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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것이 아닌 것 "학교 도서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1/5)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9. 20. 13:27
안녕하세요. 이번에 소개받고 자리에 서게 된 우치다 다쓰루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렇게 둘러보니까요, 여러분은 오히려 얼굴이 새하얗고, 강사 한 명만 얼굴이 새까맣게 타 놓고서는 여러분 앞에 서 있자니(웃음), 진심으로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여러분은 거의 여름방학 내내 학교에 남아있어야 했던 바람에 놀러 다닐 여유가 없으셨겠습니다만, 저는 해수욕장에 다녀왔던 겁니다. 3일 동안 말이지요. 교토 부(府) 교단고(京丹後)라는 곳인데, 여기 좋더라구요.
저는 가이후칸(凱風館; 개풍관)이라는 아이키도(合気道; 합기도) 도장을 하고 있습니다. 가이후칸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바닷마을[海の家]’이라는 이벤트를 열고 있습니다. 여관을 한 동 전세내서 하는 겁니다. 10명 이상 묵으면 한 동을 통째로 내어줍니다. 거기서 참석자 모두가 물장구도 치고,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무도(武道) 수련 도장이기는 합니다만, 도장을 처음 세울 적의 컨셉은 ‘옛날 옛적 일본 회사 같은 것’으로 정한 바 있습니다. 제 어린 시절, 그러니까 쇼와 20년~30년대* 정도의 일본 회사로 말할 것 같으면 대체로 종신 고용과 연공 서열을 채택하고 있었으므로, 가족이나 다름 없는 푸근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런저런 직종을 가진 사람들끼리 한 가족처럼 지냈던 겁니다. 그렇게 모두 모여 하이킹을 가고, 등산을 가고, 바다에 놀러 가며, 마작을 칩니다. 저희 집에도 아버지 회사 사람들이 곧잘 놀러와서는, 같이 밥을 먹곤 했습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어린 마음에도 ‘아~ 요것 참 좋다’ 하고 각인이 된 겁니다.
(* 일본의 고도성장기인 ~1960년대 초중반. - 옮긴이)
하지만 훗날 일본 기업들은 종신 고용과 연공 서열 제도를 폐지하고, 성과주의와 능력주의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직장에 들어가서 정년까지 한 회사에서 일하는 식의 고용 형태가 사라졌으며, 회사는 한때 가족을 대신했던 사회적인 기능을 잃고 말았습니다. 지연(地緣)사회가 붕괴하고, 혈연(血緣)사회가 붕괴했으며, 가족이나 다름 없던 회사도 사라졌고, 도시의 의탁할 데 없는 시민들은 원자화되었으며 모래알처럼 흩어졌습니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다시 한 번, 옛날 같이 포근하면서도 느슨한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고자 하였습니다. 사실 지연이나 혈연 공동체의 경우는 태어날 때부터 거기에 짜맞춰지게 되는 법이라, 결국 계속 거기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게 아니라, 마음대로 들어와서, 있고 싶을 때까지만 있으면서,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 선선히 보내주는, 그런 성긴 중간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출입은 자유지만, 일단 속해 있는 한 ‘멤버십’은 확실히 지키면서, 서로 지원하고 돕는[相互支援・相互扶助] 커뮤니티입니다.
40대나 50대가 되면, 가족들 역시 점점 나이가 들어갑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면, 혼자 사는 사람은 배우자도 없으며 자녀도 없습니다. 친척들하고도 그다지 교류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의지할 데 없는 고아나 다름 없는 사람이 지금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할 수 있는, 사실상의 가족과도 같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게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겠습니까.
