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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있어서의 산업적 메타포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5. 10. 22:36
후쿠시마 미즈호 씨와 온라인으로 대담하면서, ‘교육을 논할 때 사용되는 어휘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기간 산업 분야의 어휘에서 전용(專用)된다’는 말을 했다. 농업이 기간산업이었던 시대에는 교육이 농업 용어로 거론되고, 공업의 시대에는 공업 용어로 거론된다. 그리고 요즘 들어서는 교육이 금융 용어로 거론된다. 물론 무의식중에 행해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교육 제도를 설계하는 인간들은 자신들이 가진 한정된 어휘와 한정된 사고를 국민적으로 강요하는 일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모르고 있다고 본다.
스트리밍을 시청한 박동섭 선생이 이 논건과 관련해 정리된 글을 읽고 싶다고 요청하여, 지금 퇴고 중에 있는 소다 가즈히로 감독과의 대담집에서 해당 부분을 발췌하여 보냈다. 그것을 여기에 기록한다.
애시당초 대학에 도입되었을 적부터, 강의계획서syllabus는 일본적인 교육과는 궁합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서구 사람들에게는 쓸모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교육은 전통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엇이든 도道’로부터 파생되어 온 것이므로, 자신이 받을 교육 과정의 전모를 미리 가시화시키는 일을 애써 삼갔습니다.
‘도道’는, 길잡이(先達; 멘토)가 앞서 걸었기에 그것을 따라갈 따름으로,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차후 얼마만큼이나 걸어야지만 목적지에 닿을까 하는 것조차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교육 방식이야말로 더없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일본인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방식이 일본인의 종교관이나 신체관과도 부합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좋은 일본 고유의 교육법이 있어왔으므로 그걸 활용했다면 좋았으련만, 끝끝내 강의계획서가 도입된 것입니다.
도입 당시 강의계획서란 ‘계약서’와도 같다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이 교과를 이수하여 이러이러한 지식과 기능을 습득하면 이러이러한 <급부>가 있습니다’라고 학생에게 그 교과의 이수에 앞서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사가 강의계획서대로 수업하지 않거나 강의계획서에 명시된 ‘보상’을 부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계약 위반’으로 교사가 사죄나 배상을 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교수법 연구개발(Faculty Development)이나 ‘PDCA 사이클’, ‘학부 졸업생 품질보증 제도’ 등과 같이 ‘교육 공학’적인 용어가 문부성이 작성한 문서에 빈번히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마치 공장에서 공산품을 생산해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교육 과정 전반이 제도 설계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학생을 제품으로 간주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재료를 사용하여, 어떠한 공정을 거쳐, 어떠한 제품이, 언제까지의 납기로, 얼마만큼 만들어지는가 하는 전체 공정이 사전에 명시되어야만 한다는 얘기가 된 셈입니다.
확실히 제품 생산이라면 그것이 타당합니다. 어느 원료와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이 최종 제품의 효용은 무엇이며, 유통기한은 언제까지다… 하는 내용이 명시되지 않은 상품은 시장에서 퇴출당합니다. 허나, 교육의 경우 그 대상은 살아 숨쉬는 인간입니다. 통조림 만들듯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런 방식의 위험성은, 학생들이 수업의 최종 목표를 미리 알아버리면 이제는 그 공정을 어떻게 최대한 편하게 통과할까 하는 생각에 골몰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학습 성과를 ‘상품’, 학습 노력을 ‘화폐’라고 가정하면, 최소한의 ‘화폐’로 ‘상품’을 입수하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소비자의 의무니까요. 이렇게 학습 성과가 예시된 경우에 학생들은 ‘얼마나 공부 안하고도 학점을 딸까’ 하는 식의 방향으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학생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들에게 ‘생산성을 향상시켜라’, ’가격대 성능비를 따져라’, ‘똑부러진 소비자로 처신하라’고 어른들이 귀 따갑게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공학적 메타포로 교육을 논하게 되면서부터 일본 아이들의 학력이 극적으로 저하한 것도 당연합니다.
교육 현장의 워딩 변화를 초래해왔던 것은 산업 구조의 변천사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근간 산업이었을 당시 인간은 ‘순환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농업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수확량을 반드시 늘려야 한다든가, 생산성을 향상시켜야만 한다는 식이 아니었습니다. 농업에서 ‘Grow or die’ 같은 말은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작년과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다면 ‘갑종’인 거니까요. 매년 똑같이 반복할 수만 있다면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농업이 근간 산업이었던 시절에는 인간도 농작물과 같이 식물적인 시간 속에서 살았습니다.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맞춰 작업 시간 할당이 변하고, 계절의 변화에 맞춰 일의 내용이 바뀝니다.
저는 1950년생입니다만,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의 전체 노동인구 중 50%가 농업 종사자였습니다. 그 이후로 1차 산업 종사자는 급감하게 됩니다만, 그래도 타성이 있었으므로 60년대 중순까지는 ‘생산한다’는 말을 할 때 일본인은 우선 ‘농작물을 기른다’는 식의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 현장에서도 오랫동안 ‘후세를 기르는’ 일은 ‘농작물을 기르는’ 일에 빗대어 이해하였습니다.
