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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동안 누누이 타일러 왔건만』 서문 & 후기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4. 2. 01:04

    들어가며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편집본(컴필레이션)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매체에 썼던 글을 출판사가 에디트 해주어 한 권으로 만들었습니다.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편집자가 ‘가제’에 해당하는 것 (『요지경 지팡구』였네요) 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마음에 딱 와닿지 않는 거람…. 하여 ‘잠시 생각 좀 해 볼게’ 라며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 ‘서문’을 쓰고 있는 단계인데도 실은 아직 정식 제목을 정하지 못했습니다.

     

    제목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번에 잠시 생각해 보려고 하는 참이니, ‘들어가며’를 갈음해, 이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서문을 다 쓰기 전에 제목이 떠오른다면 그것을 채용하기로 하겠습니다. 작품의 생성 과정 그 자체를 작품화한다니, 이건 마치 아련한 ‘60년대 스타일’ 같군요.

     

    그러고 보니, 요즘 들어 제가 맡는 작업이란 게 아닌 게 아니라 ‘아련한 60년대, 70년대’를 회고하는 인터뷰가 많았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1972년 시절 분위기에 대해 인터뷰하고 싶다’는 섭외가 있었습니다. 당해 연도에 드라마 『몬지로의 비정(木枯らし紋次郎)』과 『필살 원한해결사(必殺仕事人)』 방영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식으로 무법자를 영웅시했던 시절 특유의 분위기가 존재했다는 게 금시초문이라는 식의 문항이 있었습니다. 기획서에 적힌 인터뷰어는 40세 정도 되는 사람이므로, 물론 52년 전 시절의 분위기 같은 건 알지 못합니다. 제가 40세였던 시점(1990년입니다)에서 52년 전으로 돌아가면 1938년이 됩니다. 루거우차오 사건이 있었으며, 일본군이 상해를 침공하고, 연말에는 난징 대학살이 있었던 해입니다. 만일, 그 무렵의 ‘분위기’를 알고 있는 73세의 고희에게 40세인 제가 인터뷰를 기획한다면, 과연 어떨까요. ‘그 무렵의 일본인은 대체 어떤 생각이었지요?’ 하고 제가 물으면, ‘전후에 태어난 젊은 사람한테는 쉬이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르겠구먼….’ 하는 식으로 고희는 말하겠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게 될지 저로서는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여하튼, 저 또한 이윽고 그런 나이대에 이른 듯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현대사의 산증인,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하는 유형의 인터뷰에 응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습니다. 1969년에 있었던 미시마 유키오 vs 도쿄대 전공투 공개토론 시절 신입생이 겪은 고마바(駒場)의 분위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하네다 투쟁에서 야마자키 히로아키 군이 목숨을 잃었을 때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와세다에서 가와구치 다이사부로 군이 살해당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등, 이런저런 질문을 받습니다.

     

