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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법 이야기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5. 8. 15:16

    아래 인용하는 글은, 2007년 제헌절(일본어로 憲法記念日 -옮긴이)에 마이니치신분에 기고한 문장이다. 쓰고 나서 14년이 지났지만, 헌법을 둘러싼 정치와 언론의 환경이 1밀리미터도 개선되지 않은 점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개헌이 추진되고 있다. 일부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퍼센트가 개헌에 찬성한다고 한다. 대학 내에서도 마치 '이제 곧 있으면 헌법이 개정되는 거죠?' 식의 기정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학생이 있어서 놀랐다.

    일본국 헌법 제 9조 2항(육해공군 등을 보유하지 아니하며 교전권을 인정하지 아니함 -옮긴이) 의 정치사적 의미를 음미해보기도 전에, '개헌 없이는 북한이 쳐들어왔을 때 속수무책이다' 등의 감정적 호소만이 선행되고 있다.

    본인으로서는 개헌과 호헌을 놓고 벌이는 옳고 그름의 논쟁보다도, 헌법 개정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결정이 소문과 기분에 휩쓸리는 모양새로 흐르는 것 즉, 우리들의 시대를 뒤덮고 있는 끝 모를 경박함에 공포감을 느꼈다.

    개헌이란 게 말하자면 일개 정치적 결단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국익 증대에 일익을 담당한다는 판단에 국민의 과반수가 동의한다면, 지체 없이 시행하여야 한다. 다만, 적부의 판단이 적절하게 행해지기 위해서는, 개헌을 주장하는 측이 우선 '입증 책임' 을 져야 할 것이다.

    헌법 개정으로 일본 국민이 '헌법을 개정하지 않았을 경우에 놓칠 것으로 예상되는 모종의 이익' 을 창출할 수 있는가, 그 이익이 '현행 헌법을 개정하지 않았을 때 우리나라에 가져다 줄 이익' 보다 크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현행 제도의 개혁을 요구하는 인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일 것이다.

    '헌법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이익' 에 대해서만큼은, 그게 뭔지 비교적 정확하게 우리들은 말할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의 평화와 번영은 틀림없이 그 이익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들은 1945년 이래로 한 번도 다른 나라와 총구를 마주한 적이 없다. 우리나라의 정규 병력은 타국의 영토에서 살상을 일으키지 않는다. 다른 선진국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미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 어느 나라도 달성하지 못한 '위업' 을 일본이 이루어냈다. 이 성취에 대해 국제사회는 일본에게 조금이나마 '경의' 를 갖고 있다. 적어도 내 외국 친구들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개헌파 제군들은 그것을 '존경' 이 아니라 '멸시' 로 해석한다. 미국이 수행하는 세계전략의 일환으로써 '인적 공헌' (한마디로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 사람들을 살해하는 일) 을 게을리한 일본은 '국제사회의 웃음거리' 가 되었다는 게, 개헌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라고 그들은 몇 번이고 소리 높여 주장한다.

    일본은 '전쟁 없는 국가' 로서 외교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 그것은 말하자면 '조커' 를 갖지 않고서 카드 게임에 참가하는 것과 같다. 헌법 제 9조 2항을 폐기함으로써 '언제든지, 누구와도, 마음만 먹으면 전쟁을 벌일 권리' 를 손아귀에 쥐게 된다. 그 권리를 손에 넣기만 하면 일본은 이웃 나라로 하여금 '불필요한 경멸' 을 사는 일이 없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허나, 이 추론에는 근본적인 하자가 있다. 그것은 개헌을 하더라도 일본은 결국 '조커' 를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헌으로 일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미국 아닌 나라와, 미국의 허가를 받아, 전쟁을 할 권리' 뿐이다.

