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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의 부모와 자식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5. 1. 10:14

    베이징에 살고 있는 친구이자 저널리스트인 사이토 준코 씨가 정기적으로 리포트를 보내준다. 중국 분과 결혼하여, 베이징에서 자녀를 양육하고 있으므로 보통 신문기사로는 읽을 수 없는 중국 사회의 깊은 내면을 가르쳐 준다. 최근에 보내준 것은 중국 청소년의 '우울증'에 대한 기사였다.

     

    아시다시피, 중국은 격렬한 경쟁사회이다. 유소년 때부터 공부를 강요당한다. 성적이 좋은 아이는 중학생 때부터 '초(超)급학교'라고 불리는 도시부의 전원 기숙사제 명문교에 보내져서,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시험공부를 시킨다. 성적이 나쁜 아이는 지역의 '현(縣)중'에 진학하는데, 이 단계에서 커리어패스가 끝나버린다. 출세의 희망은 없다. 아이의 자기평가는 낮아진다. 한 번 출세 코스에서 벗어나면, '입신출세주의' 이데올로기에 듬뿍 빠져 있는 부모나 교사로부터 충분한 정서적 케어를 받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성적이 좋은 아이도, 나쁜 아이도,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게 된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18~24세 청년층의 우울증 발병률은 24.1%. 고등학생의 우울증 검출율은 40%, 중학생은 30%, 초등학교에서 10%로 우울증 환자가 증가하고, 또한 저연령화하고 있다. 등교 거부, 자해 행위, 자살도 늘고 있다. 이 문제를 다룬 연구자는 '중국 사회는 이제껏 없었던 정신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경종을 울린다.

     

    사이토 씨는 모친답게, 이 위기의 본질을 '아이를 사랑할 수 없는 부모'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이 착안에는 필자도 찬성한다. 아이들을 그의 '있는 그대로' 승인할 수 없는 부모가 있다. 그러한 부모는 '이러이러한 조건을 완수하면 자식으로서 사랑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랑하지 않는다'라는 '조건하 승인'을 들이밀고, 아이들에게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는 공포'에 박차를 가해 필사적으로 공부를 하도록 몰아가게 한다. 애정과 승인을 무기화해,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사이토 씨가 소개하고 있는 어느 고등학생은 2세부터 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베이징의 상위 고등학교에 받아들여졌으나, 고등학교 1학년 때 기상 곤란이 일어나 우울증으로 진단 받아, 2년간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술회한다. "학교에서는 수업과 숙제, 집에서는 그 연장으로 또 숙제. 아빠와 엄마는 학교보다도 엄했다. 내 생활에는 등교와 숙제밖에 없었다."

     

    어느 명문대생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들 세대가 경쟁은 철저히 배웠지만, 친근한 관계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았다. 어떻게 남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를 배운 적이 없다.' (사이토 준코,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가치가 사라질 때」, 『세계경제평론』2026년, 5~6월호)

     

    이 언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방식을 배우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고 본다. 크리스트교의 주요한 가르침에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구가 있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인가.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게도, 가르치고 말것도 할 것도 없는가. 필자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건 그렇게까지 간단하지가 않다. 실제로 매년 많은 사람이 자살한다. 병든 자신이나 가난한 자신이나 학대받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은 죽음을 선택한다. 자기 자신을 반성해 보아도, 비굴하다든지, 병약하다든지, 쓸모가 없다든지, 무능력한 자신을 부끄러이 여기는 사람은 많이 있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게 불가능한 사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을 배운 것은, 부모에게 사랑받는 법을 통해서이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승인을 받음으로써,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인식한다. 그때 비로소 '사랑한다'는 행위의 주체는 세워진다. 그런 순서라고 생각한다.

     

    필자 자신은 아이를 키울 떄 아이에게 '살아 있어 주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방침을 채용했다. 아이가 무엇을 한다 해도, 무엇을 바란대도, 모두 승인해주기로 정했다. 아이의 요구에 필자가 시시비비로 대응하여, '이것은 OK', '이것은 안돼' 하고 판단하면, 아이들은 필자에게 판단을 전부 맡겨서, 욕망을 자기점검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무엇을 바란다 할지라도 전부 승인하기로 했다. '설령 돈을 빌려서라도 네가 원하는 것은 전부 사 줄게'. 그런게 선언했더니, '이거 사 줘, 저거 사 줘' 하고 집요하게 요구해 왔던 아이가 딱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그것을 자신이 생각하게 되어준 것이다.

     

    무조건적인 승인은 아이를 망친다는 사람도 있을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살아 있어주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은 부모의 진정이다. 필자는 6세 때 위독한 심장질환을 앓아서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신약의 효과로 목숨을 구했다. 그 뒤에도 8세 때와 10세 때 장기간 입원했다. 따라서, 양친은 필자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세 번 밥을 먹고, 기분 좋게 지내면, 그걸로 충분'이라고 생각해 주었다. 아이에게 있어서 이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다. 덕분에 필자는 '무근거한 자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딱히 대단한 일을 이룰 필요가 없다. 필자가 살아만 있으면, 어쨌든 양친은 안도해 준다. 그렇다면 뭘 하든 좋아하는 일을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결과, 75세의 기분 좋은 노인이 된 것이다. 양친은 급히 저 세상으로 떠났으나, 무조건적인 승인은 살아남았던 것이다.

     

    중국의 아이들도 걱정이지만, 그것보다 필자는 부모들이 걱정된다. '살아 있어주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식으로 친절히 아이들을 기르는 게, 결과적으로는 부모나 자식이나 행복해진다. 그 사실을 중국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데, 목소리를 낼 수단이 없다. (JA:COM 4월 20일)

     

    (2026-04-30 18:38)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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