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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글 인 서울 ー 혼밥하는 ‘라떼’가 온다』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4. 25. 18:01

    『도쿄 중년 싱글의 충격(東京ミドル期シングルの衝撃)(미야모토 미치코, 오에 모리유키 엮음)

     

    동양경제신문 출판부의 와타나베 씨한테 새로 나오는 책 서평을 부탁받았으므로 조금 긴 소개문을 썼다. 제목이 살짝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저간의 인구 동태와 지역 커뮤니티 형성을 다룬 견실한 연구이다. 그러나 대단히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연구에 관해 극히 최근까지 아무도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인구 감소에 관하여 논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인적자원’ 부족이나 시장 규모 축소, 연금 및 의료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관해서는 얘기한다. 하지만 정말 심각한 것은 ‘고령기에 들어가 사회적으로 고립화한 싱글족의 <언더클래스>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거북한 얘기를 도마 위에 올린 예외적인 결과물이다.

     

    ‘언더 클래스’라는 개념은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보다 한참 아래에 위치하는, 기초생활 수급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최빈곤층을 이른다. 이들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며, 사회의 저변에 슬럼화하는 폐쇄 집단이다.

     

    일본에서도 앞으로 ‘고령자 언더 클래스’가 대량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 정치가들, 공무원들, 미디어를 막론하고 이 문제를 외면해 왔으나, 높은 확률로 이제 일본 사회는 그러한 집단을 떠안게 된다. 지금 중년기(35~64)에 있는 싱글족들은 머잖아 고령기 싱글이 된다. 이대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면, 언젠가 일본 사회는 가난하고, 고독하며, 사회성 없는 수백만 명의 노인들을 떠안게 되는 셈이다.

     

     

    “명백히 드러난 사실은 다음과 같다. 말하자면 중년 싱글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이들이 무조건 리스크 집단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캥거루족을 포함해서 그들이 고령기에 도달하였을 적에 경제적 곤궁, 사회적 고립에 빠질 위험성이 높다.” (25)

     

     

    병에 걸렸다든지, 돌봄 받을 필요가 생겼을 때, 그들에게는 아무도 의탁할 사람이 없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고령자는 집단 자결하라’는 폭론을 들고 나온 경제학자가 있었다. 그런 극론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이 문제에 관한 보다 온당하고 인간적이며, 실현 가능성 있는 정책이 현재 시점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끔찍한 얘기지만, 그런 것이다.

     

     

    본서의 논점을 개략적으로 말하자면, (1) 중년 싱글이라는 집단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존재하는가 (2) , 그러한 집단이 형성되었는가 (3) 이 사람들이 고령화했을 때, 지원할 여하한 대처방안이 있는가 등의 세 갈래가 있다.

     

    여태까지 일본 정부 당국은 ‘독거노인’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관심을 보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령 싱글은 “수입이 적고 돌봄을 필요로 할 위험성이 높으며, 사회 보장 면에서 부담을 증대시킬 우려” (19) 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년 싱글에 관해서는 정부도, 미디어도 완전히 무관심했었다.

     

    아니다, 무관심이라고 할 것도 없다. 오히려, 일본 사회에서는 오랫동안 ‘가정을 꾸리지 말라. 너 혼자 살아라’ 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다. 이 책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필자가 아는 한 적어도 1980~90년대에 싱글로 남는다는 건, 도시 생활자로서 마땅히 권장할 만한 라이프스타일이었다.

     

    이토이 시게사토는 1989년에 『가족 해산』이라는 소설을 통해* 어느 중산층 가정이 뿔뿔이 흩어지는 과정을 생생히 묘사했다. 한 명 한 명이 ‘내가 원하는 대로(自分らしく)’ 살고자 했던 탓에 ‘가족 해산’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토이 시게사토는 이걸 딱히 비극으로 묘사하지는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 논리인지도 모르겠는데, ‘가족 해산’이란 건 시장적 관점에서 압도적으로 호감을 가질 만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 ‘맛있는 생활’. 세이부 백화점이나 소설가 하루키 등과 관련 있는 국민 광고인으로서, 주로 버블 시절에 고급 소비문화를 추장했다. - 옮긴이)

     

    잘 생각해 보자. 가족을 흩어놓으면 부동산이나 가전제품, 자가용 등 이제까지 하나만 있어도 되었던 물건들이 사람 수만큼 필요하게 된다. 가족 해산은 ‘시장의 파괴적 확장(빅뱅)’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가족은 금물’이란 구호는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입장에 따른 강력한 요청이기도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이 가족 만들기에 관해 인센티브를 썩 느끼지 못했던 것도 당연할지 모른다. 인구 동태가 그것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 전국에 있는 싱글족의 총합은, 1980711만 명에서 20001291만 명을 거쳐, 2020년에는 2115만 명까지 증가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2.98배 늘어났단 얘기입니다.” (45)

