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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을 얕보는 일본의 분위기"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8. 4. 08:29

    전쟁사 연구가 야마자키 마사히로 씨가 『전쟁을 쉽게 여기는 분위기-1930년대와 닮은 길을 가는 현대 일본-』 (아사히신서) 라는 새 책을 냈다. '전쟁을 쉽게 여기는 분위기'라는 제목은 현대 일본의 알량하면서도 달떠있는 집단적 심경을 참으로 잘 표현해낸 문구이다.

     

    1990년대, 2차 대전의 증인들이 타계하며 전쟁의 실상을 밝히는 사람이 자취를 감춤과 동시에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등장했다. 지난 전쟁의 반성을 '자학 사관'이라 꾸짖으며, '사실은 아시아를 해방시키려던 전쟁이었다'든가 '난징 대학살은 일어나지 않았다' 등의 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확정하는 일은 분명히 어려운 작업이다. 허나, '개연성 높은 학문적 추리'와 '주관적 망상'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이렇게 엄청난 정도의 차이를 '어차피 정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며 별것 아닌 듯 치부하는 태도가 포스트-역사수정주의의 초상이다.

     

    최근 황실전범 개정을 둘러싼 국회 심의회 자리에서도 '황기 2686년'이나 '2600년 이어온 황통' 따위 '주관적 망상'을 버젓이 발언하는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역사학자가 공표한 학문적 추론과 자신이 고른 '이야기'는 등가인 것이다. '나는 내 이야기를 믿는다. 당신은 당신의 이야기를 믿으라'는 게 그들의 (얼핏 보면) 공평한 자세이다. 이 얼마나 민주주의적인 태도이더냐. 그러고 나서는 누구의 이야기가 각기 신자를 더 많이 확보하고 있는가 다툴 따름이다. 믿는 인간의 머릿수가 많은 이야기야말로 '지배적인 이야기'가 된다. 국민의 과반수가 맘에 들어하는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이다. 국민에게 반성이나 자기점검을 촉구하는 이야기는 '나쁜 이야기'이다. 이렇듯 '팩트를 가벼이 여기는 태도'가 '전쟁을 가벼이 여기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야마자키 씨에 따르면 '전쟁을 쉽게 여기는' 행태의 두드러진 특징은 '전투'와 '전쟁'이 다르다는 점을 무시하는 데 있다.

     

    '전투'란 '수 명에서 수백 명의 병사나 전투원이 교전하는, 단기적이며 국소적인 전술적 교전'을 의미하고, '전쟁'은 무수한 전투와 그밖의 요소(국력, 경제력, 외교관계)에 의해 구성되는 '전략적인 개념'이다. 말하자면, 전쟁이란 전투를 부감하는 시좌에 서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군사를 논하는 사람의 거개가 미사일, 잠수함 같은 무기 수준 이야기에서 더 진전하지 못한다. 그러한 무기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하더라도, '어떻게 전쟁 목적을 완수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다. 부감적 시야를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다.

     

    도쿄 재판의 전범들은 25명 전원이 누군가는 떠안아야 할 전쟁 책임과 거리를 두었다. 자기는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고 앞다투어 증언했던 것이다. '달리 택할 수 있는 길은 선택지로써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버젓이 주장한 데에 검찰관 키넌은 경악했다. 놀랍게도 대일본제국 전쟁 지도부는 자신의 의사에 반해 전쟁에 몰려버린 것이다. 따라서, 전쟁 목적은 없었다. 달성해야 할 이념이나 비전도 없었다. 어떠한 조건이 갖춰져야 전쟁을 끝낼 수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 점에 있어서는 지금 일본을 '전쟁 가능 국가'로 만들려는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안전보장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자 함' 이외의 설명을 필자는 들어본 바가 없다. 그런 식으로 전쟁을 벌였을 때, 져버리면 무엇을 잃고, 이기면 무엇을 얻는가, 에 대해 부감적으로 널리 내다보는 담론을 필자는 한 번도 들어본 바가 없다.

     

    지금, 전쟁을 쉽게 여기는 사람들이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다. 이 점에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주니치 신문 7월 25일)

     

    (2026-07-29 10:37)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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