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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드러운 감촉이 드는 말씨: 박동섭 선생으로부터의 질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 11. 16:10

    질문: ‘당연함’, ‘일반인의 관점’, ‘통념’ 이런 것들을, 말하자면 일종의 ‘당연함’을 의장으로 두르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어지간한’ 말은 잔잔한 세상에 부합이라도 하겠다는 양, 세상을 구획 짓기도 하고 체계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쓰는 한 똑같은 구획법, 똑같은 체계화밖에는 이룰 수 없으며, 더구나 그 구획법 자체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가를 묘사할 수는 없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수월스런 말로는 결코 질문을 던질 수 없는 ‘당연함’, 그 ‘당연함’이 가져다주는 문제점 등을 묘사하기 위해 딱딱하고 꺼칠꺼칠한 학술적 어휘를 구사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딱딱하고 꺼칠꺼칠한 학술적 어휘란 으레 많은 사람에게 가닿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치다 다쓰루 선생께서는 그들과는 다르게, 훤히 ‘부드러운 감촉’이 나는 말로, ‘매끄러운 말’의 살갗에서 피가 아롱져 배어 나오는 마냥,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흐물흐물한 세상을 돌이켜 구체적인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이게끔 하는 방식을 취하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부드러운 감촉’이 나는 말을 쓰시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 어려운 질문이네요. 자기 문체가 어떻게 ‘이렇게’ 되어놓았는지에 대해 대답하라니요.

     

    박동섭 선생이 ‘부드러운 감촉’이라 형용한 말을 저는 ‘콜로키얼한 것’이라 대고 다녔던 듯합니다.

     

    colloquial이란 말은 ‘일상적인 대화, 구어, 비격식’의 뜻을 가진 형용사입니다. 저는 까다로운 이야기를 할 때는 최대한 콜로키얼하도록 문체에 얹기로 마음먹어왔습니다. 어느 시기부터는 상당히 의식적으로 그렇게 해 왔습니다.

     

     

    학술적인 개념을 학술적인 용어로 읊는 게 세계 표준적 ‘평범’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카데믹한 문체’로 서술되는 지견은 박 선생도 지적하셨다시피, 어지간해서는 학술 ‘업계’ 바깥으로 통할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람에도 불구하고 ‘업계 바깥’에는 전달되지 않는 사태는, 잘 생각해 보면 문제입니다.

     

    이전 질문에서도 대답드렸습니다만, 저는 어떤 시기에 이르러선 자신의 학술적 작업을 ‘전도’라는 식으로 잡아내게 되었습니다. 위대한 선현의 앎을 널리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길 가는 사람의 소매를 붙잡고서 “저기, 얘기 좀만 들어주지 않을래요” 하고 간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술 논문은 ‘읽고서 이해가 가는 사람’만을 독자로 정해놓고 쓰면 됩니다. 따라서 예비적인 고찰은 생략해도 되며, 어떠한 문맥 가운데에 이 연구가 행해졌는가를 구구절절이 설명하지 않아도 장땡입니다.

     

    하지만 ‘전도’하려고 글을 쓰면 도리어 ‘남남’이나 다름없는 바깥사람 하나조차 아쉽습니다. 왜냐면 ‘아마 한번 읽어봤자 곧장 알아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상정 독자인 탓이니까요.

     

    어째서 이 한 몸 이렇게 전도 활동에 나서기에 이르렀는가, 몸소 이렇게 전하고자 하는 지혜를 선창한 현자는 어떠한 인물이었으며, 어떻게 이러한 지혜를 얻기에 이르렀는가, 그런 식의 ‘주변 정보’를 넉넉히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느닷없이 ‘주지하는 바와 같이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권역으로부터 이탈을 기도한 것인데’라는 식으로 써내는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런 얘기는 어떤 분들한텐 전혀 “주지하는바”가 아니니까요. ‘하이데거가 누군데?’ ‘「존재론적 권역」이 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라는 당연한 의문에 봉착하게 되는 독자들은, 이에 대한 설명이 부실하면, 제가 잡아 쥔 소매를 뿌리치고서 총총 가던 길을 가겠지요. 제가 명색이 ‘전도사’인데 그러면 공치는 겁니다. 따라서 ‘아주 먼 옛날 어느 땅에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단히 독창적인 자기들 종족의 종교를 두고 있었답니다’ 깨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밖에요.

     

     

    하지만 저는 그러한 ‘예비적 고찰’하기를 ‘귀찮게스리’라고 여긴 적이 없었습니다. 그야 이 ‘예비적 고찰’이라든가 ‘문맥 설명’ 같은 작업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겁니다. 지성이 그 독창성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경우란, ‘어려운 학설을 기술할 때’가 아니고, ‘까다로운 이야기를 알아먹기 쉽게 설명할 때’입니다.