     

     

    2115만 명 가운데 남성이 1094만 명, 여성이 1021만 명이다. 남성을 살펴보면, 중년기 독신은 29.8%, 청년기 독신은 29.6%를 차지한다. 여성의 경우, 고령기에 배우자와 사별한 비중은 32.4%, 자발적 비혼은 23.3%, 중년기 독신은 16.9%. (47) 여기서 중년기 독신만 따로 놓고 보면 1980년에는 35만 명, 2000년에는 156만 명이던 것이 2020년에는 326만 명에 육박하는데, 지난 40년 동안 약 10배 늘어난 셈이다. (21) ‘돌싱’ 즉 이혼하며 싱글로 돌아선 사람들도 있다. 남성은 1980년에 17만 명, 2000년에 59만 명, 2020년에 93만 명이고, 여성은 같은 기간에 25만 명, 48만 명, 77만 명이다. 이 경우 역시 급증세다. (21)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인구 동태상의 변화에 일본인은 특단의 관심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비혼을 택하겠다, 가정을 꾸리지 않겠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데요. 아유, 그러신가요. 사생활 영역이니 하고 싶으신 대로 하세요, 라는 식으로 끝맺고는 했다.

     

    이 집단이 언젠가 조우할지 모르는 ‘경제적 곤궁과 사회적 고립 같은 문제가 심각해질 미래의 위험성’과 관련해 ‘가장 먼저’ 착목했던 연구가 등장했던2010년이었다고 이 책에는 쓰여 있다 (22). ‘가장 먼저’라는 말은, ‘이제까지 아무도 연구하지 않았다’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어떠한 이유로 사람들이 배우자 없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 또한 이 책에는 열거되어 있다 (그럼에도 역시나 자본주의의 요청이었다고는 쓰여 있지 않지만).

     

    도쿄에 싱글족이 많은 이유는, 지방에 있던 사람이 가족의 곁을 떠나 도쿄로 진학이나 취직을 위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다른 이유는 사회 진출을 마친 여성의 만혼화다. 싱글 여성은 이동이 용이하다. 사는 장소를 바꿔나갈수록 사람은 가정을 꾸리는 일로부터 멀어진다. “인구 이동에 따라 출생률은 저하한다” (80).

     

    게다가 여성은 지방의 전통적 규범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소위 남존여비, 과도한 성역할 분업이라는, 여성 입장에서 ‘부()*로 작용하는’ 요소” (94) 로부터 이탈하고자 지방권 출신 여성이 도쿄로 이동하고 있다는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고 이 책은 논하고 있다 (94). 그렇게까지 단언을 하지 않는 건 물론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서겠지만, 필자 역시 여기에는 일리가 있다고 본다. 그들이 “탈 획일성 추구, 그리고 다양성을 향한 갈망”으로부터 동력을 얻어 대도시권으로 끌려들고 있다 (97).

    (* 부負: 일본어에서, ‘네거티브()’의 의미도 있고 ‘짊어지다’라는 어감도 있다 – 옮긴이)

     

     

    이어지는 논점은, 이러한 싱글족이 어떠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가에 관해서다. 그들이 고령화했을 때 언더클래스화하지 않도록 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 지역 커뮤니티에 커밋(commit)*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중년 싱글들은 어떠한 ‘친밀 권역’**을 형성하고 있는가.

    (* コミット: 관계하다, 참가하다, 서로 관련되다. 맡기다, 위임, 위탁하다. commit: 죄과 등을 저지르다, 의무 지우다, 생각 등을 남겨두다, 언명하다, 어떤 입장에 서다, 약속하다, 구속되다, 충당하다 등.

    일부 젊은이들 노동 현장 용어이기도 하고, ‘커뮤니티’와 운율도 상응하기에 이하 그대로 표기함을 양해 바랍니다 - 옮긴이)

    (** 원문 親密圏. 일본 여성학계에서 카나이 요시코金井淑子 등이 2000년 전후로 내놓는 논의 – 옮긴이)

     

     

    이 문제에 있어서는 성차가 두드러진다. 남성 싱글은 친밀 권역을 형성하는 데 서투르나, 여성 같은 경우 그 점에서 훨씬 뛰어나다. 이건 어떤 분이라도 경험적으로 알 것이다.

