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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저작권 보호 음반 출시에 관한 회상기 (고토 마사후미・ASIAN FUNG-FU GENERATION)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3. 8. 3. 10:23
카피 컨트롤 디스크에 관한 회상기 (고토 마사후미・ASIAN FUNG-FU GENERATION)
정말이지 나한테 뭐라고 한 트윗이 아닌데도 반사적으로 답글을 보내버린 일이 있었는데(면목없습니다), 카피 컨트롤 디스크(이하, CCCD)와 관련, 우리의 애티튜드에 대한 악랄한 유언비어가 유포되고 있었으므로, 이곳에 기록해두고자 했습니다.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두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지 모르지만, 노엘 갤러거와의 일화처럼, 내버려두면 몇 번이고 부활해 과장되어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패싱하지 않고 똑바로 반론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동료들의 명예와도 관련이 있으므로, 더더욱.
CCCD가 도입되려고 하던 때, 우리는 ‘도(Do)’ 딱지가 붙은 신인이었습니다. ‘미(Mi)’라고 해도 상관없겠지요. ‘붕괴 앰플리파이어’라는 작품이 큔(Ki/oon)이라는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이하 SME) 산하 레이블이 사들여서 재출시되었고, 퍼스트 앨범의 녹음을 추진하고 있던 와중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만 26세. 월급쟁이를 그만 두고 음악의 길에 모든 걸 걸어보려고 밴드 활동에 전력을 다 한지 약 2년, ‘이런 밴드는 상업성이 없다’는 하마평이 떠도는 가운데, 간신히 우리를 발굴해준 게 큔의 스태프들이었습니다(레이블끼리의 쟁탈전 같은 건 우리한테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웃음). 뭐든 되겠지 하는 자신감도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긴 언더독 생활을 생각해보자니, 솔직히 한숨 돌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CD 따위 셀프든 뭐든 휙 하고 낼 수 있는 현재와는 상당히 상황이 달랐습니다. 음반사의 예산으로 만드는 CD와 자기가 구웠던 CD-R과는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어느 사항에 관해서든 존재했으며, 지금처럼 누구라도 자유로이 세상에 음악을 발표할 수 있고, 듣는이도 인터넷 상에 많이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아이튠즈 스토어도 아직 없었으며, 각 밴드가 유튜브 채널을 갖는 것 따위 꿈만 같았던 세상이었습니다. 자신의 음악을 업로드해두는 음악용 SNS도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였던 것입니다.
뭐, 그런 가운데 우왕좌왕하며 메이저 데뷔를 굳히고, 돈이 없어 쩔쩔맸지만서도, 이럭저럭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얻게 되어, 흥분하고, 당혹스러워하며, 애석해하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퍼스트 앨범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 퍼스트 싱글, 메이저 데뷔 음반 제작 무렵에 불거진 것이 CCCD 문제였습니다.
미리 써 두자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음반 회사마다 온도차가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회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며, 들은 얘기나 상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는 상황입니다(이를테면, 도시바EMI의 음악가들은 거의 속수무책이지 않겠나라든가). 이번 시간에, 나는 나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해서 씁니다. 그러한 문언을 여기에 삽입합니다.
메이저 데뷔 싱글이 CCCD로 출시되는 것과 관련해서, 당시 ‘아지캉’ 게시판에 여러가지 의견이 올라왔습니다. 물론, 반대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하여, 우리도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으므로, 팬 여러분이 제기해 주신 의견을 게시판이나 이메일로 집약해 가며, ‘리스너들한테 온 반대 의견이 많이 있다’ 라는 메시지를 스태프에게도 전하고, 무엇보다도 구조와 기능이 잘 밝혀지지 않은 소니 독자 규격인 ‘레이블 게이트’라는 방식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해 줄 것도 요구했습니다. ‘설명회? 웃기고 앉았네’ 라는 의견도 있습니다만, 신생 아티스트로서 이러한 자리를 마련한 것은 ‘아지캉’뿐이었습니다. 억측으로만 이 문제를 판단하자는 게 아니고, 어떠한 의도로 이런 장치가 만들어진 것인가, 어떤 기술인가, 레이블 측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취지도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CCCD 도입 문제에 대한 센스가 부족했는지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정도의 끈질긴 체력이나 생각할 힘이 밴드 측에도 있었더라면, 조금 더 스마트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당시, 이러한 일기를 썼습니다. 서두에 ‘그리하야’ 라는 표현이 참 맹랑하지요.