    개헌하고 나서도 미일안보조약은 유지되고, 국내 미군기지가 존속하며, 핵무장을 금지당한다면 개헌은 단지 일본이 '미국의 군사적 속국' 임을 국제 사회에 다시금 선언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확실히 미국의 '군사적 속국' 임을 공언하면 이웃 나라 사람들은 일본을 두려워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증오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는 게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개헌파 제군은 믿고 있겠지만, 본인으로서는 그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패전으로 말미암아 일본은 '미국에게 있어서 무해•유익한 나라' 이외의 것이 될 선택지가 없었다. 패전국 국민은 그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전쟁에 졌다는 것은 그런 것이므로, 단념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굴욕적인 국제적 지위를 새삼스레 스스로 못박아두고, 만천하에 과시하듯 커밍아웃하는 것은, '우리들은 패전국보다 못한 나라입니다' 하는 선언이나 다를 바가 없다. 그러한 자기주장을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존경이나 신뢰를 받을 가능성은 한없이 낮을 것이라고 본다.

    그 이유는 교전권을 부인한 헌법 9조 2항과, 군대로서의 자위대는 길항 관계에 있고, 길항 관계에 있는 탓에 일본은 '거대한 자위력' 과 '예외적인 평화 번영' 을 동시에 소유하게 된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되었던 것에서 비롯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얘기하던 것이라서 여러분께서는 식상하시겠지만, 두 가지 대립하는 능력이나 자질이 갈등을 통해 동시적으로 향상되는 것을 무도에서는 '주츠術' 라고 한다. '계속적인 평화' 와 '자위력의 향상' 을 동시에 달성하고자 한다면, 이 둘을 '갈등의 관계' 로 두는 게 최선의 선택이다.

    평화헌법과 자위대가 모순적으로 대립•갈등한다는 사고방식은 <헌법 9조, 어떻게 할까요> 에서도 쓴 바와 같이, 2차 대전 이후 일본인이 몸소 택한 '병리적 양태' 이다.

    진정한 대립 갈등은 미일 관계에 있다.

    평화헌법은 미국이 일본을 '군사적 무력화' 하기 위해 채운 '족쇄' 인 동시에, 자위대는 미국이 일본을 '군사적 실용화' 하기 위해 부여한 '무기' 이다. 일본은 미군정이 패전국 국민에게 '강요한' 이 두 제도로 인해 '미국에게 군사적으로 무해함과 동시에 쓸모가 있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한다는 문맥에 입각해 말하면, 여기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
    그러나, '아무런 모순도 없다' 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곧바로 '일본은 미국의 군사적 속국임' 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은 파멸적 패배를 맛본 일본인조차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이었다.
    그래서 일본인은 '미쳐버리게' 되었다.
    견디기 힘든 현실로부터 도피하고자 할 때, 인간은 미친다.

    그것은 '평화헌법과 자위대는 양립하기 힘든 모순이라, 여기에 2차 대전 이후 생겨난 모든 불행의 원인이 있다' 는 '거짓' 을 믿는 형태로 나타난다.
    호헌파와 개헌파 모두 그것을 믿었다.
    따라서 국민적 규모로 일구어낸 꾀병이 '55년 체제' 이다.

    원래 존재할 리 없는 평화헌법과 자위대라는 갈등에 고뇌하는 모습으로 불가사의한 병적 상태를 꾸미는 일을 통해, 일본인은 그 '질병 이득' 으로써 세계사상 유례 없는 평화와 번영을 손에 넣은 것이다.

    필자가 패전 이후 일본이 평화헌법과 자위대의 '갈등' 을 통해 국력을 순조롭게 성장시켜 온 프로세스를 '세계 정치사상 보기 드문 교활한 정치적 책략' 이라고 평하는 것은 이상의 이유로 인함이다.

    개헌파와 호헌파가 모두 놓치고 있는 것은 정치사적 지식이나 지정학적 통찰이 아니다. 우리들이 오랫동안 '허상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암묵적 지식을 정치과정에 적용하는 식으로 작동하는 보이지 않으면서도 기이한 습관이다.

    (2021-05-03 13:2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5/03_13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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