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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도 데라코야 세미나 개강 인사말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5. 1. 14:23
금년도 데라코야 세미나 개강 메시지를 쓰는 데 참고하기 위해 컴퓨터에 저장된 옛날 글들을 살펴보다가, 4년 전인 2017년 것을 찾았습니다. 읽고 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선 그것을 옮겨볼게요.
"2016년은 격동의 한해였습니다. 파리에서의 동시다발적 테러가 2015년 12월. 그 이후 브렉시트, 터키의 쿠데타 미수, 파나마 페이퍼즈 유출, 시리아 내전 격화, 트럼프의 승리 등... 셀 수 없을 정도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정치, 경제, 언론, 학계 등의 각 분야에서 제도피로와 엘리트의 질적 열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리토모학원 사건에 의해 권력의 장기집권 가운데 어떤 방식으로 '이익분배 시스템' 이 완성되었는지가 백일하에 밝혀졌습니다. 제도가 짊어진 하중은 이제 내구 한계를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유지보수하지 않았기에 '완전히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언제, 어느 부분에서, 어떠한 파국적 사태가 생겨날지 모릅니다. 일본 뿐만이 아니고, 세계 어느 곳을 둘러봐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가 열리고 말았습니다. 2017년에 대해서도 무엇이 일어날지, 이곳저곳 물어봤지만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때에,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 세상의 형태가 뒤집힌다' 뿐입니다. 그것에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해 둔다. 나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뿐입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습니다만, 진짜로 세계는 '예상도 못한 일' 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데라코야 세미나를 기회로 그러한 '마음의 준비' 를 했으면 합니다.
여러분께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것은, 될 수 있는 한 정확한 현실을 볼 것, 되도록이면 '누구라도 그렇게 예측할만한' 시점과는 다른 차원에서 현실을 볼 것, 현실의 움직임 가운데 뭔가 경향이라든가 맥락 같은 것(그 편린이라도 좋고, '쥐꼬리' 만한 것도 좋습니다) 을 발견해내, 그것을 실마리로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을 예측할 것. 그렇게 꾸준히 미리 놀라두면, 언젠가 화들짝 놀라는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게 내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얻은 경험지 중 하나입니다.
데라코야 세미나가 '부지런히 놀라두는' 계기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세미나의 취지는 4년 전과 지금이 같습니다.
실제로, 인수공통감염병에 대해 말하자면, 2002년 SARS, 2009년 신종플루, 2012년 MERS 등이 수년 동안 창궐해왔습니다. 그러므로 파괴력과 감염력이 더욱 강한 바이러스가 출현할 것이라는 예측은 2017년 시점에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지금으로부터 4년 전에 그러한 것에 관한 경종을 시끄럽게 울리며, 감염증에 대비한 의료자원의 확충이나 백신의 개발을 위한 예산분배를 주장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예외적으로 빌 게이츠가 '이제부터 세계가 직면할 일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낼 우려가 있는 것은 전쟁이 아닌, 감염증 팬데믹이다' 라고 2015년에 경고했었습니다. 게이츠는 백신의 개발이나 역학조사 시스템 개발에 사비를 들이는 한편, 세계 지도자들에게 감염증에 대비한 국가적 방호 체제를 구축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당시 빌 게이츠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정치지도자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빌 게이츠를 '대단하다' 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최악의 사태' 를 올바르게 상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성의 운용방식에 나는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2021년도의 데라코야 세미나도 계속해서 같은 목표를 내걸고자 합니다.
"될 수 있는 한 정확한 현실을 볼 것. 되도록이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현실을 볼 것. 그 현실의 동향 가운데 하나라도 경향이나 맥락 같은 것을 발견했으면, 그것을 열쇠로 삼아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을 예측할 것" 단지 이것 뿐입니다.