     

    개성은 설명에 의해 발현됩니다.

     

    이는 제가 사는 동안 어떤 계기가 되어 터득했던 경험지입니다. 직접적으로는 하시모토 오사무 씨라는 작가이자 사상가가 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바입니다.

     

    하시모토 오사무 씨 작품의 한국어 번역이 나왔는지 어쨌는지는 과문한 탓에 알 수 없지만, 저한테만큼은 위대한 멘토였으며, 정말 좋아하는 작가였습니다(개인적으로도 굉장히 친하게 지냈었습니다).

     

    저는 하시모토 씨로부터 문체와 사상 양면으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 모국어인 일본어 ‘글밥’을 따지고 보면 아마도, 하시모토 씨한테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하여 하시모토 씨가 돌아가시고 나서(2019- 옮긴이) 저한테 여러 언론으로부터 ‘하시모토 오사무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써달라는 기고 요청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다시금 하시모토 씨의 대표작을 돌이켜 읽고서 ‘아아, 하시모토 씨는 「설명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하시모토 씨가 무엇보다도 대단한 점은, 자기가 숙지하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고, 이따금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조차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설명은 그야말로 이해하기가 쉽고, 본질에 육박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요! ‘스스로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유창하게 설명할 수 있다’라니요.

     

    그래도,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하시모토 씨가 ‘자신을 향해 설명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하시모토 씨에게 가지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성 관계부터 자본주의의 미래까지요. 그때 하시모토 씨가 가장 예리하게 반응했던 사례는 매양 ‘질문을 받은 순간에 대답이 머릿속에서 번뜩 떠올랐음에도 어째서 그런 대답이 내면에 떠올랐는지 그 곡절을 당최 모를’ 유형의 물음이었습니다. 본인에게 물어서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째서 자기가 그런 대답을 떠올려냈는가. 그 과정을 따라갑니다. 다름 아닌 그것이 하시모토 씨의 ‘설명’이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에게 설명합니다. 따라서, 글 쓸 때 절대로 ‘빼먹기’를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아직 납득하지 않았는데도 ‘아는 척 티 내고’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당연한 얘기지요. 자기가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를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므로, 뭘 ‘빼먹을’ 도리는 없습니다. 상대가 타인이라면 ‘아는 척하는 속임수’를 쓸 수 있지만, 자신을 상대로 그 수를 쓸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시모토 씨의 설명은 굉장히 길었습니다. 애초에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단히 주의 깊게, 대단히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설명하는 것이므로, 기나길었고, 주의 깊었으며,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저는 이 독서 경험에서 ‘저자의 독창성은 설명에 의해 발휘된다’는 사실을 확신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고 보면 세계적인 작가들은 모두 ‘설명 천재’였습니다. 미시마 유키오가 그랬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랬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도 마찬가지구요. 세계적으로 호평받는 작가는 설명을 잘합니다.

     

    한편, 역내(域內)적인 작가는 이런 겁니다. ‘일본 열도에서는 「주지하는바」대로이지만, 한 발짝만 외국으로 나가서 그 얘길 하면 그 사람들로서는 이게 무슨 얘기인지 알쏭달쏭할 글’을 그들은 무심히 써버립니다. 일본어 화자한테만 통하는 ‘자곤(은어)’을 무심히 사용합니다. 그건 애초부터 ‘해외 독자’를 상정하지 않고서 쓰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쓰는 글은 ‘우리끼리만 통하는 이야기’이지, ‘바깥의 남들’에게는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점에 대해선 그다지 불안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딱히 「바깥」과 뭔가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우리들끼리만 통하면 만사형통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내적인 글을 쓰는 데 그칩니다. 어쩌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우물 안 작가’라고 제풀에 한계짓고 있으니까요. 설명을 게을리하니 로컬하게 됩니다.

     

    어째서 설명을 게을리하는지 저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아니, 설명하는 게 이렇게나 재미있는데도요.

     

    제가 자주 드는 비유가 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구를 본 사람’에게 축구가 어떠한 경기이며, 어째서 재미있는가를 설명하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 ‘가슴이 벅차’ 오르면 그가 바로 ‘설명 애호가’입니다. 평범한 축구 평론가, 해설가라든지 훌리건들은 그런 설명을 해 주지 않지요. 그도 그럴 것이 월드컵 같은 게 열릴라치면 평소에는 축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티브이에 경기가 줄창 나오니까 그제야 시합에 대해 이것저것 참견을 하게 마련인데요. 그걸 두고서 ‘축구 관전한 지 하루 이틀밖에 안 된 「반짝 축구광」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나서는 거냐. 그 입 다물라’라면서 무서운 얼굴을 하는 겁니다. 그 사람들은요.

