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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묘사되는 자폐스펙트럼장애: <분노의 포도>와 <토지>를 중심으로인용 2023. 8. 14. 19:24
두 사람 뒤에서는 아버지와 노아가 천천히 차분하게 움직이면서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조를 맞추고 있었다. 장남인 노아는 키가 크고 기묘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으며, 항상 차분하면서도 어리둥절한 듯 뭔가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돌아다녔다. 그는 평생 화를 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화를 내면 그는 놀라움과 불편함이 담긴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정상인이 미친 사람을 바라보듯이, 노아는 천천히 움직였으며,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가 하도 굼뜨게 움직였기 때문에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바보로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바보가 아니라 조금 이상할 뿐이었다. 그에게는 자존심이 거의 없었으며, 성적인 충동은 전혀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맞는 진기한 리듬에 맞춰 일하고 잠자리에 들 뿐이었다. 그는 식구들을 사랑했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 감정을 표현하는 적이 없었다.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었지만, 노아는 왠지 기형인 것처럼 보였다. 머리, 몸, 다리 중 하나가 기형이거나 정신이 잘못된 것처럼.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의 몸에 기형은 없었다. 아버지는 노아가 이상한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노아가 태어나던 날, 혼자 집에 있던 아버지는 다리를 벌린 채 비명을 질러 대고 있는 아내를 보고 겁에 질린 나머지 겸자 대신 자신의 힘센 손가락으로 아이를 잡아당겨서 비틀어 버렸던 것이다. 산파가 늦게야 도착해 보니 아기의 머리는 찌그러져 있고, 목은 늘어나 있고, 몸도 뒤틀려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다시 밀어 넣고 손으로 몸을 바로잡아 놓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일을 결코 잊지 않고 항상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보다 노아에게 더 다정하게 대했다. 노아의 널찍한 얼굴과 지나치게 사이가 벌어져 있는 눈, 그리고 길고 연약한 턱을 보면서 아버지는 비틀리고 뒤틀렸던 아기의 머리를 생각했다. 노아는 시키는 일도 잘하고, 글을 읽고 쓸 수도 있고, 일도 하고, 계산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일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 그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묘하게 조용한 자신만의 공간에 살면서 차분한 눈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는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었지만 고독하지는 않았다.
-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939년, 민음사판호명을 한 뒤 출석부를 덮어놓고 이시다 선생은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그런 뒤 수업에 앞서 시국 얘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흔히 있는 일이며 다른 선생들도 때때로 시국 얘길 하곤 했다.
(...) 아무튼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이시다 선생은 하얀 손수건을 꺼내었다. 안경을 걷어 눈물을 닦으며, "오오 덴노사마[天皇様], 덴노사마."
하는 것이 아닌가.
(...) 한데 불행하게도 교실 한구석에서 낄낄낄, 아주 낮은 웃음소리가 났다.
"다레카(누구냐)!"
이시다 선생의 얄삭한 입이 마치 허공만큼이나, 엄청난 크기로 벌어졌다. 목소리는 뇌성벽력이었다.
"와랏타 야쓰와 도이쓰카(웃은 놈은 어느 놈이냐)!"
교실 안은 마치 죽음의 바다처럼, 정적에 응고된 것처럼 느껴졌다. 상의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딸꾹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바로 옆에 앉은 옥선자(玉仙子)가 웃었던 것이다.
"데테코이(나와라)!"
이시다 선생은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를 질렀다. (...)
