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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대통령 선거를 총결산함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 19. 19:17

    어느 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해 결산적 코멘트를 했다. 이야기하지 못한 부분이 조금 있어서 그것을 가필해 전반만 채록해 둔다.


    당선 확정 후, 바이든은 자신에게 투표하지 않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도 한결같은 배려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사람은 7380만 명. 부동표를 제외하더라도 트럼프의 핵심 지지자가 지금도 미국 안에는 수천만 명 있다는 얘기입니다. 바이든은 그들의 입장이나 요구도 배려하며 통치해 나가야만 합니다. 곤란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미국 사회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바람직한가를 말함에 있어서, 그 '아이디어' 가 현재의 국민적 분단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것을 '자유' 와 '평등' 의 어느 쪽을 미국의 본질적인 이념으로 내걸 것인가, 그 선택의 차이에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해 조금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첫째로 확인해 두고 싶은 것은, 애초에 미국의 건국이념이 가장 중시한 것은 시민적 자유이지, 시민의 평등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독립선언문에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에 의해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권리 등을 빼앗기지 않을 권리를 부여받았다' 고 쓰여져 있습니다. 잘 읽어보면 알 수 있지만, 평등이라는 것은 자연권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미합중국의 공권력은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권리' 에 대해서만큼은 국민에게 그것을 보장해야 하지만, 평등의 실현은 꼭 정부의 책무가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787년 제정된 헌법에도, 그 수정 조항(소위 '권리장전') 에도, '자유를 보장함' 은 거듭 확인해 두고 있으나, '평등을 달성한다' 는 문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은 자유의 획득을 '인간의 일' 이라고 생각하지만, 평등의 달성은 '하느님의 일' 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은 창조주에 의해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한 명 한 명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각자의 개성과 창의성을 연마해 나가며 경쟁하고, 그 결과 사회적 격차가 생겨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조금도 나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회에 있어서 '사회적 평등' 이란 어디까지나 개인이 시민적 자유를 행사하는 것을 막지 않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전체의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통치이념이므로, 자유와 평등은 각자의 그 자리매김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 인간들에게 있어 우선순위가 정말이지 서로 다른 것, 그것을 확실히 해 두지 않는다면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민적 분단의 이유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미국에서 일어나는 국민적 분단은 항상 '자유' 와 '평등' 어느 쪽을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지극히 원리적인 대립 구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독립선언이 선포되고 나서 노예 해방령까지 80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공민권법 제정까지는 100년이라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럼에도 인종차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M)라고 하는 운동은 평등이 실현되지 않은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건국 이래 250년이 지나도 시민적 평등이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은, 평등의 실현은 미국 건국의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다수의 시민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평등의 실현은 공권력이 부유층이나 권력자에 대해 강권적으로 개입해 그들의 재산이나 권력의 일부를 거둬들여 그것을 가난한 자나 약자에게 재분배하는 모양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유를 최우선시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을 통해 획득한 재산이나 권력을 무엇이 아쉬워서 노력도 하지 않고 재능도 없는 인간들에게 나누어 주어야만 하는가. 그것은 건국이념이 지향하는 시민적 자유의 침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야말로 미국의 건국이념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여깁니다.

    미국에 공교육이 도입될 때에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시행했을 때에도, 오바마 대통령의 오바마케어가 제정되었을 때에도, 항상 '그것은 사회주의다' '반 미국적' 이라는 등의 격렬한 비판이 우파로부터 제기되었습니다. 공권력이 개입해 평등을 실현하는 것은 '틀린 일이다' 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미국에는 그처럼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국 시민들은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해서, 만약 감염증을 억제하고 싶다면 전국민이 똑같이 양질의 의료를 받을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하는 것 외에는 손 쓸 방도가 없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 터입니다. 그렇지만, 이유는 납득하더라도 몸이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미국이 오랫동안 '의료는 상품' 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는 자는 양질의 의료를 받을 수 있다. 돈이 없는 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그것이 '페어' 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어왔습니다. 의료는 부동산이나 자동차와 보석과 같은 '고액의 상품' 이라고 말입니다. 그 값나가는 물건들을 '원한다' 고는 하지만 수중의 돈이 부족하니까 그 차액을 세금으로 보전해 달라는 말을 꺼내면 주위 사람들이 화를 내겠지요. 그런 것은 자신의 돈으로 사라고 말입니다.

    어떤 미국인들은 의료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진료를 받아 병이 낫고 몸이 건강해졌다면, 의료는 당신의 자기이익을 증대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의료혜택을 받고 싶다면 자신의 돈을 들여야 하는 것이지 타인의 돈을 탐내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일갈합니다.

    분명히 일반적인 질병이라면 그 이유가 통합니다. 그런데 감염증은 다릅니다.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입원한 환자에게 퇴원 후 천만 엔을 청구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의료에 종사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은 일상다반사라는 모양입니다. 미국에는 지금 무보험자가 2750만 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설령 감염 의심이 들어도 돈 문제 때문에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감염되어도 격리조치도 치료도 행해지지 않은 채 방치됩니다. 그 그룹이 언제까지고 감염원으로서 사회에 남아있게 됩니다.