그때는 곧잘 ‘가정통신문’이라는 것을 교사가 작성하여 등사기로 찍어 나눠주고, 손으로 쓴 공지문을 교실 벽에 붙여놓고는 했습니다만, 그 ‘가정통신문’이란 것의 제목은 대체로 식물과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움틈’이라든가 ‘새싹’, ‘떡잎’, ‘꿈나무’ 같이 말입니다. 그런 제목 선정은 무의식적인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마치 농작물과도 같이, 씨를 뿌리고, 물을 대며, 비료를 주고, 그런 연후에 하늘에 맡기는 생물이라는 식으로 이해했습니다. 햇님과 대지와 단비의 은혜를 입어 가을이 되면 수확을 거두는 겁니다만, 그때까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농업이란 인간이 그 공정을 관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일조량이 부족하다든가, 가뭄이 든다든가, 태풍이 온다든가, 병충해의 습격을 받는다든가… 하는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소출이 줄어듭니다. 그리하여 가을에 ‘무언가’가 땅 속에서 태어나기만 해도 기쁨을 느끼는 상당히 여유로운 마인드였다고 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도무지 종잡을 데가 없는 아이를 두고서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거듭 ‘대기만성’이라고 일렀습니다. 지금은 통 알 수 없는 아이지만 앞으로는 큰인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한 어법이 선호되었던 것은 아이의 생육 과정을 완전히 제어할 수는 없다는 선선한 허탈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농업이 기간 산업이었던 시대가 종언을 맞이하고, 공장에서 공산품을 제조하는 것이 산업의 중추가 되자 양육과 교육 모두 ‘공장의 메타포’로 논하게 되었습니다. 딱히 교육관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값진 것을 만드는 일’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 농작물이 아닌 자동차나 냉장고를 연상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옛날 학교는 농장이었지만, 어느 시기부터는 학교가 공장이 되었어요.
강의계획서는 그 참된 의미에서 공산품의 규격을 제정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아이들을 통조림이나 건전지 같은 것으로 여길 때, 규격대로 원료를 마련하고 공정을 관리하여, 스펙 시트에 부합하는 제품을 정해진 납기까지 제조하는 일이 가장 중요해집니다. 당연합니다. 그것이 20세기가 끝날 무렵 교육 현장에 ‘어법의 변화’가 일어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2차 산업이 기간산업이었던 시대도 이제 끝나버렸습니다. 산업은 더욱 고도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학교 교육 현장에서 쓰이고 있는 교육 공학적 비유는 이제 ‘시대 착오적’인 것입니다. 공업은 산업 자본주의 시대의 ‘유물’이니까요.
20세기가 저물고 난 뒤 가장 수익성이 좋은 산업 영역은 ‘금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금융 분야의 워딩으로 교육을 논하게 된 것도 당연합니다.
아이들에게 ‘포트폴리오’를 짜게 하는 게 그 명백한 징후입니다. 아이들은 이제 더이상 자동차나 컴퓨터같은 게 아니라, 일종의 ‘금융 상품’으로 자신을 파악하도록 대접받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받을 교육 과정을 컨트롤하고, 노동 시장에서의 자신의 가치를 자기가 형성하게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교육기관에서 어떤 지식이나 기예를 습득하고 어떤 자격이나 면허를 취득하여, 최종적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 어느 정도의 수입을 거둘 것인가, 그것을 될 수 있는 한 빠른 시일 내에 자기결정하고 나서는, 한 눈 팔지 않고 교육 과정을 끝내게 하는 일이 장려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교육 과정에 대해 초등학교 때부터 ‘플로우 차트’를 짜게 하는 한편, 노동력 상품으로서의 자신이 점하고 있는 시장 가치는 ‘포트폴리오’에 기재됩니다. 그러한 마인드를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러한 프레임을 제도설계한 사람은 아마 무의식적으로 그런 짓을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비유에는 ‘인간은 금융 상품과도 같은 것’이라는 그 시대의 집단적인 편견이 농밀하게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산업은 계속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지금 ‘값진 것’을 창출해내고 있는 분야에는 인공지능이나 바이오, 로봇공학, 가상현실 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그러한 산업에서 사용되는 어휘로 교육을 논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수익성 있는 산업’을 모델로 삼아 교육을 일컫는 습관은 끝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도 끝도 없으니까요. 그보다는 수만 년 전부터 극히 최근까지 기간산업이었던 농업적 비유를 다시 한 번 복권시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양한 인간적 활동을 다시 한 번 농업의 비유로 고쳐 말하는 것. 그것 없이는 인간이 생존할 수 없는 귀중한 것을 생산해내는 산업인 농업을 모든 사회 활동의 기초 모델로 삼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보는 데에 있어서 매우 효과적이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2022-03-30 10:0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히라카와 정밀 사람들】
더보기【히라카와 정밀 사람들】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184~186p
“이 책에서 그는 세계화 시대 경영자의 좁은 시야를 논박하고 ‘미래는 장밋빛’ 같은 비즈니스 진화론을 일축하지만 ‘죽어간 일일 노동자의 생활윤리로 돌아가라’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
우리가 만든 회사에는 틀림없이 ‘변두리 공장’ 같은 분위기가 농밀하게 감돌았다. 우리는 ‘정밀도가 높은 염가의 상품’을 척척 제공함으로써 대기업 시스템 말단에 속했지만 생활상의 위안은 매상의 증가와 임금 상승 바깥에서 찾아야 했다.
(…) 그런데 ‘변두리 공장’ 같은 기풍은 회사 규모가 어느 정도 커지고 일정 매상에 이르자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일류 대학을 나와 일류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서 척척 일하고 매상을 올리고 엄격한 인사고과를 하다 보니까 회사는 누구도 ‘환호성’을 지르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 ‘몇 번이나 되풀이한’ 역사적 사실이 보여 주듯이 성공하기 어려운 시도였다.
그가 이 책을 쓰면서 힘들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히라카와 변두리 공장’이라는 시대정신이 국제적인 규모의 비즈니스에서도 범용적으로 실현 가능하기를 지금까지 바라 왔고 앞으로도 바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물론 숙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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