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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관한 인터뷰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2. 5. 13. 22:53

    3월 31일에 어느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 응했다. 그것이 공개되었다. 원본을 올려둔다.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어디쯤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고 보십니까?

     

    상상조차 못하겠네요. 푸틴은 정말로 핵무기를 사용할지도 모르고요. 그렇게 되면 전혀 알 수 없습니다.

     

    — 굉장한 수렁에 빠진 것이군요.

     

    질질 끌게 되면 러시아에게 불리합니다. 이미 러시아의 통치 기구는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제압 작전은 아마 이틀 정도로 끝낼 속전속결 작전이었을 텐데요, 사태는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은 러시아의 정보 수집 능력, 분석력이 상당히 보잘것 없다는 얘기기도 하겠거니와, 아마 병력 그 자체도 전 세계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화되어 있습니다.

     

    어찌 됐든 우크라이나 침공 전에 푸틴에게 플랜 B, 플랜 C 혹은 ‘출구 전략’을 제언한 사람이 주위에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독재자의 주위에 예스맨만 존재하는 것은 통치 기구의 말기적 풍경입니다. 스탈린의 말기도 그랬습니다. 독재자가 장기간에 걸쳐 정권을 잡으면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독재자의 판단 미스를 지적한다든가, 독재자가 놓친 정보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좌천, 숙청되기 때문에 통치 기구는 복원력을 잃습니다.

     

    — 푸틴이 히틀러적 최후를 맞을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히틀러의 경우 베를린이 함락당하자 자살했는데요, 아무리 그래도 모스크바가 군사적으로 함락당하는 사태는 상상할 수 없으므로, ‘히틀러적인 최후’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가능성이라고 한다면 푸틴이 ‘충신’들에게 압력을 받아 사임하게 되는 시나리오겠지요. 이제 푸틴은 왕위에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러시아 지도층 내부에도 상당히 있을 것으로 봅니다. 이대로 우크라이나의 수렁에 빠져들게 되면, 옛날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이 소련 붕괴의 시발점이 된 것처럼, 러시아에게 있어서는 망국적인 사태를 초래할 리스크가 있습니다. 이미 국제 사회로부터 받아야 할 신뢰를 치명적으로 잃어버렸으며,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 경제는 휘청이고 있습니다. 러시아에게 남은 카드는 핵무기와 안보리 거부권 두 개뿐입니다.

     

    스탈린 시대 때는 좀 조잡하긴 해도 소련에게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라는 대의명분이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에 ‘스탈린주의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자국의 국익보다 소련의 국익을 고려하여 국내 여론을 주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푸틴주의자’는 없습니다. 러시아와 이권으로 얽혀 있는 정치 세력은 각국에 존재합니다만, 그런 사람들조차 이기적인 동기로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일 뿐, 러시아의 행동에 세계사적인 대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국내의 언론매체에서 러시아 편을 드는 사람들조차 기껏 ‘러시아는 잘못이 없다. 나토가 분쟁지에 진출한 게 잘못이다. 정당방위다’ 라고 주장할 뿐이지, 러시아가 자국 국익을 뛰어넘어 세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상위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공언하는 사람은 역시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과 관련하여 ‘우크라이나는 나쁘고 러시아는 옳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 지원자가 국제 사회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닙니다. 사상적 지도력이라든가 도덕적인 고결함이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대의명분 없이, 자국 국익만을 위해 전쟁을 벌인 것으로 인해 러시아의 지위는 바닥까지 추락했습니다. 반등할 날개조차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러시아의 지도층 일부가 러시아의 국제적 지위를 사수하기 위해 푸틴의 폭주를 통제하고, 뭐가 됐든 정전(停戰)하여 크게 실추된 러시아의 위신을 회복하려고 하는 일이 일어날 법도 합니다. 문제는 푸틴을 대신할 사람이 있는가의 여부입니다. 푸틴에게 ‘칼을 들이미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목하 푸틴의 심복이겠지요.

     

    — 브루투스 같은 자가 있다는 거군요.

     

    예전부터 공공연히 정적이나 라이벌을 추방, 숙청해 왔으므로, 정권의 ‘넘버 2’ 혹은 ‘넘버 3’로 일컬어지는 심복들이 지금 은밀히 모여 ‘푸틴을 이대로 두면 안되겠는걸’ 하고 모의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 푸틴을 합법적인 절차로 실각시킬 수 있을까요?

