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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2022년 10대 뉴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3. 1. 29. 19:49
매년 항례, 연말에 ‘10대 뉴스’를 써서 남겨두고 있다. 60세가 넘다 보니 점점 어느 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가 불분명해진 탓에, 그 해에 있었던 일을 나중에 떠올리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이다. 2022년은 어떤 일이 있었을까.
(1) 코로나 사태
2020년 1월부터 총 3년이 다 되어가는 팬데믹 탓에, 2022년도 아이키도 가이후칸의 수련은 몇 번이나 쉬게 되었다. 1월 2월은 감염 확대 때문에 전 기간 휴관. 5월은 필자가 코로나에 걸려 휴관. 11월에도 감염자가 나와 수련이 중지되었다. 가을부터는 슬슬 정상 가동하려고 했지만, 연말에 또 감염자가 증가하여 연말의 제 행사가 몇 개나 중지되었다. 익숙해졌다고 하면 익숙해졌다. 수련 가능할 때는 수련한다. 하지 못할 때는 포기하고, 각자가 다른 수련법을 궁구한다. 그러한 선선한 기분으로 흘려보내기로 했다.
(2) 무릎을 다쳤다
원래 오른쪽 무릎은 미야케 야스미치 선생의 ‘신의 손’으로 치료받기 전에는, 상당히 악화되었었다. 이케가미 로쿠로 선생의 소개로 미야케 선생에게 치료를 받아 쾌유해서, 이후 15년동안 무사했다. 그러던 것이 2019년에 큰 감기가 들어서, 컨디션이 크게 무너졌을 때 옛날에 다쳤던 무릎도 아프게 되었다. 그 뒤로도 잘 다스리며 사용해 왔지만, 2022년 1월 2일에 수련을 쉬게 되어 집에서 가만히 아침부터 밤까지 저술 작업을 하다 보니, 근육이 굳어져서 통증이 왔다. 연령에 따른 반월판과 연골의 열화라는 진단이 나와서, ‘기적의 회복’은 기대할 수도 없다. 하지만, 미야케 마사키 선생의 삼축 정법(三軸正法) 치료와 신시로 선생의 투약에 의한 통증 완화 요법으로, 수련을 계속하고 있다.
(3) 미야케 선생이 돌아가셨다
위에서 언급한 미야케 선생이 1월 21일에 돌아가셨다. 주치의로서 항상 진료를 받아온 미야케 선생이 세상을 떠나게 된 바, 매주 선생을 통해 신체를 이완시키며 즐거운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잃게 된 상실감은 필설로 다하지 못한다. 다행히도 장남인 마사키 군이 미노오 시에서 ‘미야케 접골원’을 개업했으므로, 거기로 통원하기로 했다. 마사키 군은 아버지와 목소리가 똑같고, 신체를 접촉할 때의 손의 느낌도 똑 닮은 고로 눈을 감고서 시술을 받자면 마사키 군을 통해 미야케 선생에게도 치료를 받는 것 같은 진기한 느낌이 든다.
(4) 장인이 돌아가셨다
미야케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날, 장인이 돌아가셨다. 그래서 한 주 동안 밤샘과 장례식이 4일 연속이었던 것이다. 장인의 장례식에는 샤쿠 뎃슈 선생에게 법요(法要)를 부탁드렸다. 쾌히 받아주셔서 추운 가운데에도 정성이 담긴 법사(法事)와 마음에 스며드는 법화(法話)를 해 주셨다. 덕이 높은 승려가 공양을 해주신 것이 정말로 유족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도 몸에 스며들었다.
(5) 오다지마 다카시 씨가 세상을 떠났다
10대 뉴스 가운데 세 가지가 사람의 사거이다. 6월 24일에 오다지마 다카시 씨가 세상을 떠났다. 이제까지 반복해서 이곳저곳 써왔지만, 오다지마 다카시 씨는 80년대부터 필자의 장년 ‘아이돌’이었고, 한편으로는 <평화 헌법 9조, 어떻게 할까요> 의 공저자를 받아들여주신 것을 계기로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런저런 기회로 히라카와 가쓰미 군과 함께 어울렸다. 히라카와 군과 셋이서 얘기를 하고, 때로는 두 명이서 대담을 하고, 오다지마 다카시 씨가 MC를 하고 있는 TV 방송에도 나왔다.