자 이제 어떻게 가족과 유사한 공동체를, 맨바닥에서부터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모여서 어울리기만 해서는 공동체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아이키도 도장을 하고 있는데, 이건 교육 공동체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이 공동체의 지속은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그냥 모임을 갖거나 수련만 하는 게 아니란 겁니다. 저에게는 스승이신 다다 히로시[多田宏] 선생님으로부터 전수받은 무도의 기술과 사상의 체계가 있으며, 그것을 이제는 제가 다음 세대에게 패스하는 겁니다. 제자는 그 스승으로부터 이어받은 도통(道統; 道學을 전하는 계통. - 옮긴이)을 후속 세대에 전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 도장(道場) 공동체는 계속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친족(親族)이라는 개념을 ‘존속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정의에 따르면, 도장(道場) 공동체, 혹은 종교 공동체나 교육 공동체 역시, 다음 세대에 계승할 지식이나 기술을 전하는 기구이므로, 마찬가지로 일종의 친족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 1908~2009. 문화상대주의적인 견지에서 인류학을 전개함. 주요 저서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등. - 옮긴이)
처음 얼마 간은 함께 수련을 하면서, 쉬는 날에는 모두 놀러 나가는 기회를 가지면 되겠거니 했습니다. 그래서 바닷마을에 가고, 스키 타러 가고, 하이킹 가고 성지 순례를 가며, 말을 타러 가는 등 여럿 했습니다. 따라서, 가이후칸에는 ‘동아리 클럽 활동’이 여남은이나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스키부, 하이킹부, 성지순례부, 수학여행부, 폭포수행부, 승마부 같은 활동을 하는 겁니다. 저는 될 수 있는 한 ‘동아리 활동’에는 전부 참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이후칸에서는, 무도 수련과는 별도로 ‘훈장님 연구실[寺子屋ゼミ]’이라는 것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 고베여대 대학원의 사회인 대상 연구수업*이었던 것의 후신이라는 사연이 있는데요. 제가 은퇴한 뒤에도 수업을 계속해 주기를 바라는 기존 연구수업 수강생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개강한 것입니다. 다다미 70 장**짜리 가이후칸에 좌탁을 서른 개 정도 깔아놓고서 인문학 합동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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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세미나ゼミナール. 일본 대학에서는 대개 학부 2~3학년부터 흔한 제도. 한 교수 밑에서 최대 단 십수 명의 학부생이 문헌강독, 현지조사, 토론발표 등의 연구활동을 하며, 합숙 등의 팀빌딩도 드물지 않다. 한국 이공계의 학부연구생에 가까운데 대학마다 필수 여부 및 전공/교양 개설 여부가 다름. - 옮긴이)
(** 표준 다다미 한 첩疊은 약 90cm x 180cm. - 옮긴이)
몇 년 전 이 연구수업에서 어느 여성 수강생이 ‘묏자리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분은 50대 여성이었습니다. 스스로 부모님 묘를 돌보는 처지라서, 양친의 제사[供養]를 지내고 있으며, 스스로의 묘도 그 자리에 쓸 수 있지만, 그분 자신의 제사는 누가 지낼 것인가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걸 듣고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내 제사는 누가 지내주겠는가’ 하는 문자열을 제 귀로 들은 건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묏자리 문제는 보통은 ‘이장(移葬)’같은 것처럼 선조까지의 묘에 대해 말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그분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의 묏자리 문제였던 것입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온도차가 제법 있습니다. 남자는 그런 것을 그다지 언급하지 않습니다. 저희 부친은 돌아가시기 전에 ‘중은 부르지 마라. 법사(法事) 치르지 마라. 법명(法名) 짓지 마라. 유골은 바다와 산에 뿌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남자가 상당히 많습니다. 반면에 어머니하고 형과 ‘어떡할까?’ 상의를 해봤더니, 모두 ‘아서라 아서라’ 하는 거예요(웃음). 결국, 스님을 모시고, 법사를 치렀으며, 법명도 지었습니다. 유골은 다소간 다비를 하였으므로 그것만큼은 유언대로 따랐습니다. 스루가 만(후지산이 내다 보이는 명승지 - 옮긴이)에 가서 바다에 뿌렸으며, 형과 산에 올라서 뿌리고 왔습니다.
