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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려읽기) 여름감귤의 행방불명
    인용 2025. 5. 28. 16:32

    교환과 증여

     

    야마나시 씨는 매년 5월 자신의 산에서 채취한 여름귤을 친구나 지인에게 배달하고 그 집에서 머물면서 교류해왔다.

     

    여름귤은 그의 아버지가 심고 보살핀 것으로, 1993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야마나시 씨가 보살펴왔다. 직업을 가졌던 시기는 황금연휴에, 육십 대가 되어 은퇴하고 나서는 차가 붐비기 때문에 황금연휴 지나서 배달했다.

     

    여름귤은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야마나시 씨가 만난 사람을 귤산의 '출장소장'이라고 정해, 그 사람에게 여름귤을 배달(증여), 그 대신에 하룻밤 잠자리와 한끼 신세를 지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다. 내가 활동하는 복지농원에는 2008년에 와서 그때는 함께 캠핑을 하고 여름귤로 자낸 주스로 증류주를 희석해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농원에서 그와 교류한 사람이 겨울 온슈귤(温州蜜柑; 학명은 Citrus unshiu) 수확을 위해 그의 귤산을 찾아가는 일도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귤산을 상속받은 뒤 야마나시 씨는 온슈귤도 여름귤도 시자에 내놓지 않았다. 귤산의 절반을 물려받은 야마나시 씨의 형님은 아버지와 똑같이 수확한 귤을 농협을 통해 시장에 출하했다.

     

    한편 야마나시 씨는 온슈귤을 트러스트(기업합동)로 유지해왔다. 한 그루 한 그루에 주인을 모집해서 12월, 1월 수확 작업은 주인이 한다. 야마나시 씨가 제초나, 가지치기, 비료주기, 과실을 솎아내는 등 평소에 귤을 돌본다. 야마나시 씨의 청년단 시대의 활동이나, 청년단 OB로서 관계된 동인지의 활동 등을 통해서 만난,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오너가 되었다.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시점에서 연간 5톤 남짓 수확한 온슈귤은 시장을 거치지 않고 유통하게 되었다.

     

    여름귤은 현지 동료의 도움을 받아 수확한다. 온슈귤이 야마나시 씨가 사는 산장 주위에 자라는 반면, 여름귤은 떨어진 곳에 있다. 차도까지의 작업로는 급경사에 있어서 수확한 여름귤을 올리는 일은 중노동이다. 높은 곳에 있는 여름귤은 나무에 올라가 수확한다. 수확량은 대체로 1톤이다.

     

    흙에 파묻어 장기 보존하는 온슈귤과 비교하여 여름귤은 보존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야마나시 씨는, 쌀자루에 넣어, 전국의 출장소장에게 나눠준다. 어느 해는 서일본으로 가고, 어느 해는 북일본으로 간다. 그렇게 해서, 여름귤을 통해서 지금까지의 연결을 구축해왔다.

     

    2020년 봄, 전국에 긴급사태 선언이 내려진 가운데 야마나시 씨는 여름귤 배달을 했다. 현 경계를 넘어, 호쿠리쿠나 수도권에 사는, 아는 사람에게 귤을 운반하고 방문처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면서 교류했다. 코로나바이러스를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여름귤만 주고 떠났다. 동행한 동료는, 차번호가 그 지역의 것이 아닌 것을 사람들이 알아챌 수 있다고 흠칫 놀란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야마나시 씨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

     

    고속도로에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어 정체는 일어나지 않았고 이동은 원활했다.

     

    이렇게 해서 여름귤은 그해에도 각지의 출장소장에게 전달되었다.

     

     

    경계의 착란

     

    코로나바이러스에 직면한 사회는 여러 곳에 단절을 만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중요하다고 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 거리를 두었다. 바이러스가 몸 안으로 파고들지 않도록, 몸 안에 있는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도록 마스크를 썼다. 국경이나, (나라에 따라서는) 도시와 도시와의 경계는 폐쇄되었다. 일본 정부가 2020년 4월에 내놓은 긴급사태 선언은 도도부현의 경계에 단절을 만들었다.

     

    거기서 생긴 단절은 실은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새로 만든 단절인 것 같으면서도 원래 있던 단절을 따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경제나 사회를 돌리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 대 '보잘것없는 것'. '필수적인 일' 대 '그 이외의 일'. '장애가 있는 사람' 대 '장애가 없는 사람'. '일본인' 대 '외국인' ....... 평소 많은 사람에게는 파선(破線; 같은 간격으로 띄워놓은 선)이라고 밖에 느끼지 못했던 것이, 이때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실선이 된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야마나시 씨는 귤을 팔아 시장에 내놓는 농가가 아니다. 트러스트로 귤산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긴급사태 선언 아래에서도 유통업 관계자들은 쉬지 않고 도도부현 경계를 넘나들며 각지의 농산물을 계속 운반하고 있었다.

     

    시장에 출하하지 않는 야마나시 씨가 여름귤을 출장소장에게 배달하는 것은 그것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가 배달하지 않으면 장기 저장이 안 되는 여름귤은 그의 산에서 썩는다. 그렇다면 여름귤이 야마나시 씨에게 운반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긴급사태 선언에서의 이 배달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시장 유통이 아니라 증여를 위해 귤을 생산하는 행위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행위다. 실제로 판매를 하지 않는 야마나시 씨의 귤 생산량은 시장경제 지표들로는 파악되지 않는다.

     

    여기서 실은 시장 유통/증여라는 단락이 미리 그어져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그것을 빗대듯, 기능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름귤을 나르면서 그의 몸은 여름귤을 생산해 비상사태 선포하에 일부러 나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만연한 세계에서 여름귤과 함께 야마나시 씨는 질주한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느슨한 연결을 더듬으면서. 감염 확대라고 하는 긴급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 정부나 전문가가 생각한 규제가 그 규제와 얽히면서 생겨나는 우리의 사고가 어딘가에서 원래 있던 단락ー차별 혹은 배제라 해도 좋을지 모른다ー을 빗대고 있는 것을 드러내, 그 단락을 뒤흔든다.