    물론 저는 동시대를 대표해 발언할 자격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무렵의 정치와 관련해 저와 같은 세대 사람들은 적잖이 입이 무겁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무엇을 질문하든 속 시원하게 인터뷰에 응해 주는 고희 인사 명단’ 같은 것이 미디어 업계에는 비밀리에 퍼져 있어서, 그 명단 상위에 제 이름이 쓰여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의 글은 시사적인 주제에 대한 제 사견입니다만, 제 연령이 연령이니만큼, 이 역시 ‘동시대 사람의 상식(커먼 센스)’과는 동떨어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독자 역시 ‘헤에, 그렇구나. 옛사람은 똑같은 일을 보고서도, 어지간히 다른 감상을 떠올리는구나’ 하는 의외성을 기대하며 제 책을 손에 드는 일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어린이였던 시절에는 『시사 난상』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이 일요일 아침에 방영되었습니다. (야마시타 다쓰로 씨와 오타키 에이이치 씨가 20년 이상 걸쳐 라디오에서 진행해 왔던 『신춘 방담(放談)』은 이것의 패러디였습니다). 저는 오바마 도시에 씨와 호소카와 다카치카 씨 두 분이 맡던 시절에 시청했습니다 (비틀스를 ‘근본 없는 악사’라고 부르며, ‘부도칸 라이브는 꿈도 꾸지 말라. 난지도 정도가 제격이다’ 라는 발언으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던 무렵입니다). 저는 중학생이었고 물론 비틀스의 광팬이었습니다만, 방송을 보고서 낄낄 웃고 말았습니다. ‘영감님들은 정말로 세계관 자체가 다르구나’라고 여겼던 겁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반세기 이상이 지나도 이 프로그램은 계속 떠오릅니다 (야마시타 다쓰로 씨 콤비도요). 그 까닭은 ‘세계관 자체가 다른 영감님’들의 발언 속에서, 소년이 무엇인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작가로서 서 있는 위치 역시 아마도 슬그머니 『시사 난상』적인 영역으로 수렴해 가는 게 아닐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시사적인 주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걸 분절하는 방식이 정말이지 ‘현대적’이지 않은 거예요. 딱히 그럴 의도가 없어도, 돌아보고 나면 동시대로부터는 ‘떠 있게’ 되어 버립니다. 보시면 조금 전에도 사례 몇 가지를 들었는데요 (『몬지로의 비정』에서 『시사 난상』까지), 젊은 독자로서는 어느 하나 아는 게 없지요? 독자에게 무언가를 설명하고자 구체적인 ‘비유’를 찾아보려 해도, 결국 대개 ‘아무도 아는 바 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것이 현재 제가 참으로 작가로서 가지는 엄청난 개성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된 이상, 결의를 다잡고서 ‘고희가 읊는 말’ 노선으로 쭉 나아가면 되지 않겠냐는 겁니다.

     

     

    이 책과 같은 시기에 나란히 출판하게 될, 마찬가지로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했던 단문을 모은 편집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가이후칸 니치조』라는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나가이 가후1879~1959 선생의 『단초테이 니치조』를 감히 차용하였습니다). 고희가 읊는 말이므로, 이 정도는 고리타분해야 장단이 맞지 않겠나 했거든요.

     

     

    그럼 원래 주제로 돌아가서, 제목의 조건을 따져볼 텐데요. 가장 중요한 건 ‘기억하기 쉬울 것’ 이겠지요. 서점에 가서 찾을 때 제목이 떠오르지 않으면 난처합니다. 언젠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제목이 외우기 쉽나 생각해 본 결과, ‘57조’가 떠올리기 쉬울 거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홀몸으로는 살지 못하는 것도 각설이 목청』, 『일본인이 서술한 유대 문화론』, 『자나 깨나 하루키 홀림 주의』 같은 게, 사실 57조랍니다.

     

    그리고 서점에서 일하는 분한테 물어볼 때, 어지간히 말하기 껄끄러운 제목이면 난처합니다. 언젠지는 모르겠는데, 하야시 마리코 씨의 『꽃보다‘결혼’개떡경단』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서점에 사러 갔었습니다만, 주위에 보는 눈들도 있어서, 점원 분 앞에서 이 제목이 어지간히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살 수는 있었지만요).

     

    물론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이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제목만 딱 보고서 내용물이 상상이 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난처합니다. 아리송한 게 바람직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씨의 『티베트와 모차르트』, 이거 임팩트 있었지요. 어떤 내용물일지 상상조차 가지 않습니다. 트루먼 카포티의 『티파니에서 아침을』도 그렇습니다. 어째서 티파니에서 아침밥을 먹는다는 걸까…. 곰곰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야하기 도시히코 씨의 『마이크 해머에게 보내는 메시지』도 근사한 제목이었어요. 누가 어째서 마이크 해머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요. 다카하시 겐이치로 씨의 『존 레논 대 화성인』도 끝내주는 제목이었지요. 대체, 존 레논과 화성인은 어째서 대결하는 걸까요. 바둑일까 가위바위보일까 눈싸움일까…. 상상도 안 갑니다. 결국 제목은 시선을 확 잡아끄는 동시에, 또한 알쏭달쏭해야만 합니다.

