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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로 세상을 바꾸고 싶은 분들께 (우치다 타츠루)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6. 14. 20:19

    강상중 교수와의 세 번째 대담집(<세계 신질서와 일본의 미래>)이 곧 일본에서 발간된다. ‘에필로그’를 올려 둔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상중 교수와 슈에이샤 신서로 낸 대담 시리즈가 이로써 세 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강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내게 참으로 즐겁기도 하거니와 또한 유익함이 많았던 귀중한 경험입니다.

    내가 행하는 거의 모든 다른 분과의 대담에서도 그러합니다만, 대담 상대가 되어주시는 분은 주제가 되는 사안에 대한 전문가이고 나는 그 분야의 초심자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것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요전번에 결혼식 피로연 석상에서 우연히 옆에 앉은 분이 하는 업계 얘기를 열심히 듣고 있으려니, 상대방이 갑자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런 이야기가 재밌으신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그때 내가 들었던 것은 귀금속 업계의 업황에 대해서였습니다). 아무렴요, 재미있습니다. 탄탄한 전문적 지식이 뒷받침된 전문적인 이야기는 진심으로 재미있습니다.

    강 교수와의 대담도 마찬가지입니다. 똑소리나는 짜임새는 ‘현인’인 강 교수가 만들어내고, 나는 ‘초심자’로서 그 구조물 안을 뱅뱅 돈 뒤에 저 좋을 대로의 감상을 말합니다. 그러한 역할분담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편합니다. 강 교수는 본격적인 정치학자이므로, 논거가 빈약한 사변을 말하는 데에 스스로 강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나는 본디 인문학자이므로, 정치에 대해서는 사료나 문헌을 체계적으로 읽어본 적도 없고 해당 분야를 분석 및 해석하는데 필요한 학술적 방법론을 수행해본 적도 없습니다. 내가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은 것은 전부 ‘택시 운전사 정치평론’ 영역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택시 정치평론’에는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학술적인 증거가 없어도 직감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곧바로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떠들어대도 내 입장에서 패널티를 받지는 않습니다. 나한테 ‘정치 전문가 자격에 의심이 든다’는 비판을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애초에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무엇보다도 감사한 점은, 내가 이 영역에서는 초심자라는 것을 독자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므로 ‘정치에 대해 우치다가 하는 말은 한번 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룰을 주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에 관한 영역에서 내가 발신하는 진실 함유량은 35퍼센트 정도입니다. 남은 50퍼센트는 ‘즉흥적 착상’이고, ‘착각’이 15퍼센트 정도입니다.

    이게 말이죠, 그냥 멋대로 말하는 수치가 아닙니다. 슈에이샤의 교열은 상당히 엄밀하므로 교열을 마친 교정쇄를 받아들면 내가 자신감 넘치게 ‘...이다’ 라고 단언한 명제는 15퍼센테이지 정도가 ‘틀렸습니다’ 하고 빨간줄이 그어져 있습니다(안심하세요. 여러분이 손에 든 이 책은 교정단계에서 ‘착각’의 수정이 완료되어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통찰’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교열자가 고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보다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통찰’은 자신이 진위 판정을 받는 일에 익숙치 않기 때문입니다.

    전에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소설에서 “곧장 라디에이터가 터져버린 바겐”이라고 썼더니, ‘당시 폭스바겐에는 공냉식 라디에이터가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하는 지적을 자동차를 잘 알고 있는 독자로부터 받았습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씨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이 이야기는 공냉식 폭스바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하고 답변했습니다. 나도 이런 태도를 본받고 싶습니다.

    내가 국제정치에 대해 쓴 것의 절반(이상)이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이므로 증거 혹은 사료도 없으며, 증언이나 통계도 없습니다.

    ‘이야기’라는 건 굳이 말하자면, 형태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역사 표층에 형태가 있는 사건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그 사건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무정형의 것입니다. ‘이야기’의 효용은 그 구조 안에 놓아 두면 그때까지 서로 관련지어지지 않았던 단편적인 여러 현상이 한데 어우러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나는 ‘이제까지 서로 관계가 없었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서로 잇는’ 것이 너무나 좋습니다. 이 ‘관련짓기 위한 구조’와 관련된 것을 나는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라고 해도 좋습니다.

