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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스 레터) 장어구이집 아들 오길비인용 2025. 5. 28. 09:11
시바타 모토유키 선생과의 대담이 롯폰기 국제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시바타 선생은 무라카미 하루키와의 공저 『번역야화(翻訳夜話)』, 『샐린저 전기』 등에서 실로 깊이 있는 번역론과 문학론을 펼치고 있다.
그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시바타 선생에게 무심결에 말한 ‘장어’설을 내가 몇 번이나 여기저기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다. 그 시바타 선생과 번역과 문학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 한다. 두근두근할밖에.
내가 ‘문학연구자’나 ‘철학연구자’라고 말하는 것은 거의 경력 사기인데 ‘번역가’라고 불리는 것에는 천하에 부끄러운 점이 없다(아무도 불러 주지 않겠지만).
번역을 너무 좋아해서 대학 졸업과 동시에 히라카와 가쓰미와 번역회사를 차렸을 정도이다.
기술번역과 저렴한 추리극과 아동서를 콧노래를 부르면서 막 번역하였던 나의 ‘happy go lucky’ 번역가 인생은 레비나스 선생의 책을 번역하면서 확 바뀌었다. 레비나스를 번역하는 일이 얼마큼 놀랄만한 경험이었는지 지금까지 제대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한 적이 없다.
번역이라는 작업을 통해 역자 자신이 지적 성장을 이루는 놀랄만한 체험은 아마도 번역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만 이해할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있다면 현대 일본에서 시바타 모토유키 선생 이상의 사람은 없다.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덕에 시바타 모토유키 선생과 번역이 가져오는 기쁨과 놀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최고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두 시간 동안 진행한 대담은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말았다.
시바타 선생과 나는 오타구 가마타 지역에서 태어나 히비야고등학교, 도쿄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형제가 있는 집에 차남이라는 매우 비슷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이날 알게 되었다.
내가 시바타 선생에게 느끼는 친근감은 다마강에서 나고 자란 고유의 푸근함 덕인지도 모르겠다.
✳︎
장어 이야기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문학자 시바타 모토유키의 대화에서 처음 나왔다. 소설을 쓸때 무라카미는 종종 장어를 불러낸다고 한다.
시바타: 소설 쓰기는 어떤 경험일까요?
하루키: 저는 언제나 소설이란 삼자 협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시바타: 삼자 협의요?
하루키: 네. ‘장어설’이라는 게 있어요. ‘나’라는 글쓴이가 있고 독자가 있죠. 하지만 둘만으로는 소설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장어가 필요합니다. 우렁각시 같은 것 말이죠.
시바타: ?
하루키: 굳이 장어가 아니어도 됩니다.(웃음) 무엇이든 상관없는데 제가 장어를 좋아해서요. 그래서 저와 독자의 관계에 장어를 적절하게 불러옵니다. 저와 장어 독자 세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셈이죠. 그러면 소설이 제대로 완성됩니다.
이런 발상이 기성 소설에는 드물었던 것 같아요. 모두 독자와 작가로 이뤄졌을 뿐이고 가끔 비평가가 껴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상태로 대화가 진행되어서 의견이 좁혀지면 ‘문학’이 탄생하죠.
그런데 셋이 있으면, 두 사람이 잘 모를 때 “그럼 장어에게 물어볼까”가 되는 겁니다. 그러면 장어가 대답을 해 주는데, 그 덕분에 쓸데없이 의문이 더 깊어지기도 합니다. 그런 느낌으로 소설을 쓰지 않으면 재미가 없습니다.(웃음)
ー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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