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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다음 전쟁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8. 18. 19:34

    전쟁사・분쟁사 연구가 야마자키 마사히로 씨와 그의 최근 저작 『전쟁을 업수이 여기는 흐름-1930년대와 닮은 길을 가는 현대 일본』 (아사히 신서)에 대해 온라인으로 대담을 했다. 그는 전쟁의 늪에 슬슬 빠져들던 1930년대 일본의 '흐름'과 현대 일본 사회 '흐름'의 유사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90년이라는 세월의 격차를 두고서 이 두 가지 '흐름'의 차이가 대담 현장의 중심 화제였다.

     

    1930년대 일본 일반 시민의 최우선 관심사는 '고물가'였다. 정부는 국민의 생활 개선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오로지 군비에 돈을 쏟아부었다. 1937년 2월 성립된 하야시 센주로 내각이 제출했던 예산안에 근거한 군사비 비율은 49%였다. 그 후, 7월에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난 후 군사비는 한층 증액되었다. 하지만, 국민은 이에 반대를 거의 하지 않았다. 전쟁에 대한 특단의 실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들 사이에서 전쟁은 설마 일어날 일이냐는 듯이 치부되었다.

     

    확실히 메이지 유신 이후의 전쟁은 청일, 러일, 제 1차 세계대전, 시베리아 출병, 만주사변... 등 모두 외국 토지에서 행해졌다. 일본 열도에서 전투가 행해지고, 집이 불타며 포화에 허둥지둥대는 일을 일본인이 경험했던 것은 B-29가 공습을 벌였던 1944년 6월부터이다. 겐코 시대 이래 700년에 걸쳐 일본인에게 전쟁이란 '어디 먼 데서 하는 것'이었던 셈이다.

     

    전쟁에는 윤택히 국비가 투입된다. 그것을 이용하여 약삭빨리 돈 될 만한 걸 뽑아낸다. 이기면 배상금이라든가 식민지를 입수한다. 무엇보다 지금껏 '황군 무패 신화'가 있었다. '전쟁을 업수이 여기는 흐름'은 그렇게 조성되었다.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난 뒤 7월 11일에 고노에 후미마로 수상은 긴급 각의에서 '자위권 발동'이라는 명목으로 중국 파병을 각의결정했다. 이 각의결정은 최종적으로 1945년 8월 15일 패전까지 이어진 긴 전쟁의 기점이었다. 15년 전쟁의 개전은 제국 의회에서의 심의 및 의결이 뒷받침되지 않은 단순한 각의결정이었던 것이다. 각의 결정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야마자키 씨가 중시하고 있는 점은, 각의 직후에 미디어가 보였던 반응이다. 도쿄아사히 신문사 주필, 요미우리 신문사 편집국장, 도쿄방송국(오늘날의 NHK) 상무이사 등 40명의 미디어 관계자에게, 고노에 수상은 '거국일치하여 정부방침에 협력하시오'라고 했다. 이에 응해 동맹통신사 사장이 전원을 대표해 '정부의 국책 수행에 전면 협력'을 약속했다. 루거우차오 사건으로부터 불과 나흘 뒤의 일이다.

     

    이를 '정부의 미디어 통제'라고 필자는 부르고 싶지 않다. 미디어가 앞장서 국책에 협력했던 것이라고 본다. 이 일화를 알고 나서 우리가 곧장 떠올리는 것은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미국의 황색저널리즘이다.

     

    당시, 퓰리처의 〈뉴욕 월드〉와 허스트의 〈뉴욕 저널〉은 격한 부수 전쟁을 전개했다. 선정적인 표제, 날조 기사, 화려한 일러스트는 양 신문사가 매양 일반이었다. 쿠바에서 미국과 스페인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양 신문사는 '스페인의 잔학행위'를 보도하며 국내의 호전적 기분을 부추겼다. 〈뉴욕 저널〉의 기자가 쿠바에서 '아직 전쟁이 일어날 낌새가 없다'고 보고하자 허스트가 '전쟁은 내가 꾸리겠다(I'll furnish the war)'고 타전했다는 일화가 지금도 전해진다. 진위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미디어에게 전쟁이 절호의 비지니스 기회였던 것은 사실이다.

