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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총선 결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1. 14. 18:09
총선이 끝나고 난 뒤 여러 매체에 선거 결산에 관한 글을 썼다. '쟁점은 무엇인가?' '야당 연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여성 의원은 어째서 소수인가?' '젊은이는 왜 투표를 하지 않는가?' 등의 4가지 시점에서 썼다.
'선거의 쟁점' AERA 11월 4일
선거 전에 몇몇 매체가 '총선의 쟁점은 무엇이었는가?'를 물어왔다. 코로나 대책이 긴급한 쟁점이 되었어야 했을 터인데, 8월 중순을 정점으로 확진자는 급감했다. 어째서 이렇게나 줄었는지 만나는 의사들마다 묻고 다녔는데, 모두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감염이 마무리된 이유를 모르므로 정부의 코로나 대책에 관한 평가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비판을 아직은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코로나 정책은 쟁점이 되지 못한다.
야당은 경제적인 지표를 들며 일본의 국력이 급격히 저하된 것이 과거 9년 간의 아베-스가 정권의 실패에서 연원했다고 논했지만, 여당은 상대해주지 않았다. 여당이 '경제 정책은 성공했다'고 주장하면 논쟁거리가 되겠지만 여당은 입을 다물며 그런 것에는 흥미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므로 쟁점이 되지 못한다.
재정, 외교, 국방도 여야당 공히 자기 할 말만 할 뿐, 그런 얘기를 들어도 문외한에게는 어느 쪽이 맞는 말을 하는 건지 판단이 서기 힘들다. 전문적 지식이 있다고 참칭하는 사람들이 허튼 소리를 하는 것이다. 문외한이 구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또한 쟁점이 되지 못한다.
선택적 부부 별성이 쟁점화되려는 듯하나, 자민당이 그동안 이 정책에 부정적 입장을 취했던 까닭은 사실 핵심 극우 지지층에 영합하기 위한 술책에 불과했으며 속으로는 '내가 알 바냐'라고 생각할 게 뻔하다. 그래서 본격적인 쟁점이 될 리가 없었다.
개표 방송에서 '쟁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자민당의 다카이치 정무조사회장이, 승패를 결정한 것은 공약의 차이가 아닌 '각자의 선거구 사정에 따른 차이다'라고 답했다. 과연 그러했을 것이라고 본다. 얼마나 바깥에 많이 돌아다녔는지의 여부, 즉 지역 모임에 얼굴을 들이민다든가, 민원을 접수한다든가 하는 '지역구 관리'가 결정적이었다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역에 신경을 덜 쓴 거물 정치가들이 고배를 마시게 된 이유도, 오사카에서의 일본유신회가 완승한 이유도 왠지 알 것 같다.
문외한이 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워진 시대에는, 후보자들이 지역 주민들과 나눈 '악수'의 횟수가 당락을 결정한다. 말하자면 단순접촉효과가 투표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하다면 간단한 얘기긴 하지만, 국회의원의 자질을 그런 걸로 판단해도 되는 걸까?
'야당 연합의 개인적 결실' 슈칸킨요비 11월 4일
절개 없음을 비난받을지도 모르겠다만 이번 총선에서 필자는 3개 정당을 응원하게 되었다.
처음 의뢰가 있었던 것은 효고 제7구에 출마한 입헌민주당의 야스다 마리 씨. 예전 참의원 선거 때도 필자는 야스다 씨의 추천인이었다. 필자는 입헌민주당에 에다노 씨가 입당했을 적에 그 뜻을 높게 사 서포터가 되었다. 따라서 지지 정당 명의로 출마한 후보자의 의뢰를 거절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게다가 필자에게 추천인을 의뢰했다는 것은 '우치다 타츠루가 추천한 후보는 절대 찍지 않는다'는 유권자들을 잃을 리스크를 감수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필이면 나한테 추천을 맡겨도 되겠어요?' 하고 수차 여쭤봤는데 빙긋이 웃으며 '부탁드릴게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담력이 엄청난 분이다.