그리하야, 이래저래 생각해 보았다. 주름도 얼마 안 잡힌 골통을 써서 생각해 보았다 이 말이야.
우선 결론부터 말하면, CCCD는 현 시점에서 도저히 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도입하는 게 타당하다는 사고 방식에 대한 발언도 이해하고 있고, 아티스트의 권리를 보호한다든가를 전제로 하는 것도 훌륭한 생각이지만, 역시, ‘들을 수 없다’든가, 혹은 그렇지 않으면 ‘불편사항이 생긴다’는 하드웨어(시디 플레이어)가 있는 이상, 아무리 생각해도 시기상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음악을 만들고 있는 우리로서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들을 수 있기를 바라거니와, 또한, 들어보기도 전에 리스너에게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주게 되는 환경이 조성되는 건 매우 유감인 겁니다.
우리는 그저 소비 대상이 아닌 진지한 음악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들어주는 사람에게 완전히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우선은 청취자 측의 하드웨어(시디 플레이어)의 상황이 갖춰지고, 또한 음질의 더 나은 기술 혁신을 행한 뒤에 도입하지 않으면, 아티스트에게 있어서도 리스너에게 있어서도 참으로 행복한 상황을 만드는 시스템(기술)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제 현재 생각입니다.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만, 구태여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 일기에서는 밝힐 수 없습니다. 일개 아티스트로서, 대체 무엇이 중요한가를 생각해 지금껏 발언해 보았습니다. 역시, 들어주는 사람에게 온전히 가닿기를 바라는 거예요, 정말로.
그 밖의 여러 복잡한 문제라든지 하는 건, 앞으로 일기에 조금씩 써나가겠습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잘난 척하는 글만 써댔습니다만, 현 실정에서는 우리가 싱글을 낼 때 유감스럽게도 CCCD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굉장히 모순되어 있네요.
이에 대해서는 정말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전하고 싶은 음악이란 게 있다는 겁니다. 음원을 전국 방방곡곡에도 전하고 싶어 메이저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된 이상 CD 안 내겠습니다’ 라는 결론에는 도저히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게 마음 아픕니다.
미안합니다.
밴드로서도 앞으로, CCCD에 대한 이런저런 상담을 스태프와 가질 것이며, 어떻게 좀 해 보세요... 하는 시도도 해보고자 합니다. 참으로 무력하고 한심스럽지만, 아티스트로서도 리스너로서도 행복한 결과가 되는 길을 우리들은 열심히 가 보고자 합니다.
긴 문장 미안합니다.
읽어 줘서 고맙습니다.
(원문 그대로)
정확히 말하자면, 데뷔 싱글 발매 시점에서 CCCD 배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싫다’고 현장에서 의사표시했습니다. 그럼 현장 스태프들은 어떠했느냐. 그들은 직장인이므로, 상당히 곤란한 입장이면서도, 우리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주었습니다. 아티스트 vs 음반사 같은 이항 대립적인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도, 여기에 써두고자 하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SME는 ‘저작권 보호와 관련, 음악 유저 다수의 의식이 높아졌으며, 일시적인 혼란기를 벗어났다’ ‘음악 유저가 요청하는 음악 패키지로써의 마땅한 모습에 대한 진중한 의논을 거듭해, 그 결과로써, 이번 신보 발매부터는 레이블 게이트 CD 사양 적용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여 CCCD의 생산을 종료했습니다. 이는, 리스너들의 요구와 함께, SME 내부에서도 같은 생각을 가진 스태프들이 있어서, 각자의 현장에서 조금씩 의견을 모아나가면서, 어찌저찌 리스너와 레이블 사이의 알력을 야기시키는 기술이 철회되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말 몇 밀리미터만큼은, ‘아지캉’ 입장에서 계속적으로 의견을 전달한 것이 보탬이 되지 않았겠는가 하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지캉’이 CCCD로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말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당시, 정말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고, 무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가까스레 일구어 낸 데뷔작과 앨범을 내팽개치고서, 레이블을 나와버린다는 판단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음악만을 해도 되는 환경에 겨우 이르러서, 희망으로 가득찼던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더더욱 분개했습니다.
