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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 말기의 국민국가의 모습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 2026. 4. 21. 14:33

    이런 제목으로 기고의뢰를 받았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썼다.

     

     

    상당히 자극적인 제목이다. '자본주의 말기'라는 것이 도전적이다. '말기'라는 건 '곧 있으면 끝난다'는 말이다. 그럼, 언제, 어떤 모습으로 끝나는 것일까.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의 머릿속에 항상 '홍수여, 내가 죽은 다음에 와라' (Après moi, le déluge)라는 말이 있다는 탁견을 말했다. 아무리 천진난만한 자본가들도 '이런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리가 없다'라고 내심으로는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이 시스템은 와해된다. 하지만, 그것은 '될 수 있으면 내가 죽은 뒤에 오길 바란다'. 죽은 뒤에는 나는 상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19세기 중반 무렵부터 계속 '언제나 말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대홍수'를 뒤로 미루고 난 뒤 150년이 경과했다. 이렇다 함은, 지금도 우리는 자본주의 말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경과로부터 귀납적으로 추론하면, 아마 아직 잠시동안 자본주의는 끝나지 않는다. 아직 잠시동안 우리는 '자본주의 말기' 세계를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자본주의는 진절머리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리 그래도 '말기'가 너무 길다. 단말마의 고통도 계속 길어지면 '차라리, 즐겨 주길 바라네'라고 말하게 된다.

     

    에드가 엘런 포의 단편소설 <발데마르 씨의 병증과 진상>이라는 게 있다. '죽는 사이에 사람에게 최면술을 걸면 어떻게 될까?' 하는 의문을 품은 최면술사의 실험에 발데마르 씨가 동의한다. 최면술은 잘 걸려, 발데마르 씨는 '죽어 있으면서도 죽지 않은' 상태가 된다. 몇 개월 그 상태를 지속했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워 '제발 죽게 해달라' 하고 발데마르 씨는 간원한다. 최면술이 깨고서, 신체는 그 자리에서 붕괴되고, 부패취를 발하는 액상의 오물이 되었다... 는 이야기이다.

     

    자본주의는 '죽었는데 죽지 않은' 발데마르 씨의 상태 가운데 있다. 그럼, 자본주의의 연명을 가능하게 한 '최면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주의다라는 게, 21세기 경 실리콘밸리에서 발상(발증)되어, 세계에 퍼져 있는 '가속주의(accelerationism)'의 주장이다.

     

    자본주의의 연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민주주의이다. 가속주의의 대표적 사상가인 피터 틸은 '나는 이미 자유와 민주주의가 양립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언명하며, 민주주의의 폐절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죽게 놔두도록 하지 않겠는가. 자본주의가 죽는 데 필요한 것은 비민주주의이다. 독재제도 되고, 군주제도 좋다. 제정도 되고 귀족정도 되고 과두제도 된다. 어쨌든, 민주주의는 안 된다.

     

    왜 그러냐 하면, 사회복지제도나 노동분배율의 향상이나 성별차, 인종차별의 철폐 등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장' 탓에, 자본주의는 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간적인 배려' 때문에, 한참 전에 죽었어도 좋을 자본주의가 아직까지 연명하고 있다.

     

    이는 확실히 하나의 견식이다. <자본론>을 읽어보면, 1860년대에 영국의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많은 분들이 <자본론> 첫머리 가까이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노동가치설'에서 염증을 느껴 읽기를 중단하고는 하는데, 조금만 인내심을 발휘해서 제 8장 '노동일'까지 읽어보면, 거기에 열거되어 있는 영국의 노동 환경의 비인간성에 숨이 막힐 것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1863년 6월 초순, 듀즈버리(요크셔)의 치안판사에게 제출된 고발장에 의하면, 베틀리 부근의 8개 대공장의 소유자들이 공장법을 위한했다는 것이다. 이 공장주들 중 일부는 12세 내지 15세의 소년 5명을 금요일 오전 6시부터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 4시까지 식사시간과 한밤중의 한 시간의 수면시간 이외에는 조금도 휴식을 주지 않고 혹사시켰다는 이유로 고소당했다. 그런데 이 아동들은 '넝마 구덩이' 속에서 30시간을 쉴새없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그곳은 모직 누더기를 찢는 곳으로, 그 안의 공기는 성인노동자라도 계속 손수건으로 입을 가려 폐를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티끌과 털부스러기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수행 역, 2008 - 옮긴이]

     

    이는 어떤 공장감독관의 보고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34시간마다 수면시간이 1시간이라는 노동을 하고 있는 12세의 어린이"의 몸이 상상적으로 되어 보면, 그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것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욱 심한 건 성냥 제조다.