     

    남성 싱글족은 친인척과의 관계가 희박하지만, 여성 싱글족은 “혼자 사는 것에 수반되는 경제적 불안, 고독, 범죄에 휘말릴 수 있는 불안, 병이 들었을 때의 불안을 남성 이상으로 쉬이 느끼는 만큼, 부모나 형제자매와 빈번하게 연락을 취하고, 결혼으로 구축하는 친밀 권역 대신에 부모자식관계를 축으로 하는 친밀 권역을 쌓고 있습니다.” (156)

     

    아마도 리스크에 대한 불안이 남성보다 강렬한 탓에, 여성의 경우가 “가족을 대신하는 다양한 생활 공동체(별거 파트너, 컬렉티브 하우스, 셰어하우스 등)” (156)의 형성에 관해서도, 혹은 “취미나 레저 활동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동창생 등 「물렁물렁한 연줄」을 「탄탄한 연줄」과 동시에 구축하고 있는 사람이 남성보다 명백히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156)

     

    남성은 친인척 등에 한정되지 않는 범위 즉 직장 이외의 친구나 지인 등과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에도 미숙하다. 따라서, 고령기에 병이 들었을 때도 돌봄 전문가나 정부에 우선 기대려고 한다. “평소 의지할 만한 가족적 관계나 친구 지인 관계를 만들지 않았던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중년 싱글족의 환경은, 비 가족적인 친밀 권역이나 중간적 권역이 폭 넓게 형성되지 않은 상태로 말미암아, 그대로 고립화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157)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부모는 언젠가 죽는다. 형제자매와의 인연도 옅어진다. 하던 일도 퇴직한다. 그렇게 된 뒤 싱글족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단순히 ‘살아가는’ 게 아니다. 하나의 시민으로서, 존엄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책에서는 ‘헝커 다운(hunker down)’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보다 사적인 공간에 처박혀서, 타자에게 보내는 신뢰도가 바닥나며, 될 수 있는 한 엮이지 않으려고 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다.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이다. 이는 곧 지역 커뮤니티에 ‘커밋’하지 않는/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애초에 일본에는 지연 공동체가 쇠퇴하고 있었는데, “도시 중년기 싱글은 지역 안에서의 중요한 관계를 맺는 데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162). 하지만, 지역 커뮤니티에서의 ‘커밋먼트’는 ‘고립화’를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어떻게 중년 싱글족들로 하여금 지역 커뮤니티와의 관계성을 유지케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실천적인 과제임에도, 설문조사에 응답한 중년 싱글족의 8할은 지역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서드 플레이스’라는 개념이 있다. “서드 플레이스란 사람들이 자택(퍼스트 플레이스)이나 일을 하는 곳(세컨드 플레이스)과는 별개로, 사회적인 접점을 쌓고, 안정감이나 교류를 즐기는 마당을 가리킵니다.” (173) 카페나 도서관, 공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대체로 중년 싱글 자신은 서드 플레이스란 것을 “여행 나가는 곳, 콘서트홀이나 스포츠 관전 장소 등의 지역 커뮤니티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벤트」적 장소” 같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리에서 즐기자는」 목적에만 한정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도와준다든가, 가족의 대체물이 된다고는 꼭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173)

     

    중년 싱글족은 표면적으로는 활발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자신이 고령기가 되었을 때 ‘생활에 불안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전체의 3.7%밖에 없다. (176) “병이 들었을 때 가까운 주변으로부터 관심받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하는 불안은 64%까지 올라가며”, “자신이 「고독사」할 수 있다는 불안을 조금이나마 갖고 있는 사람은 절반에 달합니다.” (176) “병에 걸렸을 때나 돌봄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누구를 의지하면 될지, 고령기가 되면 돈은 넉넉할 것인지, 머물 곳은 있을 것인지, 그리고 재난 상황에 누가 도와줄 것인지” (176) 하는 불안을 많은 중년기 싱글족은 품고 있다.

     

    특히 재난*이 일어났을 경우,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하는지의 여부는 결정적이다. 피난 집결지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상태에서 이재민이 된다면 그 스트레스는 상당히 심각할 것이다.

    (* 災害. 전쟁 등 - 옮긴이)

     

    이 책은 그런 이유로 중년 싱글족들에게 지역 속에서의 느슨한 커밋먼트를 권장하고 있다. 도서관이나 공원에서 만나 인사하는 정도의 관계여도 상관없다. 그런 몸짓만으로도, 그것이 지역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함양하는 배지(培地)*가 될 수 있다.

