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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1984」: Revisited인용 2024. 2. 15. 13:36
성교는 관장을 하는 것처럼 약간은 혐오스럽고도 시시한 작업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명백하게 성문화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각 당원에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강조되어 왔다. 그 때문에 완전한 독신 생활을 고취시키기 위해 청소년 반성동맹(Junior Anti-sex League) 같은 조직이 있었다. 어린애는 전부 인공수정에 의해 낳고[신어로 '인수(人受)'라고 함] 공공시설에서 양육한다는 것이 기본방침이었다. 윈스턴은 이것이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의 일반적인 이데올로기와는 어느 정도 부합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은 성본능을 말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그것을 왜곡시키거나 더러운 것으로 규정지으려고 했다. 그는 당의 이러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렇게 하는 편이 당연할 것 같았다. 그런데 여자들에 관계되는 한 당의 노력이 상당히 성공을 거둔 편이었다. (...) 그녀는 그 행위에 두 가지 명칭을 붙였다. 하나는 '아기 만드는 일'이었고, 또 하나는 '당에 대한 우리의 의무'였다(그렇다, 그녀는 실제로 그런 표현을 썼다).
성의 본능은 단순히 당의 통제가 미치지 못하는 그 자체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파괴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욕을 박탈하면 히스테리를 유발시킬 수 있고, 그 히스테리를 전투열과 지도자에 대한 숭배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했다. (...) 순결과 정치적인 교리 사이에는 직접적인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강력한 본능을 축적하여 그것을 추진력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당이 당원들에게 요구하는 공포와 증오와 광적인 맹신을 무슨 방법으로 절정에까지 끌어올릴 것인가? 성적 충동은 당에게 위험한 것이므로, 당이 그것을 적절히 이용하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들은 '형제단'이 존재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거요. 의심의 여지 없이 그것에 대해 제멋대로 상상을 했겠지. 아마 모반자들의 거대한 지하조직이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갖고, 벽에다가 메시지를 휘갈겨 쓰고, 암호나 특이한 손짓으로 서로를 알아보리라고 상상했을 거요. 그러나 그런 일은 불가능하오. 형제단의 조직원들은 서로를 알아볼 만한 방법이 없고,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서로의 신분을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골드슈타인 자신이 사상경찰의 손에 붙잡힌다 하더라도 조직원의 명단이 전부 기록된 리스트를 넘겨줄 수 없고, 그런 명단을 입수할 만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없소. 그런 리스트는 존재하지도 않으니까 말이오. 형제단은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조직이 아니므로 깡그리 소탕할 수 없는 거지. 단지 파괴되지 않는다는 이념으로 그 조직은 유지되어 나가는 거요. 그런 이념이 없다면 당신도 결코 버티어 나가지 못할 거요. 동지의식을 갖는다거나 격려 따위를 받지도 못하오. 결국 당신이 체포된다 하더라도 조직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을 거요. 우리는 결코 같은 조직원들을 돕지 못하오. 기껏해야 누군가의 입을 다물게 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감방 속에 몰래 면도날을 반입시켜 줄 수 있을 정도요. 아무런 보람도,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삶을 받아들여야 하오. 잠시 동안 일하다가 체포되어 자백하고 나서 죽게 될 것이오. 그것만이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보람이오. 어떤 인식할 수 있는 변화가 우리들 생전에 일어나게 될 가능성도 없소. 우린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요. 우리의 진정한 삶은 미래에만 있소. 우린 한줌의 먼지와 몇 조각의 뼈가 되어 그 세계에 참여하게 될 거요. 그렇지만 그러한 세계가 미래의 어떤 시점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천년 후가 될 지도 모르지요. 지금으로선 건전한 정신의 영역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는 길밖엔 할 일이 없는 거요. 우린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없소.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개인으로부터 개인으로, 세대로부터 세대로 퍼뜨려 전해나갈 수밖에 없소."
마지막 초콜릿이 사라져버렸을 때, 어머니는 아기를 품에 꼭 껴안아주었다.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짓이었고, 어떤 변화를 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없어진 초콜릿이 다시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나 그녀 자신의 죽음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보트에 탄 피난민 여자가 팔로 어린 아들을 감싸준다 한들 날아오는 총탄을 막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당이 저지른 끔찍스런 죄과는, 단순한 충동이나 단순한 감정이 전혀 무의미한 일이라고 강제로 인식시키면서도, 동시에 물질적인 세계를 지배하는 인간의 힘을 모조리 박탈해버리는 것이었다. (...) 두 세대 전의 사람들만 하더라도 이런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를 변형시킬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성실성에 지배를 받았고, 그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인간관계였고, 죽어가는 사람을 포옹하고 눈물을 흘리고 한마디 말을 건네주는 완전히 무력한 몸짓이나마 그 자체에서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노동자들은 그런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리라는 생각이 문득 그의 뇌리를 스쳐갔다.
만약 이 세상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프롤레타리아에게만 남아 있다. (...) 프롤레타리아가 자신의 힘을 의식하기만 하면, 그때는 그런 음모를 꾸밀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냥 일어나서 파리떼를 흔들어 쫓아버리는 말처럼 몸의 근육을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 한순간의 일이기는 했지만, 불과 몇백 명의 목구멍에서 터져나온 함성이 저런 무서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왜 그들은 좀더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저런 고함을 지르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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