남자 같은 경우 비교적 그런 식입니다. 죽은 뒤의 묏자리 걱정같은 건 그다지 안 합니다.* 하지만, 여성은 ‘죽은 뒤의 자신’에 대한 상당히 리얼한 관점이 있습니다. ‘남편과 같은 묘를 쓰고 싶지 않다’ ‘시어머니와 같은 묘를 쓰고 싶지 않다’ 와 같이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하시는 여성분들이 연구수업 자리에 몇 분이나 계셔서, ‘이분들은 죽은 뒤에도 살려는 셈이로구나’ 하고 좀 놀랐습니다. 사후에도 절반 정도는 살아있는 거라서, 개성이나 인격도 일정 기간 지속되는 걸로 여기는구나 했습니다. 따라서 사후의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준다든지, 커뮤니케이션을 걸어준다든지 하는 것 등을 남은 이들에게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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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 일본에서는 불교식 제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 본문은 도서관 사서 대상 강연회 녹취록입니다.)
듣고 보니, 옳다구나 그게 제사라는 것일지도 모르겠거니 했습니다. 50년이고 100년이고 제사 지내달라는 말이 아닌 겁니다. 하지만 죽고 나서 곧장 잊히는 건 사양이구요. 죽은 뒤에도 잠시동안은 모두의 기억 속에 남아서, 뭔가 자신에 대해 시시콜콜히 화제로 삼아주기를, 그 사람은 생전에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 모두가 그리워하듯이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이키루>라는 영화가 딱 그랬던 거예요(제목에 ‘살다’라는 뜻이 있음 - 옮긴이). 영화에서는 중간 쯤에 주인공이 죽고 마는데, 러닝타임의 나머지 절반은 장례식 장면입니다. 밤샘하러 왔던 조문객들이 ‘와타나베 과장은 사실 이러이러한 사람이었습니다’ 하고 한명씩 증언을 해나갑니다. 그런 증언들의 단편이 축적되면서, 시시한 말단 공무원으로만 보였던 와타나베 과장이 알고 보니,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점이 점차 밝혀집니다. 그것이 추모라는 것의 요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히 떠받들고 그러지 않아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모르셨겠지만, 저는 그 사람의 이러한 면을 알고 있어요’ 하고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나가는 사이에, 인물의 입체상이 완성되어 갑니다. 그것을 추모라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간제류[観世流] 노가쿠를 이럭저럭 30년 가까이 연습하고 있습니다. 노가쿠의 곡에는 행각승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승려가 어느 지방에 당도하게 되는데, 거기에는 매실 나무가 되었든 폐가가 되었든 까닭이 있어 보이는 뭔가가 있어서, 이게 뭘꼬 하고 서성거리는 사이에 그곳 지방 사람이 등장해서는, 여기에는 이러이러한 내력[因縁]이 있소이다 하고는 사라집니다. 나카이리(中入り; 인터미션 - 옮긴이) 뒤에 노치지테(後ジテ; 2부 주인공 - 옮긴이)가 등장하여 ‘사실 이 몸은 이즈미 시키부올시다’ 혹은 ’다이라노 아쓰모리올시다’ 등의 이름을 대며, 그 장소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를 이야기해 갑니다. 그리고 승려에게 ‘부디 저를 공양(供養)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합니다. 이것이 노치지테의 마지막 말인 겁니다. 그렇게 사라지면서 끝내는 것이 후쿠시키 무겐 노*[複式夢幻能]의 기본 패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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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고전극 양식인 노能 가운데 정령이 나타나는 극을 '무겐노'라고 하며, 여기서 2장으로 구성된 노래를 가리킨다. - 옮긴이)
참말로,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어도 얼마간은 이 죽은 몸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 주기를 죽은 이는 바라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응하는 것이 추모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장기간 할 필요는 없으며, 대체로 십삼 주기 정도로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직접 사후 세계에 가서 설문조사를 해온 건 아니지만요(웃음). 십삼 주기 쯤 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부계 쪽 조모(祖母)의 십삼 주기 때에, 백부께서 ‘다들 나이도 어지간히들 잡쉈고, 멀리서 모이러 오는 것도 일이니까, 다같이 모여서 법사를 하는 건 이번으로 끝내자. 이제는 당자가 할 테니’ 하고 선언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마음에 ‘그렇구나. 공양은 십삼 회기쯤 하면 되는 거구나’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 자신도 올해 72세고 보니 음, 앞으로 10년 정도는 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죽은 뒤에 얼마동안 제삿밥 얻어먹고 싶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13년 정도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쯤 되고 보면, 저와 비슷한 나이대 친구들도 모두 떠나는 거고, 저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는 집안 사람들도 제각기 상당한 연령에 이르러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상, 그쯤 해서 페이드 아웃하면 되는 거라고 봅니다.