     

    저 같으면 아마 설명부터 이렇게 하겠습니다.

     

    경기 공간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한쪽이 ‘페어*(정돈된)’ 영역, 다른 한쪽이 ‘파울(지저분한)’ 영역입니다.

    축구공은 ‘정돈된 영역’에서만 살아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있기만 하면 높은 값을 쳐줍니다.

    인간들은 두 팀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상대방 ‘골대’에 이 값나가는 축구공을 ‘선사’하려고 애씁니다.

    ‘선사’ 받은 쪽 사람은 이 축구공을 멀리 젖혀내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값나가는 것을 선사 받으면 천벌을 받는다’라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혹여나 ‘선사’를 받게 되면, 필사적으로 ‘똑같이 되돌려’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를 한동안 죽 하다가, 상대보다 더 많이 선사를 해주면 ‘이기는’ 겁니다.

    (* fairground. 본래 뜻은 장마당으로, 무엇인가가 오고 가는 곳 - 옮긴이)

     

    그런 식으로 설명하면, 사실 모든 구기종목은 놀이의 모습을 빌려 아이들에게 세상의 기원과 구조 그리고 증여의 본질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설명의 효용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하다 보니, 근원적인 이야기에 가닿습니다.

     

    따라서 설명할 때 글쓴이의 독창성, 개성은 분명해진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설명할 때야말로, 설명하는 사람이 품고 있는 ‘깊이’에의 갈망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동섭 선생이 하신 질문은 ‘부드러운 감촉이 나는 말씨’에 관해서였습니다. 그것에 대한 제 대답은 ‘설명하는 어법’이란 겁니다.

     

    ‘조술(祖述)’이란 것 역시 설명의 한 가지 모습입니다. ‘자왈(子曰)’, ‘여시아문(如是我聞: 부처님의 말을 몸소 들었다는 뜻 - 옮긴이)’,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 선현을 조술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독창성은 비로소 단연 돋보입니다.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일본의 한문학자인데, 제가 깊이 존경하는 분입니다)은 『공자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공자는 자신의 학()을 「전해 쓰되 새로 짓지 않았다」 (『술이(述而))고 하였다. 이를 보아 공자는 무언가 만들겠다는 의식, 자신이 창작자라는 의식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조라는 의식을 염두에 둘 때, 도리어 거기에는 진정한 창조가 없다는 역설 역시 쉬이 넘겨볼 수 없는 견해다. (...) 전통은 추체험(追體驗; Nacherleben. 타인의 체험을 자기의 체험처럼 실감實感하는 일. - 옮긴이)에 의해 개()에 내재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전통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개()가 살아 활동함에 따라 인격화되고, 구체화하며, ‘술회(述懷)’케 된다. 술회로 표현되는 것은 모조리 창조인 셈이다. 하지만 자신을 창작자로 여기지 않았던 공자는 주공(周公)에게 모든 공을 돌렸다. 주공은 공자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이상태(理想態)이다.”

     

     

    ‘조술(祖述)은 이미 그 자체로 창조’라고 시라카와 선생이 똑소리 나게 말씀해 주시기에, 저와 같이 ‘전도사’, ‘조술자’, ‘설명가’를 자처하는 이들은 이를 든든한 격려로 삼습니다.

     

    (2023-12-27 12:1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아이키도(合氣道)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일본의 「오늘」을 독해하기> <저잣거리의 미중론(美中論)>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우치다 다쓰루 선생은 평이한 문체나 화법 속에 사악할 정도로 난삽한 철학이나 사상을 잘게 부수어 넣어서 생기를 불어넣는, 저와 같은 범인은 도저히 불가능한 모험을 할 수 있는 아주 드문 스토리텔러입니다.”

     

     

    박동섭(1968~)

     

    독립 연구자.

    ‘〇〇 연구자’라는 제도화된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한계를 실감하며 ‘정체성 상실형 인간’으로 살고 공부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레프 비고츠키 심리학’, ‘사람들의 사회학(Ethnomethodology)’, ‘김영민의 일리의 철학’, ‘해럴드 가핑클’, ‘회화 분석’, ‘담화 분석’, ‘동사로 살다’ 등.

    우치다 타츠루 역서 및 해설서 다수. 매해 우치다 선생의 한국 강연을 주선하고 있다. (<완벽하지 않을 용기: 우치다 타츠루의 교육론> 참고)

     

     

    주요 연구 「문화적 실천으로서의 학습탐구: 마리는 과연 요리를 만들었는가? (2011) 등.

    마리는 과연 요리를 만들었는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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