     

     

    달갑지 않은 친절을 만들어내기

     

    야마나시 씨로부터 배달되는 여름귤은 30킬로용 쌀 한 봉지분이다. 무게가 십수 킬로가 넘는다. 한 집에서 소비할 수 있는 양을 훨씬 능가한다. 빨리 먹지 않으면 썩어버린다. 그래서 여름귤을 받은 사람은 그걸 또 누구한테 나눠준다. 나는 가족이나 복지농원 동료에게 나눠주고, 직장 사람들에게도 나눠주었다. 똑같이 한 봉지 배달해준 친구는 아이의 유치원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생협 배달원들에게도 나눠줬다고 한다.

     

    증여는 증여를 낳고, 무언가를 남에게 말하게 한다. 그런 교환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깊어지기도, 지금까지 없었던 관계성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생일에도 선물을 주고받지 않은 친족에게 여름귤을 선물한다. 직장에서는 언제나 선물을 받고만 있는 내가 이번만큼은 선물하는 사람이 된다. 마트 등에서 산 귤과 달리 껍질에 군데군데 흠집이 나 결코 깨끗하지 않은 여름귤에 대한 내력 설명도 필요하다. 야마나시 씨와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 이번 여름귤은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야마나시 씨의 일이나 귤산의 일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많은 여름귤은 받은 사람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연결고리를 빗대어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간다.

     

    사람과 여름귤은 서로 녹아든다. 여름귤은 그것을 키운 야마나시 씨나 동료들, 귤산과 거기에 사는 생물들, 그것을 운반하는 경차밴이나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끊임없이 연결되어 간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에 대한 예방책이 진행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진 세계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여름귤이 전파해,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든 세계와는 다른 종류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2021년 5월 여름귤을 나르고 방문한 이나와시로의 밤, 이 '달갑지 않은 친절'이 중요하다고 말하자 야마나시 씨가 동의하며 "하하하하하" 웃었다.

     

     

    증여의 독

     

    증여는 번거로운 일이다. 번잡스러운 일이다.

     

    달갑지 않은 친절은 폐를 끼치는 일이기도 하다.

     

    코로나 상황에서 여름귤이 배달되어 오는 것에 당황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야마나시 씨의 하룻밤의 잠자리와 한끼는 꼭 출장소장 집에 신세를 지는 형태가 아니라 호텔 등 숙박시설을 이용하기도 한다. 애당초 묵을 수 있는 집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여름귤을 받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메르카리도 곤마리도 훨씬 스마트해 보인다.

     

    모스 자신도 증여에는 위험한 힘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게르만어계 언어에서는 gift라는 말에 '선물'과 '독',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대접을 받았을 때 나온 술이나 식사에, 독이 담겨 있을 위험이 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손을 씻지 않고 요리를 만든다든가, 기분 좋게 마시게 해서 만취하게 한다든가 어떤 악의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직접 만든 음식에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증여는 설렘과 불안 사이에서 요동친다. 잘 되면 기쁨과 신뢰로 이어지지만, 슬픔과 불신, 멸시로도 이어진다. 때로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지배와 종속 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달갑지 않은 친절' 행위는 매우 섬세한 배려(신경 쓰기) 속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가감을 잘못하면 고마움 그 자체가 돼 숭배나 신격화의 대상이 된다(〇〇 씨는 신과 같은 사람이다). 가감을 잘못하면 민폐 그 자체가 되고 비판과 악플의 대상이 된다.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압도적으로 증여하는 사람이다. 연말이나, 백중의 시기, 아이의 탄생이나 가족이 입원했을 때 등등 선물용 과자 상자나 상자에 담긴 과일을 보낸다. 복지농원에 젊은이들이 도와주러 왔을 때도 고급 과자를 그 젊은이들에게 선물했다. 결코 부유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선물에 돈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하루하루 식비를 아끼곤 한다.

     

    그 사람에게 답례하면(예를 들어 식사를 대접하면) 이번에는 더욱 고액의 답례가 돌아온다. 그 때문에, "이제 선물은 필요 없습니다"라며 몇번이나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끝나는 일은 없다. 나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관련된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증여를 받고 있다. 받기만 하는 것이 부담되어 가격을 알기 어려운 그리고 시용성이 높은 것을 선물해주는 등, 이런저런 지혜를 짜낸다. 그것도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고, 또 때가 되면 그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계속 미안함은 남는다.

     

    그렇게 계속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만족하는 답례품을 주는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부담감이나 찝찝함을 해소하면 나는 그 사람보다 우위에 선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그렇게 누군가에게 계속 증여를 해야 한다고 느끼는, 빚이나 상처의 '끝이 없음'을 상기해, 그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꺼림칙함'을 응시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 다음에야 비로소 그 사람과 같은 방향으로 세계를 돌아볼 수 있다. 같은 걸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 사람과 나의 관계와 그 사람과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그것뿐이다.

     

    고전 힌두법을 단서로 모스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물은 그러므로 주어야 할 것이고, 받아야 할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하면서도 받게 되면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주어지는 것 그 자체가 쌍방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며, 이 연결고리는 취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신히 할 수 있는 일을 끊이지 않고 계속한다. 그렇게 해서 터진 데를 꿰매고, 굴레와 속박을 다시 짜나간다.

     

     

    ー이노세 고헤이, 박동섭 옮김, 『야생의 실종: 세계와 세계를 잇는 인류학의 질주』, 김영사, 127~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