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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기도[아이키도]란 - 우치다 타츠루 (개풍관凱風館 사범)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0. 4. 2. 13:02
【합기도란】
합기도란 시조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 1883-1969) 선생이 체계화한 근대 무도입니다.
우에시바 선생은 젊었을 때부터 유도, 검도, 창술같은 고대 무도를 수행해 온 한편, 다케다 소가쿠(竹田惣角) 선생에게 다이토(大東)류 유도를 배웠습니다. 이 고대 무도의 기법이 합기도의 기술적인 체계 골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우에시바 선생은 오모토(大本)교의 데구치 오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 1871-1948) 사범에게 사사해, 이 종교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아 종래의 무술과는 다른 ‘사랑과 화합의 무도’를 표방하는 새로운 무도의 체계를 쌓아나간 것입니다.
저희 합기도 개풍관(凱風館)은 이러한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으로부터 1940년대 중반에 사사해 친히 우에시바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타다 히로시 선생(多田宏, 1929-, 재단법인 아이키카이合気会 사범, 이탈리아 아이키카이 최고사범, 9단)이 주재하는 합기도 타다 주쿠[合気道多田塾] 계열 도장의 하나입니다.
타다 선생은 합기도를 시작함과 동시에 나카무라 덴푸(中村天風, 1876-1968) 선생이 주재하는 덴푸카이[天風会]에도 입회해 덴푸 선생으로부터 심신류 일법[心身統一法]의 철학과 기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합기도 타다 주쿠가 수행하는 합기도는,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의 합기도와 나카무라 덴푸 선생의 심신류일법 모두의 사상과 기법이 흐르고 있습니다.
합기도에 시합은 없습니다.
수행의 과정에 쓸데 없이 ‘강약 승패를 논하지 않는다’는 게 합기도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이런 점에서, 합기도는 승패나 기술의 낫고 못함을 다투는 스포츠로서의 근대 무도와는 다른 길을 걷습니다.
합기도는 눈 앞의 적을 무찔러야 한다는 상대적 승리가 아닌, ‘적을 두지 않고,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한 무도적인 신체 운용의 이론과 기술에 숙달하는 것을 수행의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무적’이란 ‘온갖 적을 쓰러트린다’라는 의미가 아닌, ‘적’이라는 개념 그 자체를 바로잡음으로써, ‘적’이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경감 내지는 무효화하는 것이라고 저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없이 높은 곤란한 목표여서, 이를 위해 깊은 내면의 힘 그리고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에서의 적절한 행동법에 대한 옳은 지견이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이긴다’ 라든가 ‘누구보다 뛰어남’이라는 상대적인 만족 가운데 멈춰 서 있는 것은 수행에 있어서 방해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시합을 하지 않고, 또한 다른 이의 기술에 대한 비판을 금함은 그 이유 때문입니다.
유럽에서는 합기도를 거듭 ‘동적인 선禪’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합기도가 격렬한 움직임을 호흡으로 가다듬고, 몸을 움직이며 일종의 명상(트랜스)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중요한 훈련방법으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합기도의 수련이란 신체적인 트레이닝이라기보다는 어떤 점에서 종교적인 수행에 가깝다고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합기도의 체술 체계는 ‘가타[形]’ 훈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술을 거는 이와 받는 이가 미리 결정되어 있어, 공수를 교대해 나가며 기술과 신체를 단련해 나갑니다.
가타 훈련을 모의적인 시합, 혹은 움직임이 정해진 난투 같은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가타 훈련을 오해한 것입니다. 가타 훈련의 목적은 이상적이면서도 본연적인 신체 운용 법칙을 발견하는 데 있습니다.
