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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미일안보 시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5. 3. 19:01
얼마 전, 좌파 비즈니스맨들의 모임에 초청받아 강연한 적이 있다. ‘좌익 자본가’라는 게 있는 것이다. 세상은 넓다.
그 자리에서 2기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설 시 일본의 안전보장은 어떻게 될지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능성은 매우 낮으나, 일미안보조약을 미국이 폐기하며 주일미군기지가 사라지는 시나리오도 있을 법하다.
필자가 빈약한 상상력을 구사한 결과 상정할 만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랬다.
미국이 그렇게 나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본의 안전보장은 이후 일본인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은 정치가든 관료든 간에 전후 80년 내내 ‘일미 동맹 기축’이라는 얘기밖에 하지 않았으므로, 일미 안보가 사라지는 경우의 안전보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미국으로부터 ‘뒷일을 부탁할게. 자기 나라는 스스로 지키렴’ 하는 통고를 받는다면, 정치가든 관료든 몹시 놀랄 것이다. 그리고, 할 수 없이 자위대에 매달린다. 국방에 관해 ‘실제적으로’ 생각하는 기관은 거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방 기획을 일괄 하청받은 자위대는 어쨌든, 일본국헌법 제9조 2항의 폐기와 함께 국가 예산의 절반 정도를 국방비로 계상할 것을 요구하리라. 상시적인 인원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징병제 부활 또한 당연히 의논의 도마 위에 올린다. 주인 잃은 미군 기지는 모두 자위대 기지가 된다.
이리하여 ‘더는 아무도 믿지 않는 비동맹 무장 국가’라는 음험한 고슴도치 같은 나라가 완성된다.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국가상인데, 그러한 체제를 환호의 목소리로 맞아들일 법한 국민은 지금도 일본에 적잖게 존재한다. 왜냐하면 안전보장 시나리오로서 ‘일미 동맹 기축’ 이외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 왔던 일본인의 사고정지 탓에 그렇다.
이전에 어떤 정치학자에게 ‘일미안보 이외에 일본에는 어떠한 안전보장 전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물어봤더니 상대방은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이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정치학자에게 ‘미일안보 이외에 서태평양의 안전보장 전략에는 어떤 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몇 가지 시나리오를 금방 말해줄 것이다. 일본의 병은 깊다. (주간 AERA 게재, 4월 9일)
(2024-04-15 17:09)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주요 저서 『사쿠라 진다』 『새로운 전전』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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