. 6. 19. 12:00
그러나 중요했던 것은 퇴위 의사 표명만이 아니라 오코토바의 명칭인 <상징으로서의 직무에 대한 천황 폐하의 말씀>(象徴としてのお務めについての天皇陛下のおことば)이 보여 주듯이 천황이 직접 ‘상징’으로서의 직무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는 데 있었다. 실제로 이 발표에서 퇴위나 양위라는 구체적인 표현은 사용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발언에서 주목할 바는 그동안 수동적으로 전후 헌법하의 상징이라는 틀 속에 갇혀 있던 직무를 천황 본인이 직접 문제 제기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런 점에서 천황의 생전퇴위 오코토바는 생전퇴위가 가능한가 내지 바람직한가의 문제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수면 아래 잠재했던 ‘상징천황제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생전퇴위는 근대 이래의 천황제가 규정하고 있는 종신천황제를 수정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생전퇴위가 필요한 이유를 제시하는 과정을 통해 상징천황제 하의 상징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상징천황의 의미를 재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천황 아키히토와 관련해서 일반적으로는 ‘헌법 파괴적인 아베’와 ‘헌법 수호적인 천황’이라는 구도 속에서 논의되어 온 경향이 있다. 천황의 퇴위 관련 속보가 나온 날인 2016년 7월 13일, 구민주당 출신의 무소속 의원이 자민당에 입당해 1989년 이후 오랜만에 자민당은 참의원에서 단독 과반수를 회복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원외, 원내 양쪽에서 완패한 비자민세력은 천황의 퇴위 표명을 개헌 지향의 아베 정권에 대한 항의의 차원으로 해석해 반아베의 깃발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보이는데, 우치다 다쓰루(内田樹)는 프랑스 언론의 기사를 토대로 천황의 발언을 개헌을 견제하는 움직임으로 단정하고, 본인이 ‘천황주의자’가 되겠다고까지 표명한다. 천황을 일시적으로 권력을 지닌 총리와 비교해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파악해 국민의 도덕적 중심일 수 있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천황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황을 통해 입헌민주제와 천황제의 양립과 ‘영적 공동체’를 구성하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링크 참조. - 원주) 시라이 사토시(白井聡) 역시 천황의 생전퇴위 표명을 미일관계의 허구성에 의문을 던지는 발언으로 이해한다. 천황 아키히토는 아베 신조를 수반으로 한 자민당 정권 및 그 주변이 ‘전후 레짐으로부터의 탈각’을 외치며 전후 민주주의 체제 전반에 대해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낼 때마다 신중하지만 명백한 태도를 표명했는데, 이는 전후 민주주의의 파괴·공동화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로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생전퇴위 오코토바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전후 민주주의의 질서를 붕괴의 심연에서 구해 내는 것”이라고까지 평가하며 헌법 개정을 향해 돌진하는 아베 신조 정권에 대한 견제라는 맥락에서 천황의 오코토바를 해석한다. (시라이 사토시, 『국체론』, 28~32쪽. - 원주)
본 연구는 천황 아키히토의 오코토바를 문학적·사상사적·정치적 텍스트로 조망하고자 한다.* 물론 상징천황제와 관련해서는 이미 많은 연구들이 쌓여 있으며, 그중에서도 본 연구에서 다루는 천황의 표상 내지 재현의 문제 역시 이미 많이 연구되어 왔다. 하지만 그동안 천황을 일종의 ‘표상의 집적체’로서 다루는 기존 연구들은 주로 천황이 재현되는 양상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모테기 겐노스케(茂木謙之介)도 지적하듯이 천황이 재현되는 양상뿐만 아니라 정치적 발화자로서의 입장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천황은 ‘표상되는 대상’이자 ‘표상하는 주체’라는 이중적 의미, 즉 담론의 생산자이자 동시에 소비자라는 관점이 그것이다. 또한 천황이라는 존재가 일본사회에서 무의식적이고 신체적인 정동(affect) 속에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오코토바가 말씀으로서의 텍스트만이 아닌, 본인의 신체성을 규정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내는 영속적·집합적·종교적 신체성의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연구는 천황 아키히토 본인의 오코토바의 발언 속에서 어떻게 본인을 재현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넓은 의미의 ‘상징’과 ‘신체’라는 개념을 통해 헤이세이 시대 천황제의 이중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ー
(* 그런 점에서 시라이 사토시가 오코토바를 일종의 ‘상형문자’와 같은 방식으로 읽어 내야 한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그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드러난 대립의 기저를 확인해야 하며, 그에 발맞춰 ‘오코토바’가 자리 잡고 있는 넓은 의미의 문맥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겉으로 드러난 주제를 일종의 상형문자로 해독해야 함을 주장한다. 시라이 사토시, 『국체론』, 33쪽.)
김태진, 「오코토바를 통해 다시 묻는 ‘상징’의 의미: 헤이세이 시대 천황의 이중성」, 『일본비평』 30호, 2024.====
추기: 일본비평 2015
특집서평 일본인은 다르게 움직이는가: 우치다 다쓰루(内田樹)의 『일본의 신체』(日本の身体)를 중심으로 - 강태웅
'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마뉘엘 레비나스 철학 탐구: 영화 《모노노케 히메》 비평의 견지에서 (수전 네이피어) (0) 2024.06.21 (팸플릿) 거리로 나가자, 키스를 하자 (0) 2024.06.21 (발췌독) 현실이 보잘것없는 만큼 . . . 티쿤 올람 (0) 2024.06.10 (발췌독) 법인은 천사를 많이 닮았다. (0) 2024.06.10 (팸플릿) 카를마르크스 슈퍼스타 (0) 2024.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