     

    모릅니다. 박정희(朴正熙)처럼 암살당할 수도 있고, 칭병할 수도 있습니다. 이 판국에 푸틴을 대신할 인물이 등장해 즉각 정전성명을 내고 크림 반도나 돈바스 탄광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협의해 나가자’ 하는 유화적인 태도로 나온다면 나토는 그 대표자에게 ‘월계관을 씌워주고’, 러시아 내정을 맡길지 모릅니다. 러시아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며, 굴욕적인 조건을 들이민다면 그것이 또다른 기회로 다음 전쟁의 불씨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므로 지금으로써는 푸틴만 퇴진시킨다면 서방은 더이상 러시아를 몰아세우지 않습니다. 경제 제재도 해제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 약속은 해줄 수 있잖습니까. 우크라이나도 영토적인 양보는 할 수 없다지만, ‘대화를 계속한다’ 정도의 모호한 합의 정도는 용인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 모두에게 일단 가장 ‘바람직’한 솔루션이니까요.

     

    — 만약 최악의 시나리오인 핵무기 사용에 이른다면 어떻게 되리라 보십니까?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푸틴이라도 ‘온 인류를 내 죽음의 길동무로 삼을테다’ 할 정도로 미쳐 날뛰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키예프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는 짓은 안 하겠죠.

     

    — 핵을 쓴다면 2차 대전 때의 미국 이후 첫 사용국이 됩니다만.

     

    러시아가 쓰면 나토도 씁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설령 러시아가 살아남는다 해도, 세계적으로 고립되는 한편 국제 사회로부터 격리된 ‘쇄국 상태’에 몰리게 되어, 두 번 다시 국제 사회에서의 명예 있는 지위를 점할 수는 없게 되겠지요.

     

    —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아마 안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푸틴이 핵공격을 명령했을 때 군의 상층부가 그리 간단히 명령에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닉슨 대통령이 정권 말기에 정신적으로 상당한 위기에 몰려있었을 때, 국방장관이 휘하 장군들에게 ‘닉슨이 핵공격을 명령해도 바로 실행하지 말고 우선 나에게 보고할 것’ 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푸틴이 핵공격 명령을 발하게 되면 그것이 ’쿠데타’가 일어날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어느정도 합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군인이라면 여기서 러시아가 선제 핵공격을 감행할 시, 이제 러시아는 끝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푸틴을 끌어내리더라도 ‘러시아를 지켜야만 한다’는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푸틴이 핵공격을 명령했을 때 저항하지 않고 실행한 인간으로서 인류사에 오명을 남기고 싶지는 않겠지요.

     

    그래서 핵공격은 ‘블러핑’으로 구사할 수는 있어도, 정말로 공격 명령을 내린다면 그것이 실각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하는 정도의 리스크는 푸틴도 계산해놓고 있으리라 봅니다. 푸틴을 따르며 공멸할 것인가, 푸틴을 거슬러 러시아를 구할 것인가. 그런 ‘최후통첩’을 부주의하게 군인들에게 따르도록 할 시 자신의 명을 재촉할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푸틴이라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핵공격 명령은 아마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제 희망적 관측입니다.

     

    — 공격을 명해도 부하가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핵전쟁을 개시한다는 건 러시아를 망하게 하겠다는 것이니까요. 아무리 푸틴에게 아첨해 승승장구해왔던 예스맨들조차 ‘보신주의’로 그렇게 해 온 것에 불과할 따름이므로, 자기 자신도 망할 수 있는 선택을 하면서까지 푸틴에게 충성할 의리는 없겠지요.

     

    — 제동을 건다고나 할까, 푸틴이 핵 사용을 지시했을 때 그것이 실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만약 러시아의 지도부가 푸틴의 명령에 고분고분 따라 세계를 핵전쟁에 휘말리게 한다면 그들은 더이상 ‘예스맨’조차 아닌, 사고 정지에 함몰된 자들일 뿐입니다. 그것은 러시아의 통치기구가 뼛속까지 썩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그렇게까지 썩어있다면 이미 나라의 꼴을 갖추지 못한 것이 되겠지요. 그러므로, 통치기구의 요직에는 현재 예스맨 말고도 ‘그럭저럭 지각이 있는 사람’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할지언정 ‘일은 썩 한다’는 이유로 배치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만약 ‘푸틴을 향한 충성심’보다 ‘러시아에 대한 애국심’을 우선한다면, 그들이 흐름을 바꿀 가능성이 있으리라 봅니다.

     

    앞으로 푸틴이 좀 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수는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승리했다’는 프로파간다를 관철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적인 체면은 손상되겠지만 국민만큼은 속일 수 있다는 승산이 있다면 푸틴이 군대를 뺄 가능성은 있습니다.