    누구도 경제적인 불안감을 느끼지 않은 채 진료를 볼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하지 않는 한, 감염은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의료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편, 감염자수와 사망자 수도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물론, 빌 게이츠같이 사재를 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빌 게이츠의 자유의지에 기반한 행위인고로, 그가 부유층에게 '당신들도 기부하도록 하시오' 라고 명령할 권리는 없습니다. 재분배는 공권력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의 자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상식입니다. 확실히, 재단이라든지 교회를 통해 행해지는 자선 활동은 스케일이 엄청난 규모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평등의 실현을 위해 사재를 턴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일' 이라고 간주되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저 정도로 지지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참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 과도 같이 자기연출하여, 거기에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사회적 평등의 실현과 궁합이 나쁩니다.

    그다지 알려져있지 않지만, 미국은 19세기 말까지는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우선 1848년에 유럽 각지에서 시민 혁명이 실패하자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이 조국의 권력기관으로부터 받는 탄압을 피해서, 미국이나 호주로 이민한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들은 '48년 세대(forty-eighters)' 라고 불렸습니다. 다른 이민자들과는 다르게, 많은 수가 고학력자였고, 전문직에 종사했으며, 그리고 그에 걸맞는 돈을 갖고 이민을 갔습니다. 그러므로 이민한 곳에서도 커뮤니티를 세우고, 곧장 여러가지 사업을 일으켜 성공했습니다. 애초에 리버럴이자 인권파였기 때문에, 당연히 링컨의 노예 해방 정책을 열렬히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시작되자 많은 수가 의용군으로서 북군에 몸을 던져 싸웠습니다.

    이제까지 내가 여기저기에 쓴 바가 있지만, 칼 마르크스가 뉴욕에서 독일어로 발간되는 잡지 '혁명' 에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을 기고한 것은, 1852년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읽은 '뉴욕 데일리 트리뷴' 지의 오너가 마르크스에게 '런던 특파원' 자격을 청탁했습니다. 생활에 쪼들리던 마르크스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이후 10년에 걸쳐 400 꼭지 이상의 기사를 써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개는 익명으로 '트리뷴' 지 사설로 게재되었습니다. '트리뷴' 지는 뉴욕의 인구가 50만 명이었던 당시에 발행부수 20만 부를 자랑하는 거대 메이저 언론이었습니다. '트리뷴' 지를 통해 뉴욕의 지식인들은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10년 간 거의 열흘에 한 꼭지 정도의 페이스로 마르크스가 쓴 정치경제 분석기사를 읽어나갔습니다. 마르크스는 영국의 인도 지배, 아편전쟁, 미국의 노예제 등 동시대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 왕성한 집필을 이어나갔습니다. 남북전쟁 전 북부의 정치적 견해 형성에 마르크스가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것입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 정치 조직 '뉴욕 커뮤니스트 클럽' 이 창건된 것은 1857년입니다. 73년에는 제 1인터내셔널 본부가 런던에서 뉴욕으로 이전했습니다.

    결국, 남북전쟁을 전후한 30년 동안의 시기가 갖는 의미는 미국이 언론적인 면에서도, 조직이나 운동의 면에서도, 사회주의의 세계적 센터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최우선 과제는 '평등의 실현' 입니다. 계급격차의 철폐, 인종차별의 철폐, 그리고 남녀평등의 실현이 미국 사회주의의 슬로건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1880~90년대 미국에서 가장 빨리 사회적 평등이 실현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는 1870년대에 칼로 벤 것처럼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사상적, 조직적 진화가 멈췄습니다. '아메리칸 드림' 때문입니다.

    1862년에, 링컨에 의해 홈스테드 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국유지에 5년간 정주해 영농한 자에게는 160 에이커의 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법률입니다. 이 법률 덕분에 유럽에서 소작농이나 임금 노동자였던 사람들이 자영농이 될 찬스를 노리고 미국에 쇄도했습니다. 이로써 미국의 서부 개척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1848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이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한 몫' 잡고자 서부로 향했습니다. 1901년에는 스핀들탑에서 석유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미국의 대지에는 무진장의 천연자원이 매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회가 맞아 떨어져 극빈 노동자가 하룻밤 사이에 부호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 시대를 '금이 번쩍거리는 시대(the Glided Age) 라고 부릅니다. '철도왕' 이라든지 '석유왕' 이라든지 '철강왕' 이라든지 '신문왕' 등이 잇따라 등장한 것이 이때입니다. 어제까지 자기 옆에서 함께 일하던 가난한 노동자가 자신의 수완과 행운만으로 '왕' 처럼 궁전에서 호사의 극치를 누립니다. 그런 실제 사례를 지켜보면서, '족쇄 이외에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프롤레타리아' 를 조직해, 고용주와 싸워 고용조건을 개선시키는 것 등의 '피땀 흘리는 투쟁' 에 질려버리는 노동자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을 꿈 속으로 향하게 한 '아메리칸 드림' 탓에 미국의 사회주의 노동 운동은, 손 쓸 도리 없이 단기간에 도넛처럼 가운데가 뻥 뚫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인 트럼프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샌더스와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은, '금이 반짝거리는 시대' 의 드라마를 재연한다는 의미에서 정말로 흥미 깊은 광경인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브뤼메르 18일> 에서, 정말이지 인간들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려고 할라치면 '과거의 망령' 을 불러들여 과거의 '슬로건이나 복식을 착용' 한다고 썼습니다. 참으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다를 바 없이 미국인들은 머나먼 과거에 누군가가 이미 써먹은 대사를 되풀이해 읊어나가면서, 낡은 옷의 먼지를 털고자 손을 놀리고 있는 것입니다.

    (2020-12-30 17:10)

    출처: http://blog.tatsuru.com/2020/12/30_1710.html

    アメリカ大統領選を総括する - 内田樹の研究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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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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