앨범에 관해서는, 세컨드 앨범 발매 때는 어떻게 할까, 레이블을 그만 둬야 되겠다, 와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만(계약된 앨범이 몇 장이나 남아있었으므로, 그건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에 대해서는 몰랐기는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우연이 겹쳐져서, ‘아지캉’의 앨범은 한 장도 CCCD로 발매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는 정말로, 시기가 잘 맞았던 덕도 있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어 준 리스너나, 각종 장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반대의 뜻을 지속적으로 소리 높여 준 음악가들에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중에, 우리들은 항상, 이를테면 유튜브 채널 개설이라든가, 아이튠즈 스토어 입점 조건이라든가 하는, 이런저런 상황에서 레이블 측에 의견을 던져왔습니다. SME같은 큰 회사와 하다 보면, 생각보다 일의 진척 속도가 오르지 않아 초조한 것입니다만, 우리들과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측 스태프나 소속 음악가들은 분명히 존재해서, 늦더라도 조금씩, 현안은 해결되고 있다고 나는 느끼고 있습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일입니다. 모두가 정말 하고 싶지 않아하는, 정치적인 것이요. 똑바로 마주해놓고 부-부- 라고 말해도 잘 안 되는 일이 많은 가운데, 끈질기게, 이런저런 장소에서 교섭한다든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든다든지 해서, 잘 풀리게 되는 일도 있지요. ‘음반 회사 FxxK!!’ 으로는 뭐가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 잘 엮이게 되고 마는 일도 있습니다.
당시의 일기에 분노를 흩뿌려놓지 않았던 것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세상이 자네들에게 적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야’ 하고 주위의 스태프가 타일러 주기도 했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진중하게 자료를 읽어본다든지, 알아본다든지, 실제로 만들어진 싱글 음반의 소리도 들어본다든지 하면서, 이래저래 고민하면서 당시에는 해나갔던 것입니다. ‘배신하다니!’ 라는 말이 나오기도 해서, 상처도 받았습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적어도 큔의 스태프들은 음악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흥분해서, 지리멸렬하게 자신의 의견을 꺼냈습니다만, 그러한 의견을 항상 청취해주며 진행시켜주거니와, 지금도 확실히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당연하지만, 맞서 싸울 적이 아니니까요.
다만, 당시, 우리들의 싱글에 실망했던 사람들에게는, 몇 번이고 사과하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라고.
이렇게 해서, 차분하게 바꿔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뜻밖에도 많지 않겠습니까. 사회란 것도 그렇겠지요. CCCD만 놓고 보더라도, 당시 뮤지션과 리스너에게 투표권이 있었다면 압도적 다수로 부결되었을 것입니다(불매라는 NO!!를 불사했던 분도 있지요).
투표할 수 있다는 것,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음악 업계에서 배운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생각할 때에도 도움이 됩니다. 많은 현안은 참을성 있게, 끈질기게, 교섭해나가며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발언력이 없다, 결정권이 없다, 하는 상황이 되어 허둥대지 않도록(CCCD 문제는 그랬습니다), 주의 깊게 여러가지 것들을 생각하며, 앞으로도 나아가고자 합니다.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을 때는, 물론 큰 소리로 주장하고 싶습니다, 너무 늦어지기 전에.
이십 대 후반의 자기 자신이 배운 것은,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덧붙여서, 이 포스트는 누군가를 디스하려고 올린 건 아닙니다. 당시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담아, 썼습니다.
출처: https://gotch.info/post/146921620687/cccd'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 La miseria y el esplendo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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