저희가 ‘자연적인 신체운용’이라고 믿는 몸짓의 과반수는 아마 (마치 언어와도 같이) 역사적이고 지역적으로 한정되어 있는 ‘민족지적 기습奇習 ’과도 같은 것입니다. ‘자연스럽게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이 거듭 어떤 종류의 문화적인 ‘신체형身体型 ’을 고집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가타 훈련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이러한 인습적인 신체 운용을 의식화, 주제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생물학적인, 혹은 유적 존재[類的存在 ; Gattungswesen]로서 자연적인 신체운용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 어떤 움직임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기도에서 하는 훈련은 근육의 힘이나 동작의 속도를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인습적, 기습적奇習的인 신체운용을 아무리 양적으로 가속증량해도, 이것은 자전거에 고배기량의 엔진을 얹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훈련은 긴 시점에서 보면 그 내적인 속성을 상처입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자전거 뿐만 아니라 다른 원리로 움직이는 탈것에 또한 바꿔 탈 수 있도록 신체운용의 스킴[scheme] 자체를 바꿔 쓰는 것입니다. ‘신체의 운영체제[OS] 버전 업데이트’라는 말로 바꿀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합기도는 지극히 ‘연구적’입니다.
합기도 도장은 ‘훈련장’이라기보다는 ‘연구실’, ‘실험실’에 가깝습니다. 여러 기법이나 이론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이것을 ‘실험’해서, 효과나 합리성을 ‘검증’해, ‘반증사례’가 나온다면, 달리 포괄적인 ‘가설’을 세운다… 라는 자연과학에서의 학술 프로세스와 어느정도 비슷한 것을 도장이란 장소에서 행하고 있습니다. 훈련 그 자체는 모두 동일하게 하고 있습니다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인門人이 행하는 ‘실험’은 제각기 다릅니다.
타다 선생께서는 ‘도장은 대기실이요, 일상생활은 무대라’고 곧잘 말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도장은 가설의 실험장이요, 이 가설의 범용성을 실제 장소에서 따지는 것은 도장을 벗어나서이다’ 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도장에서는 온갖 실패가 허용됩니다. 실생활에서 실패하면 크게 낭패를 봅니다만, 도장에서 이런 일은 없습니다.
도장에서는 진지하게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는 사람이, 도장을 한 걸음 떼면 긴장감을 잃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만, 이런 사람은 분명 도장의 의미를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장은 유쾌한 장소입니다. 가지각색인 ‘실험’이 허락되는 특권적인 장소입니다(합기도 기술을 일상생활에서 시도해 보았다가는 경찰이나 구급차가 옵니다). 그러니만큼, 도장은(기능적인 실험실이 그런 것처럼) 청결하고 질서 있는 공간이 되어야만 합니다.
합기도에 대해 쓰자니 참으로 길어졌습니다만, 슬슬 장광설을 마치고 저희 합기도 타다 주쿠[合気道多田塾]에 대해 써 보겠습니다.
【합기도 타다 주쿠[合気道多田塾]의 훈련 방침】
합기도는 우에시바 모리헤이 선생으로부터 확립된 근대무도입니다. 아이키[合気]란 ‘마음의 집중’, ‘마음의 조화’ ‘기의 감응’, ‘인간의 생명과 우주생명의 일치’, ‘신인명합神人冥合’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기는, 산스크리트어의 Prana와 같은 ‘절대적 에너지’라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합기도의 기술은 고대 무술의 정수인 검술, 창술의 법칙을 맨손으로 나타내는 것으로써 이를 숙련한다면, 상대의 신체를 마치 자신의 검이나 창을 쓰는 것처럼 다루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처럼 상대와 대립해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상대와 대치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기술이 우러나오는 훈련법이 필요합니다.
그 배경에는 긴 역사의 동양철학과 그 실천행법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방법이야말로 선조들이 면면이 이어 가장 중요시해온 전통적 훈련법입니다.
합기도 타다 주쿠는 합기도를 ‘현대에 약동하는 무도로서, 대치하는 마음을 뛰어넘어, 실천적 동양철학의 도’로 자리매김하여 이러한 전통적 훈련법을 현대적으로 행하는 것을 훈련의 주안점으로 삼아 ‘기의 연마’에 밤낮 매진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gaifukan.jp/aikido/article/%E5%90%88%E6%B0%97%E9%81%93%E3%81%A8%E3%81%AF
http://gaifukan.jp/aikido/article/%E5%90%88%E6%B0%97%E9%81%93%E5%A4%9A%E7%94%B0%E5%A1%BE%E3%81%AE%E7%A8%BD%E5%8F%A4%E6%96%B9%E9%87%9D'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 La miseria y el esplendo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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