    시바타 모토유키 씨의 에세이에서, 시바타 씨가 미국의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다 그 작가가 ‘미국은 하나의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하고 대뜸 중얼대는 것을 듣고 깊이 납득했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게 내게도 깊이 스며들었습니다. 확실히 그렇구나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확실히 선행하는 ‘이념’이 있고 거기에 기반해 나라의 형태를 다듬었다는 역사적 경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정은 다른 나라들이나 집단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본은 하나의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라거나 ‘중국은 하나의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고 해도 통할 것 같습니다.

    우리들 일본인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 하는 어렴풋한 ‘아이디어’를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이 참으로 ‘어렴풋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런 아이디어를 참조해 나가며 나라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평소에는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런데 백년이나 이백년 정도의 시간 간격 가운데 부감해 보면 거기에 명백한 ‘일본이라는 이름의 아이디어’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보았을 때는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의미를 모를’ 집단적 행위가 ‘아아, 이건 <그런 것> 이었구나’ 하고 와닿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변용해나가며 끊임없이 재귀해 그 집단을 무의식적으로 방향짓는 것을 ‘아이디어’라고 나는 부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정치사에 대해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점은 각자의 정치 단위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발견해내는 일입니다.

    ‘우리들 집단은 이 세상에 있어서, 인류사에 있어서 무언가 이룩해내야 할 미션이 부여되어 있는가’ 하는 자기규정은 정치적 움직임에 차차 결정적인 영향력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사견입니다만, 어떤 집단에게 가장 강력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미션은 ‘미션 임파서블’인 것입니다. ‘불가능한 사명’. 이제까지 잘 해왔던 것, 어떤 것에 대해 충분한 경험지를 갖고 있는 것은 ‘미션’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 실현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실현시킬 수 없었던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방향성을 발휘합니다.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프랑스어 문법용어중에 épithète de nature라는 게 있습니다. ‘본래적 형용사’로 번역되는데, 어떤 명사가 원래 갖추어야 할 성질을 나타내는 형용사(그래서 원래는 필요 없는 형용사)를 의미합니다. ‘하얀 눈blanche neige’ 이라든가 ‘단단한 돌caillou dur’ 이라든가 하는 예가 그렇습니다. mission impossible에서의 ‘불가능한’이라는 형용사가 바로 이 ‘본래적 형용사’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즉, 실현하기 어려우며 이제까지 끊이지 않고 좌절된 ‘사명’은 가장 강력히 집단을 견인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사명’은 이제까지 한 번도 완전한 모습으로 실현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로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로부터 한 번도 현재가 되지 못한 과거’(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입니다)가 인간들을 집단적으로 불러모아 집단적으로 이끌어갑니다.

    나는 어쨌든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정치를 말할 때, ‘아이디어’라든가 ‘미션’같은 것을 신경 쓰는 이유는 그러한 가설을 세우고 있기 떄문인 것입니다.

    밑도 끝도 없는 얘기를 해버려서 미안합니다. ‘후기’는 이쯤에서 끝맺고자 합니다.

    강 교수와의 대담 시리즈는 열린 결말이므로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계속될 것 같습니다. 부디 잘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강 교수와의 대담 기회를 마련해주시고 편집에 힘써주신 슈에이샤 신서 편집부 이토 나오키 씨를 비롯해 모든 분들께 사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감사드립니다.

    (2021-06-10 10:22)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원제: 『世界新秩序と日本の未来』(集英社新書)のためのあとがき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6/10_1022.html

    『世界新秩序と日本の未来』(集英社新書)のためのあとがき - 内田樹の研究室

     姜尚中さんとの対談本シリーズの三作目がもうすぐ刊行される。「あとがき」をあげておく。    最後までお読みくださっ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姜尚中さんとの集英社新書で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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