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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2017) 김연수 작가 GV취재 2019. 12. 27. 20:48
2017년 8월 12일 16:00-17:00
CGV 압구정 ART3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씨네바캉스” 행사
소설가 김연수와 <매거진 M> 기자와의 좌담회
요약각색본
김연수 작가:
제가 ‘94년 쯤에 등단했는데, 그때는 영화 붐이어서 저에게도 시나리오 작가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헌데 저는 그런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나름대로 당시에 상당히 고민을 했었는데, 그러던 중에 줄리언 반즈를 처음 접하게 된 것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저도 잊고 있다 (영화화를 계기로) 새로운 마음을 갖고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이 국내에 출판될 당시, 제가 역서의 제목을 제안한 적이 있었습니다. “종말의 예감(원제는 The Sense of an Ending – 인용자 주)” 비슷하게요.. 물론 채택되지는 않았습니다만(웃음).
아무래도 이 영화에 관해 논하려면 원작에 대해 먼저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요, 혹시 책을 읽고 오신 분이 있나요? … 여기 계신 분들 중에서는 1/3 정도인 것 같군요.
이 작품은, 사건을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객관화해서 서술하는 것이 구성 상 가장 큰 특징입니다. ‘구글 글라스’를 예로 들어볼까요. 그것을 착용하면, 사용자는 현실에 무언가 덧붙여진 가상을 같이 보게 됩니다.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니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덧씌워진’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자는 의식을 갖고 쓰여진 게 이 작품입니다.
인물 면에서 작품을 탐색해보자면,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과도 유사합니다. 괴팍한 주인공이 시간이 지나면서 주위에 다정하게 바뀐다는 입체적 인물로 등장하는 점에서 말이죠.
이 작품은 구성 면에서 파격적입니다. 아시다시피 1부와 2부로 구분되어 있죠. 다 읽고 나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의 주제는,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줄리언 반즈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역시 역사에 대한 얘기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거대담론이며, 소설가의 일반적인 역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서 묘사된 사랑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남자 주인공 “토니 웹스터”는, 이를테면 매사에 곱씹는 경향이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이었을까...” 라고 하면서요. 이른바 찌질한 남자이지요. 저도 30대 초반까지는 이랬던 것 같습니다(일동 웃음).
*
이제 영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해봅시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원작이 영화화하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각본가는 중압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이런 고충에 대해 원저자는 “내 소설을 마음대로 비틀어보시오!” 라고 말했답니다.
이런 원작가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자전(字典) 편집자라는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현대에 잘 쓰이지 않는 형용사 등을 자주 사용하고는 하는 작가입니다. 번역가에 있어서는 적이나 다름 없죠(웃음).
캐릭터나 배우들에 대해 얘기를 안 나눠볼 수가 없겠네요.
토니(남자주인공) 는 원작에서 상당히 괴팍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영화에서는 순화되어 표현된 감이 있습니다. 이 역을 맡은 배우(짐 브로드벤트)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토니의 ‘페이스리프트’적인 성격을 잘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매사에 시니컬하지만, 마음 연 사람에게만 위트를 보여주며, 때로는 “우리가 사랑이었을까..”를 되뇌이기도 하는 그런 인물상 말이죠.
- <매거진 M> 기자: 등장인물 ‘베로니카’의 배우(프레야 메이버 혹은 샬롯 램플링 중 하나이겠으나 인용상의 불찰로 상세사항은 불명 – 인용자 주) 는 필모그래피 상 “B사감”같은 이미지의 역을 주로 맡았었죠!
김연수 작가: 그렇지요. 그럼 베로니카의 어머니(사라 포드-에밀리 모티머 扮)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이 인물은 상당히 수수께끼의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100분 토론’을 벌여도 모자랄 정도의 입체적 성격의 등장인물입니다.
*
(질의응답 시간)
가. “회상”을 키워드로 반즈와 작가님과의 작품세계의 공통점에 대해
나. 베로니카 모친에게 무슨 일이? 에이드리언은 그때 정말 베로니카에 대해 사라와 상담했을까?
다. 영화에서는 소설과 다르게 스토킹에 가까울 정도로 추적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답변)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상 ‘그림’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적인 장면을 계속 내보내기란 곤란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를 소설에서는 ‘구글 어스’까지 등장시키면서 다루고 있죠.
라. 토니에 대해 영화는 결말에서 과한 온정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렸을 때는 사람을 죽게까지 하고, 노년이 되어서는 베로니카를 괴롭히다시피 하니…)
(답변) 이것 또한 장르적 특성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닫힌 결말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찌질한 게 맞죠.
*
마무리를 짓겠습니다. 아무쪼록 이런 자리가 또 생긴다면, 원작을 다시 읽고 계속 이야기 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원작가가 소설에 숨겨둔 장치나 상징이 무척 많거든요. 작가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제시하고 살풀이하는 작가와 그 대척점에 있는 신비주의 작가입니다. 줄리언 반즈는 후자에 속하겠지요.
마지막으로, 여기에 모이신 2~30대 여러분이 갖고 계신 자신의 기억은, 스스로 회상해보자면 그 내용이 엉성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거기에는 자신이 후에 경험한 것들이 덧붙여지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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