     

    대일본제국의 말기와 매우 비슷합니다. 졌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으나, 질 때 지더라도 국내적 체면은 세우고 싶었어요. 상황 봐서 미국한테 한 방 먹여주고, 의기양양하게 정전 회담을 이끌어내려고 했던 것이 그만 미드웨이 해전과 원폭 투하로 이어질 때까지 계속 전쟁을 질질 끄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상처를 벌리고 말았습니다. 푸틴의 경우에도 언젠가는 국내용 프로파간다의 약발이 안 듣게 되고, 더는 국민이 ‘승리했다’는 거짓말을 안 믿게 되는 날이 옵니다. 그때까지 국지전에서 ‘체면이 설 만한’ 승리를 거둘 필요가 있어요. 그러한 국지전에서의 승리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전시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 확실히 ‘그만’이라는 말은 안 하지요. 그러면 패배를 자인하고 마는 꼴이니까요. 체면 구기는 일입니다.

     

    지금도 러시아 정부는 국민에게 ‘계속 이기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키예프에서는 철수했지만, 그것은 키예프 부근에서의 군사적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고, 이어서 전략적으로 보다 중요한 동부 지구에 병력을 이동시켰다고 말합니다. 일제 육군이 ‘퇴각’을 ‘방향 변경’으로 바꿔 말한 것과 똑같습니다. 아직은 그런 거짓말을 믿고 있는 러시아 국민들도 많겠습니다만, 뭐가 됐든 ‘이걸로 체면은 살릴 수 있겠군’ 하는 정도의 결과만 나오면, 될 수 있는 한 빨리 정전 협정에 응하려고 하겠지요.

     

    그런 사정은 젤렌스키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러시아에게 ‘체면이 설 만한’ 정도의 ‘선물’을 안겨줄 때 우크라이나가 입을 손실과, 러시아군이 철수함으로써 우크라이나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저울질하며 전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아무리 푸틴이 ‘체면이 설 때까지는 어떻게든 때우겠다’고 다짐을 한다손 쳐도, 러시아군에게는 향후 재래식 병기만 갖고서 버틸 체력이 과연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낮은 사기, 부실한 군장, 해이한 군 기강도 그렇거니와, 취약한 보급 상황 또한 폭로되고 말았으니까요.

     

    소련 붕괴 당시 소련군의 부패상을 묘사한 <로드 오브 워>(2005)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우크라이나 출신 무기 상인을 연기했는데요, 당시 장군들이 무기고에 있는 무기를 무기 상인에게 빼돌리는 에피소드가 상당히 풍자적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전차, 무장 헬기, 지대공 미사일 등을 모두 무기 상인에게 술술 팔아넘기고서 사욕을 채웠어요. 그리하여 구소련 무기가 이후 전 세계의 분쟁지나 테러에 동원되었습니다. 그것과 비슷한 일이 현실에 있었을 줄로 압니다.

     

    말인 즉슨 지금도 러시아는 보급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말들은 나옵니다만, 그건 수송이 지체되어서 그런 것 뿐만이 아니고, 탄약고에 있어야 할 탄약이 없다든가, 격납고에 있어야 할 헬리콥터가 없다든가, 취사장에 있어야 할 군량미가 없다든가 하는 차원에서 실제로 보급 계통이 파탄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시베리아 방면에서 병력을 끌어모은다든지, 시리아로부터 의용군을 모집하고 있습니다만, 그렇게 해야 할 정도로 병력이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 2차 대전 당시 일본처럼, 국가 총동원같은 걸 한다는 말씀입니까?

     

    4월이 되면 징병을 개시한다는 모양입니다만, 몇 주 훈련시킨 정도로 갑자기 우크라이나 전선에 보내는 것은 무리 아닐까요. 현대의 무기체계는 고도화되어 있으므로, 운용 역량이 낮은 부대를 전장에 투입시키는 일은 대놓고 학살당하라고 하는 것과 다름 없으니까요.

     

    — 아무래도 미숙한 병사를 보낼 뿐이니까요.

     

    러시아 병사들의 사망이 늘어나면, 러시아 국내에서도 역시 전쟁 회의론, 반전 감정이 함께 배양됩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의 수렁에 빠지는 일을 푸틴도 피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체면이 설 때까지는 전쟁을 멈추지 않습니다. 푸틴도 그 딜레마에 괴로워하고 있을 것이라 봅니다.

     

    누가 조정자 역할을 받아들일지는 모릅니다. 터키 정도가 중재한다면 푸틴 체면도 약간은 세워주는 방향을 모색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미국은 딱히 중재 역할을 할 나라를 진지하게 물색하려고는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푸틴이 실각한 뒤, 중앙 정부의 하드 파워를 잃게 하고, 국내를 혼란에 빠트리며, 군웅이 할거하는 내전 상태로 만들어, 러시아를 2류 3류국으로 전락시킨다… 는 게 미국 입장에서는 최선의 전개 방향이니까 말입니다. 본심으로 말하자면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계속 전쟁을 해주었으면 하고 내심 바라고 있을 겁니다. 우크라이나라는 ‘줄칼’을 이용해 러시아의 국력을 사각사각 깎아먹으려 하고 있어요. 아마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목숨 따위는 그다지 안중에 두고 있지 않을 겁니다.

