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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 데 없다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5. 8. 16:39

    나이 어린 제 친구한테서 ‘청년 빈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빈곤 계층의 구조 활동을 하는 단체의 직원으로 있습니다. 구조 센터에는 ‘배를 곯는 젊은이들’이 모여서는 무료 급식시설1) 앞에 줄을 서고 있다네요. 요즘 같은 시대에 ‘밥을 굶는’ 젊은이가 수백 명이나 있다는 얘기를 듣고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 상당수는 가족이 있지만 집에 있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집 안에는 자신이 거할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깥을 헤매며 돌아다닙니다. 하지만, 가진 돈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범죄에 휘말리는, 피해자가 되었든 가해자가 되었든 그런 위험에 노출되게 됩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기서 ‘거할 곳이 없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했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십중팔구 집이 되었든 학교가 되었든 ‘거할 곳’은 있는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있고 싶지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거기에 있으려니 자기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런 게 모조리 정해져 있습니다. 그것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당연합니다. 굉장히 좁은 곳에 갇혀, 숨을 못 쉬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소들이 사실은 젊은이들이 ‘거할 곳이 없다’고 말할 때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정 내에서도, 학교 내에서도, 양친으로부터도, 교사로부터도, 친구들로부터도,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도, 자신이 해도 되는 것도, 자신이 해도 되는 말도 전부 정해져 있는 거라서 거기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이런 ‘문어 항아리’2)와 같은 곳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먹고 자고, 수업받을 수 있게 허락받지만, 거기서 나가는 것만은 허락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거할 곳이 없다’는 말의 실감이 아닐까요.

     

    몇 년 전쯤에 미국 포린 어페어스라는 잡지3)가 일본의 대학 교육에 관한 특집 기사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학생들에게 인터뷰를 했는데 그 응답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대학 생활을 세 가지 형용사로 설명했던 것입니다. trapped, suffocating, stuck 이렇게 세 개요. ‘덫에 빠졌다’ ‘숨을 못 쉬겠다’ ‘옴짝달싹도 못 하겠다’. 정말이지 충격적인 형용사였으므로, 기억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이 칼럼을 읽고 있을 사람들4)도 이 실제적 감각은 이해가 갈 거라고 봅니다. 일본 사회는 젊은이들을 너무나 ‘냉대’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요, 사회가 그들을 방치하고 있어서가 아닙니다. 정반대입니다. 살아 있다는 감각을 마비시킬 정도로 꼬치꼬치 ‘좁은 공간’에 가두려고 하니만큼, 그게 그들 입장에선 쟁그라울 겁니다.

     

    요전번에 브라질에서 10년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온 친구5)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그의 초등학생 자녀가 학교 파하고 나서 ‘오늘 선생님이 요상한 질문을 하는 바람에 대답을 못 한 거 있지’라고 했답니다. ‘무슨 질문이었는데’라고 물어보니, 그게 ‘너는 앞으로 뭐가 될 거야?’ 였다고 하네요. 브라질에 있었을 때는 어른들이 그런 걸 물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지요.

     

    그 얘길 듣고서,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질문이 싫었던 게 떠올랐습니다. 어째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하루빨리 ‘상자 속’에 짜맞추려는 걸까, 그것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때부터 ‘커리어 여권’ 같은 걸 쥐여주고, 최단 거리로 향후 커리어 형성에 부합하도록 아이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러니만큼, 오늘날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이 뭐니?’라고 물어보면,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유기체란 응당 가동 범위6)가 넓은, 다음 행동으로 이어질 선택지가 다양한 곳에 있으면 안심하고, 그 자유도를 잃게 되면 불안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오늘날의 일본 교육은 아이들을 생물 차원에서 연약하게 만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것처럼 제게는 보입니다. (『형설시대』 2월호)

     

    (2024-04-15 18:1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옮긴이 각주】

     

    1) 炊き出し: 일본어에서, 재난 등이 일어났을 때 밥을 지어 다수의 이재민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

     

    2) たこつぼ: 문자 그대로 문어잡이 할 때 함정과도 같이 쓰인다. 군사에서 1인 참호 ‘비밀아지트’를 의미하기도 한다.

     

    3) 정확히는 일본어판 Foreign Affairs Report. 원문은 “Japan Gets Schooled인 것으로 추정.

     

    4) 『형설시대』는 일본의 유서 깊은 대학 입시 정보 매체라고 한다. 옮긴이의 겸손한 의견으로는, 물론 대입 수험생 당사자뿐만 아니고, 수험생들을 항상 접하는 입시 관계자나 학부형을 향한 말로 읽힐 여지가 있다고 봄. 제호조차 고색창연한 『형설시대』를 손에 드는 현역이라면, 일본의 미래-애초, 제국대 지망자들을 위한 잡지였다고 한다-를 맡겨도 좋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 오길비 블로그 역시 자찬自撰 『고교독서평설』로 꾸려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5) 미사고 치즈루 선생의 얘기인 듯함. 국내 출간 『한 걸음 뒤의 세상(후퇴론)』 공저자.

     

    6) 원문 "가동역". 무도론과 관련되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참고자료 - 독문학자 김누리 교수】

     

    사유능력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얼마 전에 만난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떠오릅니다. 그 학생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갔다가 경험했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떤 수업이건 끝나면, 아이들이 몰려와 묻는 거예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수업 시간마다 이렇게 물으니까 몹시 곤혹스러웠어요. 일주일 내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 공세를 받았는데, 저는 한 번도 제대로 된 대답을 못했어요. 그래서 주말에 방에 혼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았죠. '나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내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라는 사실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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