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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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간 『무지의 즐거움』 이메일 인터뷰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2. 20. 15:54
외국 출판사 기획으로 ‘무지의 즐거움’이라는 책이 나왔다. 한국에 있는 편집자와 옮긴이 박동섭 선생이 필자에게 묻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책이 한 권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가운데 이메일로 긴 분량의 인터뷰에 응했음으로 수록해 둔다. 우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의 작가이자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정지우라고 합니다. 이번에 우치다 선생님을 뵙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얼마 전 한국에 출간된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를 읽고 난 뒤에 우치다 선생님의 ‘광팬’이 되었고, 선생님이 쓰신 책을 몇 권이나 집에 쌓아 두고서 차례차례 읽고 있는 참입니다. 거기서 다양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책이란 죽기 직전까지도 다 읽지 못할 만큼 사서 쌓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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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외】 한국 민주주의의 잠재력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2. 6. 15:14
깊이 잠들었다 아침에 깨보니 '한국에서 계엄령이 발령되었다가 몇 시간 만에 해제' 소식을 접하며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어 트위터에서 입수할 수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한국의 국회의원과 언론, 그리고 시민들의 순발력에 감탄했다. 눈앞에서 정치적인 격변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곧바로 이해하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할 일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무도에는 '기(機)를 보다'라는 말이 있다. 이 기(機)라는 것을 소홀히 했다가는 역사가 다른 차원의 궤적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다. 계엄령 해제가 한나절만 늦었어도 시민과 군인 사이에 유혈 참사가 일어났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과거 44년에 걸쳐 쌓아 올린 한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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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는 스포츠인가?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2. 2. 13:02
아사히의 ‘고론’이라는 코너에 ‘무도는 스포츠인가?’ 하는 주제로 기고 요청을 받았다. 지난 파리올림픽 때 ‘무도가답지 않은 태도’를 보인 운동선수가 등장했던 것을 기획의 계기로 삼은 듯하다. 무도는 일종의 수행이며 승패를 다투지 않는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말하고 다녔음에도 불구, 다시금 원고를 쓰게 되었다. 아이키도의 개조(開祖) 되는 우에시바 모리헤이 옹은 지난 전쟁 당시, 아이키도가 살상 기술로서 유효함을 알아본 육군 간부가 아이키도를 군대에서 필수 교육 시키고자 허락을 받으러 왔을 때, ‘일본인을 모조리 악마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라며 길길이 화를 내었다고 전해 내려옵니다. 무술은 사람을 죽이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실제로 쓰기 위해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극한상황에 처할지라도 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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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싹, 키보오노 마치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0. 30. 13:49
『주간금요일』 독자분이라면 기타큐슈에서 노숙인 및 빈곤가정을 지원하는 ‘호보쿠’라는 단체와 그 대표인 오쿠다 도모시 목사라는 이름이 익숙하실 줄로 안다. 호보쿠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키보오노 마치’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기타큐슈시는 전날 쿠도파라는 조직폭력배가 접수했던 우범지대였다. ‘공포의 거리’였던 것이다. 쿠도파는 해산당했는데, 그 본거지가 해체되면서 그 자리는 유휴지로 남았다. 그 땅을 호보쿠 측이 사들여서, 지원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에게 활짝 열린 ‘키보오노 마치’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오쿠다 목사가 시작하였다. 토지 매입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독지가들에게 기부를 요청했다. 금세 토지 매입에 필요한 차입금을 전액 상환할 수 있을 정도의 기부금이 모였다. 호보쿠 자체 재원 5억 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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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읽기) 인생活着인용 2024. 10. 25. 23:04
‘나란 인간, 꽤 괜찮은 인간이군!’ 결혼하면 ‘이게 바로 나의 본모습이야’라고 믿고 있던 자신의 자기동일성이 상당히 깨지기 쉬운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결혼생활에서는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할 만한 ‘최후의 보루’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한집에서 같이 살아야 하므로 계속해서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엔 전부 양보하고 나서도 무언가 남는 게 있을 겁니다. 그것이 자기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남는 것이 꽤 ‘의외의 것’이라는 겁니다. ‘나만의 고집’이라거나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선’이라던 것들은 전부 양보하게 되고 오히려 ‘아, 내게 이런 면모가 있을 줄이야!’ 하는 부분에 자기 존재를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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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사태에 대해 상상력을 행사하는 것의 의미에 관해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10. 23. 14:50
디스토피아를 서사화하는 이유는, 디스토피아의 실상을 아주 자세히 꾸며내면 디스토피아의 도래를 저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류 차원의 지혜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디스토피아 장르’가 처음 쓰이게 된 것은 20세기 초엽부터입니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든가 조지 오웰의 『1984』를 그 효시로 꼽고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SF물이 대량 생산된 단초는 1950년대, 60년대 미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시절 대종을 이루었던 것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망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소한 휴먼 에러로 촉발된 핵전쟁이 터지고, 문명이 소멸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영화, 티브이 드라마, 만화, 소설을 막론하고 팽대한 수의 디스토피엄*이 쓰였습니다.(* 원문 ディ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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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신체론』 들어가는 말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9. 10. 19:43
들어가며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치다 다쓰루입니다. ‘길거리의 신체론’이라는 제목, 뭔가 기시감이 드시겠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시면, 처음 접하신 걸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부디 조심하셔야 해요. 이 책은 2011년에 마키노출판에서 나온 나루세 마사하루 선생님과 내 대담집인 『신체로 생각하다』(身体で考える)를 복각한 거니까요. 멋모르고 ‘오~ 두 분의 새로운 대담 책이 나왔구나’ 착각하여 덜컥 구입하는 바람에, ‘아, 이거 제목만 바뀌었지 내용은 그대로 아니냐?’라며 하늘을 우러러 이를 가는 일이 없게끔, 여기서 큰 목소리로 주의 말씀 드리는 바입니다. 그래도, 완전히 똑같은 책은 아닙니다. 복각이니 겸사겸사 ‘보너스 트랙’을 얹어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나루세 선생님과 함께 도쿄 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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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시바 모리헤이와 구마노의 힘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4. 7. 24. 20:29
구마노 고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어언 20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나베 시에서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서 ‘아이키도 開祖 우에시바 모리헤이 옹 그리고 구마노의 힘’이라는 연제로 강연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마침, 우에시바 선생이 다나베 출신 인물이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구마노의 바다와 산이 에워 키운바, 구마노의 영기를 비강에 가득 채우며 성장하신 것이다. 미나가타 구마구스가 이끈 신사합사 반대운동에도 분주히 힘쓴 덕에, 오늘날 구마노의 자연과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게 되었다. 따라서 선생이 완성하신 아이키도에 구마노의 지역성이 깊이 관련되어 면면이 이어오는 것이 당연하다. 그럴진대, 아이키도 주쓰의 리(理)와 구마노가 발하는 영력 사이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게 그리 용이한 업(業)만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