무엇보다 하코네 온천에서 열리는 히라카와 군과의 ‘온천 마작’의 개근 멤버였다. 일요일 저녁에 모여서 마작을 치고, 월요일도 아침부터 마작을 친다. 오다지마 씨는 월요일 오후에 라디오 ‘타마무스비’에 생방송 출연하므로, 한 번 빠지고 도쿄에 가서, 방송이 끝나면 또 하코네로 돌아와서 테이블에 앉았다. 엄격하고 자비 없는 플레이어이기는 했지만, 그 이상으로 블랙 유머를 간단 없이 날려주어서, 우리는 배를 잡고 웃어재꼈다. 입퇴원을 반복했을 때도, 컨디션이 돌아올 때면 반드시 와주었다. 그 지복의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슬프다.
오다지마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6월 13일, 세상을 떠나기 11일 전이다. 히라카와 군이 전화로 ‘오다지마 씨, 이번에는 상당히 안좋으신가 봐’ 라고 알려주었다. 더운 날에 둘이서 아카바네에 있는 오다지마 씨 댁을 찾았다. 미카코 씨와 네 명이서 침대에 누워있는 오다지마 씨와 떠들었다. 처음에는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하는 듯했던 오다지마 씨가 ‘이런 때가 되면, 가장 하고 싶은 게 누군가와 바보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죠’ 하고 말했다. 그래, 이렇게 된 바, 히라카와 군과 함께 마음 편하게 떠들었다. 그것은 문학과 언어 얘기였다. 오다지마 씨가 하시모토 오사무의 <혁명적 반바지 주의 선언>이 얼마나 대단한 저작인가 하는 말을 꺼내서, 그때 처음으로 오다지마 씨가 하시모토 씨에게 깊은 경의를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리석게도 필자는 이제까지 오다지마 씨와 하시모토 씨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떠드는 시간은 1시간동안 이어졌다.
그때 이야기는 전부 도나리마치 카페(히라카와 가쓰미 씨가 운영 - 옮긴이)가 내고 있는 회지 <mal”>의 제 3호 ‘오다지마 다카시 추도 호’ 에 채록되어 있다. 오다지마 씨의 이야기가 굉장히 명석해서, 읽는 사람은 이것이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의 말이라고는 믿지 못하리라. 또 한 사람 소중한 이를 잃고 말았다.
오다지마 씨의 추도 기사를 몇 개 썼다. <mal”>에도 조금 긴 글을 썼다. 다음 링크는 어느 매체에서 요청받아 쓴 글이다. http://blog.tatsuru.com/2023/01/01_1823.html
(6) <레비나스의 시간론>을 다 쓰다
<레비나스와 사랑의 현상학> <타자와 사자>에 이어 <레비나스의 시간론>을 다 씀으로써, ‘레비나스 3부작’이라는 필자의 일생의 작업이 완료되었다. 세 작품 모두 연구 논문이 아니라, 구천에 계신 레비나스 선생께 바치는 불초한 제자의 ‘헌화’이다. 묘에 헌화한다는 것은, 그것이 설령 그 근처에서 꺾어온 보잘것없는 야생초라 할지라도, 그 뜻을 비웃는 자는 없다. 필자의 레비나스론은 모두 그런 ‘야생초’같은 것이다. 이 책을 계기로 해서 ‘자, 레비나스를 읽어볼까’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늘어난다면, 필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답받는 것이다.
삼부작 모두 표지는 외우(畏友) 야마모토 코우지가 그려주었다. 단행본 세 책을 나란히 세워두면 ‘야마모토 코우지 작품집’으로서, 그의 10년 이상에 걸친 작풍의 변화를 조망할 수가 있다. 긴 시간에 걸쳐 필자의 작업을 지원해 준 야마모토 코우지 화백에게 이 자리를 빌려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뜻을 표명하고 싶다. 단행본의 ‘후기’를 쓸 무렵에는 6년에 걸친 연재가 끝나서 탈력한지라, 머리가 멍해져서 야마모토 군에 대한 감사를 빼먹었으므로, 다시한번 감사의 뜻을 여기에 써둔다.
(7) <젊은이여 마르크스를 읽자>가 끝났다
이시카와 야스히로 선생과 함께 쓴 교환 편지 <젊은이여 마르크스를 읽자>가 최종권 ‘자본론’을 맞았다. 14년에 걸쳐 계속 써온 시리즈이다. 일본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그들의 옷소매를 붙잡고서 ‘제발 부탁이니까 마르크스를 읽어 주게’ 하고 간청하는 취지의 책이므로, 학술적 엄밀성이라든지 이론적 첨단성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저 ‘입문서’이지만, 다행히도 많은 독자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중국어 번역판이 중국 공산당 중앙 기율 위원회로부터, 공산당 간부 당원 대상 추천 도서로 지정된 점에는 놀랐다.