     

    — 잔인한 이야기로군요.

     

    물론 미국 국민들 가운데서도 개인적인 심정으로서는 ‘우크라이나가 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겁니다만, 미국 정부는 자국 국익 최우선 주의이므로, 오히려 우크라이나 전쟁이 앞으로 2~3개월 지속된 후 진퇴양난화되어 러시아가 산산조각나기를 기다리고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조기 정전해버리면 조건에 따라서는 푸틴이 ‘승리 선언’을 하고 정권을 유지하게 되니까요.

     

    미국으로서는 푸틴에게 ‘이겼다’는 말을 절대 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러시아 국민의 눈 앞에 선연한 ‘패전’을 못박아두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쟁을 지속시켜 러시아의 인적 소모를 늘려나가, 국제 사회에서의 러시아의 지위가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 앞으로 2~3개월만 있으면 끝날까요?

     

    알 수 없습니다. 푸틴은 딜레마에 빠져 정말로 사면초가에 처해있으니까요. 그래서 핵무기를 통한 인류 멸망이라는 시나리오도 있을 법합니다.

     

    — 인류 멸망이라는 말씀인가요?

     

    모릅니다. 하지만, 핵무기나 생화학 병기를 사용하는 시점에서 푸틴은 패배입니다. 그래서는 러시아군이 보통 무기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국내외에 선전하는 꼴이 되니까요. ‘러시아군은 약체다’라는 명제가 주지의 사실이 되면, 러시아는 앞으로 인근 국가들한테 강압적 외교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속전속결 작전으로 개전 2일만에 키예프를 점령하고, 괴뢰 정권을 세우겠다는 시나리오가 파탄난 시점에서, 푸틴은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가령 우크라이나가 조기 정전을 요청하여 영토 문제를 마무리지어도, 그것은 러시아의 실효 지배를 재차 인정하는 것일 뿐, 러시아가 이 전쟁에서 무엇 하나 실질적으로 얻을 만한 것은 무(無)에 가깝습니다. 그 쌀알 한 톨만한 전리품과 맞바꾼 러시아의 손해가 너무나 큽니다. 인원과 장비의 손실 뿐만이 아니고, 국제 사회에서의 위신도 잃었으며, 경제 제재로 인해 민중의 생활고가 가중되었습니다. SNS도 못 쓰고, 구글도 접속 못하고, 스타벅스와 맥도날드도 없는 문화적 후진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매우 무모한 전쟁을 했다’고 시민들은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는 앞으로 ‘망국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서의 속전속결 작전이 실패한 시점에서, 달리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러시아는 이제까지 천연 자원을 수출하여 외화를 벌어들였습니다만, 유럽 국가들은 향후 러시아와 거래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해외 자본의 유입도 멈췄습니다. 국채 가격은 국가 부도 일보 직전까지 하락했습니다. 한편 우크라이나는 서방 국가들로부터의 든든한 후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중국이 후원해주기는 하겠습니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보다 ‘부자 나라’, 경우에 따라서는 러시아보다 ‘강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러시아에서 극적인 상황이 일어날 법도 한데요.

     

    미국한테도 해당되는 얘기입니다만, 군사적 우위를 과신하여 다른 나라에 무력으로 간섭한 나라는 결과적으로는 국제 사회로부터의 신뢰를 잃고, 천천히 국력이 쇠퇴해가는 것입니다.

     

    — 그런 점에서 전쟁의 종식이 있어야만 하겠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자칭 ‘리얼리스트’들은 군사력이나 재정적 능력 같은 ‘실제적 힘’이 큰 나라가 힘없는 나라를 함부로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틀린 얘기입니다.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는 국제 사회의 윤리적 지지moral support를 획득할 수 있을 만한 ‘대의명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자국 국익 추구’만 가지고 전쟁을 하는 나라는 지원자를 국제사회에서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도리어 약소국이어도 도덕적인 고결성integrity이 있으면, 장기적으로는 ‘실제적 힘’이 강한 나라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2차 대전, 베트남 전쟁, 아프간 전쟁 등을 보며 학습하지 않았습니까. 명분 없는 전쟁을 벌이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 교훈을 러시아의 몰락이라는 사실을 통해 국제 사회는 지금 학습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2-04-05 14:15)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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