애초에 제 나이쯤 되고 보면, 점점 죽음에 가까워 가는 것입니다. 눈이 안 보이게 되기도 하고, 이가 빠지기도 합니다. 저는 몇 달 전에 무릎에 인공 관절 삽입술을 받았으므로, 무릎은 사이보그인 겁니다. 몸 여기저기가 벌써 부분적으로는 죽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생물학적으로 전 부분이 죽게 되는 겁니다만, 그 전부터 조금씩 죽음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도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동안에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 죽음에 이르지 않은’ 상태가 당분간 이어집니다. 인간이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인 죽음이란 것에 디지털적인 생사의 경계선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점점 아날로그적으로, 죽어있으면서도, 죽음에 이르지 않은 상태가 당분간 이어지며, 느린 속도로 페이드 아웃이 진행되어 갑니다. 이전 13년, 이후 13년 도합 26년 정도 걸려 인간은 죽어가는 게 아닐까... 발표를 들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나의 묘는 누가 돌보아줄 것인가. 누가 공양해줄 것인가. 걱정된다’ 는 사람이 나왔으니만큼, 차라리 이 기회에 묏자리를 보아버리자, 해서 가이후칸 명의의 추모공간을 조성했습니다. 가이후칸에 속한 문인(門人) 가운데 자녀가 없는 사람, 자신의 후사를 추도해 줄 만한 사람이 없는 사람은 우리 묘에 들어와 주십사 하는 취지입니다. 도장(道場)은 앞으로도 줄곧 이어질 터이니, 매년 추도해주는 사람이 끊기는 일은 없습니다. 이거 참 좋은 생각이다 해가지고 즉각 제 친구인 샤쿠 뎃슈(釈徹宗; 1961~. 종교학자. 오사카 상애相愛대학 학장. - 옮긴이) 선생 계신 곳에 상의를 하러 가서, 실은 이런 걸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꺼내니까, 웬걸 샤쿠 선생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 것이었어요.
샤쿠 선생은 여기서 머잖은 곳에 위치한 뇨라이지[如来寺]라는 사찰의 주지를 맡고 계시기도 한데, 불자 분들 가운데에는 홀로 지내는 탓에 후계자가 없는 사람들이나,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묘를 이제는 돌볼 만한 금전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분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합동묘를 만들어야겠다고 샤쿠 선생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이후칸은 ‘도반 사당[道縁廟]’, 뇨라이지는 ‘보살 사당[法縁廟]’이라는 합동묘를 조성하였습니다. 뇨라이지 가까이에 있는 산에 자리잡은, 조망이 참으로 수려한 터에 묘비 두 기를 나란히 세웠습니다. 그곳에서 매년 한 번씩 ‘성묘’ 행사를 갖고 있습니다. 계절 좋은 때에 다같이 차례지내는 것인데, 샤쿠 선생이 법문을 외어주시고, 법연을 해주시면, 참례자들은 향을 사릅니다. 법연이 끝난 뒤에는 묘비 앞에 널따란 방수포를 깔고, 좌탁을 늘어놓고서는, 샴페인을 마시고 진수성찬을 음복합니다.
