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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럴 말할 자격이 있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La miseria y el esplendor 2021. 4. 20. 18:55
신자유주의와 함께 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언설 형식을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어떤 자가 말할 권리를 갖고 있는가 언설'(rights-scolding) 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의 우익 버전은 사회 복지의 수혜자를 '무임승차자' 로 매도하는 것입니다. 권리를 주장하려면 먼저 똑바로 살아라, 이겁니다.
좌익 버전도 있습니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억압받는 인간' 앞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소리높여 주장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속 편히 살고 있는 부르주아 주제에 '인권' 을 도외시하다니 참으로 부끄럽지도 않는가, 입니다.
'국정에 불만이 있으면 알아서 국회의원이 되라' 가 우익판. '우리나라의 인권탄압은 서방의 노예제나 식민지배가 자행한 인권억압에 비하면 오십보 백보' 라며 소련이 애용한 Whataboutism 이 좌익판.
이렇게 보면 현대의 비평적 어법이란 거의 '이런 것' 뿐 이군요. 다른 사람을 입 다물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말에는, 말이 말로서 존재하는 보람이 없습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불쉿 잡> 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어떤 자가 말할 권리가 있는가' 언설은, 사람을 입 다물게 만들고, 굴욕감을 안겨주고, 자신에게는 가치가 없다고 만들게 하는 방법입니다만, 이것은 '전형적으로 미국적인 정치적 언설의 양식' 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설령 미국이 발상지라고 해도, 이런 '편의주의적 어법' 은 거의 일순간 전 세계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건데, '오늘 하루만큼은 <네가 그럴 말할 자격이 있어?> 언설을 말하지 않는 날' 을 만들어보지 않겠어요? 그날에는 하루에 한 마디도 못 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https://mobile.twitter.com/levinassien/status/1301072184467550208
https://mobile.twitter.com/levinassien/status/1301075308020248576'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 La miseria y el esplendor'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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