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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적인 대학 - 2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8. 18. 12:37

    지난호에 이어 '이상적인 대학'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지난 달에 쓴 것처럼, 내가 생각하는 조직의 이상은 '중추적으로 관리받지 않더라도, 각 부서가 자율적으로 그때그때 적절히 움직일 수 있는 집단'입니다.

     

    이와 관련해 로빈 댄버라는 인류학자가 연구를 했는데, 집단에는 '최적화된 크기'가 있다고 합니다.

     

    '관리하지 않아도 자율적으로 최적 행동할 수 있는' 최대 크기는 150명. 그는 그것을 '댄버 수'로 명명했습니다. 이 크기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하나하나 '중추'에 보고하여 그 지시를 기다리지 않아도, 모두가 한솥밥을 먹으며 누가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알고 있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옆에 있는 동료를 보고서 '이거 좀 해 놓아 주어' '그려' 하고 이야기가 딱 통합니다. 일일이 관리층의 지시에 따르지 않아도 일이 처리됩니다.

     

    이러한 집단이 전투에 가장 적합하다는 점을 알 수 있으시겠죠. 로마 시대의 전투단위는 '백인대(켄투리오)'였습니다. 일본 역사상 가장 강한 무투 집단 신센구미도 이케다야 사건 당시 전성기 무렵 대원의 수가 약 100명이었습니다. 현대전의 기본적인 전투단위는 중대입니다. 이것 역시 150명입니다.

     

    '댄버 수' 집단에서 주목해야 할 게, '지시 대기' 없이 움직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말단에서 중추에 보고가 올라가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하고 상담하고, 중추가 판단하고, 지시가 내려지고, 말단이 그에 따르고... 그렇게 하다 보면 '날이 새어 버립니다'.

     

    위기적 상황에는 이런 둔중한 시스템으로 대응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즉단즉결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성원 전원이 '자기가 속한 집단의 사명'을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집단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전원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시를 내릴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날 영국의 엘리트 교육은 곧 '그러한 것이 가능한 사람'을 기르기 위한 시스템이었습니다. 또다시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기는 합니다만, 재미난 이야기이므로 부디 용서하십시오. '퍼블릭 스쿨'에서 영국의 엘리트들은 십대부터 축구, 럭비, 조정 등 집단적인 스포츠를 미친 듯이 합니다. 이는 멤버 전원이 마치 '하나의 신체'가 된 것처럼 움직이는 훈련입니다.

     

    전 일본 럭비 대표 선수로 윙을 맡았던 히라오 쓰요시 씨한테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한창 잘 풀릴 때는, 센터와 아이컨택같은 걸 하지 않아도, 자기가 어느 라인으로 달려야 할지가 명확히 보이고, 거기에 곧장 달려가 뒤를 돌아보면, 가슴팍에 떡하니 패스가 들어가 있더라... 하는 느낌인가 봅니다. 오른손과 왼손을 맞닥뜨려 박수칠 때 양손이 각기 어딨는지 서로 찾고 그러지는 않지요. 그런 느낌이요. 

     

    지시가 없어도, 자기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숙지하는' 인재를 육성하는 것. 그것이 본래의 엘리트 교육이었습니다. 왕년의 대영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식민지 제국이었으므로 온 식민지에 행정관이라든가 군인이 있습니다. 급하게 뭔가 대사건이 일어났을 때, 본국의 지시를 목이 빠져라, 언제 도착할지 기다리며 동작 멈춤 상태가 돼버리면, 파국적인 사태를 맞이할 리스크가 있습니다. 그러니, 현장에서 즉단즉결하는 겁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라고 불렸던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 중령은 제국 정부의 지시 없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오스만 튀르크 상대로 게릴라전을 전개하고, 아랍 족장들 상대로 다양한 외교적 약조를 맺었습니다. 그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무엇이 영국에 가장 나은 군사적・외교적 선택일지를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류학자인 에반스 프리차드는 아프리카에서 현지조사를 하는 와중에 제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는 바람에, 이제까지 연구대상이었던 현지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 당신들은 이제부터 내 부하가 되도록 하세요' 라며 군대를 편성하고, 그들을 이끌어 적군 기지를 공격했습니다. 물론 정부의 지시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가능했던 게 20세기까지의 '엘리트'였습니다. 지금과는 시대가 다르므로, '그런 식민지주의자들이 뭐가 바람직하다고'라며 인상을 찌푸릴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상위자로부터 지시받지 않아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숙지하고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 형성된 집단과, 지시가 없으면 꼼짝도 안하는 사람들로 형성된 집단 가운데 어디가 살아갈 힘이 강한지는 여러분도 이제는 잘 아시겠죠?

     

    나는 이렇듯 '지시가 없더라도 모두가 자기 할 일을 숙지하고 있는' 집단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집단의 '미션'이 명확할 것. 그리고, 그 미션을 다하는 게 자신의 자기이익 실현에 그치지 않고, '대의'에 공헌하는 것 (이라고 믿어지는) 바로 그것입니다. 영국의 경우는 '영국의 국익' 한참 위에 '문명 보급'이라는 '대의'를 내걸었습니다. 참 할 짓 없다면 할 짓 없는 사업이었습니다만.

     

    학교도 또한 그런 기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 쓰려고 했는데 이번에도 지면을 다 소진했습니다. 다음 얘기는 조만간 뵙기로 하죠.

     

    (「형설시대」 9월호 6월 21일)

     

    (2026-08-11 08:10)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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