     

    미디어는 변화를, 그것도 생활기반을 뒤흔드는 극적인 변화를 항상 고대한다. 따라서, 고노에 수상이 '장차 전쟁이 일어난다'고 통고했을 때, 소집된 일본 미디어 관계자들도 내심 환호성을 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310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국토는 초토화되었으며, 국가 주권은 상실당했다. 허나, 도쿄재판에서 전쟁책임을 추궁당한 25명의 A급 전범들은 전원이 '자신에게는 전쟁을 시작할 의도가 없었다'며 전쟁책임 인수를 거절했다. 키넌 검찰관은 최종논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25명의 피고 되는 모든 자에게 우리는 하나의 공통된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 가운데 단 한 명도 이 전쟁을 일으키기를 원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 그들은 달리 택할 길은 열려 있지 않았다고, 버젓이 주장하였습니다."

     

    고이소 구니아키는 만주사변에 반대하고, 루거우차오 사변 확대에 반대하고, 삼국 동맹에 반대했으며, 미국을 상대로 한 개전에 반대했다고 공술했다. 검찰관은 그러면 어째서 당신은 정부 부내에서 추요한 지위를 누진해 왔느냐고 물었다. 고이소는 이에 이렇게 답했다.

     

    "우리 일본인의 방식인데, 자신의 의견은 의견, 토의 결과는 토의 결과로 두는 바, 국책이 한번 결정된 이상 우리는 그 국책에 따라 노력하는 게 우리에게 부과된 종래의 관습이며, 또한 존중받는 방식입니다."

     

    도쿄재판 기록을 검토한 마루야마 마사오는 이렇게 결론내렸다.

     

    "나치 지도자는 이번 전쟁과 관련해 그 기인은 어찌되었든, 개전하겠다는 결단에 관한 한 명백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만큼 대전쟁을 일으켰음에도, 나야말로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의식을 이제껏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어찌됐든 무언가에 떠밀려서, 나라를 꾸역꾸역 일으켜 전쟁의 와중에 돌입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초국가주의자의 논리와 심리』)

     

    마루야마는 전범들의 책임 회피가 개인의 타락 차원이라고 볼 수 없고, '체제 그 자체가 담지한 데카당스의 상징'이라고 도파하였다. '체제 그 자체의 데카당스'는 전후 81년에 걸쳐 아직 계속 살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금이 1930년대와 똑같은 체제라고 필자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형해화되었다곤 하지만 전후 민주주의의 원칙은 살아있고, 언론에도 아직 자유가 남아있다. 치안유지법도 없고, 특별고등경찰이나 헌병대도 없다. 무엇보다 '정부가 통수권을 찬탈하였다'는 구실을 삼아 정부의 간섭을 물리치고 독자적으로 전쟁행위를 행하는 군대가 없다. 필자가 아무리 정부를 비판하더라도, 그에 따라 즉각적인 체포 및 투옥을 당하는 일은 없다.

     

    문제는, 그만큼 안전한 환경에 있으면서 미디어는 1937년 고노에 내각의 각의결정에 유유낙낙 따른 사례와 같이, 지금도 다카이치 내각의 '독재'에 굴하여, 정부비판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억제적이라는 점이다. 지금, 반체제적인 성향을 띠는 지식인・언론인은 대형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는 연예인은 여하튼 예외 없이 직업을 잃는다. 일본의 '언론 자유도' 순위는 62위이다.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그만 권력에 패배한 결과로 얻은 62위가 아니다. 권력에 아부하여 획득한 62위인 것이다.

     

    자민당과 그 동반자들은 앞으로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전쟁을 업수이 여기는 흐름'이 그들의 지지층에게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지지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시라고, 거국일치하자고 정형구를 구사하는 게 특히 유효하다는 것은 역사가 가르쳐주는 바이다.

     

    과거와 같이 일본은 전쟁을 또다시 벌일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다음 전쟁에서 일본은 다시금 패배할 것이며, 누구 한 명 그 책임을 지지 않으리라는 것뿐이다.

     

    (주간금요일 7월 28일)

     

    (2026-08-11 08:15)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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