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시민사회와 커먼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1. 1. 26. 18:51

    1월 11일에 고베국제회관에서 강연회가 있었다(시젠하 협동조합•헌법연락회 주최). 거기서 제목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1월 6일,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해, 5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13일, 하원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습니다. 두 번이나 탄핵소추당한 것은 미국 역사상 트럼프가 처음입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번 대통령선거를 부정선거로 '도둑맞았다' 라면서 바이든의 승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이전에 열린 집회에서 사람들에게 '다같이 국회에 가자' 고 부채질했습니다. 트럼프 자신도 행진에 가담하려던 모양이었지만, 측근들이 보안을 이유로 저지했다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일본이었다면 총리가 시민들을 부추겨 국회를 습격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겠지만, 미국은 그런 일이 일어날 만한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미국에서 '시민적 자유' 가 갖는 의미가 일본과는 참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념 위에 구축된 인공국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소련이나 이스라엘과 비슷합니다. 보통, 국민국가라는 것은 긴 시간을 거쳐 차차 모습을 갖춰 나가기 마련입니다. 언어나 종교, 생활문화를 공유하는 동질성 높은 국민들이 모여서 비로소 국민국가가 형성됩니다. 적어도 '그런 이야기' 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다릅니다. 본국인 영국에서 피난해 온 과격한 프로테스탄트들이 '성경에 기초한 이상사회' 를 신대륙에 세우고자 만든 식민지입니다.

    독립전쟁 당시 1776년에 '독립선언' 이 나왔고, 그 11년 후인 1787년에 '미합중국 헌법' 이 제정되었습니다. 이 기간 사이에 미합중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까에 대한 문제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13개 주 각자가 강한 독립성을 가지며 연방정부의 권력을 한정적인 것에 그치게 할지, 아니면 연방정부에 권력을 집중해 주 정부의 권한을 억누를 것인지. '강력한 주 정부' 를 주장하는 분리파와 '강력한 연방정부' 를 주장하는 연방파가 맞붙었습니다. 그런데, 결론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헌법은 양쪽의 주장을 채용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대통령 선거에서의 선거인단과 같은, 미국 밖에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제도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당시 타협의 결과 나온 산물입니다.

    상비군을 둘 것인가 말 것인가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분리파는 연방정부가 군을 점유해 주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한편 연방파는 연방정부의 지휘 아래 강고한 상비군을 정비해야만 타국으로부터의 침략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렇지만,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군이 국왕의 사병으로서 식민지 시민에게 총을 겨눈 고통을 독립전쟁 때 몸소 맛보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미국 헌법에는 제 8조 12항에 '육군에 대한 예산은 2년을 넘기지 않는다' 라는 규정이 들어갔습니다. 말하자면, 국난적 상황에 조우하게 되면 무장한 시민이 모여 군을 편성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위기적 사태가 종결되면 군은 해산하고 시민들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갑니다. 상비군을 갖지 않는다고 정한 것입니다. 실제로 식민지 사람들은 독립전쟁 때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싸워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방식을 '틀렸다' 고 마무리지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장한 시민' 이 건국한 나라라는 이야기를 온존시키게 된 것입니다.

    독립선언은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창조주로부터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를 포함한 불가침의 권리를 부여받았다' 라고 명문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이들 목적에 반하게 되었을 때, 인민에게는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새로운 정부를 수립' 할 권리가 있다고 명기되어 있습니다. 시민에게는 무장권, 저항권, 혁명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11년 후에 기초된 미합중국 헌법에는 이미 그런 문언이 없어져 있었습니다.

    수정 헌법 제 1조에는 종교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와 함께 '국민이 평온하게 집회를 가질 권리 또는 고통의 제거를 정부에 청원할 권리' 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평온하게(peacefully)' 라는 부사가 삽입되어 있습니다.

    저항권과 혁명권 명기를 꺼려했던 쪽은, 연방정부에 강대한 권력을 부여하지 않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연방파 사람들이었습니다. 확실히 독립전쟁은 위대한 실천이자 미국 시민의 자랑거리이지만, 똑같은 무장시민에 의한 정부의 폐지를 '불필요하게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더 페더럴리스트>) 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상당히 불명료한 서술 방식이지만, 요약하자면 원리적으로 혁명권은 부여되지만, 그것을 남용해 다소 무리한 짓은 하지 말아 주었으면 했던 것입니다.