선거 기간동안 야스다 씨의 응원 집회에 나가 딱 한 번 찬조연설을 했다. 15분 정도 얘기하는 걸로 되어 있었는데 정권교체가 어째서 시급한지를 논하다가 흥분한 나머지 30분 동안 떠들어서 야스다 씨를 당황케 했다(죄송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득표율은 3위, 비례에서도 제외되었다. 권토중래를 기약하기로 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필자가 연사로 나서게 된 후보는 이제까지 당선된 사례가 없다. 중앙, 지방, 기초 할 것 없이 대부분 '패군' 측이었다(유일한 예외가 후쿠시마 미즈호 씨).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줄곧 소수파였고, 항상 '우치다는 이상한 놈이다'라고 다수파들이 뭐라뭐라 해왔으므로 선거에서도 소수파 측에 서는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뒤 아마미야 가린 씨가 '야마모토 타로를 위해 응원 영상을 찍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의뢰해왔다. 야마모토 씨를 예전에 고베 가이후칸에 모셔서 대담회를 연 적이 있었다. 언뜻 보면 '상남자' 스타일이지만 알고보니 섬세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이었다. 지난 참의원 선거 때는 사무소 개소일에 필자가 도쿄에 나가있었던 덕에 축하해주러 갔다. 비공개 회합이었지만 그 자리에 필자도 알고 있는 친구나 지인들이 많이 와 있었는지라 그의 넓은 인맥에 감탄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우메다에서 가두 연설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들으러 갔다. 어디 있나 보니 야마모토 씨는 복잡한 곳에서 혼자 스피커 음향을 체크하고 있었다. 그가 이제까지 조직과 운동을 자기 혼자서 '손수' 해 왔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응원 영상을 찍게 되었다.
'야마모토 타로를 응원하고 나면 전방위에서 화살이 날아듭니다' 하고 아마미야 씨가 경고했지만, 딱히 그런 일은 없었다. '화살'이라 함은 '당신이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습니다' 라든가 '당신 책은 이제 안 살겁니다' 하는 언사로 날아드는 것이겠지만 '우치다를 이제까지 경솔하게도 과대 평가해 왔다'는 사람은 필자에게 불만을 표하기에 앞서 자신의 '경솔함'과 '사람 보는 눈'을 우선 반성하는 게 좋을 거다.
다행히도 레이와신센구미는 국회에 3석을 확보했다. 다시금 야마모토 타로의 훤칠한 모습을 국회에서 볼 수 있게 되어서 필자는 대단히 기쁘다.
투표 직전에 이번에는 일본공산당이 응원 영상 의뢰를 해왔다. '도쿄 유권자 여러분 비례는 <레이와>로 찍어주세요' 라는 영상을 찍어놓고서 곧장 '비례는 일본공산당'이라고 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한입 갖고 두말 하는 게 아닌가 했지만 받아들였다. 솔직히 말해 비례 투표지에는 야당 4당 연합을 쪼개어 0.25표 쯤 찍고 싶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의 야당 연합을 어떻게 총정리할 것인가 하는 의논이 융성하고 있는데, 한 사람의 유권자 안에서 복수 정당 지지가 '동거할 수 있었던' 상당히 보기 힘든 사실에서 야당 연합의 소소한 '결실'을 엿볼 수도 있겠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여성 의원은 어째서 소수인가?' 주니치신분 11월 4일
총선거 결산을 복수 매체에 기고했다. 각기 다른 곳에 같은 내용을 쓰는 것은 학술 세계에서 '이중 투고'라고 불리는 금기 사항이다. 따라서 뭐라도 다른 내용을 쓸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쟁점' '지역구 관리' '야당 연합'에 대해 썼다. 이번에는 '여성 후보자의 과소 현상'에 대해 쓴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는 45명의 여성이 당선되었다. 이전에 비해 2명 줄었다. 모든 당선자 가운데 여성이 점하는 비율은 9.7%.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있다.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전후 최초의 총선에서도 사실 여성 당선자는 39명으로, 의원 총수의 8.4%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이래로 75년 동안 여성 의원의 비중은 10%선을 넘나들고 있다. 참의원에서는 여성 의원수의 소폭 증가세로 현재는 22.9%까지 왔지만, 중의원은 2009년에 11.3%가 과거 최대치였다. 줄곧 이 정도인 것이다.
유권자의 50%가 여성인데도 그녀들의 집단을 대표하는 의원이 10%밖에 안된다는 것은 잘 생각해보면 수수께끼다. 더구나 시군구의회 레벨에서는 '여성 의원 전무'인 의회가 342개소(전 의회의 약 20%)에 이른다.
어째서 여성 의원 비율이 이렇게 낮은 걸까.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해본다.