     

    "성냥 제조업은 비위생적이고 작업조건이 나쁜 것으로 평판이 나 있었으므로, 노동자 계급 중 가장 비참한 부분인 굶주려 죽게 된 과부 등등이 그들의 아동들[즉 '누더기를 걸치고 굶어 죽어가는, 교육도 받지 못한 아동들']을 이 제조업에 보내고 있다. 위원회의 위원인 화이트가 심문한 증인들 중 270명은 18세 미만, 50명은 10세 미만이었고, 10명은 겨우 8세, 5명은 겨우 6세였다. 노동일의 길이는 12시간으로부터 14, 15시간 사이였고, 야간노동이 진행되며, 식사는 그 시간이 불규칙할 뿐 아니라 대다수의 경우 인독이 가득찬 작업장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같은 책 - 옮긴이]

     

    성냥 제조 원료인 황인은 강한 독성을 가진 화학물질로, 제조중에 황인을 들이마시면 '인중독 괴저'가 되어 아랫턱이 괴사한다. 어떠한 병태인지 알고 싶다면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당시 환자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어린이들은 이렇게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맨체스터의 보건위생관 리 박사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 도시의 유산계급의 평균 수명은 38세였지만, 노동자 계급의 평균 수명은 불과 17세였다. 리버풀은 전자가 35세, 후자가 15세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는 즉각 실력을 써서 폐절해야 할 경제 시스템이라고 논했던 건, 이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이다. 하지만, 영국의 신사들은 자본주의를 폐절하지 않고서, 대신 '공장법'을 제정해 노동시간의 상한을 설정하고, 아동노동을 규제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연명시키는 길을 택했다. 자본주의를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것으로 위장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연명시키려 했고, 그 기대가 성공했던 것이다.

     

     

    만약 이때 영국의 자본가들이 '공장법'이나 노동 시간규제를 비웃으며 자신들의 욕망 그대로 비인간적인 노동환경 가운데 노동자를 완전히 먹어치우는 길을 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혁명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고, 영국 사회 자체가 도의적인 퇴화에 의해 자멸했을지도 모른다. 알 수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왜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자본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걸치고서 150년 이상 살아남게 되었다.

     

    따라서, 가속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사회복지라든가 건강보험이라든가 인권옹호라든가, 그런 쓸데 없는 것을 하니까 자본주의가 언제까지고 살아남는 것이다. 그런 것을 전부 떼어 내어, 자본주의의 혹악함을 벗겨내고서, 한꺼번에 숨을 끊어버리자'라는 아이디어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것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실리콘밸리의 백만장자들에게는 '오오, 기세도 좋구만. 그러면 형씨들, 한번 맨체스터의 성냥공장에서 1년 정도 일해 보지 않겠는가' 하고 말해주고 싶다.

     

    가속주의자들은 자본주의로부터 위선적인 요소를 전부 걷어내고, 자본주의를 폭주시켜 그 죽음을 재촉하여 단숨에 '포스트 민주주의' 체제로 빠져나가겠다고 제안하고 있다. '대홍수'를 어떻게든 막아내던 제방이나 수문을 전부 파괴하고, 모든 것을 씻어내린 뒤에, 잉제 깨끗이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에는 확실히 마음이 끌리는 데가 있다. 정말이지 영화를 속도조절해서 보는 젊은 사람들이 '될 수 있으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민주주의가 끝나는 것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포스트 민주주의' 세상이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 해상도 높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도 (가속주의자들 사이에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대안은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자문한 닉 랜드는 <암흑의 계몽서>라는 도발적인 도서 속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포스트 민주주의의 시대에도 '국가는 지금 있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포스트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주권이 집중하는 장소는 필요하다. 그저, 거기에서 민주주의는 완전히 제거되는 게 아니다.

     

    커티스 야빈은 이것을 '신관방학(Neo-cameralism)'이라고 부른다. 국가의 운영은 '하나의 국가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활동(Gov-Corp)'이다. 국가의 소유권은 주식으로 분할 매매한다. 주주가 국가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주민은 '고객'이 되며, 국가는 그들을 위해 효율적이고 고품질적인 서비스(치안유지, 사회적 인프라, 교육, 의료 등)을 제공한다. 고객 만족도가 낮으면 국민들은 다른 국가로 '이주'한다. 국민은 (주식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국정을 의논할 권리가없지만, 대신 '나갈 자유'는 있다. (No Voice, Free Exit).

