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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30 거짓말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1. 17. 06:59

    교토대 교수가 제자 뻘인 여성 연구자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사 강단에서 쫓겨난 뒤, 도망쳐 들어간 사찰에까지 추격당하고, 이제는 하는 수 없이 주간지나 신문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는 사건이 있었답니다. 5년 전쯤 일입니다만)

     

    이런 얘기는 본질적으로 <덤불 속>(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으로 영화 라쇼몽의 원작이 되기도 하였다 - 옮긴이) 인 것이라서, 피의자인 교수의 주장과 피해자인 여성의 주장 중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완전히 결백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사건이 보통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덤불 속>에서는 도적과 무사(의 망령) 그리고 그 아내 세 명이 강간치사 사건에 대해 각기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도적은 결국 처형된다. 설령 다조마루가 말하는 대로 그가 살인의 주범이 아니라 공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 나쁜 짓만 잔뜩 하고 다닌 탓에 누구도 이 상황에서 믿어주지 않은 것이다.

     

    '늑대 소년'이라는 우화의 교훈도 그러하다.

     

    평소에 거짓말만 치고 다녔으니 가끔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아무도 안 믿어준다.

     

    얘기는 '거짓말'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다.

     

    평소부터 의논할 적에 '자신은 옳다'고 주장하며 결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바득바득 우김으로 해서 그 자리에서의 의논은 강인하게 제압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승리의 대가로 '이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얻게 된다.

     

    이리하여 그 사람은 불행하게도 사실 무근의 고발을 받았을 때 아무리 소리 높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해도 그다지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항상 '자신은 옳다'고 말한 탓에, '정말 옳은' 얘길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평소처럼 우겨대는 건가를 주위 사람들이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깔끔하게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은 때때로 체면을 잃는 대신에 자기 평가에 있어서 상당히 객관적인 사람이라는 평가를 얻는 일이 가능하다. 그러한 사람의 주장은 신뢰성이 높다.

     

    <덤불 속>적 상황에서는, 평소의 목소리 크기보다는 평소의 자기 평가에 대한 신뢰성이 사실을 웅변한다.

     

    우리들은 살아있는 한 반드시 몇 번이든 <덤불 속>적인 상황에 조우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범하지 않은 과실에 관해 고발을 당해 여하한 물증에 의해서도 반론할 수 없다, 는 비극적 상황에 전락할 때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그러한 상황에 떨어졌을 때 우선 '이 사람은 자신이 범한 과실에 대해서는 정직하게 그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다'는 여론을 획득해두는 것 이외의 방도가 없다.

     

    와중의 교토대 교수는, 기사들을 보면 자신이 100% 옳고, 자신에 대한 비판은 그 모든 게 거짓말, 광기, 질투, 증오 등이 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100% 옳고, 비판자는 100% 사악하다, 는 반론을 시도하는 것은 전술적으로는 대단히 치졸한 것이다.

     

    그것은 그 인물이 이제까지 이렇게 '결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의논에 이겨왔다는 것을 뜻밖에도 폭로해버리기 때문이다.

     

    <덤불 속> 적인 상황에서 피의자가 시도할만한 것은 '진실을 말한다'는 게 아니다. (진실은 <덤불 속>에 있어서 누구도 볼 수 없다.) 그게 아니라 '이 사람은 자기 평가가 객관적이다'라는 평가를 획득하는 일인 것이다.

     

    '자신은 100% 옳다'는 주장은 자기 평가의 객관성을 치명적으로 잃게 한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분명히 본인에게도 질책 받을 만한 점이 있을 것이다. A와 B의 비판은 달게 받겠다. 하지만 C의 비판은 사실 무근이다'는 식으로 반론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러한 초보적인 설득술을 모른다는 것은, 그가 이제까지 타인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항상 100% 옳은 사람은 타인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아마 그는 그렇게 이제까지 여가지 논전에서 승리해왔으리라. 그 승리 가운데에는 명백히 그의 잘못이 있고, 그에게 논파된 측에게 일리가 있었던 케이스도 있었을 터이다.

     

    그는 지금 그 '청구서'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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