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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리의 예술론> 서문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5. 9. 12:24

    곧 있으면 세이겐샤라는 출판사에서 <거리의 예술론> 이라는 컴필레이션 책이 나온다. 이 책의 '프롤로그' 를 채록해 둔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타츠루입니다.

    이번에는 <길거리의 예술론> 입니다. '있던 것' 을 편집해 놓은 책입니다. '예술론' 이라는 카테고리를 정해놓고 이제까지 써 놓은 것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엮자는 아이디어는 편집자 요시다 유스케 씨가 제안했습니다. 이제까지 문학론, 영화론 등의 장르로는 책을 몇 권 냈습니다만, '예술' 이라는 주제로 책을 만든 것은 처음입니다. '이런 종류의 원고 더 없을까요' 라는 요청을 받고서 나도 컴퓨터 밑바닥을 열심히 찾아 헤매, 몇 개나마 옛날 원고들을 그러모아 보냈습니다만 이 책은 대체로 요시다 씨가 자신의 감각을 발휘해 꾸며 놓은 것입니다.

    덕분에, 이제껏 단행본으로 발표되지 않았던 글들을 여럿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음악에 관해 썼던 것들은 모두 발행부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 매체에 기고했던 것이었기 때문에, 도서의 형식으로 남길 수 있게 된 것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단행본이라는 것은 글쓴이가 제공한 '소재' 를 가지고 편집자가 '요리' 한 협력 작업입니다. 식자재가 아무리 듬뿍 있더라도, 요리사가 솜씨 좋게 썰고 베어내 굽고 끓여야 하는 법이지, 손질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 식탁에 올릴 수는 없습니다. 본서를 구성하고 있는 텍스트 선별과 배치는 아마 내가 했다면 절대 생각지도 못할 것이었습니다. 오리지널한 '요리' 를 창작해 주신 편집자 요시다 씨께 우선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자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 책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는 비교적 원리적인(딱딱한) 담론에서 출발해, 문학, 영화, 애니메이션 등으로 점점 화제가 물러져서, 마지막에는 팝에 관한 상당히 개인적인 에세이로 끝나는 구성을 하고 있습니다. '겉은 전병, 그 다음은 카스텔라와 팥소가 뒤따르고, 맨 안쪽에는 휘핑 크림' 같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자 여러분께서는 자신의 기호에 맞게 읽고 싶으신 부분부터 읽게 되는 구조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고유명사를 손에 꼽아보자면 오즈 야스지로, 미야자키 하야오, 미시마 유키오, 무라카미 하루키, 오타키 에이이치(포크록 밴드 '해피엔드' 멤버 -옮긴이), 캐럴 킹, 비틀즈, 비치보이즈 같은 위인들입니다. 작가주의 감독, 소설가, 뮤지션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내가 개인적으로 편애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들을 논할때 취하는 스탠스는 학자로서 그리 하는 게 아니고, 비평가로서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일개 팬으로서입니다.

    일개 팬으로서 살짜기 독자 앞에 서고자 하는 게 이 책의 저자인 내 입장입니다.
    고등학생 때, '이거 빌려줄테니 들어 봐. 은근히 괜찮다구' 라며 가방 속에서 새로 나온 LP 판을 주섬주섬 꺼내드는 친구가 여러분께도 분명 있었을 겁니다. (아날로그 음반이란 것이 좀체 오리무중인 시대에 태어난 분들도 '그랬던 시대' 고등학생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과 비슷합니다.

    그런 상황에 처한 팬의 변설은 독특한 것이지요. 어쨌든, 상대방에게 '듣고 싶어지게' 만들어줘야만 합니다. 그런데, 강요하는 것처럼 굴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억지로 떠안기면 도리어 역효과가 나니까요. 밀어주되 무리하게 오버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게 어려운 일입니다. 지나치리만치 추천해주면, 그 작품과의 만남은 누군가에게 조종당한 것이 되어서, 우연히 만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언가를 정말로 좋아하게 되려면, 우연히 만났다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우연한 눈마주침이었지만 후에 떠올려보니 숙명적인 만남이었다... 는 '스토리' 가 중요한 겁니다.

    책이 그렇지요. 서점에서 서가 사이를 멍하니 걷고 있다가, 한 권의 책과 '눈이 마주칩니다'. 제목의 운율이 될 수도 있고, 표지의 배색일 수도 있는, 내용물과 상관 없는 그런 부분에 뭔가 끌리는 데가 있어서 손에 듭니다.

    신문의 서평이 절찬해서라든가, 친구들이 강력 추천해서 읽은 경우, '자기 자신이 찾아낸 책' 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것이 아니면, 그다지 '숙명적인 만남' 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남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될 수 있는 한, 그것과 만날 사람에게도 '숙명적' 인 것을 경험케 하고 싶습니다. '그 양반이 하도 시끄럽게 떠드는 통에 안 볼수가 없었지 뭐야' 같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 건 싫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 사람의 all time best 리스트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는 '자기가 발견한 것' 만이 들어가야 하는 거니까요. 나도 그건 좀 그렇습니다.

    팬이라는 것은 '팬을 늘리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는 자' 인 것입니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정의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죠, 상당히 그럴싸한 정의같지 않나요. 팬은 팬을 늘리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는 자. 그리하여, 팬의 가장 화급한 임무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에게 '이것은 숙명적인 만남' 이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담백하게 프리젠테이션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렇게 '수줍게 말을 거는 일' 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떠미는 것처럼 보이면 실패' 라고 위에서 썼습니다만, '부루퉁해 터져 있는 것도 금물' 이니까요. 종종 너무 파고든 나머지 엄숙해져서 '이 작품과 작가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거의 없으리로다. 상관없다. 나의 죽음과 함께 이 작품의 동반자는 지구상에서 소멸한다. 그래도 괜찮다. 범용한 무리들은 결코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법이다...' 한숨 쉬듯 비관하는(그리고 건방을 떠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나는 그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가능한 한 자신의 죽음을 대비해, 이 작품의 진가를 전수받을 수 있는 후계자의 대를 잇게 하려는 마음가짐이 진실된 의미에서의 '팬' 이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는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으며 여기에 언급된 창작자들의 이름을 처음 접한 사람이 '그렇게 좋다니 한번 읽어(관람/청음해)나 볼까' 는 마음이 든다면, 그것으로 이 책을 낸 보람이 있겠습니다.

    2021년 5월

    (2021-05-03 14:16)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5/03_14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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