애초, 옥선자가 웃은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시다 선생이 그를 지목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옥선자가 있는 쪽에서 소리가 나기도 했지만 이미 교사들 간에 옥선자는 불량학생,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혀 있었으며 교무실 출입이 잦았고 특수한 용모 때문에 그를 모르는 교사는 없었다. 옥선자의 별명은 많았으나 대표적인 것이 유령미인이다. 미인이란 옥선자에게는 일종의 반어(反語)였으며 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를 보면 연체동물을 연상하게 한다. 낙지와 같은 느낌. 또 하나의 별명은 버들미인인데 버들가지 같은 몸매를 두고 붙여진 것이지만 몸이 약한 그는 체조 시간이나 교련 때는 버드나무 밑에 서서 늘 견학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중심 없이 허늘허늘 걸었고 체중이 가벼워 그랬던지 발소리 없이 다가와 학생들을 곧잘 놀라게 했다. 사실 그는 마음씨 좋은 아이였다. 눈빛이 유순했다. 그러나 뾰족하고 날카로운 콧날은 마귀할멈 같았고 엷고 작은 입술은 꽤 수다를 떨 것같이 보였으나 말수는 적었다. 다만 이따금씩 하는 말은 지능지수를 의심하게 했고 남의 감정을 상하게도 했는데 결코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의 또 하나의 별명은 대학생이었다. 지각을 밥 먹듯 했고 결석이 잦았으며 공부하고는 진작부터 담을 쌓은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곧잘 그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곤 했다. 빛바랜 듯한 노랑머리는 숱이 적고 부드러워서 늘 흘러내려 얼굴을 덮었다. 그가 문제 학생으로 떠오른 것은 남학생과 편지를 주고받는다거나 몰래 영화 구경을 간다거나 그런 일 때문은 아니었다. 사소한 잘못을 지속적으로 하기 때문에 문제 학생이 된 것이다.
첫째, 게으르고 숙제나 일기를 써온 일이 없으며 과제물, 그러니까 재봉이나 수예 같은 것을 마무리하여 제출한 일이 없고 결석 지각뿐만 아니라 슬그머니 조퇴를 하는가 하면 공부 시간에는 딴 책을 꺼내어 보고 있었다. 야단맞는 일에 옥선자가 면역이 되어 있다면 선생들은 두 손 바짝 들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학교에서 문제 삼은 것은 또 있었다. 여학교에서는 흔히 있는 S에 관한 것인데 소위 의형제, 서로 마음에 드는 하급생을 골라 프로포즈를 하는데 그것은 연애 감정 비슷한 것이어서 학교에서는 엄금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반반하게 생긴 상급생이나 귀엽게 생긴 하급생은 거의 모두 S를 맺고 있었다. 소위 그 프로포즈하는 편지의 전달자가 바로 옥선자였다. 그 일이 발각되어 번번이 교무실에 끌려가서 꿇어앉곤 하는데 그는 그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누구든 부탁하면 기꺼이 맡았고 때에 따라서는 예쁜 아이를 점찍어놨다고 반 아이에게 권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배고픈 사생(舍生)들을 위해, 그는 하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하여간 배고픈 사생들을 위해 암거래하는 떡집이나 기타 음식점에 소개하는 것도 그의 소임이었다. 또 한 가지는 사감의 손을 거치고 싶지 않은 내용의 편지를 그는 부쳐주었고 답장을 사생에게 전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봉사를 하건만 반 아이들은 그를 소외했다. 자기 볼일만 보면 그만, 옥선자를 친구로서 상종하려 하지 않았다. 불량학생이라는 딱지 때문에 경원하는 것이었고 진짜 불량학생들도 그 죄질이 다르기 때문에 그를 그들 클럽에 끼워주지 않았다. 외모에서부터 그는 회피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고독했으며 고독을 즐기는 듯도 했고 초연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 이날도 수업이 끝나고 종회도 끝나고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옥선자의 가늘고 긴 팔이 상의 눈앞에 쑥 뻗었다.
"이거, 우리 오빠가 가져왔는데 너 줄려고 가져왔다."
자그마한 봉지 하나가 그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다.
"뭔데?"
상의는 쌀쌀하게 물었다.
"사탕이야, 딸기사탕. 오빠가 동경에 있거든. 오면서 사 왔어."
"싫어. 내가 왜 그걸 받니?"
질색을 하며 책보를 들고 급히 교실에서 나오는데,
"리노이에[李家, 상의의 창씨]상!"
아무개야, 나랑 노올자아! 하며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같이 옥선자의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노이에 쇼오기[李家尙義]상!"
상의는 더욱더 걸음을 빨리했다. 두 귀를 막고 싶을 만큼 그 목소리가 싫었다. 신발장 속의 신발을 꺼내어 신고 운동장을 뛰다시피, 그리고 기숙사로 돌아왔다. 책상 앞에 앉아 숨을 내쉬는데 가슴이 따끔따끔 아픈 것 같았다.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다.
'정말 싫은데……. 아이 싫어!'
상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
- 박경리, <토지>, 1992~1994년, 다산북스판, 제 5부 3권(통권 18권), 제 3편 4장 '적(赤)과 흑(黑)''인용'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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