     

    신관방학적인 국가는, 민주주의에 대해 확실히 몇 가지 이점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는 쉽게 단순한 다수결정치로 떨어진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탁월한 비유를 빌리면, 민주주의적인 정책결정이란 '두 마리의 늑대와 한 마리의 양이, 점심 심사로 무엇을 먹을까에 대해 투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종종 '51%의 자들에 따라 나머지 49%의 권리가 빼앗긴다' (토머스 제퍼슨).

     

    하지만, 딱히 '양'이나 '49%'를 동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국민들도 국가를 멸망시키는 정책에 기꺼이 동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면의 소란이 아니라, 그게 오히려 항상적인 상태이다. 가령 바른 방향으로 배의 타가 잡혀있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적인 정책실행은 지극히 비효율적이며, 책임의 소재가 분명하지 않고, 정책의 수치적인 달성목표가 제시되지 않아 그 정책이 성공했는지 실피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무엇보다, 입으로는 '민주주의'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을 다수파로 보이게 만드는 데 성공한 집단이 '과두 지배(oligarchy)'를 행하고 있다(이러한 지배집단을 야빈은 '대성당(catherdral)'이라고 부른다).

     

    이야기의 진행이 조금 과격하지만, J.S.밀의 <자유론>의 이로와 그렇게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밀은 이렇게 쓰고 있다.

     

    "인민의 의지라는 것은, 실제로는 인민 가운데 보다 다수를 차지하는 부분의 의지, 혹은 보다 활동적인 부분의 의지를 의미한다. 다수파란, 자신들이 다수파라고 공인받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런 연고로, 인민은 인민의 일부를 억압하고 싶다고 바랄 지도 모르는 탓에, 그에 대한 경계가, 다른 여러가지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계와 똑같은 정도로, 분명히 필요한 것이다." (강조는 밀)

     

    밀이 가속주의자와 다른 점은, 힘을 가진 미중에의 경계가 필요하다고 썼기는 하나, 그것을 '대성당'이라든가 '어둠의 정부'라든가와 같이, 민중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민중을 지배하는 조직으로서 실체화하는 것을 자제했던 점에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 '민중에 의한 민중의 자유의 억제', '민중에 의한 민중의 권력행사의 억제'인 것이다. 그리고 밀은, 그것이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난문이라는 점에 밑줄을 그어놓고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최종적 해결을'이라고 덤비는 가속주의자와는 그 점이 타임 스팬의 넓이가 다르다.

     

     

    성격이 급한 가속주의자들이, 현재 신관방학의 실천예로 들고 있는 것은, 싱가포르, 두바이, 아우디아라비아 등이다. (아마 북한이나 러시아도 들어갈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주식회사에 가장 자까운 국가'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속주의를 소개하는데 지면을 다 써버렸는데, '자본주의 말기의 국민국가'에 대해서 지금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파워풀한 비전이 가속주의자의 그것인 이상, 언급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 지면이 적지만, 이에 대항할 만한 국가 모델을 우리는 제시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어렵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본의 비즈니스맨 가운데에는 '국가의 이상은 싱가포르'라고 기탄 없이 말하는 사람이 상당히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는 바와 같이, 리 일가가 대주주인 점에서 '기업 국가(Gov-Corp)'이다. 인민행동당에 의한 일당독재가 70년 이어지고 있으며, 반정부 미디어는 존재하지 않고, 반정부적인 노동조합이나 학생운동, 시민운동도 존재하지 않는다. 영장 없이 체포, 장기 구금이 가능하다. '활기찬 북한'이라고 자주 이야기된다. 어째서 일본을 그런 걸로 만들고 싶은 걸까,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마 자신들은 항상 '탄압하는 측', '구금하는 측'에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을 싱가포르처럼 독재제로 모양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천황제가 있기 때문이다.