( 1 ) 데이터 수집
( 2 ) 데이터 분석
( 3 ) 패턴 발견
( 4 ) 가설 제시
이 순서는 자연과학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 1 ) 은 기초작업인 것이 당연하겠습니다만,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휙휙 넘겨서 '이렇게 조사해왔습니다. 끝' 이런 건 세미나 방식이 아닙니다. 고등학생 과제입니다. 데라코야 세미나는 대학원의 평생교육 과정 비슷한 것이므로, 당연히 대학원 레벨의 발표를 목표로 해주었으면 합니다. '가설 제시' 는 학회 발표 수준이므로, 거기까지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되도록이면 '패턴 발견' 까지는 어떻게 노력해주시기 바랍니다.수학자 푸앵카레에 의하면, 수학적인 통찰이란 '오랫동안 알려지기는 했으나, 서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다른 사실들 사이에, 생각지도 못했던 공통점이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두 가지 사실의 관계가 멀면 멀수록 그 통찰이 가져다주는 지적 열매가 풍성해집니다.
언뜻 보면 정말 상관 없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여러가지 현상의 저편에는 반복해서 나타나는 패턴이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통찰' 입니다.
패턴이라는 것은 반드시 같은 레벨에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프랙탈' 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전체와 부분이 자기유사적으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프랙탈한 모양은 자연계 뿐만 아니라 사회현상에서도 검출됩니다(해안선, 눈의 결정, 식생, 주가 추세 등등). 전체의 형태가 그 내부에서 국소적으로 반복하는, 이 프랙탈적인 패턴은 동일한 레벨에서 반복하는 패턴에 비하면 검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방식으로 행해지는 패턴의 반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머릿속 어딘가에 기억해두십시오.
세미나의 '현실적' 인 메리트는, 거기에서 제시되는 가설이 적절하다는 조건 하에,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어느정도 전망을 내다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마음의 준비' 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필요한 것은 2017년도 오리엔테이션에도 쓴 바와 같이, 조금씩 놀라두는 일입니다. 조금씩 미리 놀라두면 미래에 경악할 일이 없습니다. 롤랑 바르트는 "비평적인 지성의 본질이란 놀라움을 느끼는 능력이다" 라고 썼습니다. 이것은 참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놀라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유례가 없는 일이 나타난 상황' 과 '줄곧 존재했던 무언가가 사라진 상황' 입니다. 이 두 양태 가운데 후자를 알아채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의 현실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것이 눈 앞에 있으면, 그것이 존재할 필연성이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 가운데에는 '인과관계가 명확히 드러난 심각한 현실' 과 '가벼운 우연이 쌓여 만든 산물로서의 현실' 이 있습니다.
세간의 '리얼리스트' 들은 두 가지 다른 현실의 중요도를 서로 가늠해볼 수 있을만한 지적 습관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날이 갈수록 '보이지 않는 가벼운 현실' 과 '엄격한 논리적 설명이 가능한 현실' 을 헷갈립니다. 그래서, 아주 사소하게 '잘못 눌린 버튼' 이 빚어낸 우발적인 사건을 마치 '신의 손놀림' 같은 것으로 여기고 그 유래를 캐묻는다든가, 분석하는 등의 일로 별무소득한 시간을 소비합니다. '리얼리스트' 는 가련합니다.
'리얼리스트' 란 현실의 현실성을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일이 나타난 경우' 에 엄청난 소란을 일으킵니다만, '이제까지 분명히 존재하고 있던 것이 없어진 경우' 에는 여하한 관심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스템에 발생하는 거대한 변화는 '줄곧 곁에 있었던 뭔가가 없어지는' 일이 시나브로 누적되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리얼리스트' 들의 현상분석이나 미래예측이 대체적으로 빗나가는 것은 그런 탓입니다.
우리들은 본래 의미로서의 '리얼리스트' 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명시적 현실' 과 '암묵적 현실' 을 구분하는 것, '갑자기 출현한 것' 과 똑같은 정도로 '언제부턴가 사라진 것' 에도 주시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
그것을 2021년도 데라코야 세미나의 과제로 남겨두려 합니다.
모쪼록 한해동안 진심으로 잘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2021-04-28 10:10)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4/28_10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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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사]
아래의 모든 인용문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 지은이: 로버트 M. 피어시그 ; 옮긴이: 장경렬 / 서울 : 문학과지성사, 2010.
