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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와 여우 (<생각에 관한 생각>)인용 2021. 7. 9. 18:55
어떤 분야를 조금 더 아는 사람은 그보다 덜 아는 사람보다 아주 약간 더 나은 예측을 내놓는다. 그런데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신뢰도가 오히려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이유는 많은 지식을 습득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더 많이 착각해 비현실적으로 자신만만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식의 한계 예상 수확 체감 지점에 순식간에 도달한다." 테틀록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지식이 고도로 전문화한 시대에는 새롭게 불거진 상황을 '읽는 능력'에서 주요 신문사의 기고자들(저명한 정치학자, 지역연구 전문가, 경제학자 등)이 <뉴욕 타임스>의 수준 높은 독자나 기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낫다고 말할 근거가 없다." 유명한 사람의 예측일수록 예측은 더 화려했다. "잘나가는 전문가들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근근이 살아가는 동료보다 과신 정도가 심하다."
테틀록의 연구에 따르면, 전문가는 좀처럼 잘못을 시인하지도 않는다. 마지못해 오류를 인정해야 할 때면, 타이밍이 적절치 못했을 뿐이라는 둥,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이 끼어들었다는 둥, 예상은 빗나갔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는 둥 온갖 변명을 갖다 붙인다. 전문가도 결국은 인간일 뿐이다. 자신의 화려함에 도취되고, 잘못을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다. 전문가는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길을 잃고 헤맬 수 있다고 테틀록은 말한다. 테틀록은 이사야 벌린이 톨스토이에 관한 수필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썼던 말을 인용한다. 고슴도치들은 "중요한 것 하나를 알고" 세상을 보는 이론을 가지고 있어서, 특정 사건을 논리적으로 일관된 틀로 설명하고, 자기처럼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자들을 도저히 참지 못하며, 자기 예상을 확신한다. 특히 오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고슴도치들에게 빗나간 예측이란 거의 항상 "타이밍의 문제"거나 "거의 맞을 뻔한" 예측일 뿐이다. 이들은 생각이 분명하고, 의견을 굽히는 법이 없는데, 프로듀서가 방송에서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문제를 놓고 의견이 다른 두 고슴도치가 서로 상대의 어리석은 생각을 공격한다면, 방송 프로그램으로는 제격이다.
반면에 여우들은 복잡한 사상가다. 이들은 중요한 것 하나가 역사의 행군을 이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예를 들어 이들은 로널드 레이건이 소련에 당당히 맞서 냉전을 손쉽게 종결하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여우들은 현실에서는 운을 포함한 여러 동력과 행위자가 무수히 상호작용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큰 결과가 나타난다는 점을 인정한다. 테틀록의 연구에서, 실적은 여전히 보잘것없지만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것은 바로 이 여우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고슴도치들보다 텔레비전 토론에 초대될 가능성이 낮다. (328~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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