     

    헤이세이, 레이와라는 2대 '명군'이 계속 이어졌다. 그들이 국제사회를 향해, 일본국의 도의성과 문화적인 퀄리티를 담보하고 있다는 데에 이의가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천황은 독재자가 될 낌새가 없다. 일본을 독재제로 하려면, 21세기의 '쇼와 유신'을 일으켜, 천황을 궁성 깊이 가둬놓고 외부와의 연락을 끊으며, '유악상주권'을 독점하는 군인들이 '천황의 대변인'으로 군림하는 수상스런 시스템을 채용하는 수밖에 없다. 허나, 너무나 기시감이 강한 이 독제재 모델을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내밀어도 박수는 뜸할 것이다. 천황을 폐위하고, 독재자가 '신황'의 칭호를 참칭하는 '다이라노 마사카도 모델'은 더욱 인기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본에서는 '민주주의의 대안'을 구상하는 것을 천황제라는 존재가 막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있는 것은 천황제인 것이다.

     

    사실, 전후 80년 간, 이론국 헌법 아래에서 태고적 기원을 가진 천황제와 근대적인 입헌 민주주의는 갈등하며 공존해 왔다. 2016년의 '말씀'은, 천황의 '상징적 행위'란 무엇인가에 대해 시도한 헌법 해석을 천황 폐하 당신께서 하셨다는 점이 획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말씀' 속에서 폐하는 '이론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라는 헌법 제 1조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가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린다. 그것은 '예전에 전지에 부임해 거기서 죽은 사람들의 영을 진혼하고, 재해로 고통스러워하는 피재민 곁에 무릎을 대고 위로하는'것이다. 진혼과 위로, 그것이 '상징적 행위'라는 게 새로운 헌법 제 1조 해석이 되었다.

     

    이것을 천황이 국사행위에 대해 자신이 해석을 내린 건 위헌이라고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데,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헌법 제1조에 의한 '상징'의 의미를 사량하는 일은 국민이 게을리한 탓에, 천황 폐하가 자신이 그 일을 떠맡은 셈이다. 이는 청황 폐가가 국민을 향해 던진 '공'이다. 이것에 국민은 대답할 권리가 있으며, 의무가 있다. '말씀' 발출 직후에 '필자는 천황 폐하의 해석을 지지합니다'라는 선언을 개인적으로 냈다. 딱히 그것을 천황 폐하가 읽을 거라고 생각해서 쓴 게 아니다. 이 문제 제기에 답변하는 것이 국민의 권리이며 의무라고 생각했기에 그리 한 것이다.

     

    그러한 '주고받기'가 존립할 수 있다는 데에, 일본에서의 민주주의가 살아나가기 위한 한 줄기의 길이 통하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얘기가 길어졌으므로, 슬슬 마무리에 들어간다. 주제는 '민주주의 말기 국민국가의 모습'이다. 필자의 답은, 그것에 일반해는 없다는 것이다. '국민국가'라는 건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정치 개념이어서, 인종, 종교, 언어 등에 있어서 동질성이 높은 '국민(Nation)'이 '국가(Station)'을 형성하는 것과, 이러이러한 권리(특히 전쟁에서 싸울) 뿐이라는 이야기다. 국민국가라는 건,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 아니다 (일본 역시 국민국가가 된 것은 메이지유신 때이다). 국민국가는 잠정적인 정치제도이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우리는 손안에 그것밖에 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자가 있는 곳을 보정하고, 결함을 메우며, 모난 곳을 깎는 그런 by piece-meal적인 방법을 거듭해서 고쳐 써나가는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의 급무는, 외국계 뿌리를 갖고 있는 주민이 전 인구의 3%를 점하며, 그대로 늘어나는 가운데, 어떻게 Nation이라는 개념을 새로 덮어 써나갈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일본은 단일민족'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채, 예전부터 Nation개념을 뻗대고 있으면, 외국계 뿌리를 가진 사람들은 모두 '비 일본인'이라는 얘기가 된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이런저런 장면에서 조우하고, 협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깥 것'으로 멀리하고, 그 권리를 제한하는 배외주의에 필자는 인도적으로 반대한다. 그것보다는, 이해도 공감도 못하는 타자와 공생하고, 협동하여 '좋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 만한 시민적 성숙을 일본인이 향하는 쪽을 필자는 고르고 싶다. 오히려 그 노력을 통해 Nation이라는 개념의 두께와 너비를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지면이 다했으므로 여기서 붓을 놓는다. 정돈 안 된 글이라 송구스럽다. (Greenz, 2월 26일)

     

    (2026-02-27 07:03)

     

     

    글쓴이: 우치다 타츠루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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