306~307쪽
"지난 3백 년의 역사를 한번 되돌아보세요. 그러면 때늦은 깨달음 덕분으로 우리는 우리에게 알려진 바대로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었던 필연적 원인과 결과의 정연한 패턴이, 그 사이의 연결 고리가 우리 눈에 보인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원천—말하자면, 어떤 특정 시대의 문헌—으로 되돌아가 살펴보세요. 무언가가 특정한 어떤 일의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시대에는 그 원인에 해당하는 것이 결코 명백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겁니다. (...) 르네상스 시대 전체가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 때문에 야기된 혼란스러운 느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추정이지요. (...) 세상을 평면적인 것으로 보는 구약과 신약의 세계관 어디에도 신대륙 발견을 예견하는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신세계 발견을 부정할 수 없었지요. 엄연한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중세의 세계관 전체를 포기하고 새롭게 확장된 이성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461쪽~462쪽
"푸앵카레가 살아 있는 동안, 걱정스러울 만큼 심각한 위기가 정밀 과학의 분야에서 시작되었다. 오랫동안 과학적 진실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 천문학자들이 충분히 강력한 천체 망원경을 통해 충분히 오랜 시간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은 바로 자신의 머리 뒤통수라고 인류에게 말하게 될 것이라고는 거의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
그의 저서 <과학의 기초>* 에서 푸앵카레는 과학의 기초를 위태롭게 하는 위기의 선례들은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푸앵카레의 저서 가운데 <과학과 가정La science et l'hypothèse>(1905), <과학의 가치La valeur de la science>(1907), <과학과 방법Science et méthode>(1914)이 미국에서 1946년 <과학의 기초The Foundations of Science>라는 제목의 책으로 번역 출판된 바 있다. [— 인용문 옮긴이의 주석]
469쪽
"(...) 우선 그는 어떤 사실을 당신이 관찰하고자 하는가를 물었다. 사실은 무한하게 존재한다. 원숭이가 타자기를 쳐서 주기도문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에 대한 무작위적인 관찰이 과학을 만들어 낼 확률은 없다. (...)
푸앵카레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만일 과학자에게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무한의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 그에게 꼭 해야 할 말은 다만 "주의해서 잘 보시오" 가 될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또한 잘못 보는 것보다는 안 보는 것이 낫기 때문에, 그는 필연적으로 선택을 해야만 한다."
471~472쪽
"우선 우리는 이 규칙이 들어맞지 않을 확률이 가장 높은 경우를 찾으려 한다. 시간적으로 아주 멀리 가거나 공간적으로 아주 멀리 감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일상적 법칙이 완전히 전복(顚覆)되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엄청난 전복들은 우리 가까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은 변화를 좀더 잘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하는 것은 유사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표면적으로는 일탈로 보이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유사성을 인식하는 일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특정한 규칙들이 처음에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보다 더 자세히 보면 일반적으로 그 규칙들이 서로 닮아 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즉, 구성 물질은 다르지만, 형태 면에서 유사할 수도 있고 부분 사이의 질서 면에서 유사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선입관을 갖고 유사한 측면들을 관찰하면, 우리는 그런 측면들이 점점 그 적용 범위를 확장하여 마침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일정한 사실들—하나의 집합을 완성하고, 또한 그 집합이 이미 알려진 여타의 집합을 성실하게 재현해 보여주는 것임을 확인케 하는 그런 사실들—의 가치를 구성하는 요인이다.
푸앵카레가 도달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그렇다, 과학자는 그가 관찰하는 사실을 무작위로 선택하지 않는다. 과학자는 많은 경험과 많은 생각을 압축하고 또 압축하여 한 권의 얇은 책자에 담고자 한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물리학에 관한 작은 책자 한 권에 담겨 있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과거의 경험들이요, 또 그 결과가 예전에 이미 알려진 수많은 가능한 경험들의 천배에 달하는 경험들인 것이다. (...)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그는 보름 동안 문제의 함수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려 했었다. 매일같이 그는 작업대 앞에 앉아 한두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은 수의 조합을 시도해보았지만 아무런 결론에도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평소의 습관과는 달리 진한 커피를 마셔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들이 무리 져 떠오르는 것이었다. 생각들이 이리저리 충돌하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는데, 마침내 한 쌍이 이를테면 꽉 맞물리더니 안정된 조합을 이루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다만 그 결과를 종이 위에 옮기기만 하면 되었다." (강조는 인용자)'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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