     

    까다로운 조건이기는 하지만, 이리하여 제목이 갖춰야 할 조건들의 대부분은 열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떠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최고의 제목은 머리에 번뜩 떠오른 걸 써먹어야 합니다. 좋아요, 정했습니다. ‘그동안 누누이 타일러 왔건만’ 입니다. 우선 57조라는 조건은 완수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그런 딱딱한 질문은 접어 두십시오. ‘하이고 이것 참’하며 빙긋이 웃으며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후기’에서 다시 뵙도록 합시다.

     

     

    【후기】

     

    마지막까지 읽어주신 점,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어떠셨나요?

     

    소재로 말하자면 이런저런 매체에 썼던 글이라든지, 강연록을 활자화했다든지 한 걸 가져다가 활용했습니다. 문체도, 독자층도 서로 다른 텍스트를 수합하느라고, 읽기 좋게 다듬는 과정에서 대부분 가필했습니다. 따라서 3분의 1쯤은 ‘오리지널’로 첫선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다만, 시사성을 띠는 글(우크라이나 전쟁이나 가자지구에서의 학살, 혹은 인구 문제)에 관해서는 처음 발표했던 그대로 될 수 있는 한 손을 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므로, 숫자 데이터가 당시 시점에서 변화가 없습니다 (GDP 역시 독일에 추월당하기 전이므로 ‘세계 3위’입니다). 그 시점의 정보를 바탕으로 한 사고의 산물이므로, 사후 약방문은 이야기의 맥을 끊어 놓을지도 모르니, 그대로 놔뒀습니다. ‘이게 뭐야. 왜 이리 지난 얘기를 하고 있담’ 하는 감상을 가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사정이 있었으므로 너른 양해 바랍니다.

     

    다양한 매체에 2년쯤 되는 기간 쉴 새 없이 썼던 글들입니다. 통독해 보니, 중심적인 테마는 ‘일본의 미래를 짊어진 사람들’을 어떻게 지원할까, 하는 일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을 ‘결코 다치지 않게, 「때 묻지 않은 어른」으로 키워내는’ 것이 지금 일본인에게 최우선시되는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어른들은 (가정과 학교를 막론하고) 아이들을 겁주고, 위축시키며, 경직시키는 데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제게는 보입니다. 어째서, 그렇게들 하는 것인지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소위 관리직들이 그러는 건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을 호소하는 사람들 역시, 때때로 적잖은 사람을 ‘겁주고, 위축시키고, 경직시키는’ 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리 높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공포로부터 ‘바람직한 것’은 어느 하나 생겨나지 않습니다.아질(독일어 Asyl / 영어 asylum - 옮긴이)’이란 개념은, ‘보호 수단이 없어도 다칠 위험이 없는 곳’을 이릅니다. 사회 전체가 ‘아질’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저기 한구석에 그러한 ‘미스테리어스한 그늘’이 있는 사회는 여러분을 위해서라도 살기 좋을 것이 분명합니다.

     

    20242

     

    (2024-02-19 10:57)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고백】

    영문을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즈음 강상중 선생의 『살아야 하는 이유』(원제 続・悩む力)를 손에 든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쓰메 소세키의 일절이 소개되어 있었는데요. "나쁘니까 그만두라고 하는 게 아니다. … 수박 겉핥듯 미끄러져 갈 수밖에 없다."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때 이후로 제가 어딘가 태도 불량(?) 해졌는지도 모른다고, 문득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태도 불량한 저입니다만, 어째서 우치다 선생님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 쓰는지 사람들은 종종 궁금해하곤 합니다.
    실은 몇 년 전 날건달 시절에, 『혼자 못 사는 것도 재주』를 손에 들었습니다만, 마치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것 같더군요. (이거 진심입니다.)
    그러나 "나도 자네만큼이나 어리석었지" 하는 선생님의 배음(倍音) 또한, 저는 애초에 수신했습니다. 확신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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