    (* 문화라는 뜻으로 보통 쓰이는 culture에는 경작, 배양, 훈련이라는 의미도 함께 있다. - 옮긴이)

     

    지역 활동의 핵이라고 함인즉슨, 학교와 병원이 있다. 학교와 병원을 ‘지역에 개방하는’ 시도는 이미 행해지고 있다. 어린이들의 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고령자의 지원자가 되는 등의 상호작용은 “세대를 뛰어넘어, 더 나아가 지역의 결속을 심화하는 데까지 결부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194)

     

    학교와 병원은 ‘사회적 공통 자본’(우자와 히로후미)를 떠받치는 중대한 기둥이다.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지역 공동체에 있어서 사활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학교와 병원을 ‘서드 플레이스’로 삼은 사람은, 상당히 안정적인 방식으로 지역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망에는 필자도 동의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열쇠가 되는 것은 ‘느슨한’이라는 개념이다. 도시 생활자는 ‘강한 결속’을 꺼린다. 뭔진 모르겠지만, 불쑥 다가간 장소가 맘에 들면 참가하고, 맘에 들지 않는다면 참가하지 않는 정도의 ‘느슨한 연결고리’이기를 바란다. (196)

     

    까다로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도쿄 중심지에서는 중년기 싱글족이 이미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중년기 싱글족들을 포섭하고, 이들이 느슨하게 이어지는 지역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일은, 지역 공동체나 정부 당국이,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들이 유념할 일입니다” (200) 라는 언명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이상, 다소 빠른 호흡으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했다. 애초에 출판사가 부탁한 것은 ‘서평’이므로, 비평할 거리를 써내야만 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에만 한정짓자면 ‘배운 것(그런 사실이 있었나요)’과 ‘동의하는 것(맞아요, 진짜 그래요)’ 들만 느낀 지라 이렇다 할 논평의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덧붙일 정보가 있다손 친다면, 그중 하나는 대량의 고령 싱글족을 떠안고 있는 탓에 국난적 위기에 조우하는 건 일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이 바로 그렇다.

     

    중국은 1979년부터 2014년까지 35년에 걸쳐 ‘한 자녀 정책’을 채용해 왔다. 대다수의 부부는 ‘장손’을 얻고자 하여 여아를 낙태한 탓에, 이 한 자녀 세대는 성비가 불균형하다. 배우자를 얻지 못하고 고령기에 접어든 남성은 이미 5500만 명에 달한다. 그들의 대다수는 저학력, 저수입, 농촌 인구이다(따라서 배우자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세대를 이어 ‘한 자녀’였던 경우, 부모가 사망하면 그들은 처자식이나 형제자매, 삼촌 이모도 사촌도 아무도 없는 ‘천애 고독’한 몸이 된다. 중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개인의 경제적 위험부담을 친족 네트워크로 지탱해 왔으나, 이 사람들에게는 친족 네트워크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노후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요즘 중국 인터넷상에서는 ‘안락사’라는 주제가 화제라고 한다. 일본의 ‘집단 자결’ 논란과 뿌리를 같이 하는 발상인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필자 스스로 싱글족을 위한 지역 커뮤니티를 손수 세운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개풍관이라고 하는데, 이는 합기도 도장이기도 하고, 평생교육 학교이기도 하며, 또한 상호 지원 네트워크의 거점이기도 한 그런 곳을 만들었다. 구성원이 다 같이 아이를 보아주고, 창업을 지원하기도 하며, 아플 때는 서로 돌보아 주기도 한다. 작년에는 ‘합동 묘지’를 만들었다. 싱글이거나 자녀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도장공동체가 존속하는 한 누군가가 기려줄 수 있는 묘비를 만들었다.

     

    개풍관은 ‘서드 플레이스’이다. 개풍관이 다른 서드 플레이스와는 다른 점은, 단순히 ‘관계짓기’에만 그치자는 게 아니라, 합기도 수행이나 인문학 공부를 통해 자기 쇄신을 이룰 것을 구성원에게 기대한다는 데 있다. 이 책을 읽는 한, 중년 싱글족은 ‘나이를 먹어도 별로 인간이 바뀌지 않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바뀐다. 뻔질나게 극적으로 성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중년 싱글족의 시민적 성숙을 지원하는 짜임새를 구상하는 것 역시 우리가 할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 옮긴이의 겸손한 의견으로는, 이 대목은 소외된 타자와의 공생을 도모함으로써 지원자 역시 괄목상대할 성숙을 이루자는 취지로 읽힐 여지가 있다.)

     

    (2024-04-15 10:08)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주요 저서 『하류지향』 『곤란한 결혼』 『로컬로 턴!』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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