오늘 이 강연장에 오기 전에 저는, 아침 8시 반부터 점심까지 아이키도 수련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도서관 관계자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오늘 밤 7시부터는 인터넷 상에서 샤쿠 선생과 ‘오봉(お盆; 조상의 혼령을 맞이하는 일본 절기로, 양력 8월 15일 전후가 연휴 - 옮긴이) 맞이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합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참으로 눈코뜰 새 없다 싶기는 하되, 문득 ‘이 세 가지 일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일 수 있겠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오늘의 제 일과는 오전의 무도 수련과, 오후의 도서관 담론, 그리고 밤에 하는 종교와 제사 그리고 죽음에 관한 고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옳다거니, 저야말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였구나 하는 걸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냐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과 이 세상 사이를 중매하는 일의 전문가입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의 인터페이스로서, 사람은 어떻게 동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과 지식의 전문가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도서관에 소속되어 있는 인원으로서 스스로가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의 인터페이스로 존재한다는 데에 생각이 이르지 못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상 그런 일들을 하고 계신 겁니다.
이곳 연단에 서기 직전에 대기실에서도 말씀을 나눴습니다만, 듣자 하니 행정 당국이 도서관 입장에서는 실로 엄한 짓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든 도서관을 망가뜨리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도서관 따위는 필요 없다. 사서 따위는 필요 없다.’ 극단적으로는 ‘책 따위는 필요 없다’에 이르기까지 반지성주의가 추진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쪽 사람들은 도서관을 이렇게도 미워하나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거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현재 득세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은 현세적인 이익밖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만이 의미가 있는 거라고 믿고 있는 이상,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따위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도장(道場)’이란 애시당초에 종교 용어입니다. 수업을 하는 곳입니다. 무도(武道) 수업의 목적은,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한다든가, 움직임을 날렵하게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자신의 몸을 ‘양도체(良導體)’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양도체(良導體)’라는 것은, 어느 부위에도 경직, 막힘, 해이가 없는 정비된 몸을 이릅니다. 그 신체를 통해 거대한 자연의 힘, 에너지가 발동됩니다. 자신의 신체는 힘의 연원이 아니라, 통로인 겁니다. 그렇기에 아집을 버리고, 투명한 심신을 만들어 나갑니다. 그것이 무도(武道)적인 수업(修業)입니다. 이런 점에서, 무도와 종교 사이에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종교의 경우, 자신이 종교적으로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스스로 평가내리기가 어지간히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무도의 경우는, 그것을 외형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마르고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덩치 큰 사내를 냅다 집어 던진 뒤에, ‘어머, 이렇게 할 수 있게 되어버렸지 뭐야’ 하며 스스로 놀랍니다. 신체적인 실제 감각을 통해 자신의 신체가 ‘자연의 거대한 힘이 관통하는 통로’로서 얼마나 다듬어져 있는가를, 압니다. 그것은 딱히 근육이 우람해졌다든가, ‘와자’(技; 아이키도에는 ‘와자’가 도합 2,884개 있다고 알려져 있음 - 옮긴이)가 숙련되었다든가, 움직임이 빨라졌다든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양도체(良導體)’로 다듬어서, 야생의, 자연의 거대한 힘을 발동케 하는 것입니다. 무도 수업을 통해 그것을 닦습니다. 이상이 현재 단계에서 제가 무도에 대해 이해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사항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제가 <무도론>에 저술한 바 있는데, 실제 감각은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저는 애초에 무슨 종교를 갖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 자신은 종교적인 인간으로서, 아주 오래 전부터 ‘초월적인 것’, ‘이 세상 것이 아닌 것’과의 교감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이 ‘교감’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일련의 ‘매너’가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이 경계선을 넘어서서 인간 세계 속에 깃들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응대할 것인가에 관해 옛사람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충분한 거리를 두고, ‘저기 실례가 되겠습니다만, 너무 무도한 일은 벌이지 말아줍시오’ 하고 슬쩍 되돌려보내는, 한숨 돌리며 보내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외부에서 도래한 것으로부터 인간들 자신들의 세계에 무언가 ‘바람직한 것’이 더해지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이런 식으로 말씀을 드리면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앉았는 거냐’ 하고 어처구니없어하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출처: http://blog.tatsuru.com/2023/09/09_0927.html'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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