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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래 희망이 유튜버인 친구들에게 (요로 다케시)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1. 6. 15. 13:59

    학교에도 못 가고, 친구들과 만날 수도 없이 혼자서 방 안에 갇혀 외로울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란 게 친구나 학교밖에 없을까요.

     

    세상은 보는 방식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세상’과 ‘사물을 대하는 세상’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혼자라서 외롭다’는 것은 ‘사람을 대하는 세상’에서의 얘기입니다.

     

    이를테면 ‘장래 희망은 유튜버’라는 친구가 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겠습니다만, 이는 친구들이 아마 ‘사람을 대하는 세상’에서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 사람들과 어떻게 사귈까 하는 흥미와 관심으로만 세상을 바라본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나는 어렸을 적에 곤충을 좋아했습니다. ‘사물을 대하는 세상’입니다. 분명 여러분 가운데에도 버섯을 좋아한다든지 낚시를 좋아한다든지, 꽃의 이름을 잘 외울 수 있다든지 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사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에 처한 것은 모두 ‘사람을 대하는 세상’의 주민들입니다. 레스토랑, 오락실, 노래방과 술집. 이러한 “사람 상대하는” 서비스가 곤경에 처해있습니다.

     

    한편 ‘사물을 대하는 세상’, 농부 아저씨나 어부 아저씨의 생활은 그렇게까지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만 하더라도 매일 아침부터 곤충을 관찰하며 ‘사물을 대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굉장히 평화롭습니다. 야산에 벌레를 잡으러 다니는데 아무도 마주치는 일이 없습니다. 시골의 심심산중이라 바깥에 마구 돌아다녀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 코로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줬음 합니다. 한 가지 종류의 세상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이제까지 세계는 글로벌리즘의 필요성을 소리 높여 주창했습니다. 일본 또한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유행은, 글로벌화에 의한 사람의 이동 또한 원인입니다. 이제까지 좋은 일로 여겨졌던 글로벌리즘이 축소되는 대신, 내셔널리즘이 대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우리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생각’하라고 해도 별 수 없습니다. 실제로 내가 제자로 두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아도 과보호 내지는 지나치게 간섭하는 부모님에게 길들여진 탓인지, 자기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갖고있는 이가 적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성숙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힘써 생각하지 않는 성인을, 성숙했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 힘을 갈고 닦기 위해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밖에 나가는 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바깥에 나가면 안 된다? 그런 건 없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하면 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 밀폐 밀집 밀접하지 않은 장소는 어디일까. 모자는, 수통은, 갈아입을 옷은... 식으로 떠올리며 준비하면 됩니다. 그것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왜 밖에 나가면 안 되나’ 하며 묻고 따지는 것도, ‘생각’하는 일이 될 겁니다.

     

    생각하면서 바깥에 나가면 우선 반응이 올 겁니다. 애초에 우리들은 우리의 ‘의식’이라는 것을 과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식이 몸을 움직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경우 의식은 본래, 바깥 세상에 대처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몸은 자연의 일부이지요.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날 때 말입니다. 자신의 의식이 우리를 깨우나요? 그게 아니라, 몸을 일으켰기 때문에 의식이 되돌아오는 겁니다. 눈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의식하며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몸이라는 자연을 따르며 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은, 자기 몸을 의식적으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부 컨트롤할 수 있다고 뻗대다 보니 지구온난화나 환경오염이 일어나는 겁니다. 요번 코로나는 인간이 자연을 컨트롤할 수 없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기도 합니다. 생각대로 안 되는 일이 생겼을 때, 인간은 ‘노력, 인내辛抱, 투지根性’의 방법을 배웁니다.

     

    만약 우리들이 그런 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코로나는 그저 재난이 됩니다. 엉뚱한 말이지만 나는, 다들 ‘코로나가 일어나서 다행이다’  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주간지 <女性セブン> 202065일호 게재문)

     

     

    저자 소개

    養老孟司(1937~). 해부학자. 사회현상이나 인간의 심리를 뇌과학, 해부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해설하는 것으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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