필자는 '어째서 이렇게 여성 의원 비율이 적은 걸까?' 라는 물음 그 자체가 문제의 이해를 방해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물으면 마치 남녀 간 의석 수의 제로섬적인 쟁탈이 있고, 남성이 거기에서 계속 승리해 왔다는 듯한 인상을 우리는 품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허나 의석의 9할을 점하는 남성 국회의원들이 '여성 의원의 수를 늘리지 않겠다'라는 암묵적 목적을 내거는 일개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남성 의원들은 정당 동료들과 함께 상대 정당에 맞서 격하게 대립하고, 동일 정당 내부에서는 주도권을 둘러싼 투쟁을 펼치고 있다. 그런 남자들이 '여성의 정치 참가를 저지한다'는 점 하나만큼만은 다같이 손발을 맞추고 있다는 가설을 필자는 채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정당마다 여성 입후보자의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난다.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도 사민당은 60%, 공산당은 35.4%, 국민민주당이 29.6%, 레이와신센구미가 23.8% 등이고 하면 야당은 대체로 높다. 하지만 자민당은 9.8%, 공명당(종교계 정당으로 20여년간 자민당과 연립하고 있음 - 옮긴이)은 7.5%로 둘 다 역대 여성 국회의원 비율보다도 낮은 후보자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국 여당 2당은 분명하게 '여성 국회 의원을 늘릴 마음이 없다'는 의사 표시를 하고서 선거에 임한 것이다.
여성 의원을 늘리기 위한 '쿼터제'가 종종 논의된다. 후보자나 의석의 일정 수를 여성에게 할당해 이를 위반한 정당에게는 정당보조금을 감액하는 등의 패널티를 부여한다는 제도다.
남성과 여성 간 의석 수의 제로섬적인 투쟁이 있고 그 싸움에 남성이 계속 이겨온 거라면, 그러한 성별 간 자원 분배에 강권적으로 개입하는 게 합리성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여성 의원이 적은 것은 남자들이 여성의 정치 진출을 방해하고 있다기보다는 '여성의 정치 참가를 꺼려하는 정당'이 옛날부터 정권을 잡고 있고 그들이 선거에 계속 이겨왔기 때문이다.
다수의 여성 유권자가 '여성 의원은 소수여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정당에 다투어 표를 던지는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려 들지 않는 이상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어째서 투표를 하지 않는가?' 시나노마이니치신분 11월 5일
이번 중의원 선거도 투표율이 낮았다. 55.93%는 1945년 이래 꼴찌에서 3등이다. 특히 젊은이의 투표율이 낮았다. 18세가 51.1%, 19세에 이르면 35.0%이라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치였다.
어째서 젊은 사람들은 투표를 하지 않는가에 대해 여러 군데 물어봤다. 필자의 가설은 '수험 교육 탓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겠다.
수험 교육에서는 교사가 문제를 내고, 학생들이 잠깐 생각한 뒤에 정답을 제시한다. 학생들은 '문제와 정답'을 세트로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에 똑같은 문제를 접하면 기억해낸 정답을 출력한다. 정답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고개를 떨구며 잠자코 있는다. 오답을 내는 것보다 그저 조용히 있는 게 '낫기' 때문이다. 적어도 교실에서는 그렇다. 교사는 가만히 있는 학생은 안 건드리고 다음 학생을 지목한다. 그래서 '오답을 낼 바에는 가만히 있는 게 낫다'는 것이 '성공 체험'으로 일본의 많은 아이들에게 각인되어 있다.
선거에서는 '누구에게 투표하면 옳은가' 하는 '정답'이 사전에 주어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많은 수는 어느 후보자가 '옳은가'를 판단할 정도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친구들이나 가족과 그에 관해 의견 교환하는 일도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정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일을 맞게 된다. 그리고 수험 공부로 각인된 '정답을 모를 때는 오답을 내기보다 침묵하는 게 낫다'는 경험칙을 적용한다. 그러면 교사가 '어째서 그런 바보같은 대답을 생각해 내었느냐' 하고 귀찮게 굴지도 않을 뿐더러, 엉뚱한 답을 말하기보다는 가만히 있는 게 그나마 현명하게 보이기도 한다. 중고등학생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 함은 '정답'을 모르는 선거에서는 투표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온다. 필자의 의견이 약간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2021-11-08 15:48)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內田樹)
1950년생. 합기도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처럼 변해가는 세상>, <길거리에서 논하는 한일관계론> 등.
출처: 우치다 타츠루의 연구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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