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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량, 농업, 그리고 자본주의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4. 6. 22:23

    이번에 새로 <르포・식량 붕괴>라는 책을 낸 츠츠미 미카 씨와 얼마 전 이야기를 나눴다. 이 책은 식량과 농업을 다루는 현장이 비즈니스, 테크놀로지, 국제 정치 분야의 전문 용어로 가득차게 된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 무시무시한 책이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 애그리비지니스 등은 이 분야에 이미 깊고 넓게 진입해 있다. 빌 게이츠가 이제까지 사들인 농업 용지 면적이 홍콩의 전체 면적과 필적한다는 말을 들으면, 농업이 자본주의의 입장에서는 ‘넥스트 블루 오션’이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허나, 식량과 농업이 목숨에 관련되어 있는 중대사인 이상, 식량과 농업은 결코 시장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

     

    식문화의 기본은 기아(飢餓)의 회피이다. 그래서, 인류는 ‘주식(主食)을 엇갈려 두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쌀, 밀, 감자, 콩, 옥수수 등등으로 말이다. 환경에 의해 강요된 선택임과 동시에, 그것은 안전보장이기도 했다. 주식이 똑같으면 욕망은 똑같은 것에 집중된다. 그러면 흉년 때 쟁탈전이 시작된다. 주식이 집단마다 다르다면, 일단 희소성에 기인한 싸움은 억제될 수 있다. 병충해 등으로 어떤 주식 작물이 멸종해도, 그것과는 다른 작물을 주식으로 하는 집단은 살아남을 수 있으므로, 인류 전체의 번성이라는 입장에서는 리스크 분산(hedge)이 되는 셈이다. 

     

    많은 집단에서는 주식으로 삼는 곡물 위에 발효된 조미료를 얹는다. 그것은 종종 다른 집단 사람에게는 ‘썩은 냄새’라고밖에는 여겨지지 않는 악취를 풍긴다. 사실 타인으로 하여금 ‘그런 부패한 것은 먹을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게 식량의 확보를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식문화는 ‘불가식물(不可食物)을 가식화(可食化)’하려는 노력의 결정체이다. 굽고, 끓이고, 말리고, 찌고, 쪼이고, 훈증하는 등... 무수한 조리법을 시도해보며, 인류는 손이 닿는 데까지 자연물의 가식화(可食化)를 시도했다. 그 발명의 재주가 인류를 지금껏 번식하게 해준 것이다.

     

    허나, 식량과 식문화를 비즈니스의 프레임으로 생각할 때, 모든 사람이 동일한 레시피로 조리된, 동일한 음식을 지속적으로 먹을 때야말로 제조 비용은 최소화되고, 기업 이익은 최대화된다. 따라서 기업에 식량, 식문화 그리고 농업을 위탁하는 경우, 기업은 반드시 지구상의 80억 명의 식문화를 평준화하고자 한다. 단일 작물을 대규모 재배하고, 비슷한 음식을 인류적인 규모로 소비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마 불가식물(不可食物)의 가식화(可食化) 작업은, 이제껏 인류가 행해왔던 그런 조리법 연구보다도, 차라리 유전자 변형으로 달성하려 들 것이다.

     

    이는 모두, 인류의 기아(飢餓) 대비 능력이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허나, 식량과 농업을 비즈니스의 어법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거나, 입을 다문다. 그것이 가공할 만하다는 이야기를 츠츠미 씨와 했다. (AERA 3월 8일)

     

     

    (2023-04-01 08:01)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옮긴이의 이러쿵저러쿵]

     

    1. 본문의 일부 어휘를 조금 쉬운 단어로 옮겨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왠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퍼뜩 들었습니다.

     

    2. 일본어의 つ의 한국어 규범 표기는 '쓰'이지만, 관용적으로 표기하기로 했습니다.

     

    3. 저자 츠츠미 미카 프로필

     

    "국제 저널리스트. (...)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정치, 경제, 의료, 교육, 농업정책, 에너지, 공공정책 등의 분야에서, 팩트와 현장 취재에 기반한 폭넓은 탐사 보도 및 각종 언론에서의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번역서로 <르포 빈곤대국 아메리카>, <아메리카 약자혁명> 등이 있습니다.

     

    4. '식문화와 커먼 무너진 세상을 재건하기 위하여' 대담 이벤트는 <원숭이화하는 세계> 문고판 출간 기념을 겸하여 2023년 3월 2일 마루젠준쿠도서점 우메다점에서 개최되었습니다.

     

    5. '우루과이 라운드' 논란 기억하고 계십니까...? 요즘 양곡법 개정 문제로 한국 의회가 시끄러운데요, 제 입장은 ‘잘 모르겠다’ 입니다.

     

    6. 생물학적 견지에서의 다양성 및 니치의 의의와 관련, 우치다 선생님의 예전 옥고(玉稿)도 참고 부탁드립니다. (https://ogdb.tistory.com/193)

     

    "그때, 선박이라는 것은 대단히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 감염확대를 막기 위한 효과적인 예방책은 ‘틈새(니치) 벌리기’인 것입니다. 동일 환경 내에 있는 생물이 서식지에 거리를 두고, 식성을 달리 하며, 행동 패턴에 차이를 둬서 리스크를 분산합니다. 군대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군대란 특정 협소 틈새 안에 대량의 사람들을 모아둬서 성립한 조직입니다."

     

    7. 공부, 한국인이 으레 떠올리는 그 공부를 일본어에서는 お勉(오벤쿄)라고 하는 것 같은데요,

    본문에는 工夫라는 단어가 쓰였고, 이 工夫는, 중국어로 '품을 들이다手間をかける' '진심으로丁寧'라는 의미라고 하네요(산세이도 사전).

     

    8. 일본어로 食이라고 딱 한 글자로만 표현하면 물질적 의미와 정신적 의미를 둘 다 쓰메코미(詰めみ)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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