이 책에서는 이시카와 씨가 ‘탄탄한 마르크스 조술(祖述)과 해설’을 담당하고, 필자가 ‘마르크스의 엄청난 프레이즈에 대해, 그 논리의 질주력이나 수사의 뛰어난 점을 찬(讚)하는’ 분업 체제로 쓰여져 있다. 아마 중국 공산당 당원 가운데에서도 마르크스를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이 늘어났을 것이다(9000만 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그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공산당이 ‘느닷없이 시작하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책을 배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의 ‘일본의 중고등학생용 마르크스 입문서’가 그 니즈에 우연히 맞아떨어진 게 아닌가 한다.
이 책은 한국어 번역으로도 나왔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를 찬미하는 일이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번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정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마르크스의 수용 방식은 세계 도처와 사회마다 제각각이나, ‘비정치적 읽기’ (즉,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대로 ‘마르크스를 읽으면 머리에 <킥>이 들어오기’ 때문에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마르크스를 읽는다는 독해 방식)이 허용되어 있는 것은, 아시아에서는 아마 일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시라이 사토시 씨나 사이토 고헤이 씨 같은 젊고 탁월한 마르크스주의자가 등장했으므로, 우리의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작업은 그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일본의 중고등학생이 이 책을 손에 들게 된다면 기쁘겠다. 14년 간 사귀어 주신 이시카와 선생의 우정과, 집필 속도가 느린 두 사람을 묵묵히 지켜봐 준 가모가와 출판의 마츠카와 노부유키 씨의 아량에도 마음 깊이 감사드리고자 한다.
(8) 토요오카에서 수업을 했다
히라타 오리자 선생이 학장으로 있는 토요오카 시의 예술문화관광 전문직대학의 객원 교수로 임명받았으므로, 여름에 집중 강의를 하러 갔다. 필자의 담당은 언어표현론. 격년으로 강의가 열리는데, 다카하시 하라이치로 씨와 필자가 교대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작년 담당했던 다카하시 씨에게 ‘뭐 가르쳤어? 어떤 학생들이었어?’ 라고 이메일로 물어봤더니 수업의 방식과 함께 ‘대단히 참여율이 좋은 학생들이어서 즐거웠다’는 답장을 받았다. 다카하시 씨가 즐겁게 수업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다. 7월 27일~29일에 오랜만에 젊은 학생들 (8할이 여자) 을 상대로 떠들었으며, 매일 짧은 에세이를 써오게 했다.
고베 여학원대학 졸업생으로, 필자의 재직 중에 종합문화학과 박사과정이 만들어졌을 때 처음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하라 레이나 씨가 다행히도 동료로서, 매번 참여해 주었다. 밤에는 같은 시기에 집중 강의를 와 준 미즈노 카즈오 선생, 히라타 학장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고, 맛있는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들었는데, 참으로 유쾌하고도 충실했던 집중강의였다.
(9) 모리오카에서 강연을 했다
강연은 이곳저곳 연간 30회 정도 하고 있는데, 이번은 특별하다. 모리오카에 살고 있는 오가사와라 야스히토・오가사와라 준코 부부로부터 초빙받았다. 두 사람과는 몇 년 전에 하구로의 호시노 후미히로 선달(先達)의 숙사 다이쇼보에서의 연회에서 만났다. 선달에게 츠루오카에 불려가서 소통하게 된 것은 10년도 더 된 일이다. 따지고 보면 나카자와 신이치 씨가 소속된 메이지 대학 야생 과학 연구소의 킥오프 이벤트에 히라카와 군과 필자가 초청받아, 나카자와 씨와 셋이서 토크를 하는 기획이 있었고, 그 뒤에 연구소 오프닝 파티 자리에서, 호시노 선달과 야마부시(山伏; 산속 정령 신앙의 수도자 - 옮긴이) 카토 카케하루 씨가 말을 걸어온 적이 있었다. 긴 이야기지만, 재밌는 얘기이므로 써둔다.
선달이 ‘우치다 씨는 야마가타 현에 한번 오실 일이 있으실까요’ 하고 묻자, ‘매년 가고 있습니다. 츠루오카에 우치다 가의 선영이 있으니까요’ 라고 대답했고, 그러자 ‘그럼, 다음에 츠루오카에 올 때에는 하구로에 와 주십시오’ 하고 선달에게 권유받아, 그로부터 매년 하구로에 가게 되었다. 선달과 대담을 하고, 쿠로카와 노(能)의 당주도 섞여 대담을 한다든지, 아이키도를 가르친다든지 등 선달의 기획으로 이런저런 것을 했다. 매번 이벤트가 끝나면 다이쇼보에 야마부시들이나, 츠루오카의 젊은 지방 이주자들이 모여 연회를 했다. 그중에 모리오카에서 온 오가사와라 부부가 있던 것이다. 그들은 야마부시도, 야마가타 현민(縣民)도 아닌, 필자의 독자였다.
