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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유가쿠엔 창립 100주년에 부쳐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 3. 14:28
지유가쿠엔[自由学園] 창립 10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지유가쿠엔 교육활동의 매력에 관해 뭐라도 코멘트를 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기에 떠오르는 것들을 써 보고자 합니다.
내가 지유가쿠엔을 찾은 것은 한 번 뿐입니다. 그때 학원장 선생께 지유가쿠엔의 연혁 내지는 교육 이념을 여쭈어보고, 구내를 안내받으며 건물을 하나하나 걸어보고, 학생들과 점심을 같이 먹은 뒤에 고등학생들 앞에서 짧은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는 지유가쿠엔의 '매력' 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았습니다(그냥 한 번 본 것 만으로는 알 수 없으니까요). 그보다는 이런 전통 있는 교육기관에서 배운다는 것의 예외적인 이점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때의 연설을 떠올리며 다시금 써 보는 것으로써 축하의 말씀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교정을 돌아본 뒤에 알게 되었지만, 지유가쿠엔에는 수많은 전통과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어른이라면 의미를 알 수 있지만, 학생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그게 이곳의 가장 소중한 교육적 '자산'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리는데, '자신으로서는 그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규정이니까' 라는 이유로 비판을 삼가며 따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무의미하다고 만약 생각한다면, '무의미하잖아' 라고 일단 뻗대보아 주십시오.
'대들지 않는' 아이들, 협조성과 순응성이 높은 아이들은 어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여러분은 '대들지 않는 아이들' 이 되지 말아 주십시오. 우선 '이해가 안 됩니다' 라고 투덜거려 보세요. 그리고,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 규칙에는 깊은 의미가 있는 거다' 라고 어른이 대답한다면(분명 그럴 겁니다), 우선 그 '깊은 의미' 가 무엇인지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우선 스스로 생각해보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한 겁니다. 선생님들이나 어른들이 '그건 말야...' 라며 설교하려고 할 때, 말을 막으면서 '잠깐만요. 말씀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생각해 볼 테니까요' 라고 말해보십시오.
자기 눈에는 무의미한 인습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그 뒤에는 깊은 지혜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그렇게 가설을 세워보는 겁니다.
이건 진짜로 귀중한 지성 작동법입니다. 얼핏 보아 랜덤하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 정연한 질서가 있다는 것을 직관하는 것이 지성활동의 출발점입니다. '거의 모든 지성활동' 이라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 점에서는 과학적 지성도 종교적 지성도 기반이 같습니다. 그리고, 아마 지유가쿠엔은 그 두 종류의 지성을 개발하는 것을 교육 목적으로 내걸고 있을 터입니다. 나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과학적 지성은 언뜻 무작위하게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현상의 배후에 정연한 수리적 질서가 있다고 직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종교적 지성은 언뜻 무작위하게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삼라만상의 배후에 있는 '신의 섭리' 를 직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탁월한 과학자는 동시에 깊은 신앙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성의 작동은 반드시 이 직감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랜덤하게 보이는 것은 결국 랜덤한 것이다' 라는 단정은 얼핏 보면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지성적으로는 성장을 멈춘 것입니다.
거듭 부탁드립니다만 이곳이 정한 규칙이나 제도에 대해, '무의미하구만' 하고 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정해진 것' 이라는 이유로 무비판적으로 따라서는 안 됩니다. 그러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무의미 내성이 높다' 고 부릅니다. 그런 학생들은 어른들에게 칭찬을 듣습니다. 무의미한 공부여도 참으면서 하니까 아마 성적도 좋을 거예요. 근데, 그 대가로 엄청난 것을 잃고 맙니다.
그 어떤 무의미한 인습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는 제도를 막 설계하던 시점만큼은 그때의 '옳음' 을 추구했을 뿐입니다. 처음부터 학생들을 괴롭히려고 제도설계한 교육자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옳음' 을 목표로 한 제도나 규칙이 어느샌가 형해화•타성화하고 말아서, 애초의 목적을 찾을 수 없게 되는 경우는 자주(상당히 자주) 생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께서는 '이딴 건 무의미하잖아?' 라는 의문으로부터 출발해 '무의미하므로 얼른 폐지하자' 는 급한 결론으로 도약하지 말아주시기를 나는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들의 모습은 그 시작점에 있어서만큼은 어떤 <나은 것> 을 실현하고자 계획되었는가?' 묻기를 바라요. 그것이 '무의미하게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 있는 질서' 를 탐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비로소 지성이 살아 움직입니다.
원리원칙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것들 제도의 발생 시점에서는 그것이 어떤 '좋은 것' 을 위해 설계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그 다음 작업은 그것과 똑같은 '좋은 것' 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 통용되는 이성적 이유로도 할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임무입니다.
정해진 것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것은 사고 정지입니다. 그런데, 무의미하므로 당장 폐지하자는 것도 다른 의미의 사고 정지입니다. 그보다는 이 학교를 만든 사람들이 무엇을 실현시키고자 '이런 것' 을 규칙으로 삼았는가, '이런' 제도를 떠올렸는가,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학풍을 창건한 옛 사람들이 '완수하려고 했던 것' 을 자력으로, 될 수 있는 한 지금 여기서, 만들어 보았으면 합니다.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한' 입니다. '지금 여기서' 가 아니어도 됩니다.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곳이 아닌 장소여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지성과 감정을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소중한 방도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습으로 반복해 '전통을 다시금 활성화하는' 것, 때때로 꺼져 가는 불꽃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것이야말로 지유가쿠엔같이 긴 전통을 자랑하는 교육기관에서 배우는 여러분의 의무임과 동시에 권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성장을 간절히 빕니다. 용맹정진하십시오.
(2020-12-29 13:09)
출처: http://blog.tatsuru.com/2020/12/29_1309.html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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