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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처음 듣는 이야기』 서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3. 24. 23:34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는 박동섭 선생이 엮은 책이다. 책과 출판, 그리고 도서관에 관해 내가 쓴 글을 모아다가 한국어 선집으로 낸다고 한다. 일본에서 앞서 출간된 『여항(閭巷)의 독서론』, 『시정(市井)의 미디어론』, 그리고 블로그 포스팅 등을 큐레이팅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후기’*만큼은 새로이 첫선을 보이고자 한다.

    (* 결과물에는, 서문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옮긴이)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는 제가 여기저기 써온 바 있는, 책과 도서관을 주제로 하는 에세이를 박동섭 선생이 일일이 골라 옮겨 주신 ‘베스트 컴필레이션 책’입니다.

     

    그 글감으로는 아예 처음 새로 쓴 것도 있고, 강연록도 있으며, 블로그에 썼던 신변잡기도 있습니다. 출전은 다양합니다. 그럼에도 전부 ‘책에 관한 얘기’입니다.

     

    우선, 이렇게 글감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주신 박 선생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이지 언제나 믿음직스럽습니다.

     

    이 책은 출판계의 위기와 전자책을 둘러싼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이어서 도서관 이야기, 학교 교육 이야기로 끝납니다. 그리고, 한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책에 관한 사고방식은, 일반론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저는 ‘책을 사는 사람’과 ‘책을 읽는 사람’을 구별해 놓습니다. 그리고 제가 관심 있는 쪽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고 단언해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을 공언하는 사람은 아마 일본의 직업적인 작가 중에는 거의 없을 겁니다. 한국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마 사정은 비슷하리라고 봅니다.

     

    저는 중학생 시절 SF 동인지를 등사판으로 밀어 출판했던 때부터 일관되게, 길 가는 사람의 소매를 붙잡고서 ‘부탁해, 읽어줘’라고 간청하는 자세를 관철해 왔습니다. 대학생 때에는, 정치적인 선전물이나 팸플릿을 역시 등사판으로 만들어 캠퍼스에서 배포했습니다. 학자가 된 이후에도, 초반부의 저작은 전부 자비(自費) 출판입니다.

     

    제 경우, 글을 쓸 때 ‘시장의 니즈’에 따른 적은 없습니다. 왜냐면, 제가 쓰는 글과 관련된 ‘니즈’같은 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제게 ‘좀 써줘’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어떻게든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스스로 쓰고, 찍어서, 나눠줍니다. 그것이 제 기본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까지 줄곧 시장 원리와는 원리적으로 인연 자체가 없습니다.

     

    시장 원리에 복무하는 경우에는 ‘이런 걸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독자의 수요가 우선 있어서, 그것에 부합하는 상품이 공급되어야 한다는 도식이 도출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걸 ‘거짓말’로 치부합니다.

     

    아니, 거짓말이라니 말이 너무 심했습니다. 분명히, 출판에는 그러한 수급 관계라는 측면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책이 나오기 전에, 그 내용을 선취하여, ‘이런 내용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 독자 측의 잠재적 수요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 게 아니라, 우선 책이 쓰여지고, 그것을 읽은 독자가 ‘이런 책이 읽고 싶었어!’ 하고 환호성을 올리는 게 참된 순서가 아닐지요.

     

    그리고, 물론 ‘이런 게 읽고 싶었다’는 독자의 리액션은 다 읽고 나서 독자가 스스로 만들어낸 ‘이야기’입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바라 왔던 ‘읽고 싶었던’의 조건에 딱 들어맞는 책을 만났다 하는…. 그런 ‘이야기’만큼 우리를 고양시키는 것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우리는 책을 만난 뒤에, ‘그 책을 오랫동안 대망(待望)해왔던 나’라는 모습을 조형하는 것입니다. 사후에 기억을 개조하는 거죠.

     

    물론, 황급히 덧붙이자면, 그건 전혀 나쁜 게 아닙니다. 인간은 그렇게 기억을 치환해 나가며 살아가는 생물이므로, 그래도 됩니다.

     

    ‘이런 책이 읽고 싶었다’는 건, 읽고 난 뒤밖에는 나오지 않는 말입니다. 따라서, 시장 원리주의자 입장에 선 출판인들이 마치 ‘나무’나 ‘돌’처럼 자연물과도 같이 ‘독자의 니즈’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에, 강한 위화감을 느꼈던 겁니다.

     

    그것은 도서가 쓰여지기 전에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닌, 도서가 쓰여지고 나서 나중에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집필 활동을 ‘전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음에도, 근처의 길 위에서 ‘길 가는 여러분, 제 이야기를 들어주세요’라고 외치는 바로 그 ‘전도사’입니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거니와, 아무도 원하지 않음에도, 자비량(自備糧)*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사람입니다.

    (* 원문 身銭を切る 자기 품을 들여. 자비량tentmaking missionary은 종교 용어로 크리스트교 초기에, 전도자 바오로 등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각지로 포교 다닌 것을 연원으로 한다. - 옮긴이)

     

    저는 자신을 ‘전도사’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는 어떤 때는 레비나스의 전도사이고, 어떤 때는 카뮈의 전도사이고,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전도사이기도 하며, 하시모토 오사무의 전도사이기도 하며, 오타키 에이이치의 전도사이기도 하며, 오즈 야스지로의 전도사이기도 하는 등, 전도하는 게 다종다양합니다. 이 모든 건 전부 누군가에게 부탁받아서, ‘돈을 줄 테니, 써 주십시오’라는 말을 듣고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읽는 사람이 있든지 말든지 간에, 이 사람들의 위대함에 관해서, 저한테는 부디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씁니다.

     

    제 경우, 종종 결과적으로 그런 식으로 글을 쓴 게 상품으로 유통되어, 돈을 버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계를 잇기 위해 책을 썼던 게 아닙니다. 책을 써서, 그만큼 먹고 살 수 있다면 정말 신나겠다 하는 몽상을 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계에 보탬이 되든지 말든지, 그런 건 상관 없습니다. 아무도 사주지 않는다면, 스스로 돈을 지출해 나누어드리겠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예수를 향해 ‘음, 저희도 생활을 해야 하겠으니, 선생의 가르침을 전도함에 있어, 선생도 약간의 아르바이트 급여를 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한다든가, 교회의 청중에게 ‘이제부터 전도를 시작하겠습니다만, 저희도 생활을 해야 하겠으니, 설교를 함에 있어, 우선 이 자리에 계신 분들께서는 비용을 지불하시기를 요청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풍경, 상상이 가시나요?

     

    전도에는 시장도 없고 수요도 없으며 대가도 없습니다. 그런 겁니다. 저는 그렇게 작정을 하고 반세기 이상 ‘작가’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이상한 사람’이 쓴 책에 관한 책입니다.

     

    만약, 이 책을 읽고서 ‘바로 이거야! 이런 글을 읽고 싶었던 거였어!’라고 말씀해 주신다면, 저한테 있어 그것만큼 기쁜 말씀은 없겠습니다.

     

    (2024-02-08 11:5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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