처음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들과 차분히 대화할 시간도 없었지만, 매년 가게 되니, ‘아, 또 오셨네요’ 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터라, 어느 해에는 오가사와라 군이 뜻을 굳히고 ‘모리오카에서 저희가 독서회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 100번이나 150번을 기념해서 모리오카에 와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는 부탁이 왔다. 독자가 주재하고 있는 그룹에 초대받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처음에는 후쿠오카였는데, 그때의 강연을 기반으로 해서 <타자와 사자(死者)>가 쓰여진 것이었다).
몇 명의 시민만으로 강연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 뜻을 높이 사 11월 19일~20일에 모리오카에 가서 강연을 한 개 하고, 다음날 독서회에 게스트로 참가하게 되었다. 모리오카의 특산물인 맛있는 냉면을 먹고, 맛있는 이탈리아 음식을 먹고, 담론이 만개하여, 대단히 즐거운 여행이었다. 오가사와라 부부의 성의와 열정에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10) 한국을 3년만에 방문하다
11년 전부터 한국으로 강연 여행을 이어오고 있다. 2020년, 21년은 코로나로 출국이 어려워져 원격으로 강연을 하였으나, 올해는 출국 조건이 일부 완화되어 한국으로 강연 여행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10월 말에 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검역 관련으로 준비하는 서류도 몇 개 있고, 그 가운데 K-ETA라는 전자 비자의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이 출발 전날 판명되었다. 짐도 다 싸놓았고, 마지막으로 필요 서류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전자 비자가 인터넷상에서 ‘Not found’로 되어있었다. 좀 더 빠르게 체크했더라면 재신청할 수 있었겠지만, 일에 쫓기다 보니 신청 기한인 24시간을 넘겼다. 박동섭 선생에게 연락해서, 사정을 말하고, 어쨌든 다음날 부산대학에서의 강연은 원격으로 하도록 해놓았다. 애초에 절반은 대면, 절반은 온라인 형식이었으므로, 그냥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연결된다(편리해진 것이다).
하지만 대면 청중 가운데에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온 사람도 있다고 해서, 그런 분에게는 정말로 면목이 없게 되었다. 남은 두 가지 강연은 지방자치체의 초빙이었으므로, 원격이 아닌 ‘일정 조정’을 하게되었다.
11월 30일~12월 2일 이렇게 2박 3일이라는 강행군으로, 서울에서 신문 인터뷰와 기자들과의 간담회, 청주시에서의 강연이 두 건. 이번에도 박동섭 선생이 모두 동행해주었다. 인천공항에서는, 보고 싶었던 또 한 명의 박 선생(처음 개풍관에 찾아와 주었던 두 사람 가운데 한 명)도 마중 나와 주었다. (박솔바로 선생일 것으로 추측된다 - 옮긴이)
우선 문화일보의 박동미 기자와의 롱 인터뷰. 일본어를 잘하는 기자였으므로, 재밌는 작업이었다. 그 다음 중앙지 각 신문사의 기자 7명(그중 1명만이 일본 신문사 남성 기자이고, 나머지 6명은 한국의 여성기자들)과 간담회.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때 일을 주간지 AERA에 썼다.
다음날은 청주시로 이동하여 교육 위원회 주최로 강연. 마지막 날에는 약간 시골의 작은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지방의 인구 감소에 대해 강연을 요청받았으므로 강연했다. 두 강연 모두 청중은 대단히 열심이었고, 끝나고 나서는 속속 개인적인 질문을 받았다. 교원 분들로부터는 <거리의 교육론>이나 <스승은 있다> 책에 사인을 요청받는 케이스가 많았다. 대량의 포스트잇이 붙어있고, 손때로 책장이 새까매진 책을 보면, 열심인 독자를 얻은 서책에 대해 ‘이렇게까지 많이 읽히게 되어 다행이다’ 라는 기분이 든다.
박동섭 선생은 1월에 한국의 독자들을 데리고 와서, 개풍관에 놀러 온다고 한다. 만남이 기대된다.
한일의 시민 레벨에서의 교류는 깊다. 외교 레벨에서의 한일의 대립이 각국 정부가 책략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정치적 공작’이라는 것을 실제 한국 사람들과 얘기해 보면 알 수 있다. 이웃 나라 한국과 일본은 여러 층위에서 연대해야만 한다.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일 연대가 무엇보다도 우선합니다’ 라고 이번 한국 여행에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했다. 많은 청중이 깊이 수긍해주었다. 이 진정성을 필자는 믿는다.
이렇게 10개가 되었다. 2023년에는 어떤 뉴스를 쓰게 될까.
(2023-01-01 09:4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저서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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