    미국은 건국 때부터 통치이념 가운데 '통치 권력은 잠정적인 것이며, 시민이 불합리하다고 여길 때는 폐지, 변경이 가능하다' 라는 원칙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는 '시민으로서의 자신이 납득할 수 없는 정부에 따를 필요는 없다' 라는 사고방식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리버테리언' 이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것은 정부의 이해보다도 시민 개인의 이해를 우선하고자 하는 입장입니다. 일본에서였다면 곧장 '비국민' 소리를 들을 얘기지만, 미국에서는 건국이념 가운데 그런 사고방식이 정통적인 것으로써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럼프는 전형적인 리버테리언입니다. 리버테리언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유' 입니다. 공권력이 개입해 자신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규제해오는 것에 철저하게 저항합니다. 그러므로, 리버테리언은 징병에 응하지 않고,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지킵니다. 정부에게 보호를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군대에 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돈을 어떻게 쓸지는 자신이 결정합니다. 정부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대신, 경제적으로 얼마나 곤궁해지든 공적 지원을 바라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징병을 4회 기피했고, 2016년 대통령 선거 때는 연방세를 내지 않은 것이 폭로되었습니다만, 아무 문제 없다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리버테리언적인 삶의 방식 가운데 '리얼 어메리칸' 적인 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국회에 난입한 것에 대해 그들 자신이 딱히 위법을 행했다는 인식이 없었던 것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 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고 그들이 주관적으로는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건국 이래, 통치원리 그 자체 가운데 어떤 종류의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그것은 연방파와 분리파의 대립이기도 하고, 리버테리어니즘(자유원리주의) 과 커뮤니테리어니즘(공동체원리주의) 의 대립이기도 한데, 통치 원리로 말하자면 자유와 평등의 대립입니다. 그것이 겉모습을 바꾸며 반복되고 있습니다.

    근대 시민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 은 병렬적인 개념처럼 취급되고 있습니다만 잘 생각해보면, 자유와 평등은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습니다. 오로지 자유만을 추구하면 평등의 실현은 멀어지고, 오로지 평등만을 추구하면 개인의 자유에 지장을 줍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가 데모크러시를 도입하고 난 뒤 몇 백년이 지나도록 아직 데모크러시의 위기를 반복해 조우하고 있는 것은, 데모크러시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정치체제이기 때문인데, 그것은 데모크러시의 근본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 이 실은 대단히 상성이 나쁘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우선하면 평등이 희생되고, 평등을 우선하면 자유가 희생됩니다. 거대한 공권력이 존재해 시민생활에 강권적으로 개입하면 자유가 억압받습니다. 그런데, 공권력이 사적 권리를 제한해 사유물의 일부를 거두어 공공재를 윤택히 해 그것을 약한 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구조를 세우지 않으면 평등은 실현되지 않습니다. 자유주의자는 '작은 정부' 를 지향하고, 평등주의자는 '큰 정부' 를 지향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도 한쪽 측면에서 보면 자유인가 평등인가를 선택하는 전쟁이었습니다. 정책적으로 가장 대립했던 것은 노예제도 폐지입니다. 링컨은 인종차별을 폐해 인종간의 평등을 실현하고자 했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종간의 평등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대립하는 정부가 그들을 군사적으로 압도해 제도를 강제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부연합의 '자유' 를 존중해준다면 노예제 철폐가 가져다주는 '평등' 을 실현시킬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노예제 자지자들 측에도 대의명분이 있었습니다. '독립선언문' 에는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며, 창조주에 의해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권리를 불가침의 권리로 부여받았다' 고 쓰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는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자유경쟁입니다.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어떤 자는 강자가 되고, 어떤 자는 패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승자와 패자, 강자와 약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는, 애초에 평등하게 창조된 인간들이 태어나고 난 뒤에 인간적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평등의 실현은 하느님 영역의 일이지, 인간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거기에 공권력이 개입해 무리하게 평등을 실현시키는 것은, 인간의 처지에 감히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입니다. 리버테리언은 이런 식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이 강제적으로 평등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합니다. 노력하지 않았던 인간, 재능이 없었던 인간을 공권력이 세금을 써서 구제해주는 것을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리버테리언들은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은 강자이며, 평등을 추구하는 인간은 약자다' 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강자가 될 기회를 노려야만 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 사상가 중에는 유대인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은 19세기 혹은 20세기 초에 러시아•동유럽의 반유대주의 폭력을 피해 미국으로 대거 이주했습니다. 그런데, 신대륙에서도 그들은 별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먼저 정착한 이주 집단으로부터 배척받아 격렬한 차별을 견뎌야 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 산업 분야에는 얼씬조차 하지 못하게 된 유대인들은 마땅한 취직 자리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들은 금융과 언론, 흥행산업 등의 아주 새로운 틈새시장을 개발했습니다. 자신들이 고용을 창출하지 않는 이상 벌어먹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일구어 낸 세 종류의 산업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비즈니스 분야가 되었습니다.

    유대계 이민 1세대가 각고의 노력을 통해 돈을 번 뒤 그들의 자녀 세대에게는 고등교육을 받게 해, 이민사회는 사회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차별 상황에서 겨우 벗어나는 사회적 경험을 쌓아본 유대인들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 종종 냉담한 태도를 보입니다. 어째서 너희들은 우리들처럼 노력하지 않느냐, 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리도 지독하게 차별받고 우리에게 행해지는 폭력을 감수해야 했다. 그런데도 필사적으로 노력해 이렇게 보란듯 차별을 뛰어넘어 사회적 위신을 획득했다. 흑인이 아직도 차별받는 것은 노력 부족 탓이다. 그런 논리입니다. 평등을 실현시키고자 한다면 공권력을 끌어들이지 말고 자신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해 보라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펼치는 것은 상당히 곤란한 일입니다.

    미국에서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 확산세는 멈추지 않습니다. 확진자가 2400만 명이고, 작년 말까지 사망자는 35만 명인데, 이 숫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사망자 수를 이미 넘긴 것으로서 세계 최악의 기록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왜 미국은 이 정도까지 팬데믹이 창궐했는가. 그것은 의료를 받을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이 미국에서는 개인에 자유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는 고가의 상품입니다. 돈을 내고 사야 합니다. 그러므로 돈이 있으면 진료받을 수 있습니다. 그 역도 성립합니다. 심플 그 자체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쓰여진 '히포크라테스 선서' 1조에는 '의사는 환자가 자유 시민이든 노예든 그 신분에 상관 없이 동등한 의술을 베풀어야 한다' 는 내용이 있습니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료에 대한 올바른 사고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선서를 실현시키기 위해 인류는, 될 수 있는 한 값싸고 효율적인 의료법을 개발해 왔고, 뛰어난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의학 교육 제도를 정비했으며, 가난한 사람도 의료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보험 제도를 발명했습니다. 만약, 고대 그리스 시절에 의료는 부자만 받을 수 있고, 빈자는 받지 못하고 죽어야 한다는 심플하면서도 비정한 룰을 채용했다면, 이후의 의학은 진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의료는 평등' 하다는 사고방식은 아직도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국민 의료보험 도입도 시도할 때마다 좌초되었습니다. 지금, 미국에는 보험이 없는 사람들이 2750만 명 있습니다. 그들은 코로나에 감염되어도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중증환자 시설을 이용하려면 하루에 1000달러 정도 내야 하기 때문에, 몇 주 입원하면 청구액은 곧장 수백만 엔이라는 값이 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팬데믹은 주민 전원이 동일하게 양질의 의료조치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는 한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컨트롤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제도가 필요하다는 사고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 국민이 수천만 명 단위로 존재합니다. 이제부터 새로운 바이든 행정부가 감염억제를 위해 의료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려고 해도, 국민적 합의를 얻기는 힘들 것입니다.

    평등을 실현시키는 것은 '공공' 입니다. 현대 사회에 계층격차가 확대되고, 일부 초 부유층에 부가 편중되게 된 것은, 참으로 신 '자유' 주의의 성과입니다. 개인의 재산은 신성하니, 공권력이 손을 대서는 안 된다, 부유층의 재산을 징발해 빈자에게 재분배하는 것은 자유의 침해라고 하는 미국적인 사고방식이 세계에 확산되었습니다.

    이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자유를 억제하고 평등을 실현시키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회 가운데 공공적인 영역을 넓혀, 거기에 풍부한 공공재를 축적해, 공동적으로 관리하고, 적절히 분배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으로밖에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공공재를 관리하고, 공동 사용하는 촌락 공동체가 존재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촌락 공동체가 공동 소유하는 공유지를 '커먼(common)' 이라고 불렀습니다. 커먼에서 마을 사람들은 목축을 하고, 열매나 버섯을 채취하고, 물고기를 잡고, 새 사냥을 했습니다. 커먼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토지로부터 올릴 수 있는 수익은 적어졌습니다. 그 가운데, 토지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공유지를 폐하고, 이를 사유화하자는 생각이 나왔습니다. 모두가 공유하고 있어서 소출을 내자는 마음가짐이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유지가 된다면, 내 것이니만큼 눈에 불을 켜고 토지의 쓸모있는 활용 방안을 궁리하리라는 것입니다. 이제 토지에서 어떤 이익을 창출할 것인가 필사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영국에서 행해진 '울타리 치기' 란 '커먼의 사유화' 인 것입니다. 커먼은 처음에 업자에게 목양지로 팔렸으나, 19세기가 되어서는 농업자본가에게 대규모 농업용지로써 팔려나갔습니다. 이로 인해 농업혁명, 산업혁명이 실현되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으로는 커먼의 사유화가 역사적 필연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커먼을 잃은 농민들의 일부는 소작농으로 몰락하고, 일부는 이농해 도시빈민이 되어, 예전의 풍요로운 촌락 공동체가 소멸했습니다.

    커먼의 소멸에 의해 사라졌던 것은 공유지만이 아닙니다. '우리들' 이라는 일인칭 복수형 의식도 그 자체가 소멸했습니다. 그때까지 커먼을 공동소유하고 공동관리해 온 것은 '우리들' 이라는 일인칭 복수형이었습니다. '우리들' 이라는 인칭대명사가 고유한 리얼리티를 갖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가 공통의 언어, 종교, 제례의식, 식문화 등의 생활문화를 가지고서 인접한 공동체와 차별화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선조로부터 이어내려온 전통적인 생활기술이나 예능, 제례의식이나 식문화를 다음 세대에 확실히 전해주겠다는 사명이 촌락 공동체를 결속시켰습니다. '커먼의 소멸' 에 의해 사라진 것은, 단순한 공유지만이 아닙니다. 공공재를 공동관리할 수 있는 '주체' 그 자체가 그때 사라진 것입니다. '커먼의 소멸' 에 의해 예로부터 존재해 온 상호지원이나 호혜적인 공동체, 혈연•지연적 네트워크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공공재를 소유, 관리하고, 적절히 분배하며, 전원이 풍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술적 지식' 그 자체가 소멸했습니다.

    미국에서는 1840년대부터 홈스테드법이라는 법률이 단계적으로 정비되어, 국유지의 사유화가 국가적 스케일로 행해졌습니다. 이 조치는 국유지에 5년 동안 정착해 농경을 영위하면 160에이커의 땅을 무상으로 분배한다는 법률입니다. 누구든지 자영농이 될 수 있었기에 유럽에서 수백만 명씩 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민이 줄을 이어, 이로써 서부개척이 단숨에 진행되었습니다. 홈스테드법을 칼 마르크스는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것은 대규모 '울타리 치기' 였습니다. 국유지인 채로 내버려두면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 황무지를 사유화함으로써 '돈벌이' 도구로 바꿔버렸기 때문입니다. 홈스테드법으로 미국은 경이로운 인구 및 GDP 증가를 달성했습니다. 그런데, 당연합니다만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나눠줄 만한 국유지가 없어졌습니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유지화되었을 때 미국에서의 '울타리 치기' 가 끝났습니다. 분명히 그것은 토지의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경제적 효과 면에서는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만, '우리들' 의 공공재를 어떻게 공동 관리할 것인가 하는 스킬을 육성하는 데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했습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는 지금도 '코뮌(commune)' '코무네(commune)' 라는 기초자치단체가 남아있습니다. 십수만명에서 십수명까지 여러가지 규모입니다만, 행정단위로서의 지위는 모두 같습니다. 이것은 옛 가톨릭 교구에 기반한 구분입니다. 코뮌의 중심에 교회가 있고, 교회 앞에 광장이 있고, 광장을 바라보는 시청사가 있으며, 거기서는 시의회가 열리고, 시장이 선출됩니다. 이 구조는 어느 코뮌이든지 공통적입니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이 '우리들' 이라는 일인칭 복수형에 현실감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 크기는 상관 없습니다.

    이것은 공공재를 공동관리하는 주체로서의 '우리들' 을 제도적으로 기초지으려는 노력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초자치단체가 지향하는 바는 시민의 자유보다도 구성원 사이의 평등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생각합니다. 거기서는 공공재가 점하는 비율이 높을수록 그것을 재분배함으로써 시민간의 평등을 실현시키기에 좀 더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픙요로운 공공재가 있다면, 개인간에 얼만큼의 빈부와 권력의 차이가 발생하더라도, 공공재의 재분배를 통해 그것을 보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커먼' 이나 '코뮌' 혹은 '코무네' 를 현대사회에 한번 더 재생시키는 것이, 현대의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대해 유효한 해결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근대 시민 사회는 자유와 평등의 긴장관계 가운데 전개됩니다. 이 기본적 사실을 우선 받아들입시다. 자유인가 평등인가. 이것은 결론을 내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느 것 하나를 골라버리면, 데모크러시가 더는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데모크러시는 이 긴장상태 가운데에서만 살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자유인가 평등인가, 무엇인가를 선택해 이야기를 끝낼 수는 없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양쪽을 신경쓰지 않으면 데모크러시는 존립하지 않습니다. 데모크러시는 다루기 어려운 체제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보다 간단히 '데모크러시를 지키자' 고 하시지만, 데모크러시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묘한 저울추를 제어하는 것' 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현상이 가르쳐주는 것은, 자유의 과잉과 평등의 억제가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향후 당분간 자유를 억제하더라도 평등을 실현시키는 쪽으로 조금은 기울기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그것은 '정부에 권력을 집중시켜 개인의 자유를 억제하는 것' 그 자체를 선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유에 맡기고, 공공재를 빈약하게 방치한 탓에 사회적 격차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상태를 보정하기 위해서 앞으로 잠시동안만큼은 공공재를 두텁게 해서 재분배한다는 것에 대한 논의를 우선하는 게 좋겠다는 따름입니다. 개인의 재산이나 권력을 될 수 있는 한 억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지, 공공의 복지를 최우선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어느 한 쪽을 고르라는 원리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공과 사의 밸런스를 그때그때의 역사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고 하는 지극히 기술적인 이야기입니다.

    데모크러시는 다루기 어려운 체제입니다. 데모크러시는 집단 성원에게 시민적 성숙을 통해, 이 '적절한 균형' 을 이룩할 것을 요구합니다.

    데모크러시가 다른 모든 정치체제보다도 뛰어난 점은, 시민에게 '어른이 될 것' 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집단 성원에게 시민적 성숙이 수행적 과제로 부과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운동성과 개방성이 데모크러시를 영위하는 가장 큰 보람인 것입니다. 이것을 잘 숙고하여, 데모크러시를 운영하는 기술지를 차근차근 몸에 익혀가는 것이 우리 시민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2021-01-19 10:43)

    출처: http://blog.tatsuru.com/2021/01/19_1043.html

    저자 소개
    우치다 타츠루
    1950년생. 개풍관 관장.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 근간 <원숭이